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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가치의 부재,지배종교가 사라진 시기.

어쩌다어른73회 한국인의 심리를 파헤치다.

어쩌다 어른 73회 '한국인의 심리를 파헤치다.' 허태균씨 강의편.

좋은 내용인 것 같아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행한 일제강점기 역사와 그후 6.25 전쟁을 겪으며

지배가치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오래된 사회일수록 지배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조선,대한민국을 거쳐온 

9천년의 역사를 가진 밝은빛의나라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겠죠.

 

종교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태종교입니다.

유럽이나 이슬람국가를 보면 알수가 있죠.


우리사회가 다양한 종교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모태종교가 사라진 시점이 있다는 것이죠. 

지배종교가 있는 사회에서는 종교가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온 가족이 일요일 아침에 성당을 가는데 자신만 안가야하고,
모두 절에 가는데 자신만 거부하고 안가는 힘든 과정을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는 다수가 공유하는 지배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600만이 신앙하던 

민족종교인 보천교가 있었습니다. 일제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으로 

민족종교가 사라지고 지금 공통된가치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때문에

사회가 너무나 혼란스럽고 고통이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어쩌다어른. 허태균 73회중 발췌.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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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전신인 민족종교 보천교. 도종환 문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언급

2017.06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증산도의 전신인 민족종교 보천교에 대해서 재조명되었습니다.

도종환 장관이 증산도의 전신인 민족종교 보천교가 저평가 되어 있다며,

한일운동의 근간이자 민종종교인 보천교의 재조명의 필요성에 대해서

도종환장관의 견해를 밝힌것인데요.

 

보천교는 교주 차경석이 전북 대흥리에서 창립하여

동학을 이어받은 증산교 계열의 신흥종교로 보천교를

한때 신도 600만일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보천교는 가장많은 항일기사를 작성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해서 일본의 신사참배 반대및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에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했다.

독립이후 김구선생이

"정읍에 빚을 많이 졌다."

라고 언급하였다.

일제는 보천교 교단 해체 작업에 돌입,

보천교 본부였던 십일전 건물은 허물어져

조계사 건물로 이전, 그 외 건물역시

허물거나 헐값에 처분되었다.

보천교는 일제탄압에 의해 1936년 교단이 해체되었다.

역사적인 연구와 평가가 미흡한걸로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국권회복 및 독립운동자금 모금 등은

당시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을 민족운동이었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고 밝혔습니다.

 

독립자금을 대고, 한때 신도 600만이었던 보천교,

일제의 탄압에 의해 짓밟힌 민족종교의 진실,

부디 도종환 문체부장관님이 민족종교 보천교의 진실을 알리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바로잡는 큰 역할을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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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옥현도장 백순란 도생님 입도수기

 

예순 살의 다른 말, 이순耳順!

나이 60세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지면서 만사에 귀 기울이게 된다는 뜻인데요.

살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이 더해져 더욱 의미있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제 나이 예순 다섯.

상제님 진리를 만나 인생 후반전을 시작한 후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참 오랫동안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무수한 날들 중, 좋은 일도 많았지만 '산전수전'이라는 말처럼 살면서 무슨 일이든 안 겪어봤을까요.

남편의 연이은 사업실패와 8년 전 남편의 식도암 수술까지.

한 치 앞이 안보이던 삶이었지만,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희망이라는 선물을 품에 안고 있었으니까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남편의 사업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죠.

당시 불교신앙을 하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부처님께 매달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사찰에서 21일 동안 하루 8시간씩 기도하던 어느 날!

저는 신비한 체험을 했는데요.

면류관을 쓰고, 빨간 옷을 입은 분을 뵌 것이죠.

'사극에서 보던 임금님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구시지?'

정말 궁금했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었는데요.

10년이 훌쩍 지나 상제님 진리공부를 하면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약' 이라고 했던가요?

어려웠던 날들도 어느덧 다 지나고 두 아들은 반듯하게 장성했는데요.

38살인 큰 아들은 올해 초, 집안의 경사도 안겨 주었습니다.

제가 입도한 며칠 후, 좋은 배필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죠.

상제님의 도생이 된 이후, 가만 생각해보니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덕분에 지금의 행복을 누리게 된 것 같은데요.

30여 년의 불교신앙 역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남편과 저는 새벽마다 참선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요.

부모님과 조상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위기에 처한 가정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오랜 불교신앙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누구일까?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에 대한 끝없는 의문이 들었는데요.

우연히 만난 분으로부터 인생의 의문을 해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김 도생님을 만나면서부터인데요.

증산도 도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 분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상생방송을 한 번 보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시작된 상생방송 시청!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 자기 자신이다. 또한 나를 낳아준 내 부모, 내 조상이 제 1의 하나님이다."

<태상종도사님 대도말씀>을 들은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요.

'그래, 바로 이거야!'

'증산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상의 후 찾은 증산도 울산 옥현도장!

성전에 들어서서 신단을 올려다 본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요.

10여 년 전 사찰에서 기도 중 뵈었던 그 분이 모셔져 있었던 것이죠.

우주의 주재자, 증산 상제님이시라는 수호사님의 말씀을 들은 저는 그 날부터 상제님 진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증산도 도전道典>을 읽던 중, 감동받은 조상님의 은혜에 대한 상제님 말씀!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증산도 도전 2: 119>

순간,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지극한 정성과 기도로 이제야 참진리를 만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입도공부와 21일 정성수행을 하는 동안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는데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진리공부를 하여 상제님과 태모님, 그리고 조상님들께 보은하는 상제님의 참 도생이 되고 싶습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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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원시반본시대, 공덕을 지어 운명을 바꾼 이야기.

“네가 공덕을 지어 운명을 바꾸었구나”

안병주 / 교무녹사장, 안산상록수도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는 때가 되면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과 함께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새해를 멋지게 수놓을 계획도 세우고 나름 다짐도 할 것이다. 대저 우리네 인생살이는 나 혼자가 아닌 남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펼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 세상 살면서 비록 작을지라도 남을 위해 덕을 베풀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삶은 그만큼 풍성해지지 않을까? 여기 착한 마음으로 덕을 베풀어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바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때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배휴裴休(791~870)라는 사람에게는 배탁裴卓이라는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 두 형제는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죽게 되어 외삼촌 집에 맡겨져 자라게 되었다. 배휴는 키가 매우 작았고 게다가 너무 못생겨서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동생 배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집이 싫다고 집을 나가버렸다. 남겨진 형 배탁은 어느날 탁발하러 나온 도승과 외삼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도승이 말하기를 “저 아이는 ‘업덩어리’라 집안에 있으면 이 집안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배휴는 그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 크게 상심하여 그 길로 집을 나와 버렸다. 자신이 비록 빌어먹고 살더라도 집안을 망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배휴는 집을 나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우물을 찾아갔다. 너무 배가 고파 물배라도 채울 심산이었다. 허겁지겁 물배를 채우고 주위를 살펴보니 아주 값지게 생긴 옥띠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본 배휴는 ‘옥으로 만든 비싼 허리띠인데 이 귀한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인을 찾아주고 싶은 착한 마음에 우물가에서 사흘 밤낮을 꼬박 지키고 있었다. 그가 허기진 몸으로 사흘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혹시 여기서 옥띠를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사연을 들어본즉 자기 아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 재판관에게 그 옥띠를 바쳐 자식을 살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할머니는 절에 가서 정성을 드리려고 목욕을 하는 사이 옥띠를 벗어 놓았다가 그만 깜박 잊어버린 것이다. 이제 사흘이 지나 누군가 가져갔으려니 하고 낙심천만하였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온 것이다. 배휴가 사흘 밤낮을 고이 지키고 있다가 옥띠를 내줬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할머니가 배휴에게 사례를 하려고 하자 배휴는 “본래 할머니 것을 할머니가 가져가는데 무슨 사례입니까. 이제 무고한 아들을 살리게 되었으니 그저 천만다행입니다.” 하고 정중히 사양하고 돌아섰다. 이후 배휴는 계속 걸식을 할 수 없어 다시 외삼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던 어느 날 과거의 그 도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다시 배휴를 만났다. 그를 보더니 외삼촌에게 “이 아이가 나중에 훌륭한 정승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전에는 집안을 망쳐먹을 ‘업덩어리’라더니 이제는 ‘정승’이 될 아이라니? 아이의 운세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이다. 외삼촌이 조카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배휴가 옥띠 찾아 준 얘기를 했더니, 도승이 말하기를 “그래, 네가 그 공덕을 지어 너의 운명을 바꾸었구나!" 라고 하였다. 배휴의 운명이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옥띠를 찾아 준 것이 덕이 되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게 된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살려 주었기 때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배휴는 도승의 말대로 나중에 명재상이 되어 백성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크게 흥왕시켰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공은 포덕布德보다 더 큰 공이 없느니라.”(8편 24장)하셨다. 가을의 추살기운으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 사람들을 상제님 진리로 살려내는 것이야 말로 무량의 공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꾼들의 운명도 포교를 하면 할수록 새롭게 바뀌게 된다. 우리가 ‘살릴 생生자 공부’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어릴 때 헤어진 동생 배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상이 된 형 배휴는 어느 날 나랏일로 황하를 건너게 되었다. 때마침 무더운 여름이라 뱃사공이 웃옷을 벗어부치고 노를 젓는데, 사공의 등에 자기와 똑같이 커다란 반점이 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자기 동생이 아닐까 해서 “네가 혹시 배탁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배탁입니다.”하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배휴는 꿈에도 잊지 못했던 동생을 천우신조로 다시 만난 것이다. 형은 감격하며 “이제야 널 찾았구나! 내가 바로 너의 형이다.”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동생은 차분한 말투로 “예, 형님! 저는 벌써부터 형님이 이 나라 재상이 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생의 말에 형은 어리둥절하여 “아니, 그렇다면 어찌 그리 무정하게도 여태껏 이 형을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동생의 말이 걸작이다.

“전들 왜 형님을 뵙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배운 것이라고는 노 젓는 일인데, 형님을 찾아가면 할 일 없이 저를 놀게 하고 먹여줄 터이니 사람이 그 짓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형님은 복을 많이 지어 이승에서 일국의 정승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제 분수가 따로 있어 뱃사공이 되었는데 형님 덕을 나누어 얻어먹으며 살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나룻배 하나로 오가는 사람들의 물길을 건네주면서 복도 짓고 제 처지를 따라 구름 흘러가듯 산천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들은 형 배휴는 ‘내 동생이 세상을 반듯하게 살아왔구나. 일국의 재상인 나보다 네가 훨씬 낫구나!’라고 생각하며 크게 감동했다. 형 배휴는 당대에 명재상이 되었지만 그 동생 배탁도 세상의 모든 영달과 욕심을 초월한 고매한 인물이었다. 그는 재상의 지위에까지 오른 형을 결코 부러워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분수를 알아 마음을 텅 비우고 한평생 청정한 마음으로 살았으니 그는 정말 한 고비 넘긴 멋진 인품의 소유자라 아니 할 수 없다.

상제님께서는 도전 9편 3장에서 “스스로 분수를 지켜 즐거워할 줄 알고 마음 닦는 공부를 잘하라. 정성스러운 마음이 잠시라도 끊어지지 않게 하며 날마다 더 널리 덕을 베풀기에 힘쓰라.”고 하셨다. 우리 일꾼들이 난법이 횡행하는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세상에 덕을 베풀며 뜻하는 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심법을 가지며 살아야 할까?

우선 첫째로 남 잘되게 하는 ‘상생의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살리는 포교의 덕을 많이 쌓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주의 가을정신은 의義이므로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추상같은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충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 지금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이므로 진리의 뿌리되시는 천지일월 사체四體 하나님과 자기 생명의 뿌리이신 부모, 조상님께 ‘보은하는 마음’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상제님 천하사를 하는 공인公人이요 무극대도를 닦는 도생道生으로서 한평생 이러한 인생의 계략을 잘 실행해 나간다면 진실로 멋진 천하사 일꾼이 될 것이다.

(월간개벽 2016년 1월)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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