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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삼랑 선仙 문명 시대 | 무병장수 조화신선 도통 수행법, 한국은 선 문명의 종주국

 
[이제는 삼랑선 문명 시대]

■무병장수 조화신선 도통 수행법



지금은 질병 대란의 우주 가을개벽기


우리는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는가? 인간은 왜 지금 후천 조화신선 수행법을 실천해야 하는가?

지구에 1년 4계절이 있듯이, 우주에도 4계절이 있다. 12만 9천6백 년을 한 주기로 둥글어 가는 ‘우주 1년의 사계절’ 순환에서, 지금의 시기는 우주의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바뀌는 ‘가을개벽기’이다. 이때에는 가을의 서릿발 기운으로 지구적인 ‘팬데믹Pandemic 병란病亂’이 일어난다. 지구촌 방역 전문가들도 “앞으로 또 다른 무서운 전염병이 계속 닥쳐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적인 대전환기에는 우주의 통치자 조화주 삼신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구원의 도법을 열어 주신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는 상제님의 도법을 만나 병란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 수행, 생존 수행을 하여 조화 신선으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다 신선神仙이 하는 일이니 우리 도는 선도仙道니라. (도전道典 11:199:7)


원래 무병장수 조화신선 도통 수행법의 원형은 본래 2만 5천 년 전 마고성麻姑城에서 비롯되어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 등 한국의 국통맥을 계승한 제왕들에게 비전되어 내려왔다.

이제 후천 가을개벽의 때가 무르익어, 안경전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마고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원형 선仙 수행법을 완성시켜 대중들에게 공개 전수하는 것이다.


한국은 선 문명의 종주국



성명정은 우리 몸의 삼관三關


동방 신교에서는 대우주의 성령을 #삼신三神#이라고 부른다. 원래 一神이지만 작용할 때는 삼신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삼신 문화에 달통한 행촌杏村 이암李嵒 선생은 이를 집일함삼執一含三,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 표현했다. 행촌 선생의 놀라운 가르침은 인간에 대한 정의를 삼신관三神觀으로 명확하게 내려 주셨다는 점이다. 원래 동방에서는 예로부터 인간을 ‘천지의 아들이자 열매’로 정의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신은 조화신造化神⋅교화신敎化神⋅치화신治化神으로 작용하는데 이 중 조화신은 우리 몸에 내려와 인간의 본래 마음, 성性으로 자리 잡고, 교화신은 우리의 가슴 속 중단에 내려와 명命으로 작용하고, 치화신은 인간의 하단전에서 정精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명정性命精은 인간의 본래 면모로서 반드시 회복하고 또 굳게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삼관三關 또는 삼진三眞이라고 한다. 성명정을 현실적으로 쓸 때, 이것을 심기신心氣身이라고 부른다. 역시 삼방三房 또는 삼망三妄으로 불린다.
도가에서 우리 몸의 삼보三寶로 정기신精氣神을 외치는데, 원래 정기신의 개념도 성명정-심기신에서 나온 것이다.

성명정은 세 가지가 연결되어 동시적인 개념이지만 수도修道의 과정에서는 정을 통해 명을 열고, 다음으로 성을 열어 나간다. 현실 세상에서는 우리 몸과 관련된 정이 더 직접적이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은 우리 생명을 지속시키는 동력원이다. 결국 인간은 신장 정수精水가 말라 가면서 죽음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수행은 결국 정精을 굳히고 맑히고 승화시키는 공부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 인류가 누리고 있는 생활 문화는 거의 대부분이 인간의 정을 낭비하고 훼손시키는 반反수행, 반反생명 문화이다. 이에 반해 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우리 조상들은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신수腎水가 훤하다.’ 또는 ‘신수腎水가 펴졌다.’라고 표현했다.

인간 삶에서 문명의 모든 주제를 창조할 수 있는 무궁한 힘은 내 머릿속 성性에서 생성돼 나온다. 또 어떠한 불치병에 걸렸어도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하는 무궁한 생명력의 발현, 인간 몸에 대한 면역력, 건강에 대한 자신감, 치유에 대한 원천적인 힘은 내 가슴 속 명命줄에서 나온다.

그리고 성명의 원천적인 동력원은 정단精丹이다. 한의학에서는 신간동기腎間動氣(양쪽 신장 사이의 진기)가 생기지원生氣之源 또는 생명의 근원이라 주장한다. 그러니까 천지부모가 인간을 만드는데, 사람이 태어날 때는 천지의 원기, 삼신의 본래 조화 생명의 한 기운이 홀연히 들어와 우리 호흡을 통해서 발동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 닦는 법만 주장한다든지, 몸 닦음을 위주로 양생법만 주장하는 것은 기울어진 마차처럼 균형을 잃은 쪼가리 방법론에 불과하다. 이미 도가에서도 성명쌍수性命雙修라 하여 마음의 바탕 성과 몸의 바탕 명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얘기하면 성명정을 함께 닦아야 진정한 인간, 진인이 되는 것이다.



© 월간개벽. 8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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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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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 귀환歸還의 상향도 성명쌍수性命雙修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귀환歸還의 상향도 성명쌍수性命雙修 

단 하나뿐인 지구!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혀 다난하게 살고 있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무신론자이든,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속이 다를지라도, 모두가 지구촌의 한 울타리에 살고 있는 고귀한 생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限界狀況’에 직면해 있다.

 

특히 삶의 노정路程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노병사’는 참을 수 없는 고통苦痛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이러한 고통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오직 자신만이 감내하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노병사’의 고통을 극복하여 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하나의 방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안으로 눈을 돌려 그러한 고통을 야기하는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는 길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 볼 때, ‘노병사’라는 ‘한계상황’ 속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인간은 자신이 유한有限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고, 이로부터 실존實存을 각성하게 되는 본질적인 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실존에 대해 각성한 인간은 고통의 원천을 찾아 그 뿌리를 제거하는 방도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가 제시한 연기법緣起法이 그 하나이다. 그는 연기법을 통해 실존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고 하는데, 연기법은 후에 ‘생노병사’의 ‘고苦’를 유발하는 ‘유전연기流轉緣起’와 그 ‘고’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도인 ‘환멸연기還滅緣起’로 분석된다. 여기에서 ‘유전연기’로 인한 모든 ‘고’는 ‘환멸연기’로써 그 뿌리가 제거될 수 있고, 이로부터 진정한 실존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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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일신고」는 자신의 실존에 이르는 길을 달리 제시한다. 즉 「삼일신고」는 오직 생명창조의 진원眞元을 찾아 그 본질을 밝혀 그것에로 귀의歸依하는 방도를 제시한다. 이는 실존으로 향하는 귀환歸還의 상향도上向道라 지칭할 수 있다. 귀환의 상향도는 수행修行이 절대적인 관건關鍵이다. 「삼일신고」는 수행을 통해 유한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실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수행의 도道는 큰 틀에서 볼 때 4단계로 압축하여 말해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수행의 기초적인 과정으로 몸을 정화淨化하여 정단精丹을 만드는 것,

 

둘째 단계는 삼신三神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진실한 것[三眞], 즉 성명정性命精’을 인식하여 그것을 체화體化하는 과정으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수련,

 

셋째 단계는 순수의식에서 ‘삼진’을 관통하여 ‘하나’로 만드는 과정으로 ‘성통광명’에 이르는 것,

 

마지막 단계는 생명의 근원인 ‘신의 마음’으로 회귀回歸하는 과정으로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다. 신선이 된 자는 진정한 의미의 실존자이다.

 

수행의 1단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자신의 몸을 정화하여 정단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몸에 굳건한 정단이 형성돼 있어야만, 몸의 활력도 왕성해지고, 외부로부터 침투하는 질병疾病에 대한 면역력도 드높여지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크고 작은 병을 스스로 치유하거나 막을 수 있어 무병장수無病長壽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무병장수의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정화하여 기혈氣血이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런 다음 전체적으로 정화된 몸에 정단을 만드는 것이 수순이다. 「삼일신고」는 정단을 만드는 기초적인 수행의 단계로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수련에 집중하여 단련할 것을 권장한다.

 

‘지감’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성적인 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그치게 하는 수행이다. 그것은 ‘기쁨[喜], 두려움[懼], 슬픔[哀], 성냄[怒], 탐욕[貪], 증오[厭]’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퇴치하여 마음을 정화하는 수련이 중심이다.

 

이러한 감성의식은 ‘진성’에서 발현되는 본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관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식이 정화되어야만 자아는 순수한 자연의식自然意識으로 돌아갈 수 있고, 이로부터 ‘진성’에 잠들어 있는 원신元神을 깨워서 정단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조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호흡을 통해 거친 숨을 고르게 함으로써 정정靜定한 마음에서 몸에 적체된 독해를 뿌리 뽑는 수행이다. 그것은 몸에 묻어 있는 ‘향기로운[芬], 문드러진[爛], 차가운[寒], 뜨거운[熱], 마른[震], 습한[濕]’ 기운과 같은 탁한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수련이 중심이다.

 

이러한 기운은 ‘진명’에서 나오는 원기元氣가 활발하게 발현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몸에 적체되어 있는 탁한 기운이 정화되어야만 자연의식에서 원기元氣가 살아나 호흡을 통해 대자연의 생명기운을 끌어들여 정단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금촉’은 무엇인가?

그것은 몸에 딸린 감각기관이 외부와의 접촉을 금禁함으로써 몸에 내재된 정기를 보호하고 훼손을 막는 수행이다. 그것은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聲]’, 눈으로 보는 ‘색감[色]’, 코를 자극하는 ‘냄새[臭]’, 혀를 통해 아는 ‘맛[味]’, 욕망에서 비롯하는 ‘음란[淫]’, 신체적인 ‘부딪힘[抵]’을 금지하는 수련이 중심이다.

 

왜냐하면 외부와의 신체적인 접촉은 정정한 마음과 맑은 생명기운에서 출원하는 정기를 쉽게 훼손하고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지감’, ‘조식’, ‘금촉’은 몸을 정화하는 단계의 수련과정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것만으로 몸에 정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 정단을 만들고자 하는 수행자는 의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즉 ‘감식촉感息觸’으로 작용하는 ‘감성의식에서 벗어나 자연의식(순수의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의거하면, ‘삼식三識]’의 작용이 자연의식이다. ‘삼식’은 신령한 앎인 ‘영식靈識’, 지혜로운 앎인 ‘지식智識’, 깨어있는 상태에서 아는 ‘의식意識’으로 분석되는데, 개별적인 인간의 생명이 잉태될 때 삼신三神의 본성에서 나온 ‘삼혼三魂’에서 기원起源한 것이다. ‘삼혼’은 신령한 마음의 ‘영혼靈魂’, 도리를 깨우치는 마음의 ‘각혼覺魂’, 생명활동의 마음인 ‘생혼生魂’을 지칭하는데, 우주에 꽉 차 있는 ‘신의 마음’에서 출원한 것이다.

 

따라서 몸에 정단을 만들고자하는 수행자는 자연의식의 주체가 돼야한다. 왜냐하면 자연의식은 삼신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삼혼’을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자연의식은 삼신의 신령한 마음과 천지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수행자에게서 ‘삼식’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수행자는 ‘삼망三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삼혼’과 ‘삼망’이 끊임없이 부딪힐 때 ‘감식촉’의 감성의식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노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지감’, ‘조식’, ‘금촉’의 기본적인 수련에 집중하여 ‘감식촉’의 감성의식을 벗어나 자연의식에서 ‘일심一心’으로 몸에 정단을 만드는 수행에 진력盡力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수행자는 자연의식에서 ‘일심수행一心修行’으로 몸에 정단을 만들 수 있는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동서 인류의 수행문화에서 볼 때, 정단형성의 첩경은 만트라(mantra) 주문수행이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만트라’는 ‘마음의 도구’란 뜻으로 집중을 방해하는 사념들을 차단하고 천지기운을 끌어들여 몸을 바꿀 수 있는 음절音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트라 주문수행에서 으뜸이 되는 것은 태을주太乙呪와 시천주侍天主 주문이다. 왜냐하면 태을주 주문은 뿌리 찾는 주문으로 감성의식에서 일어나는 잡념이나 관념들을 잠재우고 자연의식(순수의식)으로 돌아가 ‘일심’의 경계에 이르는 데에 탁월하고, 시천주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힘으로 천지기운을 받아 내리는 데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초적인 단계의 수행을 완결하여 몸에 정단을 만들려는 수행자는 반드시 자연의식의 상태에서 태을주 주문수행과 시천주 주문수행을 번갈아가면서 일심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두 주문수행이 심화되면 수행자는 자연의식에서 천지기운이 열리게 되고, 그럼으로써 밝은 빛의 천지기운을 하단전下丹田으로 끌어 모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천지기운이 하단전에 점차 쌓이게 되면, 몸에 정단이 점차 굳건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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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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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의 수행(4)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귀환歸還의 상향도-성명쌍수性命雙修 (2단계)

수행의 2단계는 오염된 몸의 정화淨化 및 정단精丹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몸을 구성하는 근본根本을 닦는 것인데, ‘신의 마음’이 시공時空 안으로 들어와 전환된 진실한 세 가지, 즉 ‘성性․명命․정精[삼진三眞]’이다.

 

그런데 ‘삼진’에서 ‘성’과 ‘명’을 닦으면 ‘정’이 스스로 닦이는 것으로 간주看做된다. 왜냐하면 ‘정’은 ‘성’과 ‘명’의 중도적인 융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진’을 닦는다는 것은 곧 전통적인 수행문화에서 말하는 ‘성과 명을 짝으로(함께) 닦는다[성명쌍수性命雙修]’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명쌍수’는 참된 수행의 법도法道이다. 여기에서 ‘닦는다[수修]’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사전적인 의미에서 ‘다스리다’, ‘고치다’는 뜻이지만, ‘성’과 ‘명’의 본질을 발전적으로 깨달아 고쳐서 높은 경지에까지 올려놓음을 함축한다. 그래서 ‘성명쌍수’는 몸 안에 내재된 ‘성’과 ‘명’이 어떤 방식으로 성립하는가의 존재방식存在方式과 그 본질을 깨닫는 것, 즉 ‘성’과 ‘명’의 존재근원을 철저하게 통찰하여 즉자적卽自的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진도全眞道의 창시자인 왕중양王重陽은 “인간이 성명에 달통하는 것, 이것이 곧 참된 수행의 법도이다.(人了達性命者 便是眞修行之法也)”(『重陽眞人今闕玉訣』 『中華道藏』 제26책 284쪽)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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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먼저 ‘성性’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몸 안에 내재된 ‘진성眞性’의 존재방식과 그 본질을 달통達通하는 것인데, ‘진성’의 존재방식은 조화신造化神이 내려와 머리 부분의 상단전上丹田 안착해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은 바로 ‘선한 마음[性善]’이다.

 

여기에서 ‘선한 마음’이란 인간의 감성의식에서 비롯하는 윤리적인 의미의 ‘착하다’, ‘선하다’의 뜻을 넘어서 ‘신의 마음’이 시공時空 안으로 들어와 전환된 자연 그대로의 본성本性을 말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말하는 본연지성本然之性, 즉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에 비견比肩될 수 있을 것이다.

 

‘성’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 감성의식에서 튀어나오는 유동적인 모든 잡념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무의식[無意識]에 쌓여 있던 관념들마저도 모조리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어 말끔히 털어내는 것이다. 이는 마음을 감성적인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깨끗하고 고요함[淸靜]으로 지속되는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적정寂靜한 경계로 올려놓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수련방식에서 볼 때, 이는 좌선坐禪 혹은 명상수련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서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요동치는 감성의식을 완전히 멈추게 하는 ‘지감止感’의 수련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감성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연의식自然意識에로의 입경入境한 마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감’만으로는 ‘진성’에 대한 자각自覺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몸이 감각을 통해 외물外物을 접하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단박에 요동치는 감성의식으로 매몰埋沒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성’을 온전하게 자각하기 위해서는 자연의식에 입경入境한 마음은 질적인 도약跳躍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집중적인 수련을 통해 닫혀있던 ‘신령한 마음’, 즉 영대靈臺를 여는 것이다. 닫혀있던 영대를 여는 중요한 열쇠는 수행 가운데 태을주太乙呪와 시천주侍天主 주문수행呪文修行이 으뜸이다. 왜냐하면 ‘태을주’와 ‘시천주’는 근원의 진리를 여는 뿌리주문이기 때문이다. ‘영대’가 열려야 영적인 의식[영식靈識]이 발현發顯하게 되고, 이로부터 ‘진성’이 온전하게 자각되는 것이다.

 

 

 

영대가 열림으로써 자각된 ‘진성’은 생멸하는 모든 감성의식이 끊어진 부동의 항심恒心에 머물게 되고, 진실로 생사生死에 흔들림이 없는 ‘고정된 마음[정심定心]’을 항상 유질할 수 있다. 그러한 ‘진성’의 정체성正體性은 곧 ‘신의 마음’과 같은 경계에 머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단군세기』 서문은 ‘진성’ “천신天神과 더불어 그 기원을 같이하는[與天神同其源]” 것으로 표현한다. ‘천신’과 기원을 같이하는 ‘진성’이야말로 ‘신의 마음’이 들어와 ‘삼진’으로 전환되기 직전의 신, 즉 몸에 잠들어 있는 ‘원신元神’을 깨울 수 있다.

 

‘원신’은, 인간의 개별적인 생명이 잉태될 때, 그 몸에 들어와 머리 부분의 상단전上丹田에 안착해 있는데, 몸의 생장과 더불어 감성의식이 싹이 트면서 그 활동이 점차 침잠沈潛하여 잠들게 된다. 만일 몸에 잠들어 있는 ‘원신’이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 깨어나게 된다면, 자각된 ‘진성’은 곧 ‘신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각된 ‘진성’은 곧 천신天神의 마음이고, 대자연의 마음이요 우주의 마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인간은 모든 감성의식을 초탈하여 삶과 죽음의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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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명’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몸 안에 내재된 ‘명’의 존재방식과 그 본질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인데, ‘명’의 존재방식은 교화신敎化神이 내려와 가슴부분의 중단전中丹田에 안착해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은 곧 ‘맑은 기운[淸氣]’이다.

 

‘맑은 기운’ 통속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깨끗한 기운’ 혹은 ‘탁하지 않은 기운’이란 뜻을 넘어서 ‘신의 마음’이 시공 안으로 들어와 전환된 자연 그대로의 ‘본명本命’이다. 이는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말하는 천명天命, 즉 진리의 사명使命이나 수명壽命에 비견比肩될 수 있을 것이다.

 

‘명’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 호흡呼吸을 통해 ‘본명’을 깨닫는 수련이다. 여기에서 호흡은 자연의식, 즉 자연스런 마음[自+心=息]에서 쉬는 숨이다. 자연의식에서 인간은 호흡을 통해 몸에 있는 탁한 기운[氣]을 정화하고 맑은 기운을 활성화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즉 호흡은 기본적으로 기혈氣血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생명활동으로 인해 쌓인 노폐물(이산화탄소)을 배출하여 생명의 기운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삼일신고」는 자연의식에서 균형 잡힌 숨결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기혈’이 조화롭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조식調息’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식’만으로 ‘진명’이 온전하게 자각된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명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외물外物에 접촉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로부터 감성의식이 발동하여 마음의 안정이 엉클어지고, 숨결이 거칠어지면서 몸의 생명기운이 쉽게 탁해짐으로써 ‘본명’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명’의 맑은 생명기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명’을 온전하게 닦아야 한다. 이는 집중적인 수련을 통해 호흡법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진식호흡眞息呼吸이라고 하는데, 들숨보다는 날숨을 가늘고 길게 하여 음양의 천지기운과 교구交媾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선가仙家에서는 이것을 단전호흡丹田呼吸 혹은 태식호흡胎息呼吸이라고 말한다.

 

자연의식에서 진식호흡을 집중적으로 하게 되면, ‘진명’이 자각된다. ‘진명’을 자각하게 되면, 인간은 ‘진명’이 곧 천명天命에 따를 ‘본명’이고, 대자연의 약동하는 ‘청기淸氣’로 의기義氣이고, 곧 우주적인 생명의 기운과 더불어 그 기원을 같이함을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 『단군세기』 서문에서는 ‘진명’을 “산천山川과 더불어 그 기운과 같이하는 것[與山川同其氣]”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진명’을 자각하게 되면,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의 천지기운과 소통하여 ‘원기元氣’를 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는 ‘시천주’와 ‘태을주’ 주문수행이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태을주’와 ‘시천주’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힘으로 천지기운을 받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기’는 인간이 타고날 때 몸으로 들어와 가슴부분의 중단전中丹田에 안착해 있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나면서 흉식호흡胸式呼吸을 하기 때문에 ‘원기’가 점차 소모되거나 쇠퇴하여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원기’의 부족으로 인해 쉽게 병들고 점차 빠르게 늙어감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자연의식에서 들숨과 날숨을 통해 진식호흡을 집중적으로 수련하게 되면, 인간은 ‘진명’과 기원을 같이하는 천지기운과 교구하여 대자연의 투명한 빛과 같은 ‘원기’를 끌어 모을 수 있고, 이를 하단전下丹田으로 밀어 넣어 점차 정단을 쌓아 놓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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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몸 안에 내재된 ‘진정眞精’의 존재방식과 그 본질을 스스로 깨치는[自覺] 것인데, ‘진정’의 존재방식은 치화신治化神이 내려와 몸의 배꼽 아래 부분인 하단전下丹田에 안착해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은 곧 ‘성’과 ‘명’으로 융합된 몸과 마음의 ‘정기精氣’, 즉 수명受命을 결정하는 원천적인 생명줄이다. 그것의 정체성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물질대사의 차원에서 말하는 심신心身의 활동력으로 표출表出는 정력精力을 넘어서 ‘신의 마음’이 시공 안으로 들어와 전환된 생명활동의 동력원動力源인 것이다.

 

그런데 ‘정’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 몸과 마음의 ‘정기’를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그 수련과정은 ‘정기’에서 표출되는 정력精力이 고갈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방지防止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탕放蕩한 생활을 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즉 인간이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여 정력을 증강시키고, 적당한 운동으로 몸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온갖 종류의 병病으로부터의 저항력을 높이고, 천명으로부터 부여된 고귀한 생명력과 의기를 온전하게 보존하면서 무병장수無病長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일신고」는 심신의 ‘정기’를 최대한으로 보존하도록 하는 ‘금촉禁觸’을 말한다.

 

그러나 ‘금촉’만으로 ‘진정’이 온전하게 자각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체는 생명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에는 정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할 수밖에 없고, 또한 외부와의 접촉으로부터 생명력이 위협당하는 오는 온갖 종류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을 자각하여 몸에 무너지지 않는 생명의 보고寶庫, 즉 하단전에 정단을 만들어 ‘정기’를 굳건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성’과 ‘명’을 짝으로 닦아 ‘진성’에서 비롯되는 정신精神과 ‘진명’에서 비롯되는 영기靈氣가 융합된 ‘정혼精魂’을 하단전에 굳건히 뭉치게 하여 정단을 만드는 것이다.

 

‘진정’에 대한 자각은 인간이 어떻게 ‘정혼’을 굳건하게 뭉쳐서 하단전에 ‘정단’을 만들어 보존할 수 있는가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태을주’와 ‘시천주’ 주문수행은 ‘성’과 ‘명’을 짝으로 닦아 ‘진정’을 자각하여 ‘정단’을 만드는 첩경捷徑이다.

 

왜냐하면 두 주문은 양陽의 의미에서 ‘신’과 음陰의 의미에서 ‘기’가 교구하는 ‘정혼’을 뭉치는 데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에 대한 자각은 ‘원신’의 혼魂과 ‘원기’의 정精을 하단전으로 끌어들여 정혼精魂으로 다져진 정단을 굳건하게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정혼’은 바로 영생永生에 대한 잠재적인 생명의 동력원을 함축한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생명체는 하단전에 ‘정혼’이 굳게 뭉쳐있어야만 무병장수無病長壽하여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고, 육체적인 죽음 후에도 영생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의 주재자 증산상제님은 “도(道)를 잘 닦는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서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는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도전』9:76:1)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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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논의된 수행의 제2단계를 요약해 보자.

그것은 몸의 근원적인 정화과정을 넘어서 ‘삼진’을 철저하게 ‘깨우치는 것[自覺]’이다. 이는 ‘성과 명을 함께 닦음[性命雙修]’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마음만[性]을 잘 닦아 명경지수와 같이 되었다고 해서 ‘진성’이 온전하게 닦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명’에 대한 인식이 자각되면 자각될수록 ‘진성’은 그만큼 크게 닦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진명’에 대한 인식이 천둥벽력처럼 크게 깨질 때, ‘진성’은 온전하게 닦여서 그만큼 크게 열리고, 나아가 ‘진정’은 ‘진성’과 ‘진명’의 융합이기 때문에 동시에 닦이는 것이다. ‘진정’이 온전하게 닦이면, 이는 몸의 하단전에 ‘정혼’이 뭉쳐서 굳건한 정단이 형성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선가仙家에서 말하는 ‘성’과 ‘명’을 함께 닦음[性命雙修]’은 태을주와 시천주 주문수행을 통해 몸에 ‘정혼’을 굳게 뭉쳐 하단전에 굳건한 ‘정단’을 형성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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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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