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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었어도 일제 식민정책에 앞장선

친일파가 애국자로 둔갑했던 이유

 

 

1945년 8월 해방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해방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대신 들어선 미 군정은 독립국가의 건설보다는

통치하기 편리한 체제의 유지를 원했습니다.

 

 

친일파 처벌법안은 한차례 보류된 후,

1948년 정부 수립후 제헌의회에서 '반민족 처벌법' 으로 결실을 보게 됩니다.

그에따라 반민족 처벌 특별위원회 '반민특위'가 구성된 것이 1948년 10월 ,

각 지역별로 설치된 조사위원회에는 시민들의 투서가 빗발쳤습니다.

3.1운동 당시, 33인 중 한명이었으나 변절하여 친일을 한 '최린'을 비롯하여

악명높던 친일파들이 속속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총 559명이 검찰에 송치되었는데요.

 

하지만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던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활동에 비판적이었습니다.

1948년 10월 하순엔 경찰과 친일파가 공모해 특위간부들을 암살하려던 음모가

발각되기도 하였죠.

 

당시 국무회의록은 이승만이 반민특위의 해체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밀조사하여 선처하라.' 라고 지시하는가하면

악명높은 친일파인 노덕술의 경우 정부가 보증하여서라도 보석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반민특위의 조사관을 체포하여 감시하도록 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인 한민당과 친일파들이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반민특위습격사건 후 반민특위는 1949년 8월에 와해되고 맙니다.

 

해방후 우리나라의 지배층을 살펴보면 자명해집니다.

서울시내 경찰서장 중 일제 경찰출신이 9명,

그리고 나머지 한명도 일제 고급 관료 출신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 육군사관학교 관동군출신이었고,

최규하대통령은 일제하 만주국에서 관료로 봉사했습니다.

 

역대 내무부 장관중 부일 경력자가 총 23명입니다.

이것은 2/3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군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데요.

 

 

역대 육군참모총장들의 일제시대 경력을 살펴보면,

 건국이래 21대까지 모두 일본군 장교출신입니다.

결국 해방이후, 대부분의 부일경력자들은 우리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했습니다.

이런 상황아래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했지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위원장]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부패라고 하지만

핵심은 정직이 통하지 않는 사회, 신뢰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없는 이유는 정의가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주장하면 바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두 불의를 보아도 묵인합니다.

잘되고, 출세하기 위해서 불의에 앞장서는 것이죠.

이런것을 이대로 두면 우리의 장래, 21세기 세상이 바뀐 때에서

살아남을수가 없어요. 나쁜짓 하는 사람들은 100년먹을 것도 가지고 있고,

정직하게 살면 알거지가 되어있고, 그러면서 합쳐라, 우리를 따라라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과거청산, 친일청산, 일제잔재 청산이 과거문제가 아니고,

현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과연 친일파들이 중심을 이루고 독립한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에서 집필된 우리의 역사가

온전한 진실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다른 나라 역사가들도 우리의 역사라고 말하는데,

우리만 부정하는 우리의 역사..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다시한번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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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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