> ─┼★STB 상생방송★┼─ :: 다시 만난 명쾌한 진리 증산도

나주 남내도장 최O영 도생님 입도수기

저는 3남 4녀 중 막내로 넉넉하지 않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바쁜 부모님 일손도 도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지관地官일도 하셨는데요.

묘자리 봐주는 일과 작명作名, 그리고 길일 택일吉日擇一 등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셨지요.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남의 것은 조금이라도 탐내지 마라."

가르쳐 주신 아버지!

지금도 시골 동네에선 명성이 자자한데요.

큰 나무 같았던 아버지가 2002년,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 인생 최고로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를 식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본 이후

저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계란도 먹지 않을 정도로 채식만 고집했는데요.

'사찰에 들어가 스님이 된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육식을 하면 내 몸이 오염될 거야.'

육식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어른이 되면 개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저는 말할 수 없이 허약해져 버렸는데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였던 몸이 몸집이 아주 작은 친구에게조차 밀릴 정도가 되어 버렸던 것이죠.

그 이후 할 수없이 육식을 시작하면서 빠른 속도로 예전의 체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또 다른 기억!

동네에 일요일이 되면 마을 전각에 기독교 전도사가 와서 성경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요.

왠지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왜 우리 종교가 아닌 외국 종교를 받아들여야 하나!' 라는 강한 의문 때문에 거부감만 느꼈습니다.

이후 불교신앙을 했는데요. 불교 또한 우리나라에서 토착화 되었을 뿐, 우리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1993년 봄, 군대 제대 후 복학하면서 대학교 동아리를 통해 상제님 진리를 처음 만났는데요.

이후에 시내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접근하는 사람을 따라 집회 참석도 해보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진법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개벽 다이제스트>와 <충격 대예언> 등 다양한 진리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후 증산도 구미도장에서 입도하여 태을주 수행을 해봤지만 별다른 체험을 하진 못했습니다.

<증산도 도전>도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요. 차츰 신앙과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학비를 벌어야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절실한 구도의지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엔 항상 증산도 진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경제활동과 결혼, 그리고 자녀 양육 등 25년이라는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버렸는데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아! 정말 세상이 상제님 말씀대로 돌아가는구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편 올해 저희 집안엔 많은 일이 발생했는데요.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형제들도 여러가지 병이 생겨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엎친 데 덮친다.'는 말처럼 아내마저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받았는가 하면 저의 아들은 두 번이나 크게 아파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추석 때는 큰 형님이 대상포진으로 힘들어하셨고 저희 아이들은 수두에 걸려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시 신앙을 시작해 초발심을 회복해야겠다!'

결심한 저는 추석 연휴기간 동안 증산도 나주 남내도장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도장과 집에서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를 읽으니 아이들에게 생긴 수두가 빠르게 치료되었는데요.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형님에게도 태을주 수행을 권했습니다.

 

입도를 앞두고 가만 생각해보니, 증산도 도장을 찾고서 집안의 우환이 잘 해결된 것이

조상님들의 덕분이었던 듯 합니다.

몇십 년 만에 증산도 진리를 다시 공부하니

더 이상 없는 명쾌한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기만 한데요.

25년 동안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 흘려보낸 시간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세상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증산도 진리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천지의 뜻을 받드는 것이 인생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죠.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도 증산도 도장으로 인도하여 함께 증산도 진리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아내와 함께 입도하려고 하는데요.

그동안 참여하지 못한 만큼 더욱 열심히 신앙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증산도 진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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