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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위서론 그 진실을 파헤쳐본다.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2)

 

 <환단고기 위서론 그 진실은? (2)편 동영상보기>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환단고기 위서론 그 핵심과 진실에 대해서 논해 보도록하겠습니다.

1911년에 계연수 선생이 출간한 환단고기 원본과

1949년에 오형기가 정서한 원본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첨삭과 원본에 대한 존재여부가 위서논쟁을 초래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렇다면 환단고기 위서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는 무엇일까요?

 

 

논쟁1.오형기가 정서하고 1979년에 출간한

광오이해사본의 원래이름이 '환단휘기'다?

 

논쟁2. '환단고기'에 수록된 '태백일사'는 본래 '태백유사' 다?

 

논쟁3 .계연수 선생이 '천부경'의 발견과정에 대해 쓴

'계연수기서'의 진위 해석.

 

 

계연수 선생은 한암당 이유립 선생에게 환단고기를

다음 경신년(1980년)에 세상에 내놓으라 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한암당은 환단고기를 널리 펴내는 대신에

 

먼저 환단시대의 상고역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환단휘기를 내기로 결심하고,

환단휘기를 1971년에 출간하게 됩니다.

 

 

한암당 선생이 이처럼 환단시대의 역사를 밝히는

환단휘기를 기획하고 그 첫째권을 발간한 것은

계연수 선생이 1911년 간행한 '환단고기' 초판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환단고기 두번째 논쟁인 태백유사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태백유사라 쓴것은 조선 중종때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와 같은 책입니다.

태백일사를 태백유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서 표현한 것이죠.

유사(遺史)와, 일사(逸史)는 의미가 같습니다.

 

 

한암당 선생은 다음 경신년까지 기다렸다가 환단고기를 세상에 내놓으라고 한

스승계연수의 간곡한 유지를 받들려고 애썼습니다.

 

한암당 선생은 가슴 속에 일제의 칼날에 사지가 잘려

압록강에 수장된 스승의 참혹한 죽음을 기억하며,

 

약속의 날까지 환단고기라는 책명과 환단고기에 포함된 일부책의 정확한

이름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죠.

 

세번째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천부경이 태백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비로소 세상에 나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계연수 선생은 1899년에 천부경요해라는 책을 발간하고

1911년에 이미 천부경 전문이 수록된 환단고기를 발간한 바 있는데요.

 

 

선생은 1917년 1월에 단군교에 보낸 '계연수기서'에서

고운 최치원필적의 천부경 석각을 발견한 경위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진을 참고하시죠.

 

계연수 선생은 이 서신에서

묘향산에서 천부경 고각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스승에게서 천부경을 전해듣고 원본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천부경'을 묘향산에서

처음 발견한 내용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최고운의

친필로 새겨진 천부경 고각의 발견 경위를

확신에 차서 서술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계연수 선생이 천부경을 전혀 몰랐다면,

어찌 고각에 새겨진 천부경을 보고 천부경임을 알았으며,

두눈이 번쩍 떠져서 절하고 공경히 무릎을 끓고 읽을수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대다수의 '천부경'연구자들은

편지내용을 정밀하게 보지 않아서,

원래 천부경을 전혀 알지 못하던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에서

고각을 발견함으로써 천부경을 알게되었다. 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서론자들은 이런 잘못된 해석에 그치지 않고,

운초가 1899년에 천부경요해를 쓴 것도 거짓이고,

천부경이 들어있는 환단고기를 1911년에 편집, 간행한 사실도 전혀 없었다고

성급히 단정하곤 합니다.

 

 

그렇게 환단고기를 한암당의 완전한 창작물로

주장하는 것이죠.

 

 

환단고기 원본의 발간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위서론이 어찌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사료와 정보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떤 지난 세기에,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 중기까지 천여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독자적으로 집필한 다섯 문헌을 한암당 개인이 100프로 창작해내는 일이

어찌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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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

환단고기 위서론 그 진실을 파헤쳐본다. 광주 환단고기 북콘서트 (1)

 

 <환단고기 위서론 그 진실은? (1) 동영상보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환단고기 위서론시비의 실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환단고기가 뭐야?"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환단고기 우리민족의 시원역사와 인류의 창세역사까지 기록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역사서 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고 말씀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건재한 유대인들, 그들은

올바르고 강인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후세들에게 교육하고 있었기에

나라를 잃고 독일에 핍박당했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현실은 어떤가요? 

중국과 일본의 침탈에 잃어버린 역사문화, 6.25로 소실된 역사를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강단사학계의 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오히려 환단고기를 비웃으며,

 

환단고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환빠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역사서에서는 5천년,

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민족은 환국, 배달, 조선에서 이어진  9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사교육역사서에서는 고조선에 대해서

한페이지 정도로 모호하게 기록하여 빈약하기 그지없는 역사를 가르치고 있죠.

 

 

강단사학계는 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환단고기 등장에 화들짝 놀라 위서론 시비로 맞불을 지르고

나서고 있습니다.

 

 

첫번째 강단사학계에서 환단고기를 위서론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국가,세계,산업,자유,평등, 인류등의

초근세 용어가 등장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용어들이 최근세용어일까요?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용어들은 원래 2천년 전후부터 동방에서

지식인들이 사용한 문화언어입니다.

세계는 능엄경에도 사용된 바 있고, 국가는 주역에서, 산업은 한비자,문화도 주역에서

자유도 옥대신영에서, 평등은 금강경, 인류는 장자가 사용하였습니다.

기존에 사용해온 언어인 것입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를 연구하며 내용과 가치를 밝혀야 할 학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무조건 조사, 연구해보지도 않고

환단고기를 부정, 폄하하는 행태는 그들의 지성을 의심하게 합니다.

 

 

사실 동서양의 고전과 각분야의 소중한 문화원전 가운데

순수하게 원본 그대로 전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종교사상 위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을 담은 원전은

후세에 뛰어난 인재들의 철저한 보정과정을 거쳐

탄생하였습니다.

 

 불멸의 고전은 반드시

숱한 보정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류의 진리양식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동서인류의 문화원전의 본래 뜻을 좀 더 바르게 전하려는 인류의 진정한

문화창조의 지고한 노력이 바로 보정작업인 것입니다.

 

 

이처럼 동서양의 모든 고전은 전승과정에서

적잖은 첨삭과 교정이 이루어져 거듭났지만,

이 소중한 고전들을 누가 위서라고 주장하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역사서인 삼국유사도

사실 초간본은 없고, 조선시대 판본만 전합니다.

판본들 사이의 차이도 상당하죠.

 

 

조성 중종(1512년)때 간행된 정덕본을 기준으로 하여

기존판본들을 대조하면 연표인

'왕력편'에만 5천 5백여 글자 가운데 30여곳이 다릅니다.

삼국사기도 1981년에 발견된 고려 때 판본을 기존 판본과 비교한 결과,

오자(틀린글자)가 무려 3백여 개에 이릅니다.

 

 

 

많은 이들의 깨달음의 결정체인 종교의

경전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모든 불교 경전을 석가모니가

직접 저술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럼에도 불경은 동서양의 많은 언어로 수없이 번역되었고,

여전히 그 자체로 부처의 진리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도 상당한 내용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러 저자들의 피나는 구도적 삶의 결실로서 성립되었고,

천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전승되며 기록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약성서를 구성하는 책은 대부분 언제,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서가 위서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계인의 삶의 지침서로써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그와 달리 저자가 무척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무려 천년동안

당대 최고 지성인들이 쓴 역사서 입니다.

 

 

신라 선덕여왕의 왕실고문

안함로(BC 579-640),

고려말 여섯임금을 섬긴 절세의 대학자 (총리) 이암(BC1297-1364),

 

고려 72현 중 한사람 법장(BC1342~?)

성군 세종의 아버지 태종의 스승 원동중(BC1330~?)

조선 중종 떄 왕의 역사 찬수관 이암의 현손

이맥(BC1455~1528)

호남의 3대 명문장가 중 한사람(독립운동가) 해학 이기(BC1848~1909)

환단고기를 출간한 계연수까지(BC1864~1920)

저자와 출간자가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스페인의 고고학자 마리아 크루즈 베로깔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환단고기' 의 '삼성기' 라는 상고사에 대한 고유의 기록을 담은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다. 그것은 진위논쟁을 넘어서

사료로서 검토할 가치가 충분하다." 

 

외국의 학자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우리의 사학계에서는

왜 검토도 하지 않고 위서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환단고기 위서론의 진실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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