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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일곱 번째 국통맥 - 고려 시대

Q1. 고려 시대에도 인류 최초의 경전 『천부경』에 대한 전수 기록이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 때에는 목은 이색李穡과 『북부여기』를 통해 북부여의 역사의 원본을 드러낸 범세동范世東이 고려 말에 『천부경 주해』를 남겼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전하지는 않습니다.

『태백진훈太白眞訓』에 보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이 한 스무 살 정도 어린 최영崔瑩(1316~1388) 장군으로부터 『천부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이암이 무인 시대를 종결시킨 류경柳璥(1211~1289)이라는 분의 집에 숨겨져서 전해 오는 『가장구전家臟舊傳』을 인용하면서 『천부경』이 무엇인지 천·지·인으로 한 구절씩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Q2 고려 시대에는 세 인물의 등장으로 한민족 정신문화의 체계를 세우고 그 가르침을 정리해서 우리 역사 문화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 인물은 어떤 분들이며, 어떤 업적을 남기셨나요?


고려 말에 소전거사素佺居士라는 분이 비책秘冊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전거사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천보산에 태소암太素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그 암자에서 소전거사로부터 고기록을 전수받은 3인방이 ‘우리 역사를 회복하자!’ 하고 천지에 맹세를 했습니다. 이 3인방이 지금으로 말하면 수상까지 지내고 『단군세기』를 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 같은 조정에 근무하며 『북부여기』를 저술하여 북부여사를 전체적으로 복원시켰으며 복애거사 범장이라 불리는 범세동范世東(1342~1395) 그리고 『진역유기震域留記』를 저술한 이명李茗입니다.

Q3 행촌 이암 선생은 10세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환단의 역사 회복을 다짐하는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평생의 삶을 관통한 이 시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행촌 이암은 공민왕 때 국무총리 격인 수문하시중을 역임하면서 고려 말에 여섯 명의 왕을 모신 학문이 아주 넓고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구촌의 3분의 1을 통일한 원元나라 대제국이 쳐들어와서 고려가 원나라의 시녀로 전락할 때였고, 류청신柳淸臣 같은 역적이 고려라는 나라의 간판도 떼어 버리고 보따리 싸 들고 가서 원나라 조정에 귀속해 버리자며 날뛰던 때입니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이 『단군세기』를 집필한 것입니다.

행촌 이암은 열 살 때, 아버지의 명으로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위에서 사서삼경과 우리 시원 역사의 경전을 암송하며 읊은 시가 있습니다. 소년 이암은 이 시를 읊으면서 하늘의 삼신상제님과 약속했던 것입니다.

仙風猶烈塹城壇(선풍유열참성단)
孰將燭喝昏衢志(숙장촉갈혼구지)
求我自今天下安(구아자금천하안)
참성단 위에 선풍이 강렬히 몰아치고 있구나
그 누가 어두운 동방의 거리를 밝게 비출 것인가
내가 이제 동방 천하의 평안을 구하리라.



Q4 행촌 이암 선생의 역사 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정신은 할아버지인 이존비 선생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존비 선생은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행촌 이암의 할아버지 후암 이존비李尊庇(1233~1287) 선생은 고려 경효왕 때 인물입니다. 일찍이 자주와 부강의 정책을 자주 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25세 충렬왕에게 올린 진언을 보면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환단桓檀(환국-배달), 조선, 북부여, 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自主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왕건)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시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군신 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또한 왜와 더불어 원한을 쌓고 있으니 원나라 왕실에 변고가 생긴다면 장차 무엇을 믿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황제라 칭하는 일을 이 시대에 꺼리고 기피하여 갑자기 회복하기는 진실로 곤란하나 자강自强의 계책은 강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 『태백일사』 「고려국본기」 中



Q5 『단군세기』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도통 문화의 마음의 구성 원리 원형’을 보여 준다고 말씀하신 『단군세기』 서문은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단군은 한 분이 아니고 마흔일곱 분이 정확하게 2,090년 동안 옛 조선, 단군조선의 왕조 시대를 운영했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이 『단군세기』입니다. 이 『단군세기』는 “우주 창세 역사 황금시절의 원형 문화를 구성하는 인간론, 신관, 역사관, 우주관이 융합돼 있고, 우주 통치자 하나님의 심법과 하나님의 통치 원리, 그리고 인간이 자기를 회복해서 ‘진아眞我, 참나’를 완성하는 궁극의 수행법 및 도통 심법을 전수하는 핵심을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 경전”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해에 한민족에게 전한 역사의 유언과 같은 『단군세기』 서문을 썼습니다. 이 서문에는 우리 한민족의 천지광명 문화 역사관의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경문보다, 사서오경 경문보다, 주역의 경문보다도 더 놀라운 우주 정상의 진리의 근본 틀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서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환단고기』에 눈을 뜹니다. 이 서문을 읽고 책 제목인 사자성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뜻을 말할 수 있다면 『환단고기』의 역사관, 우주관에 대해 자신 있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군세기』 서문은 한 5백 번, 1천 번 이상을 읽어야, 이것은 정말로 도통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군세기』 서문에는 모든 종교 경전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역사관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큰 주제인 인간이란 뭐냐 하는 인성론, 인간의 마음의 세계에 대한 모든 주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그럼 무엇으로부터 우리 자아를 알 수가 있느냐?” 하고 묻고서 갑자기 우주의 삼신 문제를 폭탄처럼 선언하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모든 것은 나를 먼저 아는 데 있다 - “선재지아先在知我.” 그럼 무엇으로부터 나를 알 거냐? “부삼신일체지도夫三神一軆之道는”, 대저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신 도는, 하늘과 땅과 인간은 셋으로 무한히 크고, 삼신의 조화로써 원융무애하며, 삼신의 조화성으로 영원히 일체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삼신이 한 몸이 되는, 삼신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도통의 길은 “재대원일지의在大圓一之義하니”, 대원일의 정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원일大圓一은 무엇인가? 한없이 크고, 융합이 되는, 원융무애하게 하나가 되는, 그 무엇과도 함께 하나가 되는, 일체의 경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화신이 내려와서 나의 본성, 내 마음의 근원이 되고, 교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나의 영원한 생명이 되었고, 치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내 몸을 다스리는 생명의 근거, 정기가 되었다.” 하고서 “부성자夫性者는 신지근야神之根也라.” 대저 성이라는 것, 인간 마음의 근원, 조화 세계는 바로 신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30년을 읽고서 자다가 눈을 뜬 게 이 한 구절 때문입니다. 이것이 『환단고기』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입니다.

Q6 행촌 이암 선생과 함께 소전거사로부터 비서秘書를 전수받고 『북부여기』를 집필하신 복애거사 범장(범세동)은 어떤 분이신지요?


행촌 이암과 거의 같은 시기에 『북부여기』를 낸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역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나서 이성계가 고려의 충신을 쓰려고 하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부를 했습니다. 두문동에 은거하고 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두문동 72인이라 하는데, 범장은 그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璋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의 중간 허리인 북부여사를 복원했습니다. 이분이 나주羅州 분이고, 광주에 사당도 있습니다. 복애거사 범장의 조상(범승조)은 송나라에서 넘어왔습니다. 그 조상은 본래 동이인東夷人으로, 이것은 천지의 어떤 보이지 않는 섭리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동방 땅 조선의 창세 역사 복원이라는 절대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손을 내기 위해서, 복애거사 범장의 조상을 이쪽으로 망명시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Q7 복애거사 범장이 지은 『북부여기』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북부여기』는 부여사를 완전하게 복원해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가 뽑히고, 환국·배달·조선에서 여러 나라 시대 즉 열국 시대로 가는 출발점인 부여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이 북부여와 동부여의 차이를 모르고, 동부여와 서부여의 차이도 모릅니다. 『북부여기』를 보면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부입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고주몽의 아버지는 고모수高慕漱(옥저후 불리지)예요. 고구려는 북부여라는 나라의 이름을 바꾼 것이지 고주몽이 창건한 게 아닙니다. 북부여 역사는 182년인데 1세 해모수, 2세 모수리慕漱離 이후 6세까지 이어지다가, 고주몽이 계승했습니다.

 

『북부여기』는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사와, 북부여에서 갈려 나간 여러 부여사를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부여사의 전모를 밝혀 주는 사서로, 특히 북부여의 건국 시조인 해모수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 줍니다. 그동안 고조선이 멸망한 뒤 어떻게 고구려로 이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 『북부여기』를 통해서 9천 년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계절, 우주변화원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한민족의 진실된 역사에 대해서 알고싶으신분,  생존의 비밀, 한민족과 증산도, 천지성공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생존의 비밀 책자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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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nings(始原)으로서의 증산도 안양만안도장 김OO 도생


김OO(남, 63) / 안양만안도장 / 도기 152년 음력 2월 입도

건축가로서 바라본 원시반본


저는 1979년 대학 시절에 증산도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증산도를 하던 친구의 소개로 교과서에 언급된 천부경 81자를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태상종도사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도에 대한 궁금증과 그러한 수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전공인 건축을 공부하면서 건축이 단순히 집을 짓기 위한 학문이나 기술 습득이 주된 학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원형적 사고를 통해 건축 형태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이성과 감성의 의미인 Thought와 Feeling 두 가지 측면에서 영감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원始原’에서 출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많은 건축을 디자인하고 다양한 여행을 통해 답사하면서 제 사고의 과정과 배경으로 원시반본原始返本은 변함없이 지속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경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면서 신화와 일본 역사에 연관된 내용들을 흥미롭게 보았고, 같이 시청하던 어머니께 어린 시절 일본의 교육 시에 저런 내용을 들으신 적이 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하셔서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이후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지속적으로 시청하고 증산도에 대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리와 정성 공부의 과정


그러던 중 2012년경 우연히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거리 패널 홍보를 하던 분들을 만났고, 그중 한 분이 제가 ‘환단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 『한민족과 증산도』를 읽어 보라고 권하면서 연락처를 남겨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이 바로 인도자이신 이경숙 도생님이셨습니다. 이후 역삼역 부근 한 빌딩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특강에 몇 차례 친구들도 데리고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제 전화번호로 역사 강의며 행사 안내 등을 꾸준히 보내 주셨고, 드디어 2020년에 이경숙 도생님이 인도를 하여 수행을 목적으로 증산도 성남태평도장을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이 과천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기엔 거리가 멀어 다시 과천에서 가까운 증산도 안양만안도장을 방문하여 3개월에 걸쳐 21일 수행을 하였습니다.

저는 시간이 되는 대로 스물한 번만 참석을 하면 21일 수행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워낙 스타일이 강하다 보니 아마도 제게 맞춰 주시느라 그렇게 허용해 주신 듯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태을주 도공 수행을 열심히 하고 상제님 진리에 대한 마음도 크게 열려 입도 의사를 밝혔으나 21일 수행을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입도의 최소 기준이라는 안내를 받고 결국 당시에 입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활 패턴에서 21일을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은 당시로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장과 다시 거리가 좀 생겼으나 코로나19가 잠깐 소강상태에 있던 때에 상생방송을 통해 알게 된 ‘금산사’에 찾아가서 ‘시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고 같은 시기에 삼남길에 대한 방송을 접하고 정읍 탄강지를 거쳐 땅끝 해남까지 도보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강화도 마리산의 4개 루트를 등반하고 원주 치악산 둘레길을 돌며 ‘원천석 묘’도 답사를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송영대 수호사님은 간간히 SNS로 계속 역사 자료나 강의, 행사 등을 보내 주시며 소통을 하셨습니다.

이성과 감성이 합일된 상제님 신앙


그리고 다시 2022년 올해가 시작되면서, 그간의 증산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상제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 간소한 제물을 준비하고 안양만안도장을 방문했습니다.

송영대 수호사님을 다시 만나 굳건한 결심을 하고 모든 일정들을 뒤로 한 채 21일 집중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호사님이 안 계실 때는 혼자서라도 도장에 나와 하루도 빠짐없이 21일 수행을 완수하여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강한 스타일과 묵은 관념들과 허물들을 벗겨 주시고 겸손하게 새로 태어나게 하시려고 21일 수행을 시켜 주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라는 종도사님의 말씀과 더불어, 이성과 감성을 각각 대표하는 철학과 종교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맞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성과 감성의 합일이 지극 또는 최상의 지위라 여겨 왔는데 바로 이성과 감성이 합일된 상제님의 가르침이 Silence-Light로 존재하는 곳이며, 신앙의 대상이겠구나!”라고 스스로 정의를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입도 후 상제님의 참도생이 되어 도전 공부를 통해 더욱 성숙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제가 가진 작은 능력과 경험이 초기 증산도 성전의 원형적 이미지를 건축화하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여도 해 보고 싶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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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적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사건들, 위기의 파도 이면에 숨어있는 파도의 실체,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우주가 흘러가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길찾기 입니다. 길을 찾아가는 인생. 성공의 길!

지금, 성공의 길은 생존의 길입니다. 생존이 성공입니다. 

 

 

사람이 가는 길을 인도, 차가 가는 길을 차도라고 합니다. 천지 대자연이 살아가는 길을 한 글자로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道에는 음양 짝이 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와 제의 관계입니다. 道를 깨달을 때, 바로 또다른 진리의 핵심인 帝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도道의 결론이 제帝입니다.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입니다. 

 

 

1만년 국통맥, 환국·배달·조선, 북부여로 이어지는 뿌리역사! 7150년 역사를 완전히 새카맣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문화의 중심에 있던 상제帝를 잃어버렸고 핵심인 帝가 다스리는 우주의 길, 道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한민족은 환국시대부터 의 종주국이었습니다.

도의 첫번째 깨달음의 문서가 바로 천부경입니다.

 

 

천부경 81자, 천지의 이치를 드러낸 경전입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대로 부합된 경전인데 여기에 깨달음의 한구절이 있습니다. 두번째 줄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입니다. 벌써 1만 년전에 하늘이 무엇이고 땅이 무엇이며 우주 천지 자연의 존재이유가 무엇이고 그 목적지가 무엇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정의해 놓았습니다.  

하늘은 1, 땅은 2, 인간은 3
(하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 인간은 천지부모의 자녀)

천부경을 달통한 환국 다음의 배달국 시대의 태호복희씨가 태극기 8괘를 그리게 되는데요. 

 

 

아버지의 생명은 정, 어머니의 생명은 난이라고 하는데 하늘 아버지의 생명은 양, 땅 어머니의 생명은 음이라고 하는데 수학으로 정의하면 하늘은 1, 땅은 2라고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강화도 고인돌

 

이 놀라운 도의 깨달음은 한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강화도 고인돌인데요. 상판은 하나, 기둥 둘을 세워 지도자를 묻었습니다. 상판에 있는 돌 하나가 무려 53톤 입니다. 53톤의 돌을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까요? 그만큼 천지에 대한 도道의 깨달음이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척도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 문제는 천지 부모에 대한 깨달음을 잃어버린 것에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 중 얼굴에 입이 하나요, 콧구멍이 두개 입니다. 음양의 기운이 만나서 코로는 하늘의 기운을 마시고 입으로는 땅의 유형의 곡식을 먹고 자랍니다. 천지를 떠나서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천지를 알고 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늘과 땅에서 몸과 마음을 받고 태어나 살다가 언젠가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매 순간순간도 천지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천지에 대해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道에 대해 워낙 강조를 하셔서 우리나라 어디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다 道입니다.
인간은 어디서 살든지 도하지道下止하라! 도를 떠나지 말라는 뜻에서 다 道라고 되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대개 우리는 아침이나 새해에 서로에게 덕담을 합니다."좋은 아침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럼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어떤 말을 해줄까요?

 

도리도리 道理 → 도가 흘러가는 이치를 알아서

까꿍 覺弓 →

까꿍, 원래는 각궁 입니다.

'궁'을 깨달아라 

이것이 바로 도와 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가오는 우주의 가을에 성공할 수 있는 법방이 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에 모든 병은 道를 잃어버린데서 왔다.

 

 

 

 

소병 → 코로나 등 박테리아, 바이러스, 세균으로부터 오는 병

대병 → 인류가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병 

대병은 인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1+2 = 3 너무도 명확합니다. 인간은 천지를 그대로 담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죽음은 대우주 하나가 된 것과 같습니다. 역사를 살아오면서 어떤 한 인간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것은 뭐냐? 우주 하나가 파괴된 거예요. 그 수억조의 인간의 파괴 속에서 수 많은 원한의 불길이 이 우주 속에 꽉 차서 언젠가는 대병으로 폭발한다는 소식, 이 대병의 실체를 아셔야 합니다.

 

 

다가오는 소병, 대병을 극복하는 비법을 알고자 하고 진리를 갈구하시나요?

무서운 전염병을 극복하는 비법이, 증산도 태을주 속에 숨겨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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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편집된 태을주 mp3가 필요하신 분들도 연락주세요^^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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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은 어떻게 전해져 왔는가? 

 천부경 유래와 천부경 해석



<천부경>의 유래

 


 


<환단고기>에 따르면 <천부경>은 인류의 시원국가며 우리 민족의 뿌리인 환국으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글이다.
그 후 약 6,000년 전 배달국 시대에 환웅천황이 천부경을 신지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자로 기록하게 했다.
녹도문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자로, 사슴 발자국 모양을 따서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환웅천황을​“<천부경>의 비조” 로 꼽기도 한다.

 그러다 단군조선에 이르러 전자篆字로 전하게 됐다.

<환단고기> 중 <천부경> 81자.

 


최치원이 전자를 한문으로 옮겨훗날 신라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옛 비석에 전자로 새겨진 천부경을 보고 한문으로 풀이하여 서첩을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

고운의 문집인 <최문창후전집>에 실려 있는 <고운선생사적>에는 “태백산에 단군의 전비가 있었는데 그 글을 읽기가 몹시 힘들고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고운이 그것을 번역했다.” 라고 기록돼 있다.

 


<태백일사>와 묘향산 석벽본최치원 이후 천년의 세월을 지나 조선조 중종 때 일십당주인 이맥李陌(1455-1528)이 <태백일사>에 천부경을삽입하여 그 명맥을 이었다.

한편 1911년 <태백일사>를 포함한 5종의 사서를 망라하여 <환단고기>를 편찬한 운초 계연수(1836-1920)가 그 뒤 1916년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발견하고 이를 탁본하여 세상에 전했다. 최치원이 한문으로 번역하여 새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를 ‘묘향산 석벽본’ 이라고 통칭한다.

 



이상은 대개 <태백일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약술한 것이다.

 다만 최치원이 묘향산의 한 바위에 <천부경>을 새겼다는 말은 없다는 사실을 특기해 두어야 한다.

‘묘향산 석벽본’ 과 <태백일사>의 그것은 전문이 일치한다.

<최문창후전집>과 노사본<천부경>의 다른 본本으로는 고운의 문집인 <최문창후전집> 뒤편에 실려 있는 것과 노사蘆沙(기정진 1798-1876)본이 있다.

전자는 고운의 친필이 아니고 1926년 후손인 최국술이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소개된 것을 문집재편집시에 <고운선생사적>에 수록한 것이다.


 ‘묘향산 석벽본’ 과는 7개의 글자가 다르다.

그런데 일곱 자 모두음은 같아 누군가 암송하던 것을 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자인 노사본은 조선말의 유학자 노사 기정진 계통으로 전해진 것으로 지금도 적지않게 유포돼 있다.

석벽본과의 차이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지地’가 ‘중中’ 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 본이 그 출처를 최치원에 두고 있음은 공통적이다.

<농은 유집본>에 전하는 갑골문 <천부경> 

 



이밖에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으로 기록된 <천부경>이 전한다.
고려 말 육은六隱 중 한 사람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1328-1401)의 ‘농은 유집본遺集本’ 이다.
역시 묘향산 석벽본과 다른 글자가 눈에 띄는데, ‘석삼극​析三極’에서 ‘석析’이 ‘신新’, ‘삼三’ 이 ‘기氣’, ‘운삼사運三四’에서 ‘운運’이 ‘충衷’으로 돼 있다. 그렇지만 모두 81​자인 것은 변함이 없고 전체적으로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가운데 <태백일사>에 실리고 묘향산 석벽에 발견된 ​<천부경>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 <천부경>

<천부경>은 환국 이래 국가적으로 매우 중시된 경전이었다. 그것은 나라 다스림의 경전인 동시에 기도문이었으며 또한 삶의 규범이었다. <환단고기>에서는 여러 대목에서 <천부경>을 언급하고 있고 <단기고사>에서도 <천부경>이 언급돼 있다. 

* 환웅천황께서... 백성에게 교화를 베푸실 때, <천부경>을 풀어 설명하시고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큰 가르침을 베푸셨다. <삼성기>
* (11세 단군은) 모든 유희가 끝난 뒤에 누대의 전각에 오르시어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를 강론하시고...<단군세기>
* (대진국 4세 문황제께서) 이듬해(738)에 태학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태백일사]<대진국본기>)
* 시조의 천부경을 참고하여 보면... 이것이 일시무시인데, 일이 무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제2세 단군 부루에게 석자장石子丈이 아뢰는 말에서, <단기고사> 제2세 부루)

또한 앞 기록의 출처인 <태백일사>에서는 목은 이색(1328-1396), 복애伏崖 범세동范世東 등이 <천부경> 주해를 남겼다고 밝히고 있다.

 



김시습의 <징심록추기>와 <천부경>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과 거의 동시대 사람이며, 생육신 가운데 하나인 김시습(1435-1493)은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서, 우리 역사상 왕권과 결부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금척金尺에 천부경이 새겨져 있음을 전한다.

 

금척이 <천부경>의 원리를 본 따 제작됐으며 <천부경>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금을 사용했고 무오류성을 지닌, ​우주 만물의 척도로서의 자(尺)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금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내가 일찍이 금척지를 읽으니, 그 수리가 매우 어려워 알수가 없었다.

 

대저 그 근본은 곧 천부의 법이다... 그형상은 삼태성이 늘어선 것 같으나 머리에는 불구슬을 물고 네 마디로 된 다섯 치다. 그 허실의 수가 9가 되어​ 10을 이루니, 이는 천부의 수다.



정조 때 삼성사 제문과 <천부경>

또 정조 때 구월산 삼성사에서 올린 치제문致祭文에는 “천부보전天符寶篆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실적 물증이없으나​, 그 신성神聖이 이로 인해 서로 전수한 것이 동국역사에서 일컬어지고 있음이 그 몇 해이런고.”(중요민속자료 제218-10호 치제문) 라고 기록돼 있다.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는 환인, 환웅, 단군의 삼위 성조 위패가모셔져 있는데 고려와 조선의 역대 제왕들이 이곳에서 치제를 드렸다.

 

정조가 올린 제사 가운데 낭송되었을, 위구절에는 <천부경>을 천부보전으로 일컫고 있다. 보전은 존귀한 전문이란 뜻이다.

 

치제문은 천부보전의 사실적인 물증은 없지만, 신성이 서로 그것을 계승했다는 기록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밝히고 있다.


천부보전에서 전篆 자는 ‘전자 전’, ‘글씨 전’ 으로 고대 한자체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데, 돼지 발자국같이 동글동글한 형태로 돼 있다. 큰 비석의 상부에서 이런 형태의 한자체를 자주 볼 수 있으며 도장, 도장 글에 쓰인다.

​이 점에 주목하여 정조 때에는 <천부경>을 바위나 석벽 등에 전자체 형태로 새겨져 전래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런 지적은 단군조선에 이르러 <천부경>을 전자篆字로 전하고, 최치원이 옛 비석에 전자로 새겨진 <천부경>을 보고 한문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매우 흥미롭다.

이상 <황경선, <천부경과 신교사상>, 19-32쪽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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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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