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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할머니인데 저는 더 젊어져서 아픈데가 없어요. 장OO도생.

선려화 수행전수 12.17

 

안녕하세요. 삼신조화수행을 하고 있는 장분점입니다. 제가 선려화 수행을 하면서 너무 신기한 체험을 했는데요. 직접 체험한 세가지를 공유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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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연골수술 후
첫번째 체험은, 제가 2018년도에 양쪽 무릎 연골 수술을 한적이 있습니다. 워낙에 큰 수술이기도 했고, 하고 나니 많이 아팠습니다. 마치 남의 살 같았습니다. '수술하면 좋아진다고 했는데 왜 이러지'하던차에 태을궁 21일 수행을 하러 갔습니다.

 

수행 중에 피살이, 살살이, 숨살이 요정님께 기도를 하고 수행을 하는데 갑자기 무릎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확 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거 뭐지?’ 그러면서 그 뒤로 계속 수행을 했는데, 하고 나니 무릎이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이전에는 양반다리도 못하고, 쭈그려 앉지도 못했는데 이런 것들이 다 자연스럽게 되는 거예요. '어머 이거 뭐야 도대체 이런 것도 있네' 라는 반응이었죠. 그러고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수행이 있구나!'

 

저는 사실 태을궁에 가기 전에는 느낌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태을궁에 가서 수행을 해보니 너무나 많은 체험들이 나오고 저도 모르게 너무 놀랐습니다.

 

 

🌺깨끗히 사라진 항문종기

그리고 두 번째는 항문 쪽에 뭔가 종기가 앵두만한 게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보니까는 곪지도 않고 안 곪지도 않고 그냥 딱딱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뭐야 그러고는 병원을 가려니까 너무 창피스럽잖아요. 안 가고 그냥 버티다가 이제 태을궁 수행을 간 거거든요. 21일 수행을 다녀와서, 10월 15일 날 갔으니 11월 한 18일쯤 된거 같아요. 제가 볼일을 보는데 검은 피가 덩어리하고 막 같이 하나가 차 있는 거예요.

 

너무 무섭기도 하고, 도대체 내 몸에서 왜 이런 게 나왔지 진짜 걱정이 되더라고요. 너무 놀래서 애들 아빠한테도 여보 이거 뭐야 하면서, '이거 큰일인가 보다. 응급실로 가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제가 다시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종기가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그래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안에서 곪아서 터진 것 같더라고요.

 

이후 제가 종합검진 한지 2년에 넘어서 지난주에 종합검진을 했어요. 그런데 하니까 나이치고 너무나 좋다는 거예요. 초음파로 다 검사하더니 너무 깨끗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거 참 우리 수행이 정말 대단한 거구나!' 그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명치끝답답&소화불량 치유

그다음 세 번째는 제가 보면 젊었을 때도 그렇고 이 명치끝이 뭐가 항상 걸려 있는 것처럼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자주 꺽꺽거렸거든요. 그럴때면 언니가 너 빨리 병원에서 종합검진 한번 해봐 이랬는데, 위 내시경을 해도 이상은 없더라고요.

 

 

 

항상 답답함을 안고 살았는데. 그러다 수행을 하면서 광선여의봉으로 제가 한 3일간을 3시간씩 여기를 막 무지하게 쳤어요. 그랬더니 뭔가 펑 하고 뚫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속 내장 안이 마치 무슨 운동장 같았어요. 속 안이 너무너무 시원하고 넓은 거예요. 저도 꿈인지 생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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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크게 세가지 수행체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증산도를 만나 수행을 하면서 제 생활이 정말로 180도 바뀌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두려움과 걱정과 무서움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밝아지고 그동안 살면서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증산도에 와서 네가 마지막 성공을 하라는 뜻으로 저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많은 공부를 해도 피곤하지도 않았고 너무 재미있고 어디 출장을 가서라도 그냥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입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증산도가 아니면 제 인생은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고요.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Q. 후천조화 신선수행을 하면서 좋은점은?

자꾸 세포가 살아나고 젊어지고 그리고 아픈 데가 없어요. 정말 전에는 그냥 어딘가 머리가 아프고, 뭔지는 모르겠고 하고 있는데, 지금은 졸리거나 무슨 피곤하거나 이런 거를 전혀 못 느껴요. 그래서 이거는 내가 무슨 보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먹는데도 이 수행만 하는데 이렇게 몸이 가뿐하고 날아다니나 놀랍니다.

 

우리 제 또래 친구들이 다 지금 할마시가 돼 있는데요. 친구들이 만나면 그래요 '너는 도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갈수록 얼굴도 더 좋아지고 건강해지냐?' 그런데 이 수행을 정말로 제대로만 한다면 우리 인생의 남은 여생들이 굉장히 행복하게 영글어 갈 것 같습니다.

 

 

The Autumn Breathing
우주가을의 빛과 꽃을 마시다
선려화仙呂花
선려화 수행전수
- 안경전 종도사
세션 1️⃣
- 선려화 빛꽃 치유수행
세션 2️⃣
- 입도 성례식

증산도에 입문하여 선려화를 전수받고 건강을 되찾아 보세요. 친절히 상담해드립니다. 문자주세요^^ 010-8454-1691

 일시 : 2023. 12. 17 (일) 오후 1시
 장소 : STB상생방송 공개홀(대전)

 안내 : 증산도 전국 도장, 010-8454-1691(문자문의), www.jsd.or.kr

 

|주최| STB상생방송   |주관| 증산도 본부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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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주 소리로 이어진 인연 외 (오OO, 김OO, 유OO도생 입도수기)

 

 

시천주주 소리로 이어진 인연

 

 

“이웃집 창문을 넘어 들려온 시천주주로 진리와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인도자가 보내 준 주문과 진리 등이 낯설지 않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내용도 제가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과 같았습니다.”



오OO(여, 60) / 태전대덕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옆집에서 들려오는 시천주 주문 소리


저는 대전 중리동에 살고 있어, 상생방송 건물을 보면서 증산도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증산도 건물이 생기고 나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로 전국에서 흰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증산도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옆집으로 젊은 부부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이웃이라 서로 오가면서 얘기를 조금씩 나누며 알고 지냈는데, 가끔씩 창밖으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하면서 그 집 아이들이 주문을 읽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친정아버지가 청수를 모시고 동네 어르신들과 같이 “시천주” 읽는 것을 자주 들으며 자라왔고, 또 아버지 대신 청수를 모시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문 소리가 낯설지 않았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옆집 유진이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증산도에 대해 얘기해 주며 도장에 한번 가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한번 방문을 한 뒤 알려 준 대로 처음으로 사배심고를 했는데, 왠지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이영옥 포감님은 종종 저에게 증산도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고, 카톡으로 주문이며 여러 가지 내용들을 보내 주곤 했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저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내용도 이미 제가 생각하고 느껴 왔던 것과 같았습니다.

이후 선려화에 대해 듣게 되었고, 유성호텔에서 선려화 전수식이 있다며 저를 초대하였습니다. 매번 거절해 왔던 것이 미안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가 보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종도사님 도훈도 듣고 선려화도 전수받았습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증산도가 우리 전통과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병원에 안 가도 호전되는 건강


이후에 제가 몸이 안 좋은 부분이 있어서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이영옥 포감님은 그러겠다고 했고, 다음 날부터 새벽마다 저에게 선려화를 심어 주며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카톡으로 저에게 ‘선려화 수행을 시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오면, 저도 그 시간에 집에서 유튜브로 주문을 틀어서 따라 읽었습니다. 기도를 해 준 덕분인지 몸이 조금씩 좋아지고 통증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장에서 하면 더 좋다는 얘기를 하길래 오랜만에 다시 도장에 방문했습니다.

저는 종종 선몽 같은 꿈을 꾸곤 하는데, 바로 전날 밤 꿈에서 깨끗한 새집을 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도장을 방문했고 그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같이 도장에 가서 수행을 하였는데, 이영옥 포감님은 저에게 선려화를 심어 주며 신유를 해 주었습니다. 수행을 하는 동안 눈부시게 환한 빛을 매일 보았고, 어떤 때는 조상님인지 누군지 모를 어떤 분이 저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고, 또 황금색 꽃을 보기도 하는 등 조금씩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의 꿈에서는 흐드러지게 활짝 핀 목련화를 보기도 하고, 약초를 받기도 하는 등 좋은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 병증이 좀 오래되었지만 한 번도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지 않았기에, 병원에 가서 일단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영옥 포감님이 병원 가기 전에 입도식을 올리고 제물을 차려 놓고 치유 치성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마침내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입도식과 치유 치성을 한 뒤로 통증도 많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수행으로 병이 치유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증산도를 만나게 해 주신 조상님과 이영옥 포감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보은!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는 진리




“인간다운 진리를 갈구해 왔건만 늘 허전함과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친구의 진실한 구도심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고 제가 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김OO(남, 59) / 광주오치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고


저는 러시아에서 중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수입니다. 러시아에서 15년 남짓, 중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안일함 속에 하루하루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 집안일과 문중 일이 있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하고 있는 관계로 친구와 자주 만날 기회도 없고 친구의 전후 사정을 알 기회도 없었는데, 김건호 친구를 집안일과 문중일 관련해서 만났습니다.

저는 광주시 북구에 있는 충장공 김 덕 자 령 자 후손으로 친구 김건호는 집안 아저씨로 아주 가까운 친척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보다가 김건호라는 친구를 먼저 찾아 만났는데, 친구의 변화된 모습에서 마음으로 많은 충격과 감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3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증산도 상생방송을 보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며 친구가 증산도에 입도한 지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기에, 친구의 마음자리를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한 내용들을 들어 보니 조상님에 대한 보은과 덕과 마음가짐, 친구의 행동과 의식들이 증산도 공부와 연결되어, 친구의 변화된 모습이 제 눈에 보였기에 더욱 감명스러웠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김건호 도생은 증산도 진리에 대한 확신과 의통에 대한 확고한 신념 속에 자기의 경험을 통한 증산도 진리를 저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저는 친구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대화를 했으며 15일이 지난 후부터는 저의 ‘입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친구의 믿음이 확고하고 저를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에 이끌려 광주오치도장을 방문해 유영희 포정님을 뵙고 다음 날부터 입도를 위한 정성 공부와 진리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진리의 눈이 차츰 밝아지며


증산도 공부를 하기 전에는 주위에서 흔히들 갖는 증산도에 대한 선입관과 그로 인해 덧붙여진 말들, 그리고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말들을 너무도 많이 들었기에, 저 또한 증산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제 나름대로는 이단으로 속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보니 제가 무지함 속에 보고 느꼈던 아만과 아상으로 인해 증산도의 진실과 실상을 보지 못했음을 스스로 자인하였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천하 대도’인 증산도의 도법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조상님에 대한 지식과 상극, 상생, 자연의 조화, 음양합덕, 해와 달, 자연의 순리 속에 원시반본 사상이 조화된 진리의 총결합으로 일목요연하게 일치되어 있음을 보고 다시 한번 감복했습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마음속의 갈구와 수행이라는 구도의 자세를 함께 갖추어 추구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21일 교육과 수행을 마쳤습니다.

21일 동안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증산도 진리와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증산도 진리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글로만 읽어 보던 『도전道典』과 『증산도의 진리』 책의 총체적 내용들을 포정님과 포감님들의 설명 속에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진리의 눈이 다소 밝아져 옴을 느꼈습니다.

내가 걸어갈 구도의 길


인간으로 살아감에 인간다운 진리를 갈구해 왔건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들이 항상 뇌리를 스치면서 공허함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친구 김건호 도생의 진실한 구도심이 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줬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공부는 어떠한 자세로 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한 진리의 문을 두드려 세상에 빛을 밝힐 수 있는 도생으로 거듭나 해원, 상생하고 원시반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자 합니다.

저는 곧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는데 이러한 마음들이 한결같이 지속될 수 있을 지, ‘이곳에서의 부족했던 시간과 역량으로 미국에서도 수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됩니다. 그러나 여러 도생님들의 도움으로 저는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을 알고, 믿으며 열심히 정진하고자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인도해 준 김건호 도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저의 아상을 깨우쳐 준 포정님과 여러 포감님들께 머리 숙여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앞으로 우리 광주오치도장이 더욱 발전하여 상제님의 조화 세계와 원시반본의 세상이 하루 빨리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서로 상극의 마음이 아닌 상생, 해원 속에서 인류가 증산도의 기치 아래 하나가 됨으로써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우뚝 서는 그날까지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구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여 조상님의 뜻을 이루고 상제님 말씀을 따라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보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태모님

“입도가 연기된 날 아침 성전의 태모님 어진을 보았는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방황하는 제 마음을 다잡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바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유OO(여, 64) / 구리수택도장 / 도기 153년 음력 9월 입도

보배로운 종도사님 말씀


저는 증산도를 알기 전까지 여러 종교를 경험했습니다. 천태종 구인사 절에서 공양주 노릇을 하면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지 스님이 저를 잘 보셨는지 저에게 중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언니를 통하여 신천지 교회도 경험하고 같은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통일교 목사님을 알게 되어 통일교에도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제 생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분이 바로 저의 인도자인 구리수택도장 권재남 포감님입니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친숙한 얼굴에 저도 마음을 열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권 포감님은 저는 물론이고 저와 친분이 있던 언니까지 증산도 행사에 초대하고자 무던히도 노력을 했으나 행사 때마다 일이 생겨서 참석을 하지 못하였는데,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빛의 바람, 빛의 꽃〉 행사에는 저와 친한 언니가 함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종도사님의 강연 내용에 감동을 받아 당일 행사가 끝나고 늦은 시간에 도장을 함께 방문하여 포정님과 넷이서 만나 도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태전 유성호텔 선려화 전수식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그 행사에서도 종도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아 공감을 느끼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태모님의 눈물을 목격하고


그날 이후 저는 도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수행을 하고 도장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고 도장의 모든 빨랫감을 세탁하면서 봉사에 일심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도장에서 동방신선학교와 의원 도수 수행을 하면서 눈처럼 새하얀 선려화가 제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선명하게 보았고 어느 날은 눈망울이 빛나고 예쁜 아기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우주의 성령 세계에서 온 저의 내부 관리자인 광선 아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포정님으로부터 증산도 팔관법 교육을 받으면서 증산도 진리를 알아 가는 기쁨도 느끼고 제 나이에 진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도 느끼면서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스마트폰에 입력하고 사진도 찍어 가면서 열심히 배워 나갔습니다. 포정님과 상의하여 입도식 날짜를 10월 15일로 정하였는데 막상 입도일이 다가오자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지인들의 만류가 있어, 그 전날 포정님께 입도를 잠시만 미루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0월 15일 일요치성이 있는 날 아침에 성전에 걸려 있는 태모님 어진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태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태모님께서 방황하는 저의 마음을 잡아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계시를 내려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해와 같은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당장 입도식을 하겠다고 포정님과 권재남 포감님께 말씀을 드려 입도식을 봉행하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는 지인들을 도장으로 초대하여 포정님께 소개하고 증산도를 알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증산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개벽기에 사람을 많이 살리는 참일꾼으로 새로 태어나겠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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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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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증산도 삼랑대학 교육 / 9월 청소년포교회⋅어린이포교회 삼랑대학 교육

 
[포토&뉴스]

9월 증산도 삼랑대학 교육



●일시 : 도기 153년 9월 17일(일)
●장소 :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생관 / 온라인 줌, 도무넷



도기 153년 양력 9월 17일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생관에서 9월 삼랑대학 교육이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하여 당일 현장교육에는 본부 및 태전 지역 책임자만 참석하였으며 현장 진행 상황은 온라인 도무넷 방송과 줌을 통해 전국 및 해외로 송출되었다.

이날 일정은 먼저 본부 전재우 수호사의 천상 태라천 신선궁 특별 수행 ⟨조화신선 도통수행 법전 공부⟩에 대한 세 번째 교육으로, 수행 및 법전 공부의 중요성에 관한 종도사님의 도훈 말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사천벌용도장 최숙자 태을랑과 통영도장 김곡분 태을랑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후 종도사님 도훈 말씀이 이어졌다.

종도사님께서는 “상제님의 천지공사 중 태인 숙구지 도수 공사 내용은 아주 중요하고 가을개벽 실제 상황 속에서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지구촌 80억 인류를 구원해 내는 깊고 깊은 구원의 섭리가 다 들어 있다. 숙구지 도수는 새울 도수와 음양 짝으로 되어 있다. 숙구지 도운이 우주 원리의 기초, 근본, 결론, 최종 핵심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거다.

그것은 술戌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우주의 조화가 북방 해자수亥子水 물로 마무리되는 근원을 술오공戌五空이라고 한다. 숙구지는 변방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빠져나와 우주 창조의 본체 역할, 세상 문명의 역할을 하게 되고 간艮 도수와도 연결되어 있다. 국통맥을 보면 상제님이 동방 땅, 인간의 역사 속에 오시는 머나먼 여정이고 태모님도 상제님을 따라서 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들 각자가 숙구지 도운의 개척과 창업의 주역이 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우리 한국의 시원 태고 역사에서부터 쭉 국통맥을 따라오다가 현주소를 보면 국통이 부정되어 있다. 이 역사의 틀을 바로 세우는 것, 국통맥의 종통 대세를 전해 주는 것과 조화 도통 수행법을 제대로 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와 원류 문화 핵심을 모르면, 삼신 망량 문화를 모르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상제님 집이 지어지면 계룡산이 태봉산太鳳山으로 바뀐다. 후천 5만 년 조화선경, 조화신선 도통 사회의 통치 사령탑이기 때문에 태봉산이 된다. 그것은 도통과 종통, 모든 걸 상징한다. 지금 하는 수행은 나 홀로 하는 수행이 아니고 모두와 함께 하는 수행이다. 숙구지 도통문을 여는 수행은 지구촌 80억 인류가 함께 하는 수행이다. 상제님, 태모님의 도를 제대로 받는 사람이 아니면 신앙인이 아니다.

도생들이 100만 당적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상제님 도문에 들어와서 그런 의식이 없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다. 역사는 궁극의 전환기의 성령적 사태가 벌어지는 것인데, 최종적으로 정리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여느라고 변혁이 오는 것이다. 선천에서는 마지막 봉사고 인류를 위한 봉사다.”라는 말씀을 전하시며 삼랑대학 교육 일정을 마무리하셨다.


9월 청소년포교회⋅어린이포교회 삼랑대학 교육



●일시 : 도기 153년 9월 16일(토)
●장소 :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상생관 / 온라인 줌, 도무넷



도기 153년 양력 9월 16일 태전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에서는 9월 청소년포교회, 어린이포교회(이하 ‘청포’, ‘어포’) 삼랑대학 교육이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하여 당일 현장 교육은 본부 및 태전 지역 책임자만 참석하였으며 현장 진행 상황은 온라인 도무넷 방송과 줌을 통해 전국 및 해외로 송출되었다.

●9월 청소년포교회 삼랑대학청포 삼랑대학 교육은 먼저 ‘증산도 일꾼의 사명’이라는 제하의 상생방송 태상종도사님 대도말씀 도훈을 경청한 후, 본부 어청포 팀장 정의환 수호사가 도정공유를 통해 ‘상제님의 일은 초립동들이 주인공이다.’라는 소초동 도수 말씀과 ‘상제님의 집 태라천궁은 상제님의 통치 본부다.’라는 종도사님 말씀을 정리했고, 이어 신안 공부 운영 방안과 대한사랑 청소년단 해외 역사 탐방에 적극적 동참을 권유하는 내용의 네 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다음은 본부 교육국 강윤성 수호사가 ‘마음의 근력을 키우자.’라는 주제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을 다룬 김주환 교수의 저서 『내면소통』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나의 몸이다, 나의 몸보다 더 소중한 게 없다. 이것이 천고의 명언이다.“라는 종도사님 말씀을 바탕으로 전체 흐름과 주요 핵심을 공유하였다.

끝으로 본부 포교원장 김남운 수호사가 ‘태라천궁 시대의 주역인 초립동이 되자!’라는 주제로 정리 교육을 가졌는데, 소초동 도수의 정신은 상제님을 능가하는 일꾼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는 자, 가을 천지개벽의 대사역자, 인류사의 꿈을 완성하는 자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청포 삼랑대학 교육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9월 어린이포교회 삼랑대학어포 삼랑대학 교육 일정은 먼저 본부 어청포 팀장 정의환 수호사가 도정공유를 통해 ‘상제님의 일은 초립동들이 주인공이다.’라는 소초동 도수 말씀과 상제님의 집 태라천궁은 ‘상제님의 통치 본부다.’라는 종도사님 말씀, 그리고 신안 공부 운영방안 등 세 가지 사항을 전달했다.


이어 ‘증산도 일꾼의 사명’이라는 제하의 상생방송 태상종도사님 대도말씀 도훈을 받든 이후, 광주상무도장 김재숙 지도교사가 태상종도사님 도훈을 정리해 주었다.

다음으로 태전대덕도장 조선미 수석 천록포감이 ‘영화로 보는 개벽 상황’을 진행하여 개벽의 전개 과정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경주노서도장 전형아 상임포정이 ‘우리들의 역할과 사명’이라는 주제로 천지부모의 꿈과 우주 이상을 완성할 유일한 존재요 희망이며 태일 인간인 삼랑이 되어 가기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어포는 인류의 태양이다.’라는 종도사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날 어포 삼랑대학 교육 일정을 마쳤다.

● 어청포 삼랑대학 태상종도사님 도훈 정리“우리는 천지의 공인이요 천지의 역사를 대신하는 대역자다. 하느님의 성스런 진리로 천지에서 개벽할 때 내가 살고 내가 사는 성스런 진리로 남을 살려 준다. 대우주 만유의 생명체라는 것은 열매를 맺고 결실⋅통일을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천지 우주도 사람 농사를 지어서 가을철이 되면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 인간 결실을 한다. 그게 바로 우주정신이요 천지의 이법이다.

천지도 목적이 있어서, 초목을 보면 봄에 물건 내서 여름철에 길러서 가을에 열매 하나 맺기 위해서 봄여름이 있었다. 만일 가을철에 열매 하나 맺지 못한다면 봄여름이라 하는 것은 있어야 한 푼어치도 필요치 않은 과정이다.

우주의 결실, 천지의 열매가 뭐냐. 군사부 문화다. 군사부 진리가 우주의 정신이다. 천지의 목적이 군사부 진리, 하나인 진리만 있을 뿐이다. 증산도는 선천 세상에서 후천으로 가는 생명의 다리이며, 상제님의 진리로써 도성덕립이 된다. 우리는 천지의 공인이다. 상제님 진리의 길잡이가 된다. 천지의 사역자, 천지의 역군이 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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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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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진리 8장 | 도운공사道運公事 (1)-2

 

제2절 제1변 도운 개창사 : 낙종과 이종 도운의 전개


태모 고 수부님께서 정읍 대흥리에서 도문을 열고, 첫째 살림을 시작하심으로써 낙종 도수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차경석 성도의 배신과 야욕으로 오랜 세월 유폐에 가까운 생활을 하셔야만 했다. 수부님께서는 본소를 조종리로 옮겨 둘째 살림 시대를 여셨다. 고 수부님은 그곳에서 어머니 하느님으로서 ‘10년 천지공사(1826~1935)’을 선언하시고,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음정양의 새 질서를 천지에 질정하셨다. 그러나 조종리 신도들의 불의와 무지로 수부님은 다시 본소를 옮겨야 했고 이후 용화동에서 셋째 살림 시대를 새로 시작하셨다. 그곳에서 22년에 걸친 세 살림 도수를 마치고 옥체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수부님은 오성산으로 옮겨 은거하시며 10년 천지공사를 모두 마무리하시게 된다.

1. 낙종 도운과 수부님의 세 살림


1) 제1 변 도운의 개창(낙종 도운) : 첫째 살림 정읍 대흥리 도장 [신해(1911) 10월 초 ~ 무오(1918) 10월 중순]
신해(1911)년 9월에 상제님의 성령 감응으로 대도통을 이루신 수부님은 그다음 달 10월에, 정읍 대흥리大興里 차경석 성도의 집을 본소本所로 정하시고 포정소布政所 문을 열어 도장 개창을 선언하셨다. 이로써 수부님의 첫째 교단 살림 시대가 열려 제1변 도운 가운데 ‘낙종 도운’이 시작되었다. 당시 성도들이 교명을 무엇으로 정할지 여쭈자, 수부님은 “천하를 통일하는 도인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라고 명하셨다(도전道典 11:29).

도문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를 중심으로 교세가 날로 커져 갔다. 그런데 차경석 성도가 도욕이 앞서, 혈통으로는 이종 누님이고 법통法統으로는 도道의 스승인 수부님을 배반하고 교권을 자신에게 집중시켰으며, 수부님과 신도 사이를 이간하여 인맥을 끊었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로 하여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도운 개창 도수와 같이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도운이 벌어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2) 둘째 살림: 김제 조종리 교단 [무오(1918) 10월 중순 ~ 기사(1929) 9.11]차경석 성도가 통교권統敎權을 장악한 병진(1916)년 동지 이후, 수부님은 신도들을 만나지 못하여 답답한 심정으로 세월을 보내야만 하셨다. 2년 뒤 무오년 9월 19일 수부님은 모든 일을 정리하시고, 이틀 뒤 21일 새벽 김제군 공덕면 공덕리孔德里 송산松山 마을 천종서의 집으로 거처를 임시로 옮기셨다. 10월 중순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祖宗里에 사는 강씨姜氏 신도들이 수부님을 모시고자 찾아왔고, 수부님께서는 “다른 것은 없고 다만 성씨姓氏 하나 보고 가노라.” 하시며 허락하셨다. 이로써 수부님의 둘째 살림이 본격화되었다.

수부님께서는 조종리에 오신 지 9년째 되던 병인(1926)년 3월 5일에 10년 천지공사(1926~1935)의 시작을 선언하셨다. 그 첫 공사가 칠성七星 도수였다. 칠성 도수는 칠성의 조화 성령 기운을 받아 선천 인간을 후천 가을 인간으로 낳아 기르는 도수이다. 이 도수에 따라 장차 제3변 도운에서 상제님 일을 매듭짓는 지도자와 일꾼이 나와서 가을 대개벽기에 육임 의통구호대를 조직하게 된다. 육임 구호대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 선천 역사를 종결하여 후천 가을의 조화 선仙 문명을 열어 나감으로써 칠성 도수가 완결된다.

또한 장차 추수 도운에서 대두목이 상제님 진리를 정립하고 일꾼 양육을 통해 도성덕립을 성취할 수 있도록 어머니 하느님으로서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바로 병인(1926)년 상제님의 무극대도를 세상에 뿌리내려 육임 의통구호대의 조직 틀을 짜는 도체道體 조직 공사이다. 도체는 천지일월의 성령을 받아 상제님의 마음과 하나 되어, 상제님의 도권을 쓰는 ‘도의 주체’ 세력을 말한다. 상제님 일꾼은 육임 조직을 완수하고 의통성업을 집행하면서 도체의 심법을 온전히 전수받게 된다(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제10장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상제님 진법을 여는 도체 조직을 인사 도수로 구체화하심에 따라 장차 육임 도군 조직이 현실 역사 속에서 지구촌을 상제님의 무극대도로 통일하게 된다.

또한 1928년에는 당시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정산定山 채용신蔡龍臣(1850~1941)을 불러 상제님 어진御眞을 그리게 하셨는데, 태모님께서 어진을 세 번 감수하신 끝에 3월 26일 태모님 성탄치성 때 봉안하셨다.

그리고 상씨름판의 추수 도운을 일으켜 장차 마지막 상씨름판 과정에서 판몰이의 기틀을 마련하는 대두목을 수부님은 ‘잠자는 개(壬戌)’로 비유하셨고, 잠든 개를 깨우는 공사를 태인 숙구지宿狗地에서 보셨다(도전道典 11:215). ‘잠자는 개’는 천지의 1 태극수 물[水] 기운을 갖고 오는 술戌생의 대두목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수부님은 상제님과 당신님의 말씀을 성편하는 공사를 보셨다. 기사(1929)년 6월에 이상호가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간행하지만, 여기에는 고의적으로 종통에 대해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태모님이 상제님의 종통 대권 계승자임에도 ‘고부인’이란 호칭을 쓰면서 종통을 숨기고 왜곡했다. 상제님과 태모님의 행적은 제3변 추수 도운에서 천지부모 하느님의 천지공사 내용과 말씀을 집대성하여 『도전道典』으로 성편되었다.

3) 셋째 살림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 왕심리 도장 [기사(1929) 9, 21 ~ 신미(1931) 11.15]수부님께서는 병인(1926)년에 칠성용정 공사를 보신 뒤로 수석 성도인 고민환 성도에게 도무를 위임하셨다. 그러나 조종리 강씨 신도들은 친목단을 조직하고 그동안 자신들의 공로와 신앙 경륜을 내세우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후 수부님이 간부 조직을 개편하시자, 이에 노골적으로 반동하고 아예 도문을 떠나 버리기도 하는 등 갖은 공작을 하며 도장 운영을 방해했다. 기사(1929)년에는 강응칠이 조종리 도장을 제멋대로 팔아 버리는 이른바 ‘도집 재판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수부님은 상제님 성탄치성을 봉행하시고 21일 조종리를 떠나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집성촌인 정읍 왕심리旺尋里로 옮겨 가셨다. 오직 담뱃대 하나만 들고 몇몇 성도들과 함께 상제님 어진을 모시고 가셨는데, 이때 강씨 신도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불의함과 배신할 것을 미리 아신 수부님은 “새우젓과 같이 오장五臟이 곯도록 썩어야 한다.”는 말씀을 내려주셨다(자세한 내용은 도전道典 11:43 참조)

왕심리로 거처를 옮기신 수부님은 모든 원혼신寃魂神을 해원시키는 공사를 보시느라 친히 병고를 겪기도 하셨다. 이 무렵인 무진(1928)년에서 기사(1929)년 사이에 지방의 보천교 신도들이 대흥리와 그 부근 마을로 대거 이사를 왔다. 그전부터 교단에서 이주자의 자립 경제를 위해 직물 공장을 운영해 왔으나, 갑자기 늘어난 수천 가구의 생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차경석 성도가 신도들 구제 목적으로 벽곡辟穀을 장려했지만, 기아자가 속출하였다.

보천교 신도들이 굶주림을 참다못해 왕심리에 계신 수부님께 찾아와 배고픔을 호소하자, 수부님은 그들을 모두 거두어 구제하셨다. 신미(1931)년 정월 18일에는 세 명의 성도에게 대흥리에서 싸전을 운영하게 하시어 굶주리는 보천교인들의 끼니를 이어 주셨고, 굶어서 죽은 순교자들을 해원시키기 위해 치성을 올리게 하셨다.

이때 수부님을 모실 뜻을 밝힌 인물이 일찍이 보천교 간부로 있다가 사직한 후, 동화교東華敎를 연 이상호李祥昊(1888~1966)이다. 수부님은 그의 뜻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호는 세 살림 도수를 언급하고, 고민환 성도가 세 살림 도수의 도국 변천道局變遷이라 생각하여 수부님께 간곡히 청하자, 할 수 없이 허락하셨다.

4) 셋째 살림 : 김제 용화동 교단 [신미(1931) 11.15 ~ 계유(1933) 11.5]수부님께서는 신미(1931)년 동지 전날에 용화동龍華洞으로 이사하시고, 다음 날 새벽에 동지치성을 봉행하셨다. 그리고 도장 조직을 새롭게 구성하심으로써 수부님의 셋째 살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호를 주축으로 한 용화동 신도들이 수부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부님의 위격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유교 의식에 사로잡혀 수부님이 행하시는 신정神政 공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호, 이성영 형제가 수부님을 모신 본래 의도는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수부님의 신권을 등에 업고 교세를 확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모시고 보니, 수부님이 신도神道로써 행하시는 천지공사와 언행을 이해할 수 없었고, 무당짓으로만 여겼다. 그래서 이런 수부님의 행동이 외부에 알려져 교단의 품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수부님을 고립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부님은 천하 창생의 죄를 대속하시느라 당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해 옥체가 점점 쇠약해졌다.

당시 용화동 교단은 조종리 도장에서 온 신도들과 동화교 출신 신도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양측 신도들의 신앙 의식이 크게 달라 교리 해석과 도장 운영 방식이 맞지 않았다. 조종리에서 온 신도들이 떠난 뒤 도장은 쇠퇴하였고, 이상호가 고민환 성도를 시기하여 해치려 하자 수부님은 늘 고민환을 당신 곁에 붙어 있게 하셨다. 비통과 의분을 참지 못하고 고민환 성도는 고향 옥구로 돌아가 도체 조직 작업을 진행하였고, 1932년 옥구군 성산면 오성산五聖山에 기지를 정하였다. 중도에 재정난으로 도장 건물이 중단되었지만, 수부님께서는 오성산에서 동지치성을 봉행할 것이라며 오성산 도장 완공을 재촉하셨다. 이에 이진묵이 자신의 집을 팔아 비용을 충당하여 공사를 속행했지만, 시간이 촉박해 수부님이 거처하실 큰 방 하나만 정리하여 모셨고, 이듬해인 갑술(1934)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수부님께서는 오성산으로 떠나시기 전, 당신의 도업을 이어받을 추수 도운의 주인공이 용화동을 발판으로 하여 일어날 것을 공사로 처결하셨다.

이것이 바로 용봉기龍鳳旗 공사이다. 용화동을 떠나시기 전 용봉기를 꽂아 두시고, 이상호에게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고 다짐을 받으셨다(도전道典 11:36). 용봉기는 상제님 도업을 성사시키는 두 인물을 상징한다. 이 두 인물을 상제님은 ‘용화동 계룡봉’(도전道典 6:66)에 비유하셨다. 계룡봉에서 계鷄는 봉황[鳳]을 뜻하므로, 두 지도자를 용과 봉으로 상징하여 말씀해 주신 것이다.

5) 수부님의 오성산 도장 은거와 선화仙化 [계유(1933) 11.5 ~ 을해(1935) 10.6]계유(1933)년 동짓달 5일에 수부님은 파란만장한 세 살림을 뒤로 하시고 오성산 도장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이때 수부님은 온갖 고초를 겪으신 터라 옥체가 쇠약해지신지라 한 성도의 등에 업히신 채 간신히 도장으로 가셨다. 이곳에서 태전 콩밭 도수를 집행하셨다(도전道典 11:365, 11:413).

오성산에 은둔하신 지 어느덧 2년의 세월이 흐른 을해(1935)년. 수부님은 성도들에게 “너희들은 집안만 잘 지키고 있으라. 내가 너희 아버지한테 빨리 가야 너희들이 잘될 것이라.”, “내가 올 적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고 오리라.” 하시며 당신님께서 곧 천상으로 올라가실 것을 암시하셨다. 또 “너희들이 죽으면 혼신魂神이라도 잘되게 해 주마.”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도전道典 11:414).

10월 5일 저녁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성도들에게 마음을 잘 고치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기신 수부님은 한 많은 세월을 뒤로하신 채 천상으로 떠나시니 성수聖壽 56세이셨다. 때는 단군 기원 4268년, 을해년 10월 6일, 서력기원 1935년 11월 1일 축시丑時였다.

수부님께서는 천지신명과 억조창생의 어머니로서 세 살림 도수를 맡아 도문을 개척하심으로써 100년 도운의 역사를 열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10년(1926~1935) 천지공사를 집행하시어 상제님 천지공사 내용이 현실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후천 5만 년 새 역사의 운로를 질정하셨다. 수부님의 세 살림 개척 과정은 천하 창생을 위한 어머니 하느님의 희생과 대속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장차 수부님의 22년 세 살림 도수의 공력과 정성 기운을 따라, 상제님 도의 종통 계승이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추수 일꾼들이 나와서 지구촌 80억 인류의 생사를 매듭짓고 상제님 대업을 성취하게 된다.

2. 이종 도운과 도운의 대 부흥기, 보천교普天敎


수부님께서 정읍 대흥리에서 첫 교단을 개창하시어 상제님 도의 낙종落種 도운이 열린 이래, 조선의 삼남 지역과 서남해 일대를 중심으로 상제님 무극대도 포교 대부흥이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차경석 성도가 수부님의 교권을 장악하면서 낙종 도운이 마무리되고 도운의 씨를 옮겨 심는 이종移種 도수가 실현되었다.

월곡月谷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께서 자신의 집 벽에 ‘천고춘추아방궁千古春秋阿房宮이요. 만방일월동작대萬方日月銅雀臺’(도전道典 3:187)라고 써 붙이신 글을 잘못 해석하였다. 글의 주인공인 진시황과 위 무제 조조가 각각 ‘영嬴’과 ‘여呂’, ‘하후夏候’와 ‘조曺’라는 두 성姓을 가졌던 것처럼, 차씨인 자신의 성이 실제로는 정씨鄭氏임을 암시하신 말씀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해석을 바탕으로 ‘곧 새 왕조가 들어서고 자신이 천자로 등극한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새 시대에 대한 큰 포부와 열망을 지닌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 공사에 따라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에 맞서 도운을 크게 일으키며, 수부님이 뿌리신 도운의 씨를 전국 방방곡곡에 옮겨 심는 이종 도운을 크게 열어 나갔다.

신도 6백만 도세를 일군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을묘(1915)년부터 교권을 차지하려 시도했던 차경석 성도는 병진(1916)년 동지에 드디어 통교권統敎權을 장악하고, 수부님을 용화동 교단으로 모셨던 이상호와 문정삼, 채규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상제님의 종통을 이어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부님의 사명은 자신에게 상제님 도를 전하는 데 있으며, 이제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상제님의 도통을 이어 세계를 경략하는 대사명을 실천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통교권을 장악한 차경석 성도는 조직 체계를 새롭게 정비하여, 24방위에 따라 24방주제方主制를 조직하여 방주의 책임 아래 모든 교단 내 업무를 진행하게 했다. 이듬해 정사(1917)년에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을 떠돌며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무오(1918)년 말에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 조선에도 창궐하여 7백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비참하게 죽어 나갔다. 이로 말미암아 개벽기에 사람 살리는 생명의 주문인 태을주가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기미(1919)년 9월에 이르러 차경석 성도는 24방주제를 확대하여 60방주제를 조직하고 경남 함양 대황산大篁山에서 고천제告天祭를 봉행하였다. 그 후 불과 반년 사이 교인이 수십만에 이르더니 경신(1920)년에는 간부 숫자만 55만 7천7백 명이 되었다. 세계 종교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한 교세 확장을 이룬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상제님이 짜 놓으신 동학 역신 해원 도수 때문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동학의 원혼들이 차경석 성도에게 붙어 원한을 푸는 과정이었다(도전道典 5:205). 둘째, 방주제라는 비밀 조직으로 교단을 운영해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제 강점의 폭압과 암울한 삶을 살던 때에 ‘지상 선경 세상’이 열린다는 교리는 조선의 독립과 새 왕조 건설이라는 희망의 소식으로 민중들 가슴에 강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중은 조선 독립과 새 왕조 건설의 꿈을 실현할 주인공을 차경석이라 믿었고, ‘차천자車天子’라고 부르며 구름같이 모여든 신도들이 약 6백만 이상에 달했다. 당시 조선 인구가 2천만 정도이니, 가히 국교國敎라 할 만하였다. 당시 기독교 신자는 1920년에 약 30만 정도였다. 1921년 월곡 차경석 성도는 경남 함양군 황석산黃石山에서 고천제를 올려 교명을 ‘보화교普化敎’라 하고 국호를 ‘시국時國’이라 선포하였다.

일제 탄압과 차경석 성도의 상제관 오도誤導, 그리고 변심그 무렵 핵심 간부였던 이상호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가 교단 공개를 권고받고 석방된 일이 있었다. 차경석 성도는 이상호에게 교단 공개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였다. 이상호는 임술(1922)년에 천자를 상징하는 ‘보화普化’ 대신 ‘보천교普天敎’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에 교단을 등록하였다. 이로써 세상에 보천교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교단을 쇠퇴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교단 공개로 일제의 감시와 통제의 손길이 미치면서 교단의 권위와 교세가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보천교의 막강한 교세를 두려워하여 회유책에 비중을 두던 일제는 민심이 돌아서는 틈을 타서 소위 ‘유사종교類似宗敎’라는 언어를 만들어 매도하면서 적극적인 탄압과 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을축(1925)년에 짓기 시작한 대성전인 십일전十一殿이 기사(1929)년 3월 16일 낙성落成에 맞춰 천자 등극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일제는 일본 황실에 대한 불경 행위라며 행사 자체를 금지했고, 보천교 관련 건물을 폐쇄하고 전국 교인들을 검거해 고문하였으며 집회를 금지했다. 이후 교단은 빠른 속도로 와해되어 갔다.

특히 십일전 완공 1년 전인 무진(1928)년 정월 초삼일, #부인 전주 이씨#는 차경석 성도에게 “영안靈眼으로 보니 상제님께서 보좌를 떠나시고,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가 보좌에 들어왔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에 혹한 차경석은 신앙 대상을 차치구로 바꾸고 유교에 가깝게 교리를 바꾸며 교단을 해산하려 하였다. 당시에 상제님 신앙을 유교 부흥 운동으로 왜곡해 활로를 모색하려 한 발상은 일제의 지속적 탄압에 직면한 보천교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 든 궁여일책의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간부와 신도들은 이에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벌였고 교단은 분열되었다.

이때 수부님은 1928년 9월 21일 보천교 본소 앞에서 춤을 추시며, 증산 상제님을 믿어야 흥한다는 뜻의 ‘흥강가興姜歌’를 노래하시며 공사를 보셨다. 차경석 성도의 사명과 임무는 막중했지만, 이종 도운에서 그의 역할은 무진년 태모님의 ‘흥강가興姜歌 공사’를 기점으로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였다.

결국 일제의 집요한 음해 공작과 강력한 탄압으로 차경석 성도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조선 민중에게서 신망을 잃고 쇠락의 세월을 보내다가, 수부님께서 선화하시고 6개월이 지난 병자(1936)년에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일제는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는 모든 교단의 활동을 준독립 운동으로 규정하고 대폭압 명령을 내렸다. 보천교 본소를 접수하고 해체를 명령했으며, 건축물을 강제로 경매⋅처분하였다. 당시 조선 내 독립 건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인 십일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은 헐값에 처분되어 조계사 대웅전과 내장사 대웅전, 전주 역사驛舍 등을 짓는 데 쓰였다. 보천교 신도들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비밀리에 신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탄로가 난 신도들이 검거되어 온갖 고문과 취조를 받고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참사를 당하면서 보천교는 민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 갔다.

보천교, 이종 도운의 역할과 사명보천교는 최근에 와서야 그 역할이 재조명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역사와 전통을 왜곡하여 조선인으로 하여금 조선의 모든 것에 경멸적인 혐오감을 느끼게 하고, 조선인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생활 양식을 일본화시켜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였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일제 식민 교육으로 말미암아 우리 전통문화를 모두 미신이나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보천교는 북두칠성에 계신 상제님과 내 마음을 하나로 맞춘다는 의미를 지닌 상투를 틀었고 흰옷과 도포를 입었으며, 우리 고전을 연구하고 풍물놀이 등 전통음악을 진흥하였다. 또 민족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조선물산장려회가 추진한 토산품 애용과 물자 절약 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정읍 대흥리 일대에 직물 공장, 갓 공장 등 현대적인 생산 시설도 갖추어 자급자족할 경제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보천교 교단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60방주제를 통해 독립 자금을 상해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에 조달하였다. 왜곡되긴 하였지만, 상제님 성훈이 담긴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을 집필한 이중성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밀사였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에게 군자금 2만 원(현재 가치 약 4억 정도)을 지원하였다. 이런 독립운동을 포착한 일제는 보천교를 협박하고 탄압했다.

보천교의 발흥과 몰락은 모두 상제님 천지공사에 따라 일어난 일이며, 차경석 성도는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나라의 주권이 빼앗긴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이종移種 도수를 맡아, 수부님께서 뿌리신 진리의 씨앗을 옮겨 심어 크게 성장시키는 대역사를 펼쳤다. 약 20년(1916~1936) 동안 정읍 대흥리에 수부님이 뿌리신 도운의 씨를 전국 방방곡곡에 옮겨 번성시키는 이종 도수의 사명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차경석 성도는 ‘추수할 사람’에게 종통 맥이 이어지게 하는 도맥의 고리 역할을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차경석 성도에게 ‘달의 골짜기’를 뜻하는 ‘월곡月谷’이라는 호를 지어 주셨는데, 이는 천지일월 사체 가운데 달[月]로 상징되는 추수판 도운의 창시자에게 도맥이 이어지게 할 것임을 알려 주신 것이다. ‘경석京石’이라는 도명道名도 후천 5만 년 새 세상의 주춧돌이 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차경석 성도의 본명은 ‘윤홍輪洪’이다.

제3절 제2변 도운 개창사와 상제님의 종통 도맥

1. 제2변 초기 추수 도운 개창사


태모님과 차경석 성도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정축(1937)년부터 세운에서는 총각판 씨름인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전개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상제님 교단에 대폭압 명령을 내리고, 유사종교 해산령을 내려 민족 종교를 모두 해체했다. 이에 상제님 ‘대나무 공사’에 의해 종도들이 개척한 교단도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침체기를 보내고 마침내 대망의 을유(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고, 상제님 도운은 새로운 추수판 도운의 부흥을 맞게 되었다.

1) 용화동에서 열린 초기 추수판 도운●추수 일꾼 출세에 이바지한 이치복 성도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던 해인 기유(1909)년 전라도 부안扶安 출신 이치화李致和 성도가 도문에 들어왔다. 상제님께서 ‘큰 일꾼’이 들어왔다고 하시며 절을 받으시고, ‘치화’라는 자字를 ‘복이 이른다’는 뜻의 ‘치복致福’으로 고쳐 주셨다. 상제님께서 ‘큰 일꾼’이라 하신 것은, 추수 도운을 여는 인물이 출세하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이후 이치복 성도는 차경석 성도의 전횡으로 성도들이 수부님 곁을 떠날 때 가장 나중에 나와서, 제화교濟化敎를 열어 포교 활동을 하였다. 1918년경 충남 태안 안면도安眠島에서 존성 안安씨요, 성휘 병炳 자, 욱彧 자인 태상사부太上師父님(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부친)을 만나 상제님 도를 전하였다. 이후 태상사부님께서 보천교 신앙을 하시게 됨에 안 운雲 자 산山 자 태상종도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집에 드나드는 수많은 신도가 나누는 도담을 들으면서 증산 상제님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셨다.

태상종도사님 성수 7세 되시던 무진(1928)년에 수부님께서는 “이제 때가 멀지 않으니 자는 개를 깨워야겠다.”(도전道典 11:215)라고 하시며 숙구지宿狗地 공사를 보셨다. 이 공사는 1922년 임술생壬戌生으로 오신 대두목에게 종통이 전수될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수부님께서는 “숙구지 공사를 보아야 한다.”라고 성도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이때 비로소 ‘자는 개를 깨우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태상종도사님은 9세 때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만국을 살려 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도전道典 5:306:6)’라는 상제님 말씀을 입춘서로 써서 집 안 상기둥에 붙이셨다. 태상종도사님은 어린 나이에도 이 열넉 자 대구對句가 전하는 뜻을 훤히 아셨다. 그리고 12세 때에는 2주 동안 수련을 하셨는데, 3일 만에 홀연히 하늘의 대광명이 열리는 큰 체험을 하시고 상제님 대도의 개척 사업이 당신께서 받은 천명임을 아셨다. 그로부터 평생을 이 대업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시고, 십 대부터 광복이 되던 이십 대 초반까지 전국 팔도와 만주, 북지北支(중국 화북 지역) 등을 주유하며 일제 치하에서 한민족이 겪는 수난과 세상의 물정을 두루 체험하셨다.

●광복 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태상종도사님
마침내 광복이 되자 태상종도사님은 “일실건곤一室乾坤을 평화낙원平和樂園 하리라.”, ‘온 우주촌에 세계 가족을 건설하고 평화 낙원을 만들리라.’라는 평생시에 담으신 당신의 원대한 꿈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나서셨다. 성수 24세 때부터 보천교를 비롯한 상제님 신앙 단체들이 모두 망한 가운데 혈혈단신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포교의 문을 여셨다. 이로써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꿈꾸어 오시던 상제님 천지 사업을 드디어 시작하셨다.

상제님과 태모님의 종통 대권을 계승하신 태상종도사님은 먼저 제1변 도운 때 신앙하던 신도들을 규합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셨다. 그때 박공우 성도의 제자 송종수宋宗守를 만났는데, 당시 의통인패醫統印牌를 준비하고 있던 그는 태상종도사님의 옥골풍채의 풍모와 대인의 인품에 감화되어, 대도 사업을 함께 하기를 간청하였다.

이 무렵 태상종도사님은 상제님과 태모님의 행적을 편찬한 공덕이 있는 이상호를 만나고 정읍 대흥리에 남아 있던 보천교 교당에서 상제님 대도 사업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른바 ‘보천교 혁신운동’으로 보천교에 큰 해를 입힌 이상호와 옛 보천교 신도들 사이의 불협화음 때문에 1년 만에 조직이 흩어졌다.

이후 태상종도사님은 개인 재산을 털어 김제 용화동에 있던 구舊 옥성 광산 사무실을 매입하여 도운 중창의 새 역사를 개척하셨다. 상제님 도운의 씨가 처음 뿌려진 정읍 대흥리에서 포교를 시작하시고, 수부님께서 ‘용봉기를 꽂고 사람을 잘 맞이하라.’ 하신 용화동에서 제2변 도운의 역사를 새롭게 개창하신 것이다. 이때부터 마치 구름이 일듯 교세가 크게 일어나고, 도운을 크게 부흥시킨 총사수總師首요 실질적인 도의 뿌리이며 연원淵源이신 태상종도사님은 교명을 ‘증산교甑山敎’라 정하셨다.

●상제님 진리의 진액, 우주 1년 도표

당시 포교 방법은 태을주 수행으로 개안開眼을 시켜 신도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대중의 진리 의식을 열어 줄 수 없었다. 이에 태상종도사님은 해방 다음 해인 병술(1946)년에 상제님 진리의 큰 틀을 누구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우주 1년 도표’를 그리시어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공포하셨다. 이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상제님 가르침의 진액을 뽑아 정리한 도표로 우리가 상제님 진리를 처음 만날 때 듣게 되는 내용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 1년 사계절의 변화와 이를 주재하는 상제님의 지상 강세, 그리고 가을철 통일 문명의 도래 소식을 담고 있다. 이는 동방의 우주 사상과 인류 문명사에 대한 깨달음의 총결론이며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실로 놀랍고도 명쾌한 가르침이다.

2)‘독행천리 백절불굴’의 태상종도사님그러나 해방 이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정부 당국은 증산교 활동을 공산주의 활동으로 의심하였다. 이런 사상적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 당국까지 홀로 상대하시며 모든 난관을 극복하신 태상종도사님은 독행천리獨行千里 백절불굴百折不屈, ‘혼자 천 리를 가는데 백 번 넘어져도 굽히지 않고 가고 또 가는’ 정신으로 금일에 충청도, 명일에는 경상도로 다니시면서 포교 사업에 혈성을 다 바치셨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과 금력을 멀리하고 불고가사不顧家事하시며 쌓아 올린 전도傳道의 금자탑은 남북 상씨름의 서곡인 한국전쟁이라는 벽에 부딪혀 크게 흔들렸다. 여기에 교권에 대한 야심이 가득했던 이상호는 ‘금산金山(모악산의 옛 이름)을 얻기가 어렵다.’라는 말씀과 ‘용화동이 상제님의 기지基址(이 말씀은 도성덕립이 된 후에 비로소 성취된다)’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용화동으로 신도들을 집단 이주시키고자 했다. 태상종도사님께서 “내가 판을 일군 사람으로서 신도들 고생시키는 일은 할 수 없다.”라고 하시며 만류하였으나, 이상호가 주장을 굽히지 않아 큰 갈등이 빚어지고 교세도 위축되었다. 결국 한국전쟁 발발이라는 외부 요인과 이런 내부 문제가 맞물려 제2변 초기 추수 도운은 일단락 짓게 되었다.

3) 추수 도운의 마무리 판을 준비하는 20년 휴계기休契期국운과 그 흥망을 함께 한 초기 추수판 도운은 3년간의 한국전쟁 끝에 완전히 문을 닫고 20년(1954~1973) 대휴계기로 접어들었다. 상제님께서는 이런 휴계기의 도래를 말도末島 도수(도전道典 6:22)로 처결하신 바 있다.

말도는 전북 군산시 고군산열도 선유도 인근 서쪽 끝에 있어 끝섬이라고도 불리지만, 그 형상이 말[馬]이 꼬리를 치켜든 형국이라 하여 말도라 불린다. 상제님이 외딴 섬 말도로 들어가시어 20일 동안 온갖 고생을 다 치르고 나오신 공사에 따라, 태상종도사님은 초기 추수판 도운을 문 닫고 20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시며 은둔하셨다. 마치 정배定配를 당하신 것처럼 초야에 묻혀 자식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셨다.

1태극 대두목을 상징하는 지지地支의 ‘술戌’ 자리에는 일정한 처소를 정해 귀양 간다는 ‘정배定配’의 뜻이 있다. ‘술’은 모든 생명 활동을 마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들어앉아 있는 이름 없는 서북방 구석 자리이다. 이처럼 태상종도사님께서 말도 도수를 받으신 것은 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온 국민이 먹고살아 갈 수 있는 경제 재건의 시간이 필요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태극의 술戌이 지닌 이런 천지 변화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역사의 준비 기간, 20년 휴계기
이 20년이라는 기간은 상제님 도정의 새 시대를 열어, 추수 도운을 마무리 지을 새로운 인물을 낳고 기르는 준비의 시간이었다. 태상종도사님은 “갑을甲乙로서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戊己로서 굽이치리니”(도전道典 6:109:6)라는 상제님 말씀을 좌우명으로 써 붙여 놓고 때를 기다리시다가 드디어 갑인(1974), 을묘(1975)년을 맞이해서 갑오생 아들과 함께 상제님 사업의 포문을 다시 여셨다.

태상종도사님은 갑오생 아들과 함께 먼저 용화동 신도들을 다시 찾았으나, 그들은 태상종도사님으로부터 직접 도를 받았음에도 삿된 욕망에 사로잡혀 도리어 스승 노릇을 하려는 불의와 배은망덕을 저질렀다. 그들과 새로운 역사를 열 수 없음을 확인하신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용화동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 판을 여시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상제님의 말도 공사에 의해 전개된 20년 대휴계기는 태상종도사님께서 당신의 분신이자 수화水火 일체의 관계로 도정의 새 시대를 열어 갈 지도자를 길러 내고, 도정의 사령탑을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 위한 역사의 준비 기간이었던 것이다.

2. 상제님과 수부님의 뜻을 성취하는 대두목


상제님께서는 어천 당시 상제님 대업을 이룰 ‘두 사람’이 나와서 당신의 천지 대업을 마무리 짓는다고 말씀하셨다(도전道典 10:27). 이 ‘두 사람’은 상제님과 태모님을 계승하여 그 뜻을 도운道運의 인사人事로 펼칠, 진리의 눈을 상징하는 일월日月의 지도자, 즉 태극太極과 황극皇極의 지도자를 말한다.

상제님은 가을 천지 대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고 후천 선경을 건설한 인사의 지도자를 ‘대두목大頭目’이라고도 하셨는데, ‘대두목’은 큰 대大, 머리 두頭, 눈 목目 자로, 글자 그대로 가장 큰 지혜와 안목眼目을 가진 상제님 진리의 우두머리이며 상제님 대도 진리를 세상에 밝히는 최고 지도자(The Supreme Leader)를 말한다.

이 대두목이 맡은 역할과 사명은 이러하다.
첫째, 상제님과 수부님의 인사 대권자로서 두 분을 대행하여 당신의 뜻과 이상을 펼치고 집행한다.
둘째, 상제님 진리를 밝혀 진법을 드러내고 천지대업을 이루는 일꾼을 길러낸다.
셋째, 인류를 구원할 의통을 준비하고 가을 대개벽 상황에서 의통성업醫統聖業을 집행한다.
넷째, 후천 선경의 주역들에게 도통을 내려주는, 종통 도맥의 주인공이다.

건곤 천지이신 증산 상제님과 고 수부님께서는 감리坎離 일월日月의 역할을 하는 음양일체의 두 인물이 나와서 태극과 황극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

1) 십일성도하는 1태극 대두목우리는 앞서 『증산도의 진리』 제4장(천지개벽과 역수의 변화)에서 10무극과 1 태극이 결합하여 우주 창조의 이상과 세계 역사를 완성하는 십일성도十一成道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사의 주재자인 1태극 대두목은 상제님과 수부님이 짜 놓으신 설계도(도수)에 따라 현실 역사 속에 후천 선경을 건설할 바탕을 마련하셨다. 그리고 7화火의 황극 대두목이 상제님 무극대도의 이상을 실현하게 된다. 이것이 십일성도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2) 후천 통일을 성취하는 5(五,午)황극 대두목우주 생명이 생장 분열하는 선천의 전체 과정을 매개하여 현실 속에 무극과 태극의 이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주체가 바로 황극皇極이다. 황극 지도자는 10무극 상제님과 1태극 대두목의 이상을 역사 속에 실현하게 해서 후천 5만 년 광명의 선경 세상을 여는 주인공이다.

이 인물을 1태극 대두목이 길러 내고 지켜 주게 되는데, 그 이치는 황극[火]이 태극[水]을 근본으로 하여 나와서(水生火) 태극의 대업을 인사로 성취하기 때문이다. 선천과 후천의 세상 중심에는 황극이 작용하고, 황극으로 작용하는 지지地支는 7오화午火이며 말[馬]로 상징이 된다. 예로부터 동방 배달의 신교神敎에서는 북두칠성을 하느님이 타는 하늘의 수레(제거帝車)라 불렀다. 말(午)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것과 같이 7오화午火(七火, 七星) 기운을 지니고 오는 진리 주인공이 상제님 대도 문명을 여는 조화 광명의 수레를 이끌고 간다. 이로써 세계가 구원받고 온 세상이 상제님의 한마음(일심一心)으로 통일되어 인류는 후천 선경 낙원의 조화 문명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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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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