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최후의 빙하' 붕괴…기상학계 "기후변화 극적 장면"  -밀란코비치이론

 


 

 

최근 북극의 최후의 빙하가 붕괴되어 기후변화의 극적장면이라는 전문가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관련영상을 한번 보시죠.

 

 JTBC  2018.08.22

관련영상 : https://youtu.be/f3W7zWKE55c

<위 사진은 뉴스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가장 두꺼운 '최후의 빙하' 무너져…기상학자들 이례적으로 "무섭다"고 말해 ...(중략)~

빙하 전문가 "2030년 북극 얼음 사라진다..이젠 늦었다". 2018.08.24

관련영상 : https://news.v.daum.net/v/20180824093901849

 

*수만 년된 '최후의 빙하' 마저 녹아..
*"북극 빙하 면적의 25%만 남았다"
*제트기류 약화 → 예측불가 이상기후
*"'제로 에미션'으로도 이미 역부족"

 

 

◇ 김현정> 그게 언제쯤이에요? 북극에 얼음이 없는 그날?

◇ 김백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정을 하고 있는데요. 약 2030년 정도 근방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중략)~

 

 

지구온난화는 현재 인류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단지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빙하기는 주기적으로 지구상에 나타나왔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해, 모를 뿐이죠.

 

 

<<10만년 ~ 14만년 사이 주기를 갖는 빙하기 주기>>

‘129,600으로 운행하는 우주 1년의 주기를 현대 과학에서는 빙하기 주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지구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약 10만년 ~ 14만년 사이의 주기로 주기적으로 온다

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밀란코비치의 빙하기 주기 이론입니다.

 

 

10만년 ~ 14만년 사이의 주기를 갖는다는 빙하기 이론은

우주 1시간의 주기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빙하기 주기에서 더운 간빙기와 추운 빙하기가 지속적으로 반복 된다는 이론입니다.

우주 1년이 사계절이라는 계절성을 띈다는 것을 과학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지구의 1년에서 30을 곱한 30년이 우주의 1시간이 되고,

이 우주의 1시간(30)12시간 모여 우주의 하루가 됩니다.

그러니 우주의 하루는 지구의 시간으로 360이 됩니다.

우주의 하루가 다시 30일 모이면 우주의 한 달이 되고,

지구의 시간으로 10,800이 됩니다.

우주의 한 달이 12달이 모이면 우주의 1이 됩니다.

 

이렇게 되어 우주의 1년이 (지구년으로 말하면) 129,600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도 우리와 같이 1년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빙하기가 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으신가요?

 

아래 영상을 통해 우주1년 12만 9600년에 대한 근거를 찾아보세요^^ (밀란코비치 이론 관련 영상)

관련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E61Qr59-ZJ8&t=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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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이름, 하나님

 

 

기독교를 믿는 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합니다.

보통 예수님의 아버지이자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죠.

그런데 이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실제로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말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박인로 (조선 선조때 시인, 1561~1641)

 

"때때로 머리를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뜨리는 도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최초로 세례를 받아 천주교인이 된 이승훈(1784년)과

개신교 선교사 알렌이 입국하여(1884년) 활동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승훈 (조선 최초의 영세자, 1756~1801)


그런데, 그보다 200여년 전에 쓰여진 한글 시에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을 보면,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영어성경을 보면 어디에도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란 단어가 없죠.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언제, 어떻게 우리가 써왔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쓰게 된 것일까요?

 

1992년 11월 11일

 

 


한 사람이 천주교와 기독교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그의 주장은 '원래 하나님이란 명칭은 한민족의 것인데,

그동안 기독교에서 허락도 없이, 로얄티도 내지않고 무단으로 써왔기 때문에

보상금으로 1억을 내라'고 재판을 신청한 것입니다.

 

 


죄목은 「하나님 도용죄」


"대한민족은 하나님(하느님) 사상이 투철하므로 이를 수용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인 야훼(여호와)를 하느님(하나님)으로 부르기로

성경 공동 번역위원회에서 결의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이란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인 여호와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 카톨릭 대사전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성경Bible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

1887년 선교사 5명(언더우드, 아펜젤러, 알렌, 스크랜튼, 헤론)은 성서번역위원회를 발족합니다.

 

 

당시 야훼(여호와)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용어선택을 놓고 상당한 논쟁이 오갔습니다.


여기서 언더우드는 1893년 찬양가를 펴내면서, 참신, 여호와를 채택해서 선교에 사용하였으나

그 반응은 극히 미미했다고 합니다.

 

언더우드의 사후에 그의 아내가 언더우드의 한국 생활을 쓴 책

<Underwood Of Korea>를 보면

 언더우드(연세대학교 설립자)

 

언더우드는 기독교의 여호와를 한국인들이 믿는 '하느님'(하나님)으로 번역하여

전도하는 것은 여호와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반대하였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번역회는 1894년, 신의 명칭을 표결에 부쳤고 투표 결과

천주(天主) 4표, 하나님 1표가 되어서 천주(天主)로 결정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서양 선교사들은 다른 용어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선교활동에 효과적인 '하나님' 호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됩니다.

 

 


그 이유인 즉, 조선인들은 오래전부터 하늘의 절대자를 하나님, 하느님으로 부르며

공경하고 써왔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 1886년 헐버트 <The Passing of Korea> ,

1899년 기포드<Every Day Life in Korea> , 1900년 게일 <Korea ldeas of God>을 살펴보면,

 


헐버트가 1886년에 쓴 <The Passing of Korea>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종교는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이 아니고

자연숭배와 거리가 먼 하느님(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이전 수천 년 전부터 우주의 최고 통치자로 하나님을 숭배해 오고 있었다.'

'한국의 고유한 신인 하나님은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야훼)의 속성과 일치한다.'

 


기포드가 1899년에 쓴 <Every Day Life in Korea>


'한국인들의 신앙의 가장 높은 자리에는 중국인들의 상제에 해당하는 '하나님(Hananim)'이 있고,

한국 사람들은 부처보다 더 높은 신으로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황제로서 섬기고 있다.'


 

 

게일이 1900년에 쓴 <Korea ldeas of God> 의 기록

 

'한국인들은 최고의 신으로 하느님을 널리 믿고 있다.

 

때문에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를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숭배하여 왔던 하나님으로

번역하면 전도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것이다'

 

 

 

기독교의 신에 대한 한글 번역에서, 복잡하고 치열한 논쟁 끝에 '하나님'이 채택되었고

더 이상 천주(天主)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독교는 우리 민족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하느님 신앙을 타고,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기 시작하죠.

 

 


그 결과로 오늘 날 우리가 하느님, 또는 하나님을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독교의 '야훼'신을 부르는 용어가 되어 버린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란 말을 기독교에서 가져가면서 우리는 호칭만이 아니라,

하나님 문화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고려대 사회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말합니다.

 

 


"외모에 집중하는것은 그만큼 다른걸 드러낼게 약해서 그래요. 가치가 없어서입니다."

 

"내재된 가치가 없다면 눈에 쉽게 보이는 외적 가치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또다른 예로 중산층의 기준을 보면 한국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고

반면에 외국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근대의 불행한 역사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녔던 가치가 손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볼 수 있는게 종교 비율입니다."


"저는 이 분포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참 불쌍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안정된 사회를 가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 종교가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태 종교가 없어진 시점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배종교가 없다.

 

이 얘기는 뭐냐면 한 나라의 지배 종교가 없다는 것은 지배가치가 없다는것입니다."


 

"모든 가치는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배 종교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다수가 같이 공유하는 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100여년전, 우리가 잃어버렸던 '하나님' 문화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였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것에 공을 들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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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리조나에서 28일 역사강연이 열린다.

 

미국 아리조나에서 28일 역사강연이 열린다.

원문주소: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6

 

사)대한사랑 미주지부가 주최하고 STB 상생방송이 후원하는 역사문화 강연회가

미국 서부의 아리조나에서 열린다.

28일 금요일 오후 7시 아리조나 한인회 강의실에서 열리는 이번 인문학 강연회는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뿌리역사와 시원문화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박찬화 한류열풍사랑 의장이 강연에 나선다.

 

 의장은 "지금 전 세계 특히 미국은 BTS 등으로 한류열풍이 거세다.

은 미국인들이 한국을 알려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배우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 우리 스스로가 먼저  왜곡되지 않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문화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라며

이번 행사의 참석을 권유했다.
  
 
사단법인 대한사랑大韓史郞’은 잃어버린 우리 문화와 역사를 되찾고,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 세워 대한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려는

역사문화운동 단체로 전국적으로 역사 바로 알리기 운동과

각종 역사 강연과 세미나 및 전시회 등을 통해 바른 역사를 알려나가고 있다.

문의는  010-9659-9576  로 하면 된다.
 


한편 이번 행사에 이어 9월 6일과 10일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오가네식당에서 개최되며 이후 15일 엘에이에서 강연이 이어진다.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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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민족의 선민사상은 인정하면서

 우리 배달민족의 선민사상은 부정하는가

 

 

    미사협 박석재 공동대표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에 정착하는 역사를 그린 영화 중 <영광의 탈출(Exodus)>이 있다. 

그 영화 주제가는 TV 주말극장 음악으로 유명했는데 그 가사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This land is mine.
God gave this land to me.
This brave and ancient land to me…….

 

한마디로 신이 유대민족을 선택하고 이스라엘 땅을 줬다는 것이다. 유대민족은 나라를 잃고 무려 2천 년을 떠돌았지만 선민사상(選民思想)을 바탕으로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보통 민족이라면 백 년만 떠돌아도 나라를 완전히 잃을 것이다. 새삼 유대민족 선민사상의 위엄을 실감하게 된다.

 

유대민족의 선민사상은 <구약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구약성경>은 유대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책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예수가 <신약성경>에 비로소 등장하니 <구약성경>은 전주곡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태곳적으로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성경>은 수메르민족과 만난다.

 

점토판 기록에 따르면 수메르민족은 천산(天山)을 넘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머리카락이 검고 상투를 틀었으며 씨름을 즐겼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들은 아예 수메르민족의 동방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수메르민족은 알타이 계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아브라함 일족이 떨어져 나오며 본격적으로 유대민족의 역사가 시작됐던 것이다.

 

앞서 유대민족의 선민사상은 <구약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우리 배달민족의 선민사상은 <환단고기> 같은 역사책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배달민족은 천산에서 내려온 알타이 계 천손(天孫)으로서 웅호이족(熊虎二族) 같은 지손(地孫)을 홍익(弘益)하며 세상을 다스렸다.  천손사상은 개천사상, 홍익사상과 일치하는 전형적인 선민사상이다.

왜 유대민족의 선민사상은 인정하면서 우리 배달민족의 선민사상은 부정하는가. 해방 후 70년이 지났어도 역사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읽어보지도 않고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역사상 가장 좁은 영토를 가지고 살고, ……,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둘러보면 속만 상한다. 이념, 종교, 지연, 학연, 혈연, 빈부, …… 등으로 사분오열된 우리는 나라를 잃고 백 년만 떠돌아도 모든 것을 잃을 것처럼 보인다.

 

이러니 훌륭한 선민사상이 있으면 뭐 하는가. 나는 대한민국이 컴퓨터라면 다시 포맷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개천혁명>으로 다시 태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이 혁명은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선민사상 같은 영성문화가 뛰어난 민족이 미래의 세계를 선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결국 서양은 유대민족, 동양은 우리 배달민족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만일 내가 교회나 성당을 다닌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식으로 포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교나 구교 역시 태곳적 신교에서 비롯됐다’, ‘유대민족과 우리 배달민족은 뿌리가 같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 역사를 통해 우리 종교를 새롭게 보자’, …… 식으로 <환단고기>를 공부하자고 설득할 것이다.

 

이것은 절을 다녀도 마찬가지다. 어떤 전래종교를 믿든 <환단고기>를 공부하면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영성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전래종교란 한마디로 다른 민족의 종교다. 인류의 시원을 밝히며 태곳적 다른 민족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고 있는 역사책이 바로 <환단고기>다. 예를 들면 천산의 역사적 가치를 가장 잘 기술하고 있는 역사책 역시 <환단고기>인 것이다.

 

만일 내가 전래종교가 아닌 민족종교를 신앙한다면 <환단고기>를 <구약성경>으로 간주할 것이다. 앞서 <구약성경>은 유대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책에 다름 아니라고 기술한 바 있다. <환단고기>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책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신앙하는 민족종교의 경전은 자연스럽게 <신약성경>이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예수가 등장하듯 경전에는 우리의 ‘그 분’이 등장할 테니까…….

 

<< 원문발췌 : 한문화타임즈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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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찾도 TV '독립운동하다 쫄딱 망한 종교'?

 

얼마전 8.15 광복이 지났습니다. 올해가 광복 73주년이라고 하는데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독립운동가 중 마지막 생존자인 이우석 선생님이 24년 전인 1994626,

8평짜리 무허가 단칸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쓸쓸히 눈을 감았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목숨 걸고 나라 지킨 분이 생활고라니요.

사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독립운동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독립운동하다 졸딱 망한 종교~!?

함께 보시죠.

 

# 민족종교의 독립운동

을사오적 처단, 무오독립선언, 3.1운동, 6.10만세 운동, 상해임정수립,

청산리, 봉오동전투 등 굵직한 독립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종교인들, 특히 민족종교인들 이었습니다.

 

당시 종교는 유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를 비롯해 천도교, 대종교, 보천교라는 민족종교가 있었습니다.

종교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당시 조선일보 항일운동 기사를 보면 알 수 있구요,

특히 민족종교에서 많은 독립운동을 펼쳤는데요.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는 민족종교는 당시 핍박받는 조선민중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민족통합에 큰 역할을 했죠.

 

# 독립운동의 중심, 보천교

이 중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항일운동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 있어요. 바로 보천교였습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는 알겠는데 보천교는 좀 생소하죠?

보천교는 증산상제님을 모시던 차경석성도가 상제님의 후천개벽을 성취하기 위해

도세를 일으킨 민족종교입니다.

당시 인구 1800만 중 3분의 1 600만 이상이 신앙을 했어요.

인구의 3분의 1이 신앙했으니 엄청났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조상님들 중 분명 보천교신앙을 하셨던 분이 있었을거예요.

보천교의 항일운동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죠.

 

엄청난 교세를 자랑했던 보천교는 당시 조선민중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희망과

독립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비전을 제시하며 그 어떤 종교보다도

주체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 보천교의 독립운동 1 - 무오법정사항일운동

그럼 보천교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인구의 3분의1이 신앙했는데 조직력이며 경제력이며 엄청났죠.

보천교의 독립운동은 곳곳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대표적으로 몇 개만 알려드릴게요.

 

먼저 무오법정항일운동이 있습니다. 1918년 제주도에서 엽총과 농기구로 무장한

사람들이 중문 주재소를 불 지르고, 주재소장과 일본경찰들을 구타한 사건입니다.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 항일운동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인데요.

불교에서 일으킨 운동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보천교와 불교의 연합투쟁이었습니다.

이 일로 보천교는 지도자와 간부들이 구속, 수배되는 등 큰 탄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보천교인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았죠.

 

# 보천교의 독립운동 2 물산장려운동

이에 보천교는 조만식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국권상실 후 우리민족의 경제권을 살리기 위한 중요한 독립운동의 요소로서

보천교의 조직과 자금이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보천교는 대흥리에 유리공장, 직조공장, 농기구공장 등을 지어

물산장려운동을 촉진하게 됩니다.

 

# 보천교의 독립운동 3 독립운동자금지원

보천교는 특히 독립운동자금을 굉장히 많이 지원했습니다.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1921916일 보천교의 재무담당이었던 김홍규의 집에서 열린

간부회의에 일본 경관들이 습격하게 됩니다.

 

김홍규를 비롯한 여러 간부들이 체포 되면서 가택수사까지 당하게 되고

이 때 마루 밑에서 10만 원가량이든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이 돈은 상해임시정부로

전달될 군자금이었습니다. 모두 압수당하게 되죠.

 

1924년엔 김좌진 장군에게 군자금 2만원을 지원했고,

자금이 없어 부대를 해체 할 상황에서 보천교의 지원 덕에 청산리 전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보천교 본소를 자주 드나들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구선생님은 광복직후 보천교 본소가 있던 정읍에 방문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읍에 많은 빚을 졌다.”

 

 

(자료) 화폐가치 (쌀을 기준으로 환산)

1920년대 10만원 2017년 기준 약 8(791,349,250)

2만원 2017년 기준 약 12(122,954,363)

 

 

 # 일제의 민종종교 탄압 유사종교 정책

그런데 왜 우리는 보천교를 전혀 알지 못할까요?

일제는 1915년에 불교, 기독교를 제외한 조선의 모든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로 격하시켜 감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 한민족의 정신을 담은 민족종교가 민족운동의 원천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일제에 의해 민족종교는 유사종교, 사이비라는 누명을 쓰고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민족종교라는 말이 생소하고 어색한 이유가 여기 있는 거죠.

 

# 일제의 보천교 탄압 - 보천교의 해체

그중에서도 보천교는 일제탄압의 1순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계속된 탄압을 받던 보천교는 교단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과 타협점을 찾게되는데요.

바로 시국대동단이라는 것을 함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국대동단은 일제가 보천교를 완전히 파괴하기위한 계략이었습니다.

시국대동단 취지 연설에서 모인 사람들 중 보천교 단원이 한 명도 없고

친일인사들만 모아놓은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보천교는 일본에 의해 유사종교로 뿐만 아니라 친일단체라는 오명까지 쓰고

단체가 해체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보천교 실제 사진과 평면도>

<보천교 십일전 해체당시 모습 실제 사진>

그리고 보천교 본소건물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어 전국 사찰들로 옮겨졌습니다.

십일전이라고 하는 보천교 본소는 규모가 경복궁 근정전보다 크고,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운데요.

 

십일전의 본전 기둥을 사용해서 지은 것이 조계사 대웅전입니다.

뭐 독립운동하다 집까지 다 뜯겼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이후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신사참배압력에 굴복했지만

보천교 간부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 마무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이였고 조선의 혼이고 희망이었던 보천교.

수많은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제의 탄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부활하여 증산도로 맥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천교를 신앙하시던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광복이후

증산상제님 신앙을 부활시켰고, 후천개벽을 최종적으로 완성한다는 사명으로

탄생한 것이 증산도입니다.

 

요즘 사회곳곳에서 크고 작은 적폐청산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은페된 독립운동사가 바로서야만 뿌리부터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상으로 내찾도TV였습니다.

 

*내찾도 TV 영상볼 수 있는 사이트 : https://youtu.be/0uQ7hFYmc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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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입문수기 '태을주 수도의 힘' 

 

전주 도장

최 OO (초등학교(당시국민학교) 교사)

 

 

지난 포스팅에 이어 80년대의 증산도 성도님들의 입문수기를 포스팅 하겠습니다.

오늘 입문수기는 당시 국민학교 교사였던 성도님의 수기입니다^^

 

 

■신명들린 계모님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기 전, 나는 20여 년을 오직 예수만을 믿고 살았던 천주교인이었다. 

그 때는 남보다 착하게 살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조금씩 남을 돕고 살면서,

나중에 예수님 계신 곳에 가자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 였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의식 없고 걱정거리 없는 신앙이 20여 년 반복되다 보니

조금씩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20여 년을 통한 기도 생활에서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한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당시에 국민학교 교사인 나의 입장으로서는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 주어야 하는데 기독교 교리 자체가

민족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책임감에도

문제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 함께 사시던 계모님께서 어떤 사람과 큰 분쟁에 휘말리고 난 후

그만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가출도 자주 하시고, 집에서는 매일 밤 잠도 주무시지 못하시며

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또한 밤 마다 입에도 담지 못할 저주와 욕설로 인해

식구들이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기도원으로 모시려 했으나

병원에서 조차도 의사와 다투고 진단서도 받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밤새 고함을 지르시 는 모습을 지켜 보다가, 종교를 믿는 사람답게,

이것은 필시 흔히 이야기하는 귀신들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계모님의 정신이상 증세는 더욱 심해져서 온 집안(당시 건물에는 6세대가 살고 있었음)이

불편해 했고, 마을에서도 원성이 자자해 지고 말았다.

 

그래서 주위의 권유로 성당에서 성수를 가져다 십자가를 머리 위에 놓고

마귀를 쫓는 의식을 갖기도 하고, 교회의 장로를 데려다

기도시켜보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당시에 상제 님을 신앙하고 있던 아들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증산 상제님의 진리말씀에 대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묻고 듣던 중,

나의 사정 얘기를 들은 그 친구가 “살인 죄에 걸렸을지라도 옥문이 스스로 열리느니라”

는 상제님의 말씀과 운장주'로 가정의 화를 물리친 실례를 얘기해 주면서,

자신감을 갖고 운장주로 척신(나에게는 마귀로 이해되었지만)을 물리쳐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 태을주가 맺어준 삼생의 인연

 

다음 날 아침 나는 마루에 앉아서 소리지르는 계모님 앞 에서 ‘운장주'를 읽고난 후,

 

 

들어가 주무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리고 학교로 출근을 했다.

집일이 걱정되어 퇴근 즉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내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내가 ‘운장주'를 읽고 출근한 후로

방에 들어가 온종일 주무신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심정은 7년 대한에 소나기를 만난 기분이었다.

즉시 그를 찾아가서 좀더 자세한 것을 물었다.

도우(道友:같은 도인끼리를 예전에 불렀던 말)는,

우주의 온갖 조화 기운을 끌어 모으는 ‘태을주' 수행을 해야지

‘운장주'의 도력이 지속적으로 발동된다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며, 지속적인 태을주 수행을 권유했다.

 

이를 계기로 증산도 진리에 대한 공부를 하는 동안 호기심도 더욱 생기고,

계모님의 병도 고치고 싶어서 증산도에 입문하게 되었다.

입문 후에 집회와 일일수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퇴근 즉시 도장에 가서 수도를 했다.

 

참으로 태을주는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 었으며, 우리 가정에 커다란 선물을 내려 주었다.

그 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참으로 이상한 일은,

계모님께서 나를 바로 보시지도 못하고 무섭다고 하시며 피하시는 것이 었다.

아마 태을주와 운장주의 도력 때문인 것 같았다.

계모님은 결국 내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수행을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정신이상증세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더불어서 도장에 입문 하시기 전에 신경을 썼던 당뇨병도 거의 나았고,

연세 들어서 생기는 얼굴의 검버섯도 수행을 통해 없어지는 음덕을 입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태을주수행에 의한 기적의 체험과 5개월 동안의 진리 공부로

인생과 우주에 얽힌 모든 비밀을 알고 믿음의 확신과 신앙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인생의 푯대를 상제님 신앙의 길에 정확히 꽃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나와 가족을 위한 수행보다는 앞으로 개벽되는 세상에

모든 인류를 살려내기 위한 간절한 구원의 마음으로 수행 생활에 매진하고자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5년전만 해도 조상도 부정하고 하느님

모시겠다는 어리석은 철부지 인간이었던 나를,

영적인 체험을 계기로 조상님과 모든 가족을 후천으로 갈 수 있게 하여 주신

증산 상제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은 내 아내가 진실한 상제님의 신도가 되지 못하여,

온 가족이 함께 신앙하는 분을 보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한다.

그러나 믿기를 활다리듯 하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새기며,

일심으로 상제님께 심고드리고 정성을 다하여

가정에 상제님의 음호가 고루 충만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동리 동리마다 태을주 소리가 이어질 날을 간절히 기원하며,

 

오늘도 신단 위에 청수모시고 태을주 소리에 젖어본다.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아"

 

지금현대인들에게 필요한것은? 포스팅보기

>> http://stbnjsd.tistory.com/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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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증산도를 신앙했는가? "그 전화번호는.." 편

 

얼마전 책꽂이에서 책을 한권 발견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책이었는데요.

제 나이보다 어쩌면 더 오래된 책으로 출간시기가 무려 80년대 입니다.

 

그 당시 증산도 신앙 입도이야기들이 실려있는 책이었는데요.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감동이 마음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선배신앙인들의 입도이야기 재미있는 수행체험이야기들이 실려있었습니다.

그 중 감명깊게 읽은 한 에세이를 소개해드립니다^^

 

 

 ■이상한 꿈

 강남도장 최 ㅇㅇ성도

 

이 천지간에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혼탁하고 모순과 부조리 투성 뿐인 현실 속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참사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참진리를 만났다는 사실에 얼마나 자신이 축복받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증산 상제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감히 적어 볼까 한다.

 

나의 부모님은 40년 이상 늘 아침에 청수 올리고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 함리사파하"라는

을주를 송주하면서 증산 상제님을 받들어 모셨다.

그러면서 아버님은 항상 자식들에게 우리 가족 모두가 한 마음으

증산 상제님을 신앙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한 은혜와 축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아버님이 신앙하시는 증산 상제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 부모님의 행동 그 자체가 못마땅했고,

태을주 읽는 그 소리가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서 그 때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정월 초하루 밤이었다.

 

모 대통령이 우리 집 문을 열고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이곳으로 반드시 전화를 하라'며 처음 보는 전화번호 적어 주시는 것이었다.

 

 

깨어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꿈 치고는 너무나 생생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그 꿈을 상세히 말했더니, 그것은 필시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남들이 늘상 말했듯이 아내도 역시 “우리 복권 사자”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횡재한다는 예시가 아니라 정말 일생일대의

큰 축복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 전화번호의 주인은 증산 상제님이었다!

 

그 후 그 꿈도 거의 기억에서 잊혀질 즈음 어느 날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이씨는 당시 증산도 강남도장을 다니는 성실한 신앙인으로

나와는 각별한 사이였는데,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그날 상제님 성구를 들으면서

평소 증산 상제님을 믿으면 가정에 복이 깃든다던 아버님의 말씀도 생각나고,

이씨의 말도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 증산도 도장에 찾아갔다.

 

도장에 들어 서니 향긋한 향내음이 은은하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고,

성전 앞쪽에는 몇 분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런 데 이상하게도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낯이 설지 않고

과거에 어디선가 한번 가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문득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어 도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그 도장의 전화번호가 언젠가 꿈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하사받은 전화번호와 숫자 하나 빼놓지 않고 딱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때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포근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아하, 그 때 그 꿈이 증산도 도장에 가라는 암시였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날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날 부르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자 집에서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시며 태을주 수도를 하셨던 부모님들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 모습에, 그 동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나 죄스럽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마음을 순결히 하고 어느 정도 기초교리를 공부한 후 입도가 허락되자 입도원서를 쓰게 되었다.

입도원서를 쓴 날 밤 꿈을 꾸는데, 어떤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이고 코고 아무데나 마구 찔러대는 것이었다.

 

 

순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막아내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그냥 무방비 상태로 맞기만 하다가 꿈을 깨었다.

그런데 그것이 꿈이었는데도, 꿈 속에서 맞은 부분이 실지로 맞은 것 처럼 아프고

이마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결국 그날은 회사에 출근도 못하고 끙끙앓아 누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가누기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증산도 도장으로 가서 입도 교육을 받고 철야 수도를 했더니

그렇게 아프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아갈 듯 가뿐해지는 것이 었다.

그때의 심정은 나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신 은혜가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젠 정말로 천지에 부끄럼 없는 증산도인으로서 좀더 겸허한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증산 상제님의 가르침에 합당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작은 문제가 따랐다.

 

■ 부지불식 중에 알게 된 아내의 전생은…

하루는 일요일만 되면 도장에 나가는 내가 좀 야속하였는지 아내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함께 절에 다니며 불교를 믿었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변할수 있나면서

집에서의 주문 수도는 물론 증산도에 관계된 책도 집 안에 는 일체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다.

아내의 그런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거기까지는 나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히 부부싸움이 잦게 되어 바람 잘날이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충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결사반대를 하는 아내를 도문으로 이끌기 위해서 날마다 상제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심고를 드리고 기도를 드렸다.

 “증산 상제님이 시여 ! 저의 아내를 부디 상제님 도문으로 인도하시어,

저희 부부가 함께 상제님을 신앙하여 조상 선영을 지극 정성으로 받들고,

이 썩어가는 세상의 삶속에 서 항상 올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음호하여 주시옵소서."

 

사실은 상제님과 인연이 닿기 전에 아내와 나는 불교를 신앙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하루아침에 혼자 상제님 신앙인으로 변모하게 되었으니

아내는 펄쩍펄쩍 뛰는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일이 이렇게 되니 아내는 사이비 종교를 신앙한다고 나를 더볶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집안에 불화가 생기게 되었다. 방법 끝에 완력으로 아내를 잡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는 더 거센 반발을 가져왔다.

작전을 바꾸자 하고, 입도를 하고 나서 내 마음을 상제님께 더욱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고스톱도 외박도 모두 끊어 버리고

아내를 위해 평소에 안하던 일들을 자진해서 도와 주었다.

그러자 아내도 이상하게 생각하며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적대시하던 진리책을 자진해서 보게끔 되었다.

 

 

하루는 아내의 친구들이 집에 오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아내 옆에 놓인 진리책을 보고,

 ‘우리 절에 주지스님도 이 진리책을 탐독한다'며 아내에게 적극 권장하여

내도 모종의 작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후 내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에

아내 혼자 주문테입을 틀어 놓고 앉아 있으니 몽롱한 상태에서 본인의 전생이라 할까,

한순간 일국의 공주가 되어 시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궁궐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단다. 그 일 이후로 위의 체험과 진리 책으로부터 깨닫는 바가 있어

나를 따라 상제님과 삼생의 연을 맺게 되었다. 지급 나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하는 아내를 보며

가끔은 예전 서로 다투던 얘기로 웃음을 나누곤 한다.

 

■저승사자의 방문

 

나에게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자식도 두지 못하고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가 계시다.

항상 마음 한 귀퉁이에 안쓰러운 마음으로 모셔두고 있다가,

한맺힌 작은 아버지의 영혼이라도 상제님께 인도하여 저승에서나마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 천도식을 지냈다.

 

천도식을 해드린 그 날 밤 우리 집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대문을 열고 커다란 소와 새끼 송아지를 몰고 쌀가마니를 메고

들어오시는 복꿈을 아버지께서 꾸셨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또한, 낮에 어머니께서 수도하시는 중에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가 오셔서

“oo가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 주어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도련님 50년 만에 처음 뵙는군요." 하시면서 무수한 대화를 나누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수록 내 가슴에 절실히 다가왔던 것

증산 상제님을 만나게 된 크나큰 은혜가 선영신의 음덕에서 비롯되었다라는 것이었다.

특히 그런 선영 중에서도 나를 기르시고 직접적으로 상제님과 인연을 맺어 주신

아버님의 깊은 사랑이 가슴 깊이 느껴져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렇게 음덕이 많으신 아버님에게 하늘이 주신 명이 어느덧 인연을 다했던 것인가,

어느날 집안에 불길한 징조를 알리는 불청객의 방문이 있었다.

 

하루는 저승사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와서 한지와 펜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체감이 들어 “안된다, 우리 아버지는 후천의 좋은 선경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사셔야 한다"라고

말하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이 저승사자는 “이 문제는 내 권한 밖의 일이라 명부에서

처리합니다."라고 말하며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데,

누님이 방으로 헐레벌떡 들어오면서 버님이 커피를 달라고 하셔서 드렸더니

그것을 잡수시고 방금 운명하셨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저승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꿈을 꾼 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직장으로 걸려온 아내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여보 , 아버님이 돌아가실 것처럼 이상해요 " 아내의 숨넘어 가는 소리에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님은 이미 다 돌아가시고 심장부분만 맥이 약하게 뛰고,

온몸이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인천과 영등포에 사시는 형님과 누님이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로 금방 운명하실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는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나의 한 손을 아버님 가슴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아버님 손을 잡고 지극한 정성으로 태을주를 읽었다. 약 15분 정도 했을까.

아버님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온몸에 온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는

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나는 고함을 치며 “아버지 !" 하고 불렀다.

잠시 후 형님과 누님이 도착하여 식구들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가 있었다.

 

“아버님, 이게 왠일이십니까. 많이 아프세요?”

안타까와 하는 가족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은 제 모든 것을 정리하신 듯

한없이 고요하시기만 했다.

“마음이 무척 편하구나. 아픈 데도 없고 애들아, 는 이제 상제님 품으로 간다."

 하시며 마지막 유언을 남기 시고 눈을 감으셨다. 

아버님의 출상을 끝내고 나서 상제님 영정 앞에서 천도식을 해 드렸다.

 

천도식을 하던 그날 하얀 날개달린 백마를 타고 좋은 곳으로 가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꿈에서 뵐 수 있었다.

요즘도 수도 중에 종종 아버님과 많은 영적인 대화 나누곤 한다.

우리 가정에 주어졌던 큰 축복과 은혜를 증산 상제님께 감사드리오며,

부모님과 선영의 음덕을 잊고 지내는 이들에게 이 글이 작은 경고라도 된다면

더없는 기쁨으로 받아 들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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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역사) 요점정리

 

 

1. 시간을 보는 눈

·직선적 시간관-서양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간다 (진보적 역사관)

 

·원형적 시간관-동양

역사는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 (순환적 역사관)

 

 

2. 역사의 다섯 단계(마르크스)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현대 ?

   

역사의 종말

미국의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역사의 종말>

역사의 종언이란 실제로 역사가 끝났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인류의 스토리가 다른 시점에서 쓰여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지금까지의 시점에서 보면 현실 및 미래를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인식이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던 냉전이 종언하자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역사의 종언(終焉)을 저술하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은 자본주의의 승리,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경쟁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후쿠야마는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만으로 되어 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소멸하였다. 이것에 의해 냉전 후의 인류의 스토리는 전혀 새로운 시점 없이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종언되었다는 것이다.

 

 

3. 생산수단에 따른 역사 변천

·원시공산사회

수렵채취: 공산共産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한다

 

 

·고대노예사회

농경목축: 생산수단의 독점(토지와 영토)

생산량 차이

지배와 피지배

왕은 종교를 통해 지배체계를 공고하게 함

 

 

·중세봉건사회(4~14세기)

영주 계급의 장원 소유

성을 축조함

 

 

중세봉건사회

고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명확하고 사회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배자는 더 이상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세가 그리스도교의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의 국왕은 신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통치의 권한을 인정받은 존재였다. 그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해주었고, 그 대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자본가의 등장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해진 무역 곧 상업의 발달과 18세기 증기기관을 이용한 공장의 발생으로 자본가(부루주아)는 토지와 영토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고 지배층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에서 이성理性으로

부르주아(자본가)는 왕을 정당화하는 신을 대신해 자신들을 정당화해주는 이성理性을 성공적으로 세계에 입성시켰다. (왕권신수설에서 사회계약설로)

 

중세봉건사회의 붕괴

구권력인 왕과 영주들은 장원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종교로부터 지배의 정당성을 얻었다. 반면 신권력인 부르주아들은 공장과 상업을 생산수단으로 소유하고, 이성으로부터 권력의 정당성을 얻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인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 등장했다.

 

4. 근대자본주의(18세기~2차 대전)

사회 계급이 둘로 나뉘게 됨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자본가, 시민, 유산계급)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무산계급)

 

 

 

5. 자본주의의 전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됨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

기계와 분업을 통한 생산

막대한 양의 생산물이 화폐경제를 만나면서 자본주의가 탄생

 

·자본주의의 특징

공급 > 수요

공급과잉을 불러옴

 

·공급과잉의 해결책

시장 개척 or 가격 인하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게 됨

 

 

6. 제국주의

·“그들에게는 식민지가 필요했다

시장 개척의 가장 좋은 방법은 식민지를 만드는 것.

식민지를 만들어서 원료를 공급받고 가공품을 판매하면 된다.

 

·유럽의 제국주의

산업화된 국가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시대

 

·뒤늦게 뛰어든 독일

중세 봉건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계속된 내전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뒤늦게 산업화

더 이상 차지할 식민지가 없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1차 세계대전

 

 

7.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공급과잉이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살

오스트리아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3국 동맹)vs.영국 프랑스 러시아(3국 협상)

 

·1차 세계대전의 종결

3국 동맹의 패배

독일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됨

국가 간의 갈등이 전쟁을 통해 안정화 됨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이로 인해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시적으로 해소

 

 

8. 세계 경제대공황

·전쟁 후 세계경제

전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자 공장 설비를 확장해서 더 많이 생산

식민지 수요는 이미 포화상태

가격을 낮추고 인원 감축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늘어남 (1929경제대공황)

 

 

 

9. 경제대공황 대책

·수정자본주의=후기자본주의

미국의 뉴딜정책

국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서 자유 시장의 문제점 해소

댐 건설 등 공공사업 추진으로 일자리 창출

수요창출

공장 가동

고용 활성화

 

·자본주의 폐기

러시아의 공산주의

공급과잉 문제점을 내포한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비롯된 공산주의를 선택

 

 

10.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경제대공황의 해결은 군국화로

독일과 일본은 군국화를 선택

 

·독일

1차대전 패배로인한 전쟁배상금과 경제공황이 겹치면서 국가 파산 위기를 맞게 됨

히틀러가 등장해서 나치당이 집권

배타적 민족주의로 결집

 

·일본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체제 종식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 통치

열강의 기술과 제도, 문화를 받아들이며 산업화

식민지 개척

경제대공황

대륙진출

만주, 중일전쟁

인도차이나반도 점령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

태평양 전쟁

미국의 참전

일본 패망

 

 

 

11. 냉전시대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롭게 재편

유럽은 전쟁으로 황폐해졌고 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됨

미국의 후기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대립

핵무기 보유

전면전 불가

힘의 균형

경기침체로 소련 해체

자본주의 독주

 

 

12. 신자유주의의 탄생

·냉전 이후의 자본주의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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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양이 뭐지?(2) 시간의 개념과 음양의 역동성

 

지난시간에 음양이뭐지 책에 나온 내용으로 음양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번시간은 그에 이어 음양으로 보는 시간의 개념과 음양의 역동성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위 그림을 보시죠~ 위의 두 그림에서

차이가 보이시나요?

 

언덕은 응달과 양달이 직선으로 나뉘었는데, 태극은 응달과 양달이

곡선으로 나뉘어져 있죠~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시간'인데요.

해는 동에서 떠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서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언덕에 비치는 응달과 양달의 비율은 한쪽이 많아지면

한쪽은 적어지고 또한 반대편이 많아지면 다른 반대편이 적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 결과 음양은 A처럼 직선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B와같이 곡선형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음과 양을 이루는 선이 곡선을 이루는 것은 시간이 직선이 아닌 곡선운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언덕에 시간의 개념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음양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응달과 양달이 균등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력권의 판도가 달라지고 음양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죠.

 

시간은 동(東)에서 서(西)로 움직이게 하고, 태양빛은 언덕을 비추면서 시간에 따라

응달과 양달의 세력변화를 일으킵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움직인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개입되면서 드디어 음양은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에 의해 부여된 이러한 음양의 특성을 '음양의 역동성(力動性)'이라고 합니다.

 

태극독의 이면에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곡선이 있는 것을 통해 음양은

항상 변화가 일어나고 또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공부는 외롭고 고독한 길[道]을 홀로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안개 속의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죠.

심지어 스승도 제자에게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말할수없는 이치"만을 말하여 제자가 가는 길에 방향만 제시해 줄 뿐이죠.

말할수 없는 이치를 전하는 자는 비유로써만 말할 뿐입니다.

자신이 깨우친 길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동양의 공부는 깨닳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선인들은 태극도나 무극도를 벽에 걸어놓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그 이치를 자연에 응용하곤 했습니다.

눈위에 핀 매화를 보다가 '아!'하고 깨닫고 구름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삼라만상에 수없이 응용해보면서

역동하는 태극을 깨우치곤 했습니다.

 

음양을 공부한다는 것은 태극을 깨닫는 것입니다. 음양을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삼라만상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깨단는데 있기 때문에 음양에 대해서는 스스로 공부해 가는 것이며,

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깨닳음에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발췌 : 음양이 뭐지? 전창선 어윤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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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양이 뭐지? 우주를 낚는 그물, 음양(陰陽) 탄생

 

 

우주를 낚는 그물, 음양은 우주라는 바다에 던지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숨죽인 미지의 심연에서 우주의 숨은 진리를 건져 올립니다.

음양의 탄생과 일음(一陰)일양(一陽)의 길[道],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길, 외롭고 고독한 길이 바로 동양의 길입니다.

 

푸른 바다는 미지의 깊이 속에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지만,

음양이라는 그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일찍이 동양의 지도지사(道師)께서 밝히신 음양의 대의를 살펴볼까요?

내경의 음양응상대론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陰陽者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음양자 천지지도야  만물지강기   변화지부모


生殺之本始 神明之府也 治病必求於本
생살지본시  신명지부야  치병필구어본

 

그 깊은 뜻은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해석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음양이란 천지의 길이고, 삼라만상을 통제하는 강기(綱紀)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살리고 죽이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신명이 깃들인 집으로서

인간과 삼라만상의 병(病)은

반드시 음양의 조절을 통해 고칠 것이다.

 

음양은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진다. 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자연의 진리에서

출발한 학문이므로 맞다, 틀리다는 시비를 가릴 수 없습니다.

단지 음양이라는 마스터키를 쥐고 있는 사람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음양과 오행이라는 조상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양과 오행을 깨치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본 모습을 정확하게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음양이 어디서 왔나, 그리고 어떻게 탄생되는 지를 알아볼까요?

음과 양은 상대적인 두개의 힘으로 삼라만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음양이 최초로 탄생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러나 그 상황을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바로 소우주를 통해 대우주의 실상을 엿보는 것이죠.

 

그리고 성전이나 신화, 전설등을 통해 추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1장을 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음양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이시나요?

 

우리는 구약성서의 내용으로 간접적으로 태극과 음양에 생성과정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소우주인 언덕을 통해 이 상황을 좀 더 상세히 관찰해 볼까요?

음과 양이라는 말의 본뜻은 언덕에 생긴 응달과 양달이라는 말입니다.

응달과 양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하루해가 지고 밤이 되면 천지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어두운 상태에서는 아무런 판단도 서지 않지요.

없는 것 같은데 없는 것도 아니며

적막한 상태로 어둠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하죠.

영원히 변함없을 것 같던 어둠 속에서 시간이 흘러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텅비어 있던 천지가 밝은 햇빛 아래 갑자기 드러나게 됩니다.

 

 

태초에 빛이 생겨 밝음과 어둠이 나눠지던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지시나요?

밝음과 어둠은 순간적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볼 것은 태양이 떠올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언덕입니다.

 

빛이 비치자 마자 언덕에는 양달과 응달이 동시에 생겨났습니다.

양달과 응달중 어느것이 먼저 생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양은 순식간에 함께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음이 있는 곳엔 항상 양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음과 양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이 생기는 동시에 양이 존재하게 되는 음양의 특성을 음양의 상대성이라고 합니다.

 

 

그럼 다시 언덕으로 돌아가 볼까요? 언덕이 빛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후

응달인 음과 양달인 양이 뚜렷하게 나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언덕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비록 음양의 작용에 의해 밝은 쪽과 어두운 쪽으로 나뉘었지만 언덕은 둘일까요? 하나일까요?

 

양달과 응달로 나뉘는 것과 관계없이 음양이 실현되는 장(場)인 언덕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바로 태극이며, 음양은 하나속에 들어가 있는 둘입니다.

 

이러한 음양의 특성을 음양의 일원성이라고 합니다.

다음시간에는 음양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적 개념과 음양의

역동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췌 : 음양이 뭐지? 전창선 어윤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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