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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투바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사하 공화국에 사는

시베리아 원주민은 고대 한국인의 후손 (2)

 

상생문화연구소 전원철 연구위원

 

5️⃣ 아무르 강 하류의 ‘코로 시레’ 마을에서 이주한 사하의 주요 부족 중 하나인 ‘코로’ 부족

 

에벤키보다 더 중요하고 가장 큰 집단을 이루는 사하의 주요한 대표 종족 이 ‘코로’ 부족이다. 코로의 복수는 ‘코로로르’라고 한다. 이들에 관해서는 자신 또한 부라트인인 부랴티아 공화국 사회과학원 불라트 조릭투예프(Bulat R. Zoriktuev) 교수가 해외의 한 학술지(Advances in Anthropology, Vol.3, No.4. 2013)에 발표한 논문 <코로 야쿠트인 공동체 신화에 관해 – 야쿠트 종족의 탄생에서 차지하는 고아시아인의 역할 Paleoasians in the Ethnogenesis of the Yakuts (on Mythology Data of the Yakut Ethnical Community of the Khoro)> 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내가 1992년경 창립회원으로 기여한 한국몽골학회의 초청으로 후일 가끔 한국에 오기도 하면서 학술발표회에서 참가하기도 한 인물이고, 필자도 가끔 전화비를 아끼지 않고 국제전화로 장시간 토론을 나누곤 한 인물이다. 

 

부랴트인 조릭투예프교수

 

그는 2011년 가을 어느 날 내게 글 한 편을 보내와서 느닷없이, 말하기를, “전선생, 사하공화국에 코리안 후손들이 있다는 글을 썼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나 역사학과 논문집에 실을 수 있는지? 이 글을 영어로 좀 번역해주시라.” 하고 요청해왔다. 나는 당연히 그의 청을 들어주려고 관련학과 두 곳에 연락을 하고 원고도 보냈다. 그러나 국사학과는 냉담하였다. 결국 나는 선생의 청을 못 들어준 꼴이 되었으나, 그는 한 두 해 뒤 상술한 학술지에 자신의 글을 실었다.

 

불라트 조릭투예프 선생의 논문의 취지에 대해서 필자는 물론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 글의 요약문을 통해 그의 연구 성과를 보고 또 그 중에서 그가 밝히지 못한 부분을 필자가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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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시베리아의 북쪽에서 사는 야쿠트 족의 민족 구성에서 주요 단위 중 하나인 큰 민족 집단 코로의 기원에 관한 야쿠트 민족분포학에서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연구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야쿠트 족의 형성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시급하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코로로르의 원래 고향이 바르구진-토쿰의 바이칼 서쪽에 있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현재 자바이칼리아(바이칼 동쪽)에 살고 있는 코리 부랴트 부족 공동체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1207년 칭기즈칸의 군대가 바르구진-토쿰을 정복하는 동안 몽골에서 탈출한 코리 부족의 일부가 중부 레나로 도피하여 바이칼로 돌아오지 않았다. 

 

두 그룹을 식별할 때 코로와 코리라는 이름의 유사성만 고려하여 정확한 결과를 제공할 수 없었다.

 

한편, 코롤로로인들의 까마귀와 독수리 숭배는 북미 인디언 독수리 숭배 토템과 동일한 유형의 유사한 신화를 이룬다. 야쿠티아의 코로로르는 고아시아 기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코로로르는 고아시아인들의 남쪽 지점에 속했으며 그들은 그들의 고향 코로 시레가 있던 아무르 하류지역에 거주했다.

 

많은 초기 중국과 한국 연대기에서 이 지역을 코리라고 한다. 바로 그곳에서 북고아시아 구성요소가 두드러진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인의 민족발생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서기 1000년 말에 아무르 하류의 코롤로르 족이 북쪽으로 이주하여 야쿠티아 땅에 영구적으로 정착했다. 이것은 야쿠트의 민족발생에서 고대 투르크인들에 덧붙여  고아시아인 종족 층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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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요지 속에서 그는 자신의 논문 결론 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쿠트 족은 몽골의 압력 아래 10~11세기에 형성되기 시작되었는데 바이칼에서 투르크어 사용 그룹이 빠져나와 지금의 야쿠트 족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 프라(원형)-야쿠트 씨족의 대부분이 살았던 바이칼 서부 해안에서 최초의 몽골인의 출현이 8세기 초에 나타났다는 새로운 데이터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중부 레나로 떠난 야쿠트족의 조상들이 새로운 영토를 개발하던 1천년 말에 코롤로르가 아무르 하류에 위치한 코로 시레의 땅에서 그곳에 도착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야쿠트 사람들의 필수 불가결하고 중요한 부분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결론 속에서 그는 “아무르 하류에 위치한 코로 시레에서 온 코롤로르인들은 중국과 한국 연대기에서 나오는 고대 한국인이라고 추정되는 코리 종족과 같은 종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6️⃣ 야쿠트인들 자신의 선조라고 하는 코롤로르 곧 코리는 바로 발해고려인들

 

위의 불라트 조릭투예프 선생의 글에서 보다시피, “야쿠트인들이 자신의 선조라고 하는 코롤로르인들은 한국 및 지나 사서에서 기록된 코리인들이다. 이 족칭은 몽골어로 기록된 <몽골비사> 및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역사모음>, 그리고 나중의 부랴트사서 <황금지팡이> 등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바로 발해고려인들이다.

 

 

왜 그럴까? 첫째 코롤로르인들은 아무르 하류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는 발해고려의 위치와 같다. 둘째 사하어의 코로나 몽골어(말갈-고려어) 코리는 모두 소리가 거의 같다. 또 사서들이 기록한 코리인들의 주거지역도 바로 여기이다. 따라서 코로는 바로 ‘고려’를 국명으로 쓴 ‘발해-고려’, 곧 제3의 이름으로 ‘진국’이다.

 

이 나라의 선대이름은 고려(코리, 코라이, 호라이, 고구려)이다. 셋째, 조릭투예프는 코로를 사하인들이 말하듯이 퉁구스어로 까마귀로 보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발해의 국조 까마귀(삼족오)이다. 곧 코로로르인은 이 나라 출신이라는 이야기이다.

 

 

 

사하의 코로로르’ 고향은 “아무르 하류에 위치한 코로 시레”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그들 선조의 고향이다. 사하라르(사하인들)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코로로르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선조인 울루코로(Uluu Khoro 대-고려)는 고니들이 추운 겨울을 피해 날아가 겨울을 나는 언제나 따뜻한 남쪽나라 코로시레에서 황소의 달구지를 타고 오늘날의 야쿠티아로 왔다고 한다. 그 땅은 아무르강의 하류에 있다고 전한다. 

 

울루 코로처럼 황소달구지를 타고가는 이

 

그들의 언어는 [어벤, 에벤키 등] 주변의 다른 종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언어였고, 그들의 수는 매우 많았으며 사람들은 똑똑하고 도덕성이 강했다고 한다. 바로 이 코로 시레는 그들의 선조의 고향을 밝혀주는 핵심적 지명이다. 조릭투예프 선생은 이 코로 시레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 코로시레는 과연 어디일까?

 

놀랍게도 이 땅은 우리 역사서에 적힌 우리 땅이다! 이 땅은 발해-고려가 무너진 뒤 그 땅에 세워진 금나라 역사를 적은 <금사국어해 성씨부>가 “컬시네乞石烈는 고高씨라 한다(乞石烈曰高)”고 적은 바로 그 땅이다. 이 지방은 바로 걸乞씨, 달리 고高씨의 고향 땅이라는 말이다. 곧 “乞石烈(걸석렬)”은 바로 발해 왕가 ‘코로/클(乞, 高=大)씨’의 관향이다. 사하 말의 코로시레는 한국어로는 ‘컬(코로, 乞) 씨레石烈’라는 말이고, 이는 오늘날의 소리로는 ‘걸석렬’이다.

 

이는 “흘석렬부(紇石烈部)”라고도 불렸는데, 그 위치는 조선 시대 실학자 정약용이 <여유당전서>의 <아방강역고> ‘기사북로연혁속其四 北路沿革續’에서 “클시레부紇石烈部는 … 분명히 삼수三水 부근의 땅이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이 우리나라 함경도의 삼수 코로시레에서 오늘날의 야쿠티아로 간 종족이 바로 사하의 코로인들인 것이다.

 

이 코로로르인들의 시조인 울루 코로는 투르크어 ‘큰/대’를 뜻하는 ‘울루’ 성씨에 고려를 뜻하는 코로를 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그는 말갈어로는 바로 ‘걸(乞, 大, 高)-고려’라는 성명을 가진 인물이다. 이 성씨는 또 발해 왕가 성씨이므로 그가 그 발해 왕가의 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코로시레 즉 “컬시네乞石烈는 고高씨라 한다(乞石烈曰高)”는 부락에서 온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다. 사하 코로로르인들의 선조는 발해인들인 것이다.

 

 

 

 

7️⃣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인 사하

 

사하라르(사하인들)은 자기들 나라인 사하공화국 즉 야쿠티아를 자기네 말로 ‘사하 나라(사하시레)’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하인들에게 이 말의 뜻이 무어냐고 물으면 사실은 자신들도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시레’라는 말을 ‘나라, 땅’과 같은 말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시레’의 말뿌리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는 원래 “김씨네, 박씨네” 할 때 쓰는 우리말의 발해-요나라 시대 낱말인 ‘시레石烈’가 바뀐 말이다. <요사백관지>와 <요사지리지>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거란 사람들은 발해인들이 살던 마을 이름들에다가 이 ‘시레’를 붙여 발해인들의 마을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마을들은 ‘씨네/시레’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만일 ‘사하 시레’의 시레가 1000년 전 우리말 ‘시레’라면 오늘날 사하인들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지금 ‘사하-씨네’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하인 자신들도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그 종족칭 ‘사하’는 무엇일까? ‘조선-고려-발해’는 <여진역어女眞譯語>에 기록된 바와 같이, 발해의 후손 두 갈래 중 하나인 여진인들의 말로는 ‘소과素戈’로 불린다. 그런데 오늘의 사하는 이 말의 옛소리 ‘소카Sokha’와 거의 같다. 결국 ‘사하 시레’는 조선국 또는 코로로르 사하인들의 시조 울루 코로의 이름과 같이 고려-발해라는 말이다. 사하인들은 놀랍게도 자기 나라를 지금도 퉁구스어로 조선 또는 고려, 발해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결 론

이처럼 사하인들의 주요한 대표 종족인 코롤로르는 바로 발해-고려인들이다! 이들 종족 외에도 사하인들의 주요한 종족을 이루는 에벤키인들 6개 씨족은 ‘키야트(걸씨)’ 등 몽골인들과 같은 성씨를 쓰고 있다.  그들의 선조인 말갈인들은 926년경 발해를 멸망시킨 뒤 발해 백성을 200년 이상 다스린 키타이(선비족 3개지파의 하나)의 언어를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오늘날 몽골어를 쓰는 선비의 3부족 중 하나인 키타이에 동화되어 부랴티아의 바르구진 투쿰으로 갔다. 그 뒤 좀 더 나중에 예전에 말갈 주민의 일부이던 퉁구스-만주계의 북방 지파 에벤-에벤키와 함께 오늘날 사하공화국으로 옮겨가 살면서 그들과 동화하여 오늘날의 사하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로 온 이후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공식적으로 오늘날 러시아연방의 일부가 된 것이다. 비록 춥기는 하지만 천연가스와 다이아몬드의 보고인 야쿠티아는 어언 2100년 전 고구려 태조 주몽이 태어난 북부여(뒤부루 = 두막루 = 달막루 = 다우리야)의 북쪽 땅이자, 동시에 발해 때에도 우리 말갈(말고을) 백성들이 살던 바로 우리 한민족 고구려-발해인의 땅이다!

 

뿐만 아니라, 그 아래 부랴티아, 동으로 하바로프스크, 연해주, 사할린, 캄차트카, 추코트카, 서쪽으로는 다우리야(유태인자치구), 그 서쪽의 몽골리아 위에 자리 잡은 투바공화국(현 러시아 국방장관 쇼이구의 고향), 그 서쪽의 학카시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우리 한민족과 함께 같이 나누어 쓰고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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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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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투바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사하 공화국에 사는 시베리아 원주민은 고대 한국인의 후손 

 

 

상생문화연구소 전원철 연구위원

 

‘속말말갈’ 발해 왕가에서 나온 몽골 씨족명과 같은 사하(Sakha) 공화국의 에벤키(Evenki) 씨족명

 

이제 몽골리아 북부의 시베리아 ‘탄누 우량하이’ 투바를 지나 더 북동으로 여행해보자. 그러면 동북쪽으로는 우선 부랴티아에 이르고 더 동으로 향해 가면 ‘다구리아(다우리아)’가 이어진다. ‘다구르인들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 땅의 옛 이름은 가까운 청대에는 ‘다후르’, 좀 더 이전에는 ‘달막루’, 더 이전의 말로는 ‘두막루豆莫婁’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오늘날 ‘두막루豆莫婁’로 읽는 이 지방의 이름의 옛소리는 ‘뒤부루’이다. 그런데 《북사北史》 사이전四夷傳 중 두막루조에 따르면 이는 ‘북부여北扶餘’이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비문이 기록한 바로 그 고구려 태조 주몽의 고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두막루豆莫婁’라는 지명을 자세히 보면 이 말은 사실은 ‘북부여北扶餘’라는 말과 같은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두豆’의 소리는 ‘뒤’이고 ‘막루’의 옛소리가 ‘부루’이므로 ‘두막루’는 곧 ‘뒤부루’이다. 또 우리말의 ‘뒤後’는 한문에서는 ‘북北’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뒤부루’는 곧 ‘뒤(北)-부루’, 곧 ‘북부여北扶餘’의 순수한 고구려어 형태이다. 고구려어 소리를 한자를 이용하여 이두문으로 적은 국명이다.

 

이 때문에 《북사》 두막루전은 “두막루국은 물길로부터 북으로 천리에 있는데, 옛 북부여이다 豆莫婁國,在勿吉北千里,舊北夫餘也”고 하여 그 위치가 고구려 영토의 일부인 물길(勿吉) 다음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군장은 모두 [부여의 6加와 같이] 모두 여섯 가지 짐승의 이름으로 관직을 삼았고 君長皆六畜名官”, “옷은 고려(고구려)와 비슷하게 만들었고, 모자가 크다 衣制類高麗而帽大”고 하면서, 특히 “어떤 이는 [고구려의 백성 종족 명칭과 같은] 예맥의 땅이라고 부른다或言濊貊之地”고 한 것이다!

 

지금부터 2100년 전의 국명 ‘북부여北扶餘’의 부여어 이두식 국명 ‘뒷부루豆莫婁’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두막루에서 달막루, 대막루, 다우르를 거쳐 다후르, 다우리야(러시아어)로 소리가 바뀌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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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방으로부터 더욱 동으로는 고구려의 다른 말인 ‘무구리’를 한자를 빌어 이두식으로 적은 지명 ‘보코리倍阿里’가 있다. 고구려-발해 시대에는 흑수말갈로 불렸지만 오늘날에는 하바롭스크 주로 불린다. 그 지방의 동쪽에는 ‘타타르 해협’, 곧 ‘오호츠크 해’를 지나 사할린섬이 나온다.

 

한편 탄누 우량하이 투바를 지나 부랴티아 동북으로는 올라가면 오늘날 ‘사하Sakha 공화국’으로 불리는 ‘야쿠티야’가 나온다. 이 지역에는 크게 보아 네 종족이 살고 있다. 나중에 온 러시아인들을 뺀 고대 원주민으로는 3개 민족이다. 이 3개 민족 중 하나는 사하인들Sakhalar이고 둘째는 비교적 소수로 토착인 인구의 1%에 못 미치는 퉁구스족인 에벤키Evenki이고 셋째는 보통 몽골계로 부르는 부랴트인Buryat들이다. 토착인구는 오늘날 약 50만이다.

 

 

발해-말갈 씨족의 후손인 사하인 가족

 

 

1) 에벤키화한 몽골계 사하인들

이 사하인들의 종족들의 기원에 관해 2020년 <학문적 계승의 맥락에서 본 북아시아의 민족과 문화>라는 글에서 투골루코프Tugolukov가 한 말을 빌려보자.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일부 에벤키 씨족명이 몽골 씨족명과 유사하다는 것에 눈길을 돌렸다. 에벤노-에벤키Eveno-Evenki 민족 이름이 아르가나 쿤의 전설적인 조상 고향에서 나온 다르라킨이라는 원래의 몽골 부족의 이름과 유사한 것이다. 이들은 키야트, 유귤리트, 하타긴, 바야우트, 잘라이르 및 몽골l 씨족이다.”

“그런데 야쿠티야의 욜로기르, 바약, 코에트, 유귤리트 및 몽골은 문화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보행자步行者’〔기마족속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뜻함-편집자〕 에벤키 씨족이며, 이는 그들이 야쿠티아 영토에 도착한 때가 고대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투골루코프가 지적했듯이, 일부 에벤키족 중에서 ‘몽골’ 씨족이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고, 그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단, 아쉽게도 그는 그 이상의 역사적 사실은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 이 사실의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라시드 웃딘의 《역사모음》에 나오고 또 오늘날 몽골과 튀르키예 학자들이 ‘일반 몽골의 선조’라고 부르는 ‘다르라킨Darlekin 몽골’이 오늘날의 야쿠트 에벤키인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보았듯이, ‘다르라킨 몽골’은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그런 ‘몽골’이 아니라, 애초에는 원래 발해 고왕 대조영의 맏손자 ‘도리행’의 후손 씨족 지파이다.

 

러시아 학자 투골루코프가 발견한 사실 뒤에는 그것을 뛰어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다시 말해 고대 코리안들인 고구려-말골(靺鞨) 출신의 발해 왕가의 지파가 이끄는 종족들이 야쿠티아로 이주하여 몽골-에벤키화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투골루코프가 지목한 그 ‘다르라킨 몽골’의 씨족명을 가진 에벤-에벤키 씨족들은 먼저 926년 발해가 거란에 망하자, 이 때문에 거란화契丹化, 곧 오늘날의 말로는 ‘몽골화’를 거친 것이다. 그들은 나중에 다시 퉁구스화하는 2단계의 종족적 변화를 거쳤다. 그들은 애초의 옛 발해왕가 지파와 발해유민들의 후손인 것이다.

 

 

에벤키 젊은이들

 

 

 

2) 우리말 ‘오랑캐’의 말뿌리가 된 ‘오롱키Oronki’

오늘날 저 멀리 북쪽에서 살며 에벤-에벤키라고 불리는 퉁구스인들은 고대 한민족과 깊은 형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인구 수는 크지 않지만 순록을 몰고 시베리아의 넓디 넓은 땅에서 순룩 유목을 하던 민족이다.

 

그들은 우리나라 북한, 함경도에 이르는 지역에서까지 살면서 그 주된 인구는 ‘오롱키Oronki’와 ‘우량하이’, 그리고 다구르족과 함께 주로 남으로는 만주 북부에서 북으로는 내몽골, 부랴티아에 걸쳐 살면서 청나라 시대까지 스스로를 “솔론Solon”이라고 하였다. 퉁구스어로 ‘에벤’이나 ‘오롱키’의 ‘오롱Oron’은 모두 ‘사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키ki’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이는 곧 에벤키나 오롱키가 모두 ‘사슴치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특히 오롱키는 우리말의 ‘야만인’을 뜻하는 ‘오랑캐’의 말뿌리가 되었다.

 

 

3) 고조선, 숙신, 고구려 이전부터 한민족과 살아온 에벤키-오롱키인들

그런데, 이들이 스스로를 집합적으로 부르는 부락명 “솔론”은 흥미롭게도 “조선(朝鮮)”과 같은 뜻이다. 원래 퉁구스어의 ‘솔Sol’은 ‘위上’이라는 뜻이고, ‘론lon’은 ‘땅地’을 뜻하는 퉁구스어와 고대 한국어 ‘라la/na’에서 온 말이다. ‘솔라Sola’는 곧 ‘상국上國, 웃나라’라는 말이다.

 

조선의 유민이 남의 한韓 지방으로 도망가서 신라新羅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을 세웠는데, 그 ‘사로‘도 퉁구스어로 ‘조선’을 가리키는 ‘솔라Sola’를 한자로 쓴 국명이다. 중세 몽골어로는 솔고, 여진 말로는 소과(素戈), 만주어로는 솔고, 현대몽골어로는 솔롱고스다.

 

그런데 동명왕이 떠나온 북부여의 다른 이름인 ‘솔라이국(색리국索離國)’이 있다. 이는 퉁구스어로 ‘높은 웃나라上國’라는 말이다. 이 솔라이국은 에벤키 족과 오롱키 족이 ‘조선-고려-한국’을 그들 족칭 ‘솔론Solon’과 거의 같은 ‘솔곤Solgon’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통한다.

 

또 《에벤키족 간사簡史》등에서 자기 민족의 역사를 서술할 때 선조들의 전설을 인용하며 자신의 선조들이 백두산에서 옮겨갔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이들이 이미 고조선-숙신 시대, 적어도 주몽이 세운 고구려 때부터 한민족과 함께 산 민족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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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투골루코프 이야기로 가서 에벤키 씨족과 그가 ‘몽골’ 씨족이라고 말하는 씨족들 중 같은 것들을 보자.

 

에벤키의 ‘코에트’ 씨와 같은 성씨라고 보는 몽골 씨족 ‘키야트’는 발해 왕가의 성씨인 ‘걸乞, 大’씨와 같다. 발해 시대 ‘걸乞(大)’이라는 한자는 남방 송인의 발음으로 ‘키야트’였다. 몽골 ‘카타긴’도 역시 이 ‘걸’ 씨의 지파인데, 《몽골비사》에 따르면, ‘키야트’ 씨에서 좀 더 나중에 갈라져 나온 지파이고, 에벤키 씨족으로는 ‘카티긴’ 씨족이다. 다음 ‘바야우트’는 고구려-백제-후고구려의 왕성인 ‘고씨-걸씨’의 다른 말인 관향 성씨 ‘부여씨’가 몽골어화한 씨족이다. ‘부여씨’의 옛소리는 ‘부여티’이고 이것이 부랴트-몽골화되어 ‘바야티’와 투르크어식 ‘바야트’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는 투골루코프에 따르면, 에벤키 씨족 ‘바약’이다.

 

몽골 ‘바야우트’ 씨는 《몽골비사》에서 칭기스 칸의 10대 여조모인 알란 코와의 둘째 남편과 그 아버지의 성씨로 나온다. 그는 (후)고구려-마진을 세운 궁예(~918년)의 4세손으로 나오는 사실로 보아 1000년대 인물이다. 

 

《역사모음》에 그려진 칭기스 칸의 10대 조모 ‘알란 고와’와 다섯 아들들,
이들 중 막내 ‘보잔자르’가 칸의 9대조이다.

 

셋째 몽골성씨 ‘잘라이르’는 라시드 웃딘의 《역사모음》에 따르면, 칭기스 칸의 6대 선조인 카이두 칸海都可汗 시대에는 대략 35만에 이르는 매우 큰 부족이었다. 부랴트 역사서 《황금지팡이Altan Gadahan》에 기록된 전승을 《삼국사기》>, 《요사》, 《금사》,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풀어 보면, 카이두 칸은 ‘잘라이르押剌伊而’ 부족한테 7명의 형제를 살해당하는 처참한 재난에 빠졌다. 이 때 카이두 칸의 7촌 아저씨 나친納真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 구해내어 내고는 함께 바이칼 호 동편 오늘날 부랴티아의 바르구진 투쿰八剌忽怯谷으로 이주했다. 말갈 말로 ‘발해진 대군’이 바로 몽골어화 한 지명인 바르구진 투쿰, 곧 오늘날 부랴티아의 ‘울란 우데(Ulaan Ude, 붉은 문)’이다.

 

이 사실로 보아 그들은 1050년경 북으로 이주하여 부랴티아와 야쿠티아로 간 것이다. 투골루코프에 따르면 이 ‘잘라이르’는 에벤키 성씨로는 ‘욜로기르’이다. 이 ‘잘라이르’는 대조영의 손자 도리행의 후손 가문인 ‘다르라킨 몽골(도리행 말갈)’의 ‘야래耶懶(함경도 함흥)’ 지방 본관의 한 지파이다. 그들도 발해인들이다.

 

또 넷째로 에벤키의 ‘몽골’ 씨족은 몽골의 ‘몽골’씨이다. ‘몽골’은 발해말로 ‘말 키우는 고을’을 뜻하는 ‘몰골’, 곧 ‘말갈’에서 나온 말이고, 동시에 발해 왕가의 관향성씨이고, 나중에는 칭기스 칸의 부족 이름이 된 관향성씨이다. 그러므로 에벤키의 ‘몽골’ 씨 역시 발해 왕가의 후손이다. 다만 몽골의 한 성씨 ‘유굴레트’가 에벤키의 ‘우굴랴트’와 같다고 하더라도 이 씨족은 다른 발해-몽골 씨족과 대응이 안 된다.

 

그 밖에 또 하나 ‘코리’라는 중요한 성씨가 있다.  어떤 러시아 학자들은 몽골의 ‘코르’, ‘코리’, ‘코루스’, ‘호리’라고도 불리는 이 종족을 대실위Dashiwei, 선비鮮卑 또는 오환Wuhan에서 나왔다고 완전히 잘못 추정한다. 그들은 몽골사나 선비-키탄(거란) 역사는 알지만, 고대 한민족의 역사에는 무지한 탓에 이런 잘못된 풀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종족은 사실은 칭기스 칸의 10대 여선조 알란 코와의 아버지 ‘코리 메르겐’의 11명의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부른 종족칭이다. 바로 ‘코리-부랴트’, 달리 ‘코리-투마드’로 이들은 오늘날 주로 부랴티아의 바이칼 호 동서에 갈려 산다.

 

 

몽골 코리-부랴트의 외가 친척 선조 고려 태조 왕건

 

이 ‘코리-부랴트’ 종족 역시 발해 반안군왕 대야발의 아들 일하(壹夏, 몽골명 ‘일 칸’)의 아들 ‘간(澗, 몽골명 ‘키얀’)’의 손자 ‘금행(金幸)의 셋째아들 보활리(무쿠리)의 계보를 있는 가문이다. 금행은 몽골명으로 ‘알탄 칸’ 즉 황금왕인데 고려 태조 왕건의 할머니 용녀龍女의 아버지였다. 역시 사하 에벤키인들 중 일부 씨족이 발해 왕가의 속민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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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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