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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상무도장 송승주 도생님 입도수기

 

어린 시절, 어머니는 새벽녘이면 제 머리맡 조그만 상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하시곤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를 위해 치성을 드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요.

어린 마음에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던 탓에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신앙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의 왜곡이거나 스스로 유대인의 민족종교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요.

한민족이 역사적,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확고한 믿음 덕분에 제 관심은 항상 우리 역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군 제대 이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역사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역사공부를 하면 할수록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들이 표면적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또한 그 이면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명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요.

시험이 끝난 어느 날,

가판대에서 발견한 증산도 진리 서적, <이것이 개벽이다.>!

책을 빌려와 읽으면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지 자연과 하나 되어 살던 영성문화,

'신교神敎'가 인류 시원 종교라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죠.

다가올 후천개벽을 과학적 논리로 증명한 부분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시간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시청하게 된 상생방송!

"증산도는 9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종교였다. 우리 민족 종교이자 모든 종교의 원천이었으며,

보천교의 교세가 구한말 700만에 이르렀고 신도들의 성금이 독립운동 자금에 막대한 재정적 토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보천교에 대한 내용을 들은 저는 역사적 정당성까지 있는 증산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산도 진리를 알면서도 증산도 도문에 입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작년 여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땐 관에 태을주 주문지를 넣어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천상에서 열심히 태을주를 읽고 계시겠지요.

환갑을 바라보는 처지에 가치 있는 일에 정진하는 것이 풍요로운 인생을 가꾸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앞으로 증산도 진리를 일심으로 신앙해 열매 맺는 태을핵랑이 되겠습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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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덕진도장 박상호 도생 입도수기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방송!

그 이후 자주 시청하게 된 상생방송이었습니다.

평소 역사를 바로 알아야 봉사정신도 생기고 가정에 신뢰와 사랑이 넘치면서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란 신념이 있었는데요.

상생방송을 보면 볼수록 지난 시간,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확 트이면서 새로운 고대역사의 진실이

마음 속에 다가왔습니다.

땅 속에 묻힌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비로소 역사가 드러나는구나!'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는데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각박한 현실로 인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한 평생 고대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헌신하고 계시는

<환단고기> 역주자님을 무한 존경하게 되었는데요.

'환단고기 북콘서트에 꼭 참석해야겠다!'

'역주자님을 만나면 반드시 인사를 드려야겠다!'

다짐하면서 상생방송 속 북 콘서트를 즐겨 찾곤 했습니다.

인생이란 자전거 체인처럼 엮어진 인연으로 한 평생 흘러가듯,

'종착역은 어디일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인생과 인연은 무엇일까?' 등, 많은 의문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는데요.

상생방송을 통해 해답을 하나씩 찾게 된 것입니다.

저는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대나무통술, 대통주를 연구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조급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대충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수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사업을 해보겠다고 가족을 등지고 찾아 든 낯선 타향!

'이 곳에 정착하게 된 것도 과연 인연일까?'

'이 곳과 무슨 인연이 있을까?'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상생방송!

당시 외롭고 힘든 저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는데요.

조상님들의 은혜를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품전 행사장에서 증산도 도생들을 만나면서 상제님 진리와의 인연이 시작됐는데요.

그 분들은 우리 역사 바로 알리기 서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상생방송을 즐겨 보던 저는 대뜸,

"증산도 아닌가요?"라고 물었는데요.

맞다고 대답하는 그 분들을 저의 행사 부스에서 활동하게 한 것이죠.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진 그 날 이후, 구 포감님은 꾸준하게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꼭 참석해보고 싶었던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광주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한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열심히 경청하면서 한 말씀이라도 놓칠 새라 준비해 간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었는데요.

마음 속으로 '우리 나라에 저런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콘서트가 모두 끝나고 행사장 한 쪽에서 <환단고기>책 원본을 구입하던 저는

꿈에도 그리던 역주자님을 뵙게 되었는데요.

"존경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역주자님께 절을 올리고 싶다는 평소 바람을 이루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 날의 감동도 잠시, 전통주 제조업을 하고 있었던 탓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었는데요.

그런 저를 위해 수호사님과 포감님은 자주 저의 집으로 방문해 다양한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정유년 새 해의 천지기운이 태동하는 동지치성에 참석할 것을 권유하셨는데요.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지인과 대전 태을궁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사업과 여러 일정으로 도장 방문이 쉽지 않았는데요.

2017년 2월에야 증산도 전주 덕진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영세업자인 제가 여태 한 번도 열정을 가지고 지속해본 적 없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같았는데요.

수호사님과 구 포감님을 비롯한 도장 도생님들의 기도와 정성 덕분에

역사적인 6.25 대천제 때 상제님의 도생으로 다시 태어나는 입도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입도식을 마치고 난 순간 저의 외침!

"이 시간부터 나는 새로운 사람이다!"

무한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는데요.

상제님의 도생으로 앞으로는 척 짓지 않고 바른 길만 가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또한 '천상에 계신 조상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흐뭇한 마음과 함께

기뻐하실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잘 모르지만 알려주는대로 차근차근 실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해 보자고 각오를 다져 봅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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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었어도 일제 식민정책에 앞장선

친일파가 애국자로 둔갑했던 이유

 

 

1945년 8월 해방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해방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대신 들어선 미 군정은 독립국가의 건설보다는

통치하기 편리한 체제의 유지를 원했습니다.

 

 

친일파 처벌법안은 한차례 보류된 후,

1948년 정부 수립후 제헌의회에서 '반민족 처벌법' 으로 결실을 보게 됩니다.

그에따라 반민족 처벌 특별위원회 '반민특위'가 구성된 것이 1948년 10월 ,

각 지역별로 설치된 조사위원회에는 시민들의 투서가 빗발쳤습니다.

3.1운동 당시, 33인 중 한명이었으나 변절하여 친일을 한 '최린'을 비롯하여

악명높던 친일파들이 속속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총 559명이 검찰에 송치되었는데요.

 

하지만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던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활동에 비판적이었습니다.

1948년 10월 하순엔 경찰과 친일파가 공모해 특위간부들을 암살하려던 음모가

발각되기도 하였죠.

 

당시 국무회의록은 이승만이 반민특위의 해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밀조사하여 선처하라.' 라고 지시하는가하면

악명높은 친일파인 노덕술의 경우 정부가 보증하여서라도 보석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반민특위의 조사관을 체포하여 감시하도록 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인 한민당과 친일파들이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반민특위습격사건 후 반민특위는 1949년 8월에 와해되고 맙니다.

 

해방후 우리나라의 지배층을 살펴보면 자명해집니다.

서울시내 경찰서장 중 일제 경찰출신이 9명,

그리고 나머지 한명도 일제 고급 관료 출신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육군사관학교 관동군출신이었고,

최규하대통령은 일제하 만주국에서 관료로 봉사했습니다.

 

역대 내무부 장관중 부일 경력자가 총 23명입니다.

이것은 2/3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군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데요.

 

 

역대 육군참모총장들의 일제시대 경력을 살펴보면,

 건국이래 21대까지 모두 일본군 장교출신입니다.

결국 해방이후, 대부분의 부일경력자들은 우리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했습니다.

이런 상황아래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했지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위원장]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부패라고 하지만

핵심은 정직이 통하지 않는 사회, 신뢰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없는 이유는 정의가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주장하면 바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두 불의를 보아도 묵인합니다.

잘되고, 출세하기 위해서 불의에 앞장서는 것이죠.

이런것을 이대로 두면 우리의 장래, 21세기 세상이 바뀐 때에서

살아남을수가 없어요. 나쁜짓 하는 사람들은 100년먹을 것도 가지고 있고,

정직하게 살면 알거지가 되어있고, 그러면서 합쳐라, 우리를 따라라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과거청산, 친일청산, 일제잔재 청산이 과거문제가 아니고,

현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과연 친일파들이 중심을 이루고 독립한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에서 집필된 우리의 역사가

온전한 진실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다른 나라 역사가들도 우리의 역사라고 말하는데,

우리만 부정하는 우리의 역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다시한번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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