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B 상생방송★┼─ :: '민족종교' 태그의 글 목록

[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1)

 

"우리 족속은 죄가 많습니다.

형제끼리 서로 다투고 죽이나이다.

재앙의 불꽃이 눈썹에 닿여도 아무 감각없이 코 골고 자나이다.

원컨대 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모든 죄를 참회케 하소서.

(1923, 보천교 기관지 「보광普光」, 춘정생春汀生, <나의 심고>)

1910년 일제에 강점 당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지 상태라는 초유의 참담함을 경험했다. 그렇지 않아도 19세기부터 힘겹게 버티어 온 조선왕조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제국주의 일본의 한 지방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민족의 숨줄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 4p 프롤로그

1920년대 들어, 보천교 교단은 인적·물적 수단의 확대로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확보되면서 실력양성운동에 참여하거나 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를 보며 무한한 고마움에 마음으로나마 지하에 계신 조부 조모님께 보천교에 대한 서광이 비추이게 되었다고, 일본사람들이 우리 민족 특히 보천교에 대한 탄압 그리고 사이비종교로 몰아 해산시키고
해방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이비종교로 알고 있고 교수님의 저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이 얼마나 많은데 불과 100년 전의 우리역사를 밝힐 사람이 없는가를 배우지 못한 제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천교 북北방주 한규숙의 손자인 한순창(74세) 옹의 손편지 중에서)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보천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우리민족에게 숨쉴 여력을 제공해주고 민족독립의 희망을 심어줬던 민족종교이다. 민족종교라 하면 그 시초를 보통 동학에서부터 찾는다. 곧 19세기 중반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을 창교한 이래 많은 민족종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0세기 초에는 증산 강일순(1871~1909)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여 한국 민족종교사에 한 획을 그었다. 천지공사는 큰병大病이 든 천하를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건설하려는 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보천교는 이러한 '9년 동안의 천지공사'를 마친 강증산이 1909년 세상을 떠난 후 그 제자였던 월곡 차경석이 조직한 교단이다. - 19p

 

증산 사후, 증산의 유지를 계승하는 교단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다. 보천교와 관련된 교단으로 본다면 1911년 고판례(1880~1935)가 창립한 선도교를 최초의 교단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판례는 강증산의 부인이며 차월곡은 고판례의 이종동생이다.

1907년 차월곡의 집에 들렀다가 증산을 만났고 1909년 종통대권을 전수받아 1909년 이후 증산의 유지를 받들면서 차월곡과 함께 교단형성에 노력하였다. 그것이 선도교였다. 그러나 점차 의견차가 생기면서 차월곡과 거리를 두게 된다. 차월곡은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조직을 구성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1916년의 24방주 조직구성이다. 따라서 보천교의 출발을 조직 구성으로 본다면 1916년 24방주를 조직하고 업무분장한 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1p

강점 직후부터 조선민중의 사상과 행동이 '민족'이나 '독립'과 연결됨을 두려워했던 식민권력은 식민지 한국인의 동향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였다. 더욱이 강점과 더불어 각종 사회단체들을 전부 해산시킨 식민권력의 입장에서 종교단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식민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실체를 확인해서 민중과 분리했고 지식인을 동원하여 내분을 일으키고 왜곡시켜 소멸하도록 공작했다. 그런 면에서 결론적으로 본다면 식민권력의 종교 통제정책은 성공했던 것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엄청난 교세를 확보했던 보천교는 1936년 차월곡의 사망과 함께 해체되어 버렸고, 처음에 지적했듯이 해방 이후, 아니 현재 우리들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식민권력이 생성해 놓은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보천교가 잘못한 죄라고는 일제강점기에 교단을 형성한 죄, 자칭·타칭 600만이라는 수많은 조선 민중과 함께 했던 죄, 그런 만큼 자금이 많았던 죄, 그리고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죄밖에는 없는데도 말이다. - 22p

종교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883년 정도에 우리사회에 나타난 개념이다. 그것도 religion이라는 다분히 기독교적 개념을 접했던 일본 학계가 만들어낸 용어로, 이후 조선사회로 유입된 개념일 뿐이다. 그 용어로 민족종교를 재단하는 것, 그래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미신(사이비)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곧 '근대=문명=기독교↔보천교=미신=전근대'라는 틀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합되면서,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 24p

당시 기독교, 천도교 등 기득권 종교계는 민족종교와의 분리를 통해 제도화된 근대종교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보천교만 아니면 우리 기독교를 모든 조선민족에게 선포하는 것이 하룻거리 일로써, 획기적으로 조선에서의 교세를 독점할뻔 하였는데, 보천교는 우리 기독교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며 커다란 악마'라 보고 보천교 박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고 했다.

또 식민지 언론과 지식인들도 '근대'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열의와 카르텔을 보호받으려 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학계에서 보여지는 '식민사학의 카르텔' 보호처럼 말이다. - 25p

[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2)에서 계속...

 

태을주 수행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계절, 우주변화원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생존의 비밀, 한민족과 증산도, 천지성공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생존의 비밀 책자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친절히 상담해드립니다.


★무료 소책자 신청 링크★ http://db.blueweb.co.kr/formmail/formmail.html?dataname=sunet3330

 

Posted by 북두협객
,

 

보천교의 민족독립운동입니다. 항상 독립후의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것이 보천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천교는 여러분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어쩌면 보천교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떤 일본인은 그런 말을 합니다. 당시의 1930년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다수의 조선인들이 조선독립을 이야기하고, 보천교를 믿지 않으면 조선민족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천교의 역사는 100여년간 왜곡되고 숨겨져 왔습니다. 10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서야 이제서야 이야기를 합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에 대한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편견을 버리자! 는 겁니다.

3.1운동 100주년인데, 이제서야 이 보천교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수많은 활동 중,

김형렬의 활동 하나 정도 나와있지,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원하면서 마치겠습니다.

 

-=-=-=-=-=-=-=-=-=-=-=-=-=-=-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

당시 조선인구 2000만중에 일본문서기록 600만, 비공식기록 700만!

아주 시골 사는 분이나 노인, 아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조선민족이 믿었던 당시 상황상 국교라고 봐도 무방한 종교였습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거의 모두가 신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아리장독대의 청수모시고 빌던모습들 아시죠?
근데 왜 지금은 모르냐?

독립운동자금의 대부분이 이 보천교에서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김구선생님이 광복하고 귀국하자마자 보천교의 성지 정읍에 내려와서 "정읍에 많은 빚을 졌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이 보내지니, 일제가 보천교를 극도로 탄압했고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서 보천교는 와해되고맙니다. 그 후 바로 육이오가 터지고. 당장 먹고살길없이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살다보니 민족의 정신문화 신앙문화가 모두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옛날 신라시대 최치원선생은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유불선, 기독교는 서선이라고 봅니다. 유불선의 뿌리가 우리나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종교의 뿌리가 9000년전 환국 배달국시대에 뻗어져나갔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정신문화가 신교인데, 증산도는 바로 이 신교의 열매이자, 모든종교의 최종 결론입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

국회보천교학술대회.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일제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2017년 11월 15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보천교학술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8시간동안의 심도깊은 학술대회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보천교 교주 차경석의 항일투쟁과 민족독립운동, 일제의 보천교 및

민족종교 탄압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백범김구선생도 주변 측근들에게 "정읍에 빚을 많이 졌다."고

이야기 했다고 하지요. 정읍은 보천교의 본부가 있던 곳입니다.

보천교 공식자료와 상해 임시 정부와 보천교의 관계망을 보면

상당히 밀도가 높은 관계망이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미 국무성 밀러보고서에 따르면 보천교는 한때

신도가 600만명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일제는 1915년 조선총독부령으로 포교규칙을 선포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인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단체로 규정하여,

건전하지 못한 집단, 미신집단 사이비종교단체로 규정하였습니다.

언론또한 일본총독부의 선전매체로 전락, 민족종교 보천교를

사교와 같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반사회적사상과 가르침을 펴는

미신, 사교집단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지금도 일제시대의 잔재로 인해

보천교가 사이비종교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적어도 우리 후손들은 바른 진실을 알아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관련영상보기 ^^▼

미스터리, 한문화, 예언, 수행, 사후세계와 증산도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께

소책자 무료증정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010-9659-9576번으로 문자로 많이 신청해주세요^^

글이 유익하셨다면 공감 하트 꾸욱 눌러주세요^^* 

Posted by 북두협객
,

 지배가치의 부재,지배종교가 사라진 시기.

어쩌다어른73회 한국인의 심리를 파헤치다.

어쩌다 어른 73회 '한국인의 심리를 파헤치다.' 허태균씨 강의편.

좋은 내용인 것 같아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행한 일제강점기 역사와 그후 6.25 전쟁을 겪으며

지배가치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오래된 사회일수록 지배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조선,대한민국을 거쳐온 

9천년의 역사를 가진 밝은빛의나라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겠죠.

 

종교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태종교입니다.

유럽이나 이슬람국가를 보면 알수가 있죠.


우리사회가 다양한 종교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모태종교가 사라진 시점이 있다는 것이죠. 

지배종교가 있는 사회에서는 종교가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온 가족이 일요일 아침에 성당을 가는데 자신만 안가야하고,
모두 절에 가는데 자신만 거부하고 안가는 힘든 과정을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는 다수가 공유하는 지배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600만이 신앙하던 

민족종교인 보천교가 있었습니다. 일제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으로 

민족종교가 사라지고 지금 공통된가치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때문에

사회가 너무나 혼란스럽고 고통이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어쩌다어른. 허태균 73회중 발췌.

 

Posted by 북두협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