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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운 대신사가 최제우로 이름을 바꾸신 까닭-용담유사, 도원기서

김남용 / 본부도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속담俗談은, 살아생전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한 사람은 그 명예로운 이름이 길이 남는다는 만고의 성담聖談입니다. 이름이 곧 그 사람인데, 그 이름을 바꾸는 것은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불자들이 법명法名을, 가톨릭에서 세례명을, 연예인들이 예명藝名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저는 이름이 운명에 영향을 주니까 될 수 있으면 좋은 이름으로 개명해야 한다는 작명가나 개명예찬론자가 아니지만, 우리 역사 속의 특별한 한 분을 소개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최수운 대신사를 기억하시나요

지금부터 약 200년 전 태어난 최수운崔水雲 대신사大神師(1824~1864) 이야기입니다. 익히 알고 계신 것처럼 조선 조정이 그를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몰아 처형한 관계로 그분의 생애 자료 자체가 매우 단편적입니다.

 

우리가 그를 수운水雲 대신사大神師라고 높여 부르는 것은, 조선이 1905년 11월 일본에 외교권外交權을 빼앗기고, 1907년 7월 군권軍權마저 내주고, 12월에 13도 의병의 한양 탈환 작전마저 실패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였습니다. 1908년 4월 천도교 부구部區총회에서 “대신사大神師”라고 부르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최수운 이전, 최수운 이후

인류 지성사의 흐름에서 최수운 대신사는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상제님, 천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대화를 나눈 빛나는 분입니다. 7~8개월 지속된 이 사건을 천상문답天上問答이라고도 부르는데 동서양의 어떤 기록을 막론하고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를 통하여 수운은 인류에게 상제님을 모시는(侍天主) 시간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상제님은 나라님이 천제를 지낼 때나 거명되는, 아주 존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습니다. 글 한 줄 읽을 줄 모르던 이 땅의 수많은 하층민들이 강경 뻘판에 삼례 들판에 서슴없이 모여들어 체면 가리지 않고 함께 먹고 소통하면서 시천주侍天主를 노래하였음은 오직 그로 인함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경부 경의 철도는 거의 무임금에 가까운 노동력을 기꺼이 제공한 시천주꾼들에 의하여 가능하였습니다.

 

서양의 이름 없는 철학자도 우리나라에 오면 빛을 보는 이때, 그의 삶은 백번 조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간단하나마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그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1859년 10월

최수운은 처가가 있던 울산에서 힘을 기울이던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낙망하여, 가족들을 이끌고 일찍이 부친이 마련해 둔 경주 용담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용담은 구미산 산중에 있는 제대로 된 집도 아니요 다만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초겨울에 괴나리봇짐만을 챙긴 채 산중으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수운은 그때의 정상이 하도 애처로워 까막까치조차도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고 참담한 심경을 술회하였습니다. <용담가. 1860년 4월 하순>

 

💡1859년 겨울

경주 구미산 속 춥고 배고픈 어려운 상황에서 최수운 행장을 다룬 기록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중한 맹세를 다시 하였다(기도생활을 말합니다).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쳤다. 불출산외不出山外 네 글자를 문 위에 써 붙였다. 하루 세 번 집 앞 용담정에서 청수를 길어 모시고 기도했다. 이듬해(1860년) 봄에는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立春詩를 지어 벽에 붙였다.

 

이때 수운은 생애 가장 쓸쓸한 생일(10월 28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도道를 깨치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不出山外)을 문 위에 써 붙이고, 청수를 모실 때마다 쳐다보며 결의를 다지고, 기도에 올인을 합니다.

 

처자妻子들의 고생담은 아예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입춘에 벽壁 위에 써 붙인 글은 “도道의 기운이 오래 있으니 사악함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상의 중인衆人과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내용으로, 그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졌음을 새삼 알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경주 용담 최수운이 기도하는 곳에 누가 감히 얼씬거릴 수 있었을까요?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고, 하고 싶지 않지만 또 해야만 되는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최수운이 외롭게 구도하면서 다짐한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를 깨뜨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경신년(1860) 4월 5일

마침 이날은 최수운의 장조카 최맹륜崔孟倫(1827~1882, 수운의 아버지가 들인 양자養子, 수운보다 3살 어리다)의 생일이었습니다. 맹륜은 산속에서 고생하는 삼촌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삼촌은 도道를 좋아하지만 앞뒤가 꽉 막힌 외골수는 아니었습니다. 울산에 계실 때 양산 통도사 근처의 천성산 내원암에 들어가 기도를 하였는데 47일째 숙부가 별세하는 체험을 하고 수행을 중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삼촌은 고향에 돌아와 1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다시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로 가서 49일 입산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때 2차 기도 후 울산에서 용광업을 경영하였는데 어쩌다 크게 실패하여 고향에 돌아와 은둔 중인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덕불고德不孤

최맹륜은 덕인德人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삼촌을 초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 궁리 끝에 삼촌을 위하여 옷을 한 벌 짓고 갓도 준비하였습니다. 의관衣冠을 마련한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산중에 칩거하는 이가 외출복이 있을 리 만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말을 보냈습니다. 적어도 수운이 출타를 거부할 외형적 명분이 없어졌습니다.

 

최수운이 얼마 동안 머뭇거렸을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구도의 뜻을 품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 최수운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쳤을 망설임의 크기를 짐작할 뿐입니다. 말없이 가장家長의 의미 있는 출타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 불출산외不出山外 글귀, 입춘서, 자신을 위한 의관과 대기하고 있는 말…. 

 

💡이날은 양력으로 5월 25일

화창한 초여름 날이었습니다. 용담정에서 맹륜이 사는 구미산 밑 지동芝洞까지는 1리里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요새 학교 마당에 그려진 400미터 트랙 한 바퀴 거리를 울퉁불퉁한 오솔 산길로 상상하면 됩니다(지금도 흙길 그대로입니다). 약주 한잔이 그리워 가는 길이 아니고, 더구나 가족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신이 세운 결의를 파기하러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닙니다.

 

몰락 양반의 자식으로 스무 살 때 처음으로 세상에 장사하러 나갈 때 바라보았던 주변 회상은 말 위에서 다시 둘러보아도 여전하기만 한데~, 일생을 관통한 다양한 감상들이 서로 겹쳐져 혼돈混沌의 의식 상태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지척의 거리에 수운을 존경하는 조카가 있었습니다.*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맹륜이 말을 보내고 국과 술을 덥히던 적당한 시간에 수운은 조카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이 그렇지 세 살 터울의 삼촌, 20여 년간 한집에 같이 살았던 이물異物없는 사이인 그를 온 식구들이 나와서 기꺼운 모습으로 환대합니다. 용담 산속에 찾아와 칩거한 이후 처음으로 느껴 보는 환한 얼굴들! 경계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동안 수행의 내공과 경건함으로 가득한 수운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의 빛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수운 대신사는 수행 기간 중 일탈逸脫하여 조카 집에 출타한 이 사건事件을 그의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라면 누구나 암묵적으로 느끼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일말一抹의 불편한 진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너무너무 중요한 마디일 수밖에 없는 이날 이때, 수운은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1) 약 반년 후의 일이지만 이분(최맹륜)은 최수운을 스승으로 모시는 첫 입도자가 됩니다. 4년 뒤 최수운이 대구에서 처형되고 나서는 그 시신을 수습하여 용담 서원西原에 안장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날, 경신년 4월 5일, 낮부터 밤까지

사월이라 초오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할러라

 

공중에서 외는 소리 천지가 진동할 때 집안사람 거동 보소 경황실색驚惶失色 하는 말이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무삼 일로 이러한고 애고 애고 사람들아 약藥도사 못해 볼까

 

침침칠야沈沈漆夜 저문 밤에 눌로 대해 이 말할꼬 경황실색 우는 자식 구석마다 끼어 있고

 

댁의 거동 볼작시면 자방머리 행주치마 엎어지며 자빠지며 종종걸음 한창 할 때

 

공중에서 외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 하여스라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초야에 묻힌 인생 이리 될 줄 알았던가 개벽시開闢時 국초일國初日을 만지장서滿紙長書 나리시고

 

십이제국十二諸國 다 버리고 아국我國 운수 먼저 하네 그럭저럭 창황실색𢠵惶失色 정신수습 되었더라
<안심가. 1861년 8월 하순>

 

 

수운은 자신이 상제上帝님을 만나는 신비 체험을 『수운가사』 곳곳에 언급하고 있지만, 『용담유사龍潭遺詞』에 실린 「안심가安心歌」에서 비교적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안심가 는 ‘현숙한 내집부녀 이글보고 안심하소’ 라는 구절로 시작하듯이 그의 구도 체험 시간에 함께한 처자妻子들이 겪었을 놀라움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간대를 살펴보면 이미 저녁입니다.

 

『도원기서道源記書』라는 책을 보면, 수운이 조카 생일에 마지못해 참석하였으나 곧 몸이 떨리고··· 하여 급히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어른이 좌정하면 먼저 술을 한 잔 올리는 것이 상례이고 수운도 약주를 한 잔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흥에 겹게 식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분위기가 기록의 행간에 묻어 나옵니다. 

 

몸에 이상을 느낀 삼촌을 맹륜이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겠지요. 당연히 모셔 올 때와 같이 시자侍子를 붙였을 것입니다. 그 시기를 수운 연구에 평생 애쓰신 표영삼 선생은 오전午前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미 한밤중입니다. 수운의 아내가 행주치마를 벗지 못하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방구석마다 자식들이 끼어서 울고 있는 가운데 넋두리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낮부터 시작된 수운의 신비 체험은 처자식들이 저녁이 되어 거의 자포자기로 실성한 분위기까지 몰고 갑니다. ‘물공물구’는 수운뿐 아니라 온 식구들에게 적절한 표현이지요. 낮이라면 약이라도 구해서 어떻게 해 볼 텐데~ 부인의 절망 어린 넋두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너는 상제上帝를 모르느냐?

수운이 득도得道 시 첫날 받아 공개한 첫 메시지는 “나는 호천금궐 상제님이다.”, “십이제국의 괴질운수가 온다.”, “상제님이 우리나라 운수부터 먼저 정한다.”, “한울님이 이 몸 내어 아국운수 보전하네.”입니다.

 

어두운 밤, 등불을 켜고 상제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온 가족이 “존경하는 우리 남편(아버지)은 이제 정말 미쳤구나!” 하는 만장일치 인증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원기서』에서는 상제님이 수운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제우로 이름을 고친 사연을 찾아서

제가 매우 무례하지만, 『도원기서』의 저자에게 한마디 유감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이때 최수운의 자字는 도언道彦(선비 언)이 아니라 성묵性黙입니다. 경주 용담 들어온 그달,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제우濟愚로 바꿀 때 같이 바꾼 것이지요. 호號도 수운水雲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최수운의 일생을 담은 기록이라면, 도언道彦은 2% 적절치 못합니다. 왜 그가 제우濟愚라는 이름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는가가 부각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고치고 7~8개월 동안 수행에 전념하고 오매불망하던 상제님을 만났다면, 어딘가에 최수운이 직접, 개명改名을 결단한 배경을 세상에 알렸으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분명 수운의 신비 체험은 한 개인 구도자가 아닌, 그로 인해 아국我國 운수가 보전되고, 인류의 역사 흐름에서 보면 상제님을 직접 뵙고 아버지라고 부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도덕 질서의 새 기틀을 놓은, 천명天命 받은 선각先覺이기 때문입니다.

 

💡포덕 시대를 알리는 신교가 내리다

최수운의 신비한 신교神敎 체험은 3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보통 7~8개월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辛酉, 1861년) 봄에 수운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체험을 담은 글짓기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상제님의 명命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용담에는 불출산외不出山外와 입춘시立春詩가 걸려 있었는데, 어느 날 상제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신교神敎가 내려왔습니다.

 

너의 깨달음의 전과 후, 그리고 그에 따른 길흉화복은 나와 관계되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용담정에 들어온 이후로 이름과 호를 고치고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그리고 이른바 입춘시를 썼다.

 

이런 시구詩句를 벽에 걸어 놓고 세상을 조롱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가소롭기 그지없다. 너는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하느니라. 이후로는 사람을 가르치고 진리의 덕을 세상에 펼쳐야 하느니라.

- 『도원기서』

 

곧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는 불출산외不出山外와 입춘시의 글은 깨달음을 얻기 전前의 일이므로 접고, 대신 이제 세상과 소통하는 이른바 포덕布德 시대를 명하신 것입니다.*2)

 

*2) 그전에 조카 맹륜의 입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큰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삼촌이 비 한 방울 옷에 묻히지 않고 처마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포덕布德, 사람을 가르치고 진리를 세상에 펼친다

『동경대전』의 「포덕문布德文」은 그런 의미에서 수운이 왜 포덕을 하는지, 수운 자신의 도道와 서도西道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세상에 본격적으로 펼치는 선언문의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문단은 너무나도 중요하므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포덕문布德文 1861년 7월 중순

개자상고이래自上古以來 춘추질대秋迭代 사시성쇠時盛衰 불천불역遷不易

시역是亦 천주조화지적主造化之迹

소연우천하야然于天下也 우부우민夫愚民 미지우로지택知雨露之澤 지기무위이화의其無爲而化矣

저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사시四時가 성盛하고 쇠衰함이 옮기지도 못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 또한 천주天主님 조화造化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로되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알았다.

 

자오제지후五帝之後 성인이생人以生 일월성신月星辰 천지도수地度數
성출문권이이정천도지상연出文卷而以定天道之常然

일동일정動一靜 一 일성일패盛一敗 부지어천명之於天命 是 

경천명이순천리자야天命而順天理者也 

故 인성군자成君子 학성도덕成道德 도즉천도則天道 덕즉천덕則天德

명기도이其道而 수기덕其德 고故 내성군자成君子 지어지성於至聖

기불흠탄재不欽歎哉

오제 후부터 성인이 나시어 일월성신과 천지도수를 글로 적어 내어 천도의 떳떳함을 정하여 일동일정과 일성일패를 천명天命에 부쳤으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학은 도덕을 이루었으니, 도는 천도요 덕은 천덕이라.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음으로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부러워 감탄하지 않으리오.

 

우차만근이래此挽近以來 일세지인世之人 각자위심自爲心 불순천리順天理

불고천명顧天命 심상송연常悚然 막지소향의知所向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各自爲心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최수운은 포덕문布德文 첫 줄에서 사시四時가 순환하는 자연 질서가 천주天主(=상제)님의 조화造化라고 천명합니다. 이를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과거에 성인聖人은 천명天命을 받아 천도天道와 천리天理를 세상에 알려서 어리석은 사람을 일깨워 군자君子도 성인聖人도 되게 하였다.

 

근래에는 세상 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고 각자 제멋대로 마음을 쓰는 고로 어리석은 세상이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우주는 천주天主님의 조화造化뿐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무위이화無爲而化를 빗대어 하늘 이치를 순종치 아니하는 것을 나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천명天命으로 도道를 밝혀 그 덕德으로 사람들을 군자君子가 되게 하는 성인聖人이 나와야 하는 때라는 것이 수운의 지론입니다.

 

결국, 수운水雲은 천주天主님의 조화造化를 알지 못하는 우부우민愚夫愚民을 건지는 것을 일생일대의 사명天命으로 알고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시각에서 보면, 천天을 이理로 보는 유학자들도, 신神은 죽었다고 선언한 서양의 철학자들도 또한 모두 우부愚夫 우민愚民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3)

 

이러한 고민을 하늘에 하소연한 사람이 서양에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수운이 유일한데, 그 천명을 실천으로 옮기기에 현실적으로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포덕문의 다음 문장이 그것을 말합니다

 

*3) 이렇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일부에서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포덕문 첫 구절은 최수운 자신이 세상을 향하여 자신이 경험한 천주님은 누구이고, 자신은 왜 천주님을 포덕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므로, 조화주 상제관이 아닌 이신론적 신관 주장은 무위이화에 포함시켜야 된다고 읽었습니다. 

 

지어경신於庚申 전문서양지인聞西洋之人 이위천주지의爲天主之意

불취부귀取富貴 공취천하取天下 입기당其堂 행기도其道

故 오역유기연亦有其然 기기연지의其然之疑

경신년에 와서 전해 듣건대 서양 사람들은 천주天主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고 하므로 내 또한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서교에 대한 의구심

경신년(1860)이라고 하면, 수운이 경주 용담에 들어와 겨울을 지내고 맞은 첫해이자 도통을 받은 해입니다. 이 글을 보면, 수운은 경주 용담에 들어와서 완전한 은둔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귀를 어느 정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천명天命을 펼치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제와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영국과 중국의 2차 아편전쟁을 통하여 텐진조약(1860)이 체결되는 과정에 대한 소식으로, 조약 내용에 있는 <크리스트교 선교 자유 인정 건件>을 말합니다. 부도덕한 아편을 통하여 중국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선교사들이 천주天主님을 앞세워 포교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4) 수운은 선교사들이 전하는 천주天主님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기도 주제는 세간을 초월하는 영역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4) 표영삼 선생은 “수운은 기독교 문명이 건전하다고 믿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듣자 그들의 문명도 병들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풀이하였습니다. 

 

💡수운의 기도 목표, 천주강령天主降靈

그러면, 최수운은 대체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대선생주문집大先生主文集』에 보면 1856년 수운이 울산에 있을 때 양산 통도사로 수행하러 간 기록이 있습니다. 천성산에 3층단을 쌓고 폐백을 바친 후 49일 지성 축원을 하였는데 …이축원심소항념而祝願心所恒念 여천주강령與天主降靈 지망유명교의只望有命敎矣…라 하였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항상 염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천주天主님께서 영靈을 내려 주시기를 축원하였다. 단지 천주님의 명교命敎가 있으리라는 것을 대망할 뿐이었다….

 

💡명교命敎의 의미

이같이 수운의 기도는 천주天主님의 강령降靈을 목표로 한다는 것과 함께 ‘명교命敎’라는 특별한 언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천주님의 영이 내려와 천명天命을 내려 주심과 더불어 신교神敎를 주시기를 간구한다는 점입니다.

 

수운의 첫 번째 49일 수행은 숙부의 별세로 이틀을 못 채우고 중단됩니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49일 수행을 마친 후 철점鐵店을 운영할 때에도, 집안에 기도소祈禱所를 차렸다고 합니다. 철점이 실패하고 용담에 돌아와서도 그의 기도는 지속되었으며 기도 제목 또한 일관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경주 용담에 은둔하였어도 천주天主님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촉각이 서 있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나온 ‘중重한 맹세를 다시 하였다.’는 이를 말합니다.

 

수운의 수양녀인 주씨朱氏는 수운의 구도 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언제 보아도 책을 펴고 있었다. …… 밤에는 나가서 한울님께 절을 하시되 수없이 많이 하시더라. 새로 지은 버선이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버선 앞코가 다 이지러지고 상하도록 되었다.” <『신인간』 1927년 8월호>

 

💡마침내 만난 상제님, 그 첫 메시지

불의사월意四月 심한신전寒身戰 질부득집증不得執症

언부득난상지제不得難狀之際

유하선어何仙語 홀입이중入耳中 경기탐문즉起探問則

왈물구물공勿懼勿恐 人 위아상제我上帝 여부지상제야不知上帝耶

문기소연其所然 왈여역무공고余亦無功故 생여세간汝世間 교인차법人此法

물의물의疑勿疑

왈연즉然則 서도이교인호西道以敎人乎 왈불연不然 오유영부有靈符 기명

藥 形 태극

우형形 궁궁弓 수아차부我此符 제인질병人疾病 수아주문我呪文

교인위아즉人爲我則 여역장생亦長生 포덕천하의德天下矣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증할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물은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포덕문>

 

이 문단은 최수운이 상제님으로부터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상제님을 향한 5년여의 일편단심 끝에 드디어 결실이 맺어지는 날에, 그는 ‘불의不意!’라는 단어를 골라 적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리고 그날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탈逸脫의 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여 병증病症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공황 상태에서, 천주강령天主降靈의 꿈을 실현한 그 순간에도 서도西道(예수교)의 천주님으로 세상을 교화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무기와 군함을 앞세운 서양 문명은 득도하는 순간까지 수운을 괴롭힌 거대한 벽壁이었습니다.

 

이렇게 동학東學이 탄생했습니다. 상제님은 영부靈符를 말씀하시며 12제국 괴질운수를 맞아 질병疾病에서 건지는 수단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주문呪文을 받고 글을 지어 천하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상제님이 약속하셨으니 앞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상문답이 끝나고, 붓을 들어 체험을 정리하다

꿈일런가 잠일런가 무극대도無極大道 받아 내어 정심수신正心修身 하온 후에 다시 앉아 생각하니 우리 집안 여경餘慶인가 순환지리循環之理 회복인가

 

어찌 이리 망극한고 전만고前萬古 후만고後萬古를 역력히 생각해도 글도 없고 말도 없네 대저 생령生靈 많은 사람 사람 없어 이러한가 유도불도儒道佛道 누천년累千年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 

 

윤회輪廻같이 둘린 운수 내가 어찌 받았으며 억조창생億兆蒼生 많은 사람 내가 어찌 높았으며 일 세상 없는 사람 내가 어찌 있었던고

 

아마도 이 내 일은 잠자다가 얻었던가 꿈꾸다가 받았던가 측량치 못할러라 사람을 가렸으면 나만 못한 사람이며 재질을 가렸으면 나만 못한 재질이며

 

만단의아萬端疑訝 두지마는 한울님이 정하시니 무가내無可奈라 할 길 없네 사양지심辭讓之心 있지마는

 

어디 가서 사양하며 문의지심問疑之心 있지마는 어디 가서 문의하며 편언척자片言隻字 없는 법을 어디 가서 본을 볼꼬 묵묵부답黙黙不答 생각하니 고친 자호字號 방불彷彿하고 어린 듯이 앉았으니 고친 이름 분명하다 <교훈가. 1861.11~12>

 

수운 대신사의 표현대로, 그는 상제님으로부터 만고萬古에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았습니다. 『용담유사』 「교훈가敎訓歌」는 그가 무극대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어 얼마나 고민하였는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은, 이 무극대도는 전만고 후만고를 통하여 없던 일이며, 이로써 이제 유도儒道 불도佛道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다는 것, 어쩌다 자신에게 이런 운수가 돌아왔는지 만 가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상제님이 정定한 일이라는 것, 사양하고 싶고 의문 나는 것을 묻고 싶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한다는 것…… 등등. 최수운식 오도송悟道頌이 교훈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도통한 자신의 현재 모습이 용담에 입산하여 고친 자字와 호號와 방불彷佛하다. 같다! 분명하다! 자호字號를 개명改名하고 수도修道하여 그대로 소원 성취를 하였다! 이렇게 성공한 구도자가 대체 어디 있을까요? 그가 상제님으로부터 받은 무극대도는 어디에서 누구에게서도 말 한마디, 글 한 자字, 본本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라 하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은 그의 고친 자字 성묵性黙에 비유합니다.

 

누구에게 물을 수 없으니, 그가 처음이요 출발입니다. 그의 호號는 수운水雲인데, 물과 구름은 대자연大自然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용담수류사해원龍潭水流四海源 (용담의 물이 흘러 사해의 근원이 된다)은 새 시대의 개명을 선언합니다.

 

끝으로 어리석은 듯 앉아 있는 자신을 고친 이름 제우濟愚의 우愚 자로 비유합니다. 앞서 포덕문에서는 피아彼我 이분법을 써서, 천주님의 조화造化를 인식하지 못하는 대상을 몰아서 우愚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서는 아주 많이 누그러뜨리고 스스로 낮추고 있습니다. 

 

💡왕초보 작명가가 설명하는 우愚 자의 의미

자전字典을 보면, 우愚는 긴꼬리원숭이를 뜻하는 우禺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원숭이들도 나름 질서를 유지하며 집단생활을 하지요. 우리와 한 하늘 아래 같이 살고 있지만, 원숭이들도 비와 이슬을 천주님의 자취라고 인식할까요? 물어볼 방법도 없고, 대답을 들을 방법도 없는 난센스입니다.

 

우문우답愚問愚答에도 우愚 자를 쓰지요. 차라리 불가능에 가까운 이미지의 단어가 우愚입니다. 그러나 수운은 고친 이름 제우濟愚를 통하여 천주天主님의 조화造化를 모르는 모든 어리석은[愚] 사람들을 건지겠다[濟]고 합니다. 이른바 시천주侍天主의 뜻입니다.

 

 

🍀마무리하면서 - 이제는 참동학 시대

지금까지 최수운 대신사가 받은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여기저기 건너뛰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분이 직접 기록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180년이 채 안 된 문서임에도 읽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어가 많이 바뀌어서일까요? 한자가 어려워서일까요? 저는 앞서 살펴본 안심가 한 구절에서 새로운 연구 과제를 찾습니다.

 

공중에서 외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 하여스라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초야에 묻힌 인생 이리 될 줄 알았던가 개벽시開闢時 국초일國初日을 만지장서滿紙長書 나리시고 십이제국十二諸國 다 버리고 아국我國 운수 먼저 하네 그럭저럭 창황실색𢠵惶失色 정신수습 되었더라 <안심가>

 

“호천금궐의 상제님”, “십이제국 괴질운수” 사이에 무엇이 나옵니까? 최수운 대신사는 그날 득도할 때 상제님으로부터 특별한 것을 보았습니다. 개벽시開闢時 국초일國初日. 여기서 개벽開闢은 천지 창조와 같은 음양 운동의 측면보다는 인간이 이 세상에 나와 문명을 개척하는 역사 과정을 전제로 한 상황으로 읽힙니다. 국초일은 나라를 개국開國하는 것이지요. 수운은 상제님을 뵙고 도통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천명) 십이제국 괴질운수를 듣기까지 적지 않은 긴 시간 동안 도통 교육(오리엔테이션)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운은 12제국의 괴질운수가 도는 것을 (들은 것이 아니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잘나가는 12제국을 (천지에서) 다 버리고 (그곳에 구원의 법도가 없어서 속수무책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긴박한 그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먼저 구원하는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과정을 본 것입니다.

 

 

 

그 자신의 말씀대로 초야에 묻힌 인생으로서는 미처 생각해 본 적도, 알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주제를 보고 창황𢠵惶(너무나 무섭고 기가 막혀) 실색失色(얼굴빛이 달라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우리나라가 사람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난 후 비로소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결론만 써 놓은 것입니다.

 

상제님은 최수운을 아주 오랜 기간 당신님을 만나도록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갖은 고난을 겪어 내며 준비된 수운조차도 정작 도통하면서 맞닥뜨린 자신의 운명運命-괴질운수 시대의 도래와 조화주 상제님 시대 선포-의 로드맵을 보고 정신 수습을 못 하였습니다. 

 

만지장서滿紙長書(종이 가득 쓴 긴 글)란 무엇일까요? 개벽 이후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건설하고 경영해 온 국통맥國統脈을 본 것입니다. 상제님이 설명해 주셨을 개연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도통맥과 연결되니까요. 그 자신이 도통하는 순간, 도통의 역사 공부를 한 것입니다. 도통 멤버쉽 클럽membership club에 가입한 것이지요.

 

그것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아무 말을 못 하는 영역입니다. 다만 앞의 포덕문에 우리의 국통맥이 아닌 중국사의 오제五최수운 대신사 동상 帝를 기준으로 기술한 점은 결정적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상제님은 수운이 유교儒敎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評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 같은 그의 유교적 역사 인식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또 도통道統의 맥에서는 반드시 천부경天符經이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국통맥은 천부天符와 인印이 전수되지 않았습니까? 수운水雲이 영부靈符를 보았다고 짧게 기록한 것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부符를 그려 마시면서 신선神仙을 언급합니다. 인류 역사상 부符 문화는 동방 환국 이전 마고대성麻姑大成 때의 천부天符 문화, 중화권의 서왕모부西王母符, 수운의 동학부東學符 그리고 증산 상제님의 현무경부玄武經符가 있을 뿐입니다.

 

부符가 언급되면서 동학은 신비주의적인 측면이 강조되지만 설명이 선문답식이라 대중화하기에는 턱이 너무 높았습니다. 이것 역시 수운이 도통하실 때 동방의 천부天符 문화와 서왕모 계통으로 흘러간 중화 문명권의 부적符籍 문화를 명확히 구분하여 기록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혼란이라고 추정합니다.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도들이 부를 그려 마시는 것을 언급하시면서 이를 단지 제우강濟愚降이라고 한정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동학은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불과하다는 상제님 말씀대로 맛만 살짝 보여 주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최수운의 득도 체험이 오전이냐 저녁이냐 밤이냐 등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첫날은 오전부터 밤까지 시간도 부족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운 대신사가 스스로 기록한 모든 글들의 시간대 오착誤錯도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한말 상황에서, 상제上帝님을 뵙고 받은 대다수 내용이 도비道秘에 속할 것은 자명합니다. …유도儒道 불도佛道 수천 년에 운運이 역시 다했다…는 말씀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운이 유불선 각각의 도道가 완전히 운이 다한 것을 직접 상제님 앞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제님이 최수운을 무극대도 새 운수를 여는 주장자로 내세울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상제님과의 문답問答은 그 후로도 11월까지 7~8개월 지속되었다고 하니 무척이나 많은 (말 못 할, 기록하기 힘든) 내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한류韓流가 전 세계에 고동치고 꽃피우는 때입니다. 앞으로 참동학 증산도를 통하여 한류의 중심에 상제님이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수운이 상제님을 만나 첫날에 보았던 결론, (수운조차 벌벌 떨며 보고 받든 당면한) 괴질운수 속에서 아국운수我國運數의 날이 옵니다. 그때 최수운 대신사가 오매불망 사무치게 찾았던 동학東學의 주제 조화주 상제님, 시천주侍天主, 그리고 제우濟愚의 뜻이 마침내 크게 발음發蔭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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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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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공부/상제관] 온 인류가 기다려온 하나님(9), 상제님동학의 시천주선언, 신교의 부활(동학,용담유사,동경대전,최수운)

 

<< 동학으로 이어진 신교의 맥 >>

 

조선을 비롯한 동양의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이 폭압에 침몰당해 갈 무렵, 상제님의 부름을 받아 쇠락해진 동방 신교의 맥을 이어 동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후천 대개벽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부르짖은 한 구도자가 있었어요.

 

 

바로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 입니다.


몰락한 양반 집안의 서자로 태어난 수운은 공덕이 없음을 참회하며 정성을 다해 기도에 정진하던 중 마침내 37세 되는 1860년 4월 5일, 천상의 주님이신 상제님을 친견하였습니다.

왈 물구물공

曰 勿懼勿恐하라.

세인 위아상제 여부지상제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不知上帝야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동경대전』「포덕문」)

 

상제님께서는 최수운 대신사에게 시천주 주문을 내려 주시고 “수운이 성경신이 지극하므로 내가 천강서를 내려 대도를 열게 하였다”고 밝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상제님과 직접 대화했던 유명한 ‘천상문답 사건’ 입니다.

 

일찍이 밧모섬에 귀양가서 백살이 넘게 살며 기도 올리던 사도 요한을 천상으로 불러올리시어 충격적인 가을개벽 상황을 보여 주셨던 백보좌 하나님인 상제님께서, 1,800여 년 후에 다시 해 떠오르는 동방 땅의 한 선비에게 친히 가르침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때 수운 대신사는 ‘인류에게 새 역사가 열린다는 것을 선포하라’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머지않아 상제님이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민고에 없는 무극대도가 출세한다는 것, 즉 공자 석가, 예수의 인간 성자 시대를 마무리하고 아버지의 친정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니 아버지를 천주로 모셔야 한다’는 구원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내 아들이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 선생께서 그 가르침을 공경하여 아버지라 불렀다. (『도원기서』)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용담유사』)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것이니 (『용담유사』)

 

동학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수운 대신사가 상제님을 ‘인간과 신명, 천지 만백성의 아버지’ 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운의 근본 가르침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양천주 사상을 거쳐 3대 교주 의암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상제관을 완전히 상실하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으로 철저히 변질되었습니다. ‘사람을 섬기되 한울님 같이 하라’는 식의 교리를 설파하여 인격신으로서 천주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수운을 계승한 동학 교주들과 이 땅의 동학 연구가들은 한결같이 천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까요?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수운과는 달리 천상계의 주권자인 상제님을 전혀 친견하지 못했고, 신교와 상제문화,삼신 하나님에 대한 역사 인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훗날 ‘모든 인간의 내면에 천주의 신성이 있으므로 인간은 곧 하늘’이라는 궤변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의 핵심은 ‘시천주侍天主’석 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으로 오실 아버지 상제님을 잘 모심으로써 잃어버린 신교의 상제 신앙을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동학 주문에 시천주조화정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3:184)

그러나 수운 대신사가 능히 유교의 고루한 테를 벗어나지 못하여 천명을 이루지 못하자 마침내 상제님께서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그의 순도 8년후 (1871) 친히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되었습니다. 상제님은 동학의 참뜻과 이상이 당신께서 친히 인간으로 오시어 인류를 구원하는 무극대도를 열어 주심으로써 비로소 성취된다 하시며 새 우주를 여는 “나의 가르침이 참동학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삼신상제님으로부터 직접 천명과 신교를 받아 내린 동학에서 신교가 다시 부흥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신교의 열매인 참동학, 증산도 에 대해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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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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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강세를 선포한 최제우 대신사와 김일부 대성사(1)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동학의 교조이고 일부 김항 대성사는 정역의 창시자이다.

이 두 분은 모두 한때 연담 이운규(李雲圭)선생으로부터 역철학을 배웠는데, 도중에 수운 대신사는 방향을 전환하여 종교적으로 구도의 길에 정진하고 일부 대성사는 계속 역학을 공부해서 천지로부터 후천 정역팔괘를 받아내려 구도의 열매를 맺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정역의 창시자인 김일부, 그리고 동학혁명을 이끈 전봉준장군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도전2:31:5~7)

 

수운 대신사가 구도의 마지막 과정에서 몸소 수운가사는 대단히 충격적인 새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먼저 수운 대신사는 무극의 운수, 즉 무극대도 시대가 도래함을 선언하였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보냐. 무극대도 닦아내니 5만년지 운수로다”. 『용당유사』「용담가」

 

무극대도가 열려 5만 년의 새로운 문명시대가 도래한다는 이 내용을 보면 수운 대신사는 “너희들이 그렇게 묵은 기운, 외래종교, 외래사상에 빠져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자들인데 어떻게 이 천지에 무극대운이 닥친 줄을 알겠느냐?’고 호통치고 있다. 이 대우주가 새로운 대변혁의 차원으로 들어서는 문제를 정신이 병든 너희가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이다. 

 

 

일부 대성사는 이 무극의 새 운수가 어떻게 열리느냐에 대해 우주의 창조원리로써 그 이치를 전하고 있다. 무극지운은 대개벽, 곧 후천개벽을 통해 열린다. 그런데 이 대개벽의  문제를 무극과 태극과 황극의 삼극설로 정립시킨 인물이 바로 일부 대성사이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태극만 알았지 무극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태극에 대해서는 태극기의 바탕이며 천리를 상징하는 것, 우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궁극의 창조원리 정도로 알았으나 무극에 대해서는 크게 들어보지 못했다. 무극은 태극의 아버지이다. 음양의 이치가 열리는 보이지 않는 조화자리,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분별의식이 끊어진 절대 중中자리, 그러나 엄연히 실재하는 절대 조화 자리, 그것이 무극이다.

그것은 어떤 관념이나 지식만 가지고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성과 감성이 통합된 순수 믿음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체험해야 한다. 절대적 믿음, 절대적 순종으로써만 지극한 무극의 경계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창조와 조화의 근원자리인 무극을 성수 ‘0’으로 나타낸다면, 우주의 시간질서 속에서 현실로 드러나는 무극은 ‘10’수로 나타낸다. 10무극은 O무극을 내포하고 만물을 조화, 통일하는 우주의 가을 정신을 상정한다. 이번에 현상우주 세계에 10무극 상제님의 운수시대가 열린다. 그리하여 10무극이신 상제님의 도에 의해서만 후천개벽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이다. 또한 일부 대성사는 종전의 무극과 태극과의 관계 위에 황극의 원리를 찾아내서 삼극설로 우주의 창조운동에 대해 총체적인 결론을 내렸다.

 ●“통천지제일원재通天地第一元者)는 나 일부(一夫)로다” 『正易』「大易序」

●“천지지리(天地之理)는 삼원(三元)이니라”『正易』「十五一言」

 

일부 대성사는 우주조화의 삼극원리를 정립시키면서 우리가 손을 폈다 쥐었다 하는 모습을 통해 무극과 태극 황극의 관계를 다 이야기했다. 손을 완전히 펴면 10이요, 하나로 합하면 1이다. 그러므로 두 손이 완전히 열린 모습은 우주가 완전히 열려 성숙된 가을 우주의 상(象)을 나타낸 것이다.

 

 ●“거변무극(擧便無極)이니 십(十)이요 십변시태극(十便是太極)이니 일(一)이라”⇒들어보면 문득 무극이니 10이요 10을 다시 곱아보면 문득 태극이니 1이라.『正易』「十五一言」

 

우주가 하나로 통일되었다가 다시 열리며, 끊임없이 분열·통일 운동을 순환 반복하는 상을 쉽게 근취저신(近取諸身)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일부 대성사는 무극과 태극의 일체관계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하였다.

 

●“일(一)이 무십(無十)이면 무체(無體)요 십(十)이 무일(無一)이면 무용(無用)이니” 1태극은 10무극이 아니면 자신의 근본을 잃고 10무극은 1태극이 아니면 창조작용을 못하나니~『正易』「十五一言」

태극의 양손을 펴면 10(열 손가락)무극의 상이고, 합치면 1태극이다. 10이란 우주가 10무극으로 완전히 열린 상象이다. 그 10무극 자체가 하나로 수렴 통일되면 1태극이다. 이것은 곧 우주 1년의 선·후천 분열과 통일운동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엇이 일상생활에서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하듯이 이 우주로 하여금 선후천 분열, 통일 운동을 계속 반복하게 하는가? 일부 대성사는 우주 자체의 지속적인 순환운동의 동력원이 황극이며 그것이 바로 5황극이라고 했다.

 

●“거중(居中)이 오(五)니 황극(皇極)이니라.”

그 가운데(무극과 태극 사이)에 5(土)가 거하고 있으니,바로 황극이로다.『正易』「十五一言」

 

이것을 다시 쉽게 이야기하면, 손을 펴면 10이요 합하면 1인데, 그것이 계속 반복될 수 있게 하는 그 자체의 변화운동의 추동력이 5황극이라는 것이다. 황극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상제님이 후천개벽 문명의 조직  체계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에도 황극이 나온다.

●左相 右相 八判 十二伯 縣令 縣藍 皇極 后妃所 (도전7:55:2)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령 현감 황극 후비소 

 

여기서는 통치자의 위계질서로서 황극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극은 후천 제왕의 지존의 위(位)라는 의미가 있다.(이는 하우씨가 9년 홍수 때에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성조로부터 전수받은 『황제중경』의 내용으로, 후세에 기자(箕子)가 주(周)무왕에게 전한 「홍범구주」의 제5조에도 기록되어 있다)

결국 일부 대성사는 ‘황극이 어떠한 중보 역할로 무극의 운수와 태극의 창조원리를 통일하여 후천의 신천지를 여는가’에 대해 전하면서 우주의 영원한 순환운동을 가능케 하는 창조력으로서 황극을 원리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황극은 선천 상극 질서를 종식 짓고 의통을 집행하여 후천 통일문명을 열어 지구촌통일 정권을 여는 통일천하의 제왕을 의미한다. 증산상제님은 이 통일 정권을 세우는 황극신이 조선으로 넘어오는 공사를 보셨다. 후천은 상제님의 무극대도로 지구촌의 종교와 정권이 하나로 통일된다.

그 통일 대업을 이루는 지도자를 대두목, 진주(眞主),성주(聖主), 또는 황극신(皇極神)으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로서 한국은 천자국天子國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천자국으로 부상하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시두時痘(=천연두) 대발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제님의 절대권이 발동한다. 이 시두를 치료하는 조화주문이 바로 태을주太乙呪다. 이 시두대발로 기존 정권과 기득권이 송두리째 뽑히면서 상제님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앞으로 시두가 대발하면 내 세상이 온 줄 알아라.” 하시니라(도전3:284)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그 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도전7:63)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매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처럼 허공에 벌여져 있다가 곧 사라지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황극신이 이 동토(東土)에 넘어오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는 조선이 된다 하였사온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하니 “내가 거처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나라는 장차 여러 나라로 나뉠 것이니라.” 하시니라.(도전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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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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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대의 위대한 출발 –동학(東學)


 

동학에 대해서는 국사시간에 배워서 대부분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에 대한 사실을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근대사의 위대한 출발 《동학》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할까요?

 

 

8천만 한국인조차 모르고 있는 이 땅에서 실제 선언된 인류문명사의

새출발에 대한 위대한 선언, 동학의 가르침이 아직도 왜곡된 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학의 위대한 새 소식이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았고 잘못된 해석으로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류가 격고 있는 모든 비극의 문제들,

죽음의 불덩어리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각종테러,

자연재앙, 대지진 화산폭발, 말할 수 없는 홍수,가뭄,

폭염, 혹한 생태계에 가공할 변화의 모습들, 자본주의 붕괴소식, 민주주의 몰락의 이야기

그리고 최근 영국 브렉시트사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변화를

다시개벽이란 주제로 선언한 동학의 핵심 사상을 살펴봅시다.
  


 

동학은 우리 국사시간에 인내천 사상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그것은 왜곡된 것으로

동학의 참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민족종교인 東學(동학)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동학은 바로 동서인류가 태고로부터 믿어온 上帝강세에 대한 선언과

"앞으로 온 인류가 이런 변화를 맞이한다."

"이렇게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1860년 옛 신라수도 경주에서 최수운 대신사가 도통을 받은 대사건입니다.

증산도 도전에 나오는 최제우(최수운)대신사의 도통 사건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최수운 대신사
 

1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나니
 

2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包含三敎)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接化群生)이라.” 하니라.
 

3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갈 무렵,

신교 또한 권위를 잃고 그 명맥이 희미해지거늘
 

4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토록 하셨나니
 

5
 
그가 곧 동학(東學)의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대신사(大神師)니라.
 

6
 
수운은 몰락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세상을

두루 체험하며 한울님의 뜻을 깨닫고자 공부에 전념하더니
 

7
 
이 때 도학자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가 수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선도(仙道)를 계승할 자라.” 하니라.
 

8
 
을묘(乙卯 : 道紀前 16, 1855)년에 하루는 금강산 유점사의 한 중이

수운이 머물고 있는 울산(蔚山) 유곡(裕谷)에 찾아와 책 한 권을 전하매

3일 만에 그 뜻을 해득하니, 신교와 기도의 요체를 적은 책이더라.
 

9
 
이로부터 뜻을 더욱 굳건히 하여 양산 천성산(千聖山)에서 49일을 기약하고

천주강령(天主降靈)의 기도를 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매 참담한 심경으로 지내다가
 

10
 
기미(己未 : 道紀前 12, 1859)년 10월에 다시 발심하여 용담정(龍潭亭)으로 들어가며

‘천주를 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기도에 정진하니라.
 

 
 
상제님의 성령 친견과 도통
 

11
 
이듬해 그의 나이 37세 되는 경신(庚申 : 道紀前 11, 1860)년에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를 써 붙이고

매일 세 번씩 청수를 올리며 기도에 더욱 정진하더니
 

12
 
드디어 4월 초닷샛날, 전율오한의 묘경 속에서 홀연 공중으로부터 들려오는

‘선어(仙語)’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거늘 정신이 아득하여 쉬이 수습하지 못하니라.
 

13
 
천주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하시고
 

14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하시니라.
 

15
 
이로써 수운이 인류의 새 세계를 알리라는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하였나니,

이것이 곧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천주님과의 천상문답 사건이라.
 

16
 
이 때 상제님으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으라.” 하는 말씀을 듣고 본주문 열석 자와

강령주문 여덟 자를 지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니라.
 

17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기금지원위대강 
 

18
 
수운이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동학을 창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지거늘
 

19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수운을 체포하니라.
 

20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수운이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더라.
 

 


 
천주님의 동방 땅 강세 선포
 

21
 
수운이 아버지께 가는 생명의 길을 동방의 땅에 닦아 놓고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나니
 

22
 
이는 온 인류에게 후천 개벽세계를 여시는 아버지의 대도,

곧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조선 땅에서 나올 것을 선포함이니라.
 

23
 
그가 비록 상제님의 천명은 다 이루지 못하였으나 5년 동안 천주님의

동방 땅 조선 강세와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새 생명세계를 천하에 알렸나니

그 장엄한 인류구원의 외침은 바로 이러하니라.
 

24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25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26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擊壤歌)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
 

27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28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29
 
“무극대도 닦아 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30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 증산도 道典 1:8 >>

 

 

 

이것은 단순 동서문명의 통합이 아니라 하늘과 땅, 진정한 합일의 세계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의미합니다.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상이 오는것, 천상조상이 자손을 찾아서 내려오는 때,

죽어서 천당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건설되는 선경낙원에 대한 소식,

지상천국이 우주의 궁극의 낙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동학의 무극대도 소식입니다.

 

侍天主造化定(시천주조화정) - 天主를 모시는 주문

 

상제님을 모심으로서 인류는 어떤 세상을 맞이하는가?

다가오는 진정한 새 세상은 첨단과학문명의 이상으로만 건설되는 게 아닙니다.

대지진이 폭발할 때만 하더라더도 실제로는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인간으로 오시는 천주님에 의해서 조화선경이 이 땅에 건설된다는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가 동학의 핵심선언입니다.

 

 

용화낙원, 바로 미륵님의 조화도권으로 열리는 조화세상에 대한 선언인 것이죠.

그것이 시천주에서 말하는 조화정造花定 세상입니다.

더 이상이 없는 무극대도 출현에 대한 소식입니다.

 

 

왜 동학이 왜곡이 되어 오늘날까지 인내천으로 인식이 되고 있을까요?

최제우의 선언은 시천주 입니다. 한자 그대로 천주를 모신다는 뜻이죠.

상제님을 친견한 최제우는 상제님을 인격신, 주재자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는 후에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시천주의 참뜻을

관념적인 양천주養天主로 왜곡을 합니다. 주재자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죠.

 

 

3대 교주 손병희는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왜곡을 하여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학의 사상을 인내천으로 알고 있습니다.

『中庸(중용)』에 唯聖人(유성인)이라야 能知聖人(능지성인)이란 말이 있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성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승의 깨우침과 심법이 완전일체가 되지 않으면 그 뜻을

후세에 제대로 전하기 어려운 까닭에 이런말이 생긴 것이죠.

 

 

동학은 인류최초의 원형문화인 환단의 광명문화를 열어준 전 인류가 섬겨온

제천문화의 주인인 삼신 상제님 강세에 대한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이런 제천행사는 환국,배달 조선을 이어 부여의 영고제천제로 이어져왔죠.
  
삼신상제(하느님)에 대한 제천문화기록을 찾아볼까요?『단군세기』를 보면

16세 위나단군이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고, 44세 구물단군이 재위 2년(BCE 424) 3월 16일에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나라이므로 부여 영고제는 곧 고조선의 제천행사인 것입니다.

고대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시대의 정신문화를 해석하지 못하면

유물을 발견하더라도 역사정신을 읽어낼 수가 없겠죠.

영고탑은 바로 삼신상제님께 올리던 천제인 영고제를 지내던

‘소도 제천단’이 있던 곳(영고제를 지내던 터)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동학은 새시대에 대한 강력한 선언을 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패망 당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라를 잃은 동학군 세력은 항일독립운동세력의 주체가 되죠.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민족 고유사상에 기초한 동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몸부림치는 독립자주세력의 계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학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앞으로 오는 새 세상은 조화문명이라는 것과,

새로운 생명문화를 천주님이 직접오셔서 여신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도를 통한다.

모든 인간이 성인 부처가 된다.  라는 내용입니다.

 

1860년에 최제우는 이미 종교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무극대도의 출현을 선언한 것이죠.

기존의 종교와 가르침을 가지고는 이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엄청난 선언인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동학은 종교가 아닙니다. 무극대도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선언을

그저 한국의 신흥종교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초등학교, 대학교 일반, 전세계 한국문화를 소개한 책자를 보면 동학을 신흥종교이다.

서양기독교를 서학이라고 하고 서학에 대응하는 주체적인 새로운 가르침을 가진 종교 동학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고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동학은 그저 서학에 대응하기 위한 신흥종교가 아닌,

서학의 꿈이 수천 년 간 숨쉬어 온 동방문화의 정신을 되살린 동학에서 완성된다는 선언이었고,

동방문화의 부활, 동방 역사의 부활의 소식었습니다.

 

 

동학은 수천 년 간 이어진 삼신제천문화 정신의 완전한 부활을 선언한 것이었고,

동학 패망 후 동학교도들은 독립운동가로 대거 합류하게 됩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신흥무관학교에서 태고시절 역사원형정신이 깃든

환단고기를 공부하며 독립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동학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왜곡된 근저에는 "조선 것이 다 그렇지 뭐." 하는 식의

사대주의 일색으로 흘러오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스스로 비하했던 원인이 큽니다
  
삼국유사에 일연스님의 고조선기에는

"단군조선이 있고 그 전에 뿌리가 되는 환국배달신시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인과 환웅이라고 하는 역사시대가 있었죠.

일본은 조선왕조를 패망시키고 통치를 할 때 환국배달조선을

영원히 없는 신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왕이 특별 지시를 했는데 특명으로 3인이 발동을 했습니다.

환국을 없애면 배달환웅과 조선단군도 신화나 없던 인물도 만들 수 있었기에,

일연이 환국은 제석신의 나라다. 인도신화 신의 나라다. 인드라의 나라다. 이렇게 주석을 붙이니까

일연 스님이 자기 생각으로 주석을 붙인 것이 역사왜곡의 근거를 제공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면에서 삼국유사는 고대사복원 실마리와

왜곡의 근거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연이 환국을 불교 제석신의 나라라 했으니까 조선인들 너희들도 따라라.

이 논리에 세뇌가 돼서 단군신화를 거침없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리하여 지금 제 조상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고,

오늘의 한국의 정신이 이렇게 타락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제 뿌리를 부정하는 나라가 된 것이죠.

 

 

『小學(소학)』에 建學立師 以培其根 以達其支라..

"학교를 세워 스승을 두어 그 뿌리를 북돋아서 가지가지가 뻗도록 한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고대사가 왜곡이 되면서 근대사의 위대한 출발 동학의 핵심사상을

동시에 보지 못하는 두 눈이 실명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민족은 뿌리를 잃은 민족이면서 동시에 미래도 잃고 헤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찌 보면 역사문화를 잃고 타이타닉호처럼 침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동학을 단순한 근대새시대의 출발로 보려는 근시안적 안목은

동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민족정체성과 고유정신을 보지 못하는 무지한 일입니다.

굳건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뿌리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의 융성이 일어남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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