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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영원한 생명의 고향
- 0 무극 -음양의상대성 

 

본부도장 김덕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유한합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무한을 동경하고 추구해 왔습니다. 유한의 세계는 인과율이 지배하는 상대계입니다. 그에 반해 무한의 세계는 일체의 분별이 끊어진 절대계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계의 근원에 자리한 ‘무無’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

E=mc²(에너지=질량×광속²)

 

1905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 1955)이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발표한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입니다. 질량과 에너지가 사실상 동등하며 상호 교환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이 공식은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주에서 정지한 물체는 그 질량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지닙니다.

 

물체가 질량質量을 가졌다면 그만큼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반대로 파동波動(wave)이나 빛과 같은 순수 에너지가 입자粒子(particle)로 변환될 수도 있습니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핵물리학의 기초 이론을 제공하여 핵물리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새 장을 연 질량-에너지 등가원리는 아인슈타인이 독창적으로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에 있던 에너지보존의 법칙과 질량보존의 법칙을 확장하여 수식으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것입니다.1)

*1) 국가핵융합연구소, 『핵융합의 세계』 참고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19세기 중반 독일의 의사이자 물리학자인 율리우스 마이어Julius Robert von Mayer(1814~1878)가 발견했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1774년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A.L. Lavoisier(1743~1794)에 의해서 발견됐습니다.*2)

 

두 법칙은 대상만 다를 뿐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밖으로 빠져나가는 무언가가 없다면 질량과 에너지는 항상 총합이 일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파악하고 질량을 포함한 새로운 에너지보존 법칙을 제시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입니다.

 

*2) 에너지보존의 법칙 -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때, 전환 전후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일정하게 보존된다.
질량보존의 법칙 - 화학반응의 전후에서 반응물질의 모든 질량과 생성물질의 모든 질량은 같다.

 

이처럼 서양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인식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만물의 근원을 물·불·바람·흙의 4원소나 원자(Atomos) 등의 물질로 여겨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氣를 뜻하는 ‘에너지energy’가 활력活力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에네르기아energeia’에서 유래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관념으로 지금과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과학적인 에너지 개념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라이프니츠G.W. Leibniz(1646~1716)입니다. 그도 활력이라는 뜻의 ‘비스비바vis viva’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1807년에 토마스 영Thomas Young(1773~1829)이 에네르기아와 비스비바를 결합하여 ‘에너지energ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에너지란 개념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건 열과 빛, 전기, 자기 등의 현상이 규명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만물의 근원을 ‘기氣’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기가 집중되면 유형의 물질이 되고, 흩어지면 무형의 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무에서 유가 생겨나고, 유는 다시 무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기氣는 ‘형세·기운·조짐·생명력·힘·정기’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에 비해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의 특수한 상태가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취즉형성(氣聚則形成) 기산즉형망(氣散則形亡)

기가 모이면 형을 이루고, 기가 흩어지면 형이 없어진다.

- 유창, 『의문법률醫門法律』

 

📑축구로 본 무와 유

노자老子께서는 “유생어무有生於無(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난다. - 『도덕경道德經』 제40장)”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자께서 말씀하신 무無는 유형의 반대 개념인 무형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있음과 없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밝은 햇살이 방 안을 환히 비춥니다. 거리엔 자동차가 달리고,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바삐 움직입니다. 하늘엔 해가 있고, 달과 별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일까요?

 

허공虛空은 하늘땅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공간을 공기空氣가 채우고 있습니다. 공기는 산소, 질소, 아르곤, 이산화탄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可視 영역을 벗어나서 보이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그럼 무형의 기氣는 어떨까요? 기도 종류와 성질에 따라 전기, 자기, 온기, 냉기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역易 철학에서는 사물이나 기의 다양한 성질을 음양陰陽의 상대성相對性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양의 상대성으로 발생한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因果律이 존재하는 현상계現象界입니다. 노자께서 말씀하신 ‘유有’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에 반해 음양의 상대성을 초월해 있는 절대계絶對界(본체계本體界)가 있습니다. 노자께서 말씀하신 ‘무無’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축구장의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심판의 호각 소리로 경기가 시작되면 양 팀 선수들이 공을 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입니다. 둥근 공의 향방과 선수들의 운동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실제 변화하는 상태를 ‘황극皇極’이라고 합니다. 황극에는 ‘변화의 주재자’라는 뜻도 있습니다.*3)

 

 

 

*3) 전창선ㆍ어윤형, 『음양이 뭐지?』 참고

 

그럼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22명의 선수가 11명씩 양 팀으로 나뉘어서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경기장도 중앙선을 경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경기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로 긴장감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극과 양극의 극성은 나타났지만 아직 동動하지 않은 상태를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보다 좀 더 전의 상황으로 가 보겠습니다. 22명이 축구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팀이 나뉘지 않았습니다. 축구장도 장소만 있을 뿐 골대도 없고 중앙선도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양극과 음극의 극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무극無極’이라고 합니다.

 

 

 

음양의 극성은 없지만 구성원은 있으므로 절대적인 무無가 아닌 상대적인 무無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허虛’, ‘생명 에너지로 충만한 무無’라고 합니다.*4) 

 

*4) 서양에서 인식해 온 무는 ‘절대적인 무’에 가깝다. 그래서 ‘존재자는 있으며, 무는 아니다.’, 또는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 서양에서 무는 현대의 실존철학에서 처음으로 주제화되었다.

 

무극의 본질인 무無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상대적인 무無인즉 그것은 순수한 무無일 수는 없고 다만 상象일 뿐인 것이다.

-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42쪽

 

📑없음을 있음으로 표현하면?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없음’인 무(무극)를 ‘있음’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를 풀기 위해 축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원수도 맞지 않고 축구공도 아니었지만, 골을 넣고자 하는 열정만은 대단했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그나마 좋았습니다. 너른 운동장에 골대도 있었으니까 말이죠. 동네에서는 좁은 골목이나 공터가 축구장이었습니다. 어느덧 축구 경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갈 준비를 합니다. 모두가 친구일 뿐 어느 팀이었는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골대를 치우고 축구장 가운데의 경계선도 지워 보겠습니다. 그러면 축구장엔 사각형의 경계만 남습니다. 골목의 담도 축구장의 경계로 충분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무극이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극은 음양의 양극성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사각형은 각角을 중심으로 수평과 수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담장도 각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무극이 되려면 이런 각이나 그로 인한 성질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각이 전혀 없어 성질조차 없는 형태가 ‘원圓’입니다. 그래서 무극은 원으로 상징합니다. 원은 동양의 고전에서 그 모습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 명나라 때의 이천李梴은 『의학입문醫學入門』에서 ‘선천도先天圖’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경악張景岳(1563~1640)은 『유경도익類經圖翼』에서 ‘태허도太虛圖’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흠陳(1849~1929)은 『진씨태극권도설陳氏太極拳圖說』에서 ‘무극도無極圖’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무극으로서의 원을 설명한 것입니다. 무에는 수數, 양量, 공간, 시간 따위에 제한이나 한계가 없는 ‘무한無限’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서기전 610~서기전 546)는 만물의 근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무한인 ‘아페이론apeiron(무한자)’이라고 했습니다. ‘만물은 무한자에서 생성되고 다시 무한자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중세 시대에는 ‘신神’이 무한으로 여겨졌으며, 근대에는 세계의 시간적·공간적 무한성이 주장되었습니다. 그런데 무한에는 무한소無限小와 무한대無限大가 있습니다. 무한을 나타내는 기호는 ‘∞’입니다. 우연의 일치일진 몰라도 원(○)을 두 개 이어 붙인 모양입니다. 하나는 무한대, 다른 하나는 무한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한대와 무한소는 이미 대와 소라는 음양의 성질이 나타난 상태이므로, 성질조차도 없는 무극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무한대와 무한소의 성질이 통일되어있는 상태를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극은 ‘무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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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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