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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요 증산도 증산도 Q&A 도장,치성-2, 보천교와 유사종교

 

Q8.증산 상제님은 누구신가요?

동방에서는 아득한 예로부터 천지의 질서를 다스리는 통치자, 주재자 하나님을 상제님라 불러왔어요. 천지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인간농사를 추수하고 가을 문화를 열어주시위해서 이 동방 땅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 바로 증산상제님입니다.

 

Q9. 증산도는 어떤 진리인가요?

우주에는 인간과 문명이 탄생해서 완성되는 우주 일년 사계절이 있어요. 바로 〈사람 농사짓는 우주일년 이야기〉입니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가을 대개벽기를 맞아서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 증산상제님이 열어주신 가을철 열매 진리가 증산도입니다.가을이 되면 봄여름 동안 무성하게 잎과 가지를 벌리던 풀과 나무가 열매를 맺어요. 그리고 가지 끝까지 뻗었던 나무의 진액이 뿌리로 돌아가요. 이처럼 생명이 자신과 꼭 닮은 열매를 맺고 진액을 뿌리로 되돌리는 현상을 원시반본이라 해요.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주에도 1년에 있어요. 우리는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고 있습니다. 천지가 원시반본하는 이 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열매맺는 사람을 살아야 해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보은, 해원, 상생을 실천해야 해요. 은혜입은 것을 갚고 근본에 보답하는 '보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원한 맺고 죽은 신명과 인간의 원한을 해소시키는 '해원', 서로 살리고 구원하여 잘 살게 하는 '상생'은 우주 가을철의 새로운 생활문화입니다.

 

 

Q10. 증산도를 사이비(유사종교)라고 하기도 하던데 이유가 뭔가요?

증산도에 사이비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건 백여 년의 세월이 되었어요. 일제강점기,일본 사람들이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를 사이비로 매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제는 제도적으로 불교, 기독교, 카톨릭, 유교 정도만 종교로 지정하고 우리의 고유 종교나 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미신, 유사종교, 사이비 취급을 했어요. 이런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잘못 알고 우리의 고유 문화나 증산도를 사이비, 미신, 유사종교로 취급 하기도 합니다.


Q11. 증산도는 얼마나 되었나요?

지금으로부터 152년 전, 증산상제님의 탄강과 더불어 증산도 도문이 시작되었어요. 상제님의 종통을 전수받으신 태모님께서 첫 도문을 여신 이후로 보천교로 이어지며 백여년의 역사가 지났습니다. 중요한 점은 증산도에서 동방 9천년 역사의 신교문화를 부활시켰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을 모시고 천제를 올렸던 신교문화는 중국과 일본 등 외세에 의해 그힘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던 신교문화가 뿌리로 돌아가는 가을 개벽기를 맞아 증산도를 통해 열매맺는 것입니다.



Q12. 왜 보천교에서 증산도가 되었나요?

보천교는 일제의 감시가 엄중하던 어려운 상황에도 폭발적인 확산을 이루었어요. 조선인구가 2천만이 안 되던 당시 신도가 7백만에 달했었죠. 거대한 신앙단체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급격한 세력 확산과 독립운동 지원을 두려워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보천교는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다 8.15 이후에는 증산교, 1970년대에는 증산도라는 이름으로 부흥을 이루었어요.



Q13. 증산도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땅에 인간으로 다녀가신 증산 상제님의 대도(道)를 말해요. 상제님의 호(號)가 '증산(甑山)'이기에 증산도라 합니다.  *도호는 시루 증(甑) 자, 뫼산(山)자로서, 증산은 인류문화의 진액을 수렴 통일 완성한다는 가을의 추수정신을 담고 있어요.

*도호 : 상제님 도문에서 쓰는 호

 

증산도에 대한 궁금증이 좀 해결되시는 시간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유익한 정보로 찾아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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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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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1)

 

"우리 족속은 죄가 많습니다.

형제끼리 서로 다투고 죽이나이다.

재앙의 불꽃이 눈썹에 닿여도 아무 감각없이 코 골고 자나이다.

원컨대 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모든 죄를 참회케 하소서.

(1923, 보천교 기관지 「보광普光」, 춘정생春汀生, <나의 심고>)

1910년 일제에 강점 당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지 상태라는 초유의 참담함을 경험했다. 그렇지 않아도 19세기부터 힘겹게 버티어 온 조선왕조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제국주의 일본의 한 지방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민족의 숨줄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 4p 프롤로그

1920년대 들어, 보천교 교단은 인적·물적 수단의 확대로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확보되면서 실력양성운동에 참여하거나 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를 보며 무한한 고마움에 마음으로나마 지하에 계신 조부 조모님께 보천교에 대한 서광이 비추이게 되었다고, 일본사람들이 우리 민족 특히 보천교에 대한 탄압 그리고 사이비종교로 몰아 해산시키고
해방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이비종교로 알고 있고 교수님의 저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이 얼마나 많은데 불과 100년 전의 우리역사를 밝힐 사람이 없는가를 배우지 못한 제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천교 북北방주 한규숙의 손자인 한순창(74세) 옹의 손편지 중에서)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보천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우리민족에게 숨쉴 여력을 제공해주고 민족독립의 희망을 심어줬던 민족종교이다. 민족종교라 하면 그 시초를 보통 동학에서부터 찾는다. 곧 19세기 중반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을 창교한 이래 많은 민족종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0세기 초에는 증산 강일순(1871~1909)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여 한국 민족종교사에 한 획을 그었다. 천지공사는 큰병大病이 든 천하를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건설하려는 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보천교는 이러한 '9년 동안의 천지공사'를 마친 강증산이 1909년 세상을 떠난 후 그 제자였던 월곡 차경석이 조직한 교단이다. - 19p

 

증산 사후, 증산의 유지를 계승하는 교단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다. 보천교와 관련된 교단으로 본다면 1911년 고판례(1880~1935)가 창립한 선도교를 최초의 교단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판례는 강증산의 부인이며 차월곡은 고판례의 이종동생이다.

1907년 차월곡의 집에 들렀다가 증산을 만났고 1909년 종통대권을 전수받아 1909년 이후 증산의 유지를 받들면서 차월곡과 함께 교단형성에 노력하였다. 그것이 선도교였다. 그러나 점차 의견차가 생기면서 차월곡과 거리를 두게 된다. 차월곡은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조직을 구성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1916년의 24방주 조직구성이다. 따라서 보천교의 출발을 조직 구성으로 본다면 1916년 24방주를 조직하고 업무분장한 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1p

강점 직후부터 조선민중의 사상과 행동이 '민족'이나 '독립'과 연결됨을 두려워했던 식민권력은 식민지 한국인의 동향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였다. 더욱이 강점과 더불어 각종 사회단체들을 전부 해산시킨 식민권력의 입장에서 종교단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식민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실체를 확인해서 민중과 분리했고 지식인을 동원하여 내분을 일으키고 왜곡시켜 소멸하도록 공작했다. 그런 면에서 결론적으로 본다면 식민권력의 종교 통제정책은 성공했던 것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엄청난 교세를 확보했던 보천교는 1936년 차월곡의 사망과 함께 해체되어 버렸고, 처음에 지적했듯이 해방 이후, 아니 현재 우리들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식민권력이 생성해 놓은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보천교가 잘못한 죄라고는 일제강점기에 교단을 형성한 죄, 자칭·타칭 600만이라는 수많은 조선 민중과 함께 했던 죄, 그런 만큼 자금이 많았던 죄, 그리고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죄밖에는 없는데도 말이다. - 22p

종교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883년 정도에 우리사회에 나타난 개념이다. 그것도 religion이라는 다분히 기독교적 개념을 접했던 일본 학계가 만들어낸 용어로, 이후 조선사회로 유입된 개념일 뿐이다. 그 용어로 민족종교를 재단하는 것, 그래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미신(사이비)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곧 '근대=문명=기독교↔보천교=미신=전근대'라는 틀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합되면서,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 24p

당시 기독교, 천도교 등 기득권 종교계는 민족종교와의 분리를 통해 제도화된 근대종교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보천교만 아니면 우리 기독교를 모든 조선민족에게 선포하는 것이 하룻거리 일로써, 획기적으로 조선에서의 교세를 독점할뻔 하였는데, 보천교는 우리 기독교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며 커다란 악마'라 보고 보천교 박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고 했다.

또 식민지 언론과 지식인들도 '근대'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열의와 카르텔을 보호받으려 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학계에서 보여지는 '식민사학의 카르텔' 보호처럼 말이다. - 25p

[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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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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