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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4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함께 찾아온 용의 전사 포,  쿵푸팬더를 보고 문득 궁금해져서 해석해 본 이너피스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영화에선 포가 시련을 마주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찾아 기를 발현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마주하고 우주와도 소통하며 뛰어난 쿵푸 실력으로 세상을 지켜냅니다.

 

우그웨이 대사부와 시푸사부 포가 이야기하는 이너피스Inner peace, 마음의 평화를 찾아 진정한 나를 마주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조약돌, 모래알 심지어 원자까지에도 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쿵부 팬더에서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외면의 속 내면 즉, 정신과 의식을 중시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이 포인트에서, 정신과 물질은 일체로 존재하지만, 드러날 때는 양면적임을 나타날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이와 기라고 할 수 있죠. 즉, 이원적 구조이나 하나의 존재로 의식과 에너지로 뭉쳐진 본체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생명은 에너지와 물질인 기로 인해 탄생하고 존재하며, 법칙과 정신을 뜻하는 이를 따라 자하며 변화하게 되는데요.

그중 사람의 경우, 에너지로 뭉쳐진 육체와 정신 일체적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정신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 초물질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영화에선이 내면에 보이지 않는 마음 세계를 잘 갈무리 하면, 이너피스를 쳐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통괄하며, 본성은 마음의 밑바탕이고, 마음이 동한 것이 감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동방의 문화 신교 문화에서는 마음의 본성은 하늘과 땅, 생명의 본성과 동일함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과 결과, 즉 이너피스를 쿵부 팬더에서 잘 나타내 주고 있는데요.
우그웨이 대사부는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30년 동안 동굴에서 수련하였고, 시푸사부는 평정심을 찾아 우주와 소통하고 본인의 모습을 마주하기 위해 수행을 합니다. 그렇게 수행을 통해 생명의 본성과 세상의 변화 원리를 깨달은 캐릭터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억압해서 해방되어 우주와 세상, 생명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죠.
'나는 누구야? 나를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수행을 하게 되면 정체성도 잃어보고 좌절과 공허함도 맛보며 살다가 품는, 의문들 또한 해소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자유를 만끽하고 우주와 생명의 이상 비밀을 풀어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너피스는 바로
 
"수행으로 마음을 잘 닦는 것"

 

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데요. 마음을 잘 갈무리하게 되면 한없이 밝고 큰 본성을 찾고 빛으로 이뤄진 이 세상을 몸소 느낄 수 있으며 마음의 중심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혼란스러울 때 우주에게 답을 구해. 우주님, 당신인가요? 우주님, 길을 알려주세요.' 영화에선 끊임없이 우주와 소통하려고 하며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변화는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니 나를 알려면 내면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평정심을 찾아 진정한 변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됨을 관객들에게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뜻깊은 요소들이 콩푸 팬더에 잘 녹아 있기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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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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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으로 읽는 논어+역경 . 도올 김용옥 저 

『논어』와 『역경』,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그 흐름 속에서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잘돼야 할 것인가? 사는 게 여전히 힘든 요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색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동방인의 지혜와 동양 사상의 원천을 오롯하게 한 권에 담은 책이다.

동양의 지식인이라면 필수적으로 습득해야만 했던 『논어論語』와 약 1만 년 전의 인류 시원 경전 『천부경天符經』에서 발원한 우주 변화의 원리를 다룬 『역경易經』 전체를 단 한 권에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은 인류 고전의 최고봉인 두 문헌을 독자 누구든지 21세기적 감각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책이 출간되는 이 시점을 우리 민족의 역사가 위기와 불안, 도덕적 해이와 자본의 횡포 속에 놓여 있으며, 전 세계적인 정치적 리더십의 총체적 난국이 드러나고 있는 때로 보고 있다. 동시에 우리 문명의 창발적인 개화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대이기도 한데, 이 절묘한 시점에 순결한 우리말 경전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역해자가 『논어』와 『역경』, 불경과 기독교 복음서 그리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역해 작업들을 통해서 잘 드러내 온 관점이다.


왜 하필 지금 『논어』 + 『역경』인가?


동방인들의 삶과 사유의 근원으로 존숭받아 온 경전으로 우리는 예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꼽았다. 이 사서四書의 대표작이 『논어』이고, 삼경三經 중의 가장 어려운 문헌이 바로 『역경』이다.

저자에 의하면 『논어』는 모든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이론의 전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삶들의 영상이다. 『논어』는 삶의 원형이요 전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占치는 책으로만 알려진 『역경』에 대해서는 인간 삶의 중용적 목표를 가늠케 하는 동적 사유의 전개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易』은 변화의 경전이지만,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그려 가는 역사의 비전을 명료하게 만드는 심볼의 체계라고 하였다. 그래서 『논어』가 삶의 장면들이라면, 『역』은 그것을 엮어 내는 논리적 결구라고 선언한다.

『논어』는 우리에게 사람 되기를 가르치고 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에서 살아 있는 삶과 고뇌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500년 전의 사람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다 똑같은 욕망의 존재들이고, 삶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것인지 등에 관한 고충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에 맞춰 다르게 답을 전하면서도, 스스로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전하는 공자는 스승으로서 삶의 도리를 보여 주고 있다.

역해자는 이 책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논어』와 『역경』은 어떤 신념이나 신조나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논어』와 『역경』은 우리가 왜 도덕적이어야만 하는가, 그 사람됨의 이유를 가르쳐 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이나 사회과학적 창안이 아니다. 새로운 도박이 아니라 상식적 세계에 관한 도덕의 회복이다.

도덕은 공자가 말하는 인仁으로 우리가 회귀할 때만 세워지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논어』와 『역경』이 제시하고 있으며, 그 도덕의 총집결판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이라 말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난세 속에도 삶의 길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삶의 인간적 현장은 논어에서, 삶의 철학적 원칙은 역경에서 그 지혜의 순금 부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역해자는 결론지어 말한다. 공자는 결코 중국 사람이 아니고, 유교는 결코 중국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기독교가 이스라엘 종교가 아닌 것과도 같다. 공자는 고조선 영향권 속에 있는 작은 제후국 노魯나라 사람이고, 유교는 교단에로의 예속을 강요하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상식이다. 유교는 한국인의 도덕적 심성의 바탕이고, 한국인의 혈관에는 논어의 가치관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논어는 삶이고 역경은 사유의 근원이다. 역은 점이 아니라, 물음이고, 삶의 철학이라 말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


이 책의 역해자 도올은 한국의 대중들에게 『논어』와 『역경』을 긴 시간에 걸쳐 강의해 왔다. 『논어』는 “도올의 논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KBS 1 TV의 황금시간대를 활용하여 2000년 10월부터 64회에 걸쳐 방영되었고, 『역경』은 『도올 주역 강해』라는 주석서가 출간되면서 유튜브 도올 TV에서 2022년 7월 24일부터 강론이 시작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논어』와 『주역』은 모두 역사적으로 공자와 관련이 있어서 유교의 핵심 경전으로 꼽힌다.

그동안 역해자 도올은 사반세기에 걸쳐 『논어』와 『주역』 모두 방대한 주석본을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한 #『단 한 권으로 읽는 논어+역경』은 지금까지 정성 들인 주석을 다시 내면화시켜 소화된 언어로, 가장 평이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새로운 버전을 창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원전과 번역이 친절한 우리말 독음과 함께 완벽하게 실려 있다. 과거 역해자가 『노자도덕경』을 『길과 얻음』이라고 하는 한글 번역본만으로 냈던 전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는 『논어』와 『역경』의 한문 원문과 한글 독음, 그리고 필생을 통하여 갈고 다듬은 군더더기 없는 우리말 역해가 체계적으로 실려 있다.# 그래서 한문 실력이 없는 그 누구라도 읽을 정성만 있다면 능히 읽어 낼 수 있다. 역해자는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과 공자가 살았던 그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논어 사전」을 싣고 있다. 여기에는 『논어』에 나오는 주요한 고유명사(인명, 지명, 나라 이름, 역사적 군주나 인물, 공자 제자들의 이야기)와 추상명사가 세밀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객관적인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무미건조한 내용이 아니라, 『논어』를 읽는 데 꼭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리고 공자가 그의 삶에서 느끼는 방식으로 해설되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공자의 연표가 없으면 공자를 이해하기 어렵고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전관展觀할 수 없으므로 『공자 연표』도 함께 실었다. 이 『공자 연표』를 만드는 작업은 역사 문헌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요구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공자 연표』가 만들어진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의 지식에 의하여 『공자 연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한학계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역해자는 말한다.


『논어』와 『역경(주역)』
『논어論語』는 유교 사서四書의 하나다.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이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高弟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기재되어 『장자莊子』 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함께 3대 문장으로 한문 학습의 필수 교재로 사용되었다.

『역경易經(주역周易)』은 8괘八卦와 64괘, 그리고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십익十翼으로 되어 있다. 약 5,700년 전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가 처음으로 팔괘를 긋고 하도河圖를 그렸고, 4,300여 년 전 단군조선의 초대 단군 임금님께서 우임금에게 낙서洛書를 그려 주신 이후, 주周나라의 문왕이 주역 64괘의 괘명과 괘사를 붙였고 문왕팔괘文王八卦를 그었다. 또 공자는 『역경(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그 원글을 해석하고 이치를 밝힌 『십익』을 저술하였다.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편, 상전象傳 상⋅하편, 계사전繫辭傳 상⋅하편,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이 그것이다. 이 주역은 동방의 이 땅에 태어난 김일부金一夫(1826∼1898) 대성사가 편찬한 『정역正易』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지은이 도올 김용옥


우리 시대와 호흡하며 살아온 철학자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신학대학교, 대만대학, 동경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엄밀한 학문의 훈련을 받았다. 인류의 고전을 살아 있는 우리말로 바꾸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작품들은 배움에 뜻을 두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던져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고전학의 기본 텍스트로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경전들이다.

이 책은 논어와 역경에 관한 저자 도올 김용옥의 학술적 성과를 총망라한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서 주역과 관계된 〈왕부지의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 그동안 『도올 논어』 전 3권, 『논어 한글 역주』 전 3권, 『도올 주역 강해』 등을 펴내면서 논어, 역경에 관한 연구를 최근까지 치열하게 해 왔다. 그러므로 단 한 권에 그 정수를 담은 이 책은 『논어』와 『역경』에 대한 저자 도올 김용옥의 최종판이라 할 수 있다.

짓거나 역해한 책은 『논어 한글 역주 1.2.3』, 『중용한글 역주』, 『맹자, 사람의 길』 상⋅하, 『대학⋅학기 한글 역주』, 『도올 주역 강해』 등의 동양 고전과 『동경대전 1 - 나는 코리안이다』, 『동경대전 2 - 우리가 하느님이다.』,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등의 국학 경전, 그리고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인도로 가는 길』 1⋅2,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기독교 성서의 이해』, 『도올, 시진핑을 말하다』, 『논술과 철학 강의』 1⋅2, 『난세 일기 -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되돌아본다』 등이 있다.


태상종도사님 어록 속에 인용된 논어, 역경 구절들


증산도의 뿌리이신 태극제 안운산安雲山 태상종도사님께서는 재세 시에 도생들을 교육하실 때, 상제님 진리 외에 가끔 동양 고전을 인용해 주실 때가 있었다. 그중 『논어』와 『역경』을 언급하신 부분이 꽤 된다.
마침 3월 12일(음력 2월 3일)은 태상종도사님 어천 12주기가 되는 날이어서, 태사부님께서 내려 주셨던 도훈 중 논어와 역경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도훈 내용은 증산도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으며, 번역문은 도올의 문장으로 하였다. 도올의 책에는 별다른 현토가 달려 있지는 않다. 아마 공자가 위편삼절韋編三絶하며 보았던 원형 그대로의 『역경』을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불치하문不恥下問“옛말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아닐 불 자, 부끄러울 치 자, 아래 하 자, 물을 문 자. ‘아랫사람에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말 배우기가 참 쑥스러운 일일 것이다. 너희들끼리도 서투른 것은 서로 배우고, 교육시키는 데에 자꾸 쫓아다니다 보면 가르쳐 달라고 안 해도 자연 들으면 배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부족한 건 보충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교육을 시켜라.  

그리고 간부들은 신입 신도가 들어오면 상제님 진리를 환하게 꿰뚫을 만큼 교육을 시켜라. 자꾸 얘기도 하고. 또 ‘상제님 태모님, 상제님 태모님, 상제님 태모님’을 주문 읽듯 자꾸 찾고, 태을주도 몸뚱이에서 냄새가 나도록 읽어라. 태을주 냄새가 나도록 주문 읽고, 상제님의 혼이 돼서 신앙을 해라. 교육을 많이 시켜서 나보다 더 잘 믿는 사람을 만들고, 또 교육을 시키다 보면 자연 내가 모르는 것도 알아지고 진리도 늘게 돼 있다. 그렇게 해서 그저 상제님의 혼이 돼야 된다. 천지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

자공문왈 공문자하이위지 문 야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 ‘文’也?”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 문야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 ‘文’也”

자공이 여쭈어 말씀드렸다. “공문자(孔文子, 공문자는 위나라의 중신重臣으로 성姓은 공孔, 명名은 어圄, 문자文子는 시호)를 어찌하여 문文이라 시호하였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영민한 사람인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문이라 일컬은 것이다.” - 『논어』 「공야장公冶長」 (45쪽)



●인지장사人之將死에 기언야선其言也善“조지장사鳥之將死에 기명야애其鳴也哀하고, 인지장사人之將死에 기언야선其言也善이라. 새 새끼, 짐승도 죽을 때는 슬프게 운다. 아무리 못된 사람도 죽을 때는 “아이구, 내가 잘못했구나. 잘 살 걸. 산 세상에 참 너무나 잘못했다.” 하고 뉘우치면서 죽는단 말이다.  

생사 양로밖에 없는, 요 말세의 기로에서 우리는 다행히도 조상의 음덕으로써 좋은 하나님 진리를 만났으니 우리 능력이 허락하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심만 가지면 암만 몹쓸 병에 걸려도 천신이 감동해서도 다 나을 수가 있다. 낫는 데까지가 일심이다. 기적이 일어나서도 산다.

왜 태을주를 읽으면 차 타고 가다가 차가 납작쿵이 돼서도 그 안에서 살아나는가? 차가 납작쿵이 됐는데 차를 뜯어내고 보면 허물 하나도 안 벗어졌다. 잘 믿은 사람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건 사실이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 걸 기적이라고 한다. 상제님 신앙을 잘할 것 같으면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신앙을 잘해서 그런 기적을 받아라. 꿈에도 바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말로써 표현할 수도 없는 기적! 천신天神이 감동해서 천은天恩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신앙을 해라.”

증자유질 맹경자문지 증자언왈 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기언야선
曾子有疾 孟敬子門之.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
군자소귀호도자삼 동용모 사원폭만의 정안색 사근신의 출사기 사원비배의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 出辭氣 斯遠鄙倍矣
변두지사즉유사존
籩豆之事則有司存”.

증자가 병환이 깊었다. 맹경자가 병문안을 왔다. 이에 증자는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 새도 죽으려 하면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아름답고, 사람도 이 세상을 하직함에 그 말이 착하여 들을 만한 것이라오.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도道가 세 가지가 있다오. 용모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폭력과 태만을 멀리하시오. 얼굴빛을 바르게 할 때에는 반드시 신실信實함에 가까워야 하오. 말을 입 밖에 낼 때에는 비루함과 거역함을 멀리하시오. 예라는 것은 사소한 규정이 아니라오. 제기를 어떻게 진열할까 하는 일 따위는 유사有司에게 맡기시오.
- 『논어』 「태백泰伯」 (71쪽)



●언충신言忠信, 행독경行篤敬“증산도 신앙을 잘하려면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고, 양심 속이지 말고, 진실되게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정의를 바탕으로 정의롭게 생활을 해야 한다. 이 증산도 종도사는 정의에 어긋난 것은 몸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절대 허락을 하지 않는다. 진리의 바탕 위에서 생사존망을 행위하는 사람인데 흔들릴 수가 있나. 또 정의롭게 사는 사람은 누가 건드리지도 못한다.

옛 고고학에 이런 말이 있다. ‘언충신言忠信 행독경行篤敬이면,’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성이 있으면서 행실이 돈독하고 조심성이 있을 것 같으면, ‘수만맥지방雖蠻貊之邦이라도 행의行矣어니와’ 비록 오랑캐의 땅에서 산다 하더라도 행세, 행동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언불충신言不忠信 행불독경行不篤敬이면,’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직하질 않고, 행실이 돈독하고 조심성 있지 않을 것 같으면 ‘수주리雖州里나 행호재行乎哉아’ 비록 제 마을, 제 동네에서도 행세를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정의롭게 거짓 없이 신용 지키고 남에게 믿음을 주고 그렇게 살 것 같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는 아무 데 가서 살아도 잘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못돼 먹고 충실치 못하고 남에게 믿음성도 안 주고 행실도 고약하고 그럴 것 같으면 제 동네에서도 배길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지가 제 행동을 뜯어먹고 산다. 저하기에 매여 있다. 하니까 사람은 신앙을 떠나서도 우선은 정의롭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남을 용서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봉사 정신, 내 에너지를 남에게 나누어 주는, 남의 걱정을 잘해 주는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인자仁者는 무적無敵이라, 착한 사람은 적이 없다.”

언충신 행독경 수만맥지방 행의 언불충신 행불독경 수주리 행호재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어린 제자 자장子張이 도道가 세상에 행하여지는 것에 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이 충신忠信하고 그 행동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만맥蠻貊의 색다른 나라라 할지라도 도가 행하여질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하지 못하고 그 행동이 독경하지 못하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도 도는 행하여지지 않는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 (147쪽)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사람 종자, 알캥이를 맺는 것은 조상에서부터 생활을 잘해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 일 년에 곡식 종자가 70프로 열매 맺기도 하고, 80프로 열매를 맺기도 하고 알캥이를 꽉 차게 맺는 것과 같다. 조상에서 사회생활을 잘못하면 그 자손들은 가을철에 가서 빈 쭉정이밖에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사람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것은 조상들이 행위를 잘해서 덕을 쌓고 공을 쌓아 자손들에게 그 업적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게 혈통으로 물려지는 것이다. 그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된다. 바르게 살면 그 업적이 자손에게로 간다.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면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덕을 쌓은 집은 반드시 남은 경사, 남은 복이 있고’, 즉 좋은 복이 자손에게 물려진다는 말이다. 또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악한 것을 쌓는 집은 남은 악이 있다’, 조상에서 지은 악업이 자손에게 돌아간다는 소리다. 남에게 잘해 주고 적덕을 하면 자손에게 그 업적과 덕이 물려져 그 복이 자손에게 돌아가고, 못되게 생활하면 그 남은 악이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사람이 좋게 살아서 좋게 사회생활을 하면 그 자손에게 복이 돌아간다. 그렇게 천지에서 사람 농사를 지어 가을이 되면 사람 씨알을 추린다.”
 

문언왈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文言曰 ···(중략)··· 積善之家, 必有餘慶 ;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선을 대대로 쌓는 집안에는 항상 그 후손들에게까지 남아돌아가는 축복이 있고, 불선을 대대로 쌓는 집안에는 항상 그 후손들에게까지 남아돌아가는 재앙이 있다. -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



도올의 책에는 수식하는 아름다운 말이라는 뜻의 문언文言을 비롯한 전傳(=십익)이 아쉽게도 없다. 실제 우리가 『주역周易』을 읽는다든가, 『주역』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 “역경”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역전易傳”에 관한 것이라고 역해자의 또 다른 저서인 『도올 주역 강해』에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점으로서의 역이 아닌 학學으로서의 역은 공자가 지었다고 하는 십익十翼이라는 전傳의 세계에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적선지가”는 문언전에 나오는 내용이라 부득이 『도올 주역 강해』 154쪽 부분을 인용하였다.

여기에서 불선不善은 좋지 못하다는 뜻으로 실체적인 “악惡(the Evil)”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악을 싫어하다, 추하다는 의미의 오惡로 본다면 비슷한 뜻이 되기는 한다. 역해자는 불선을 쌓을 수 있는가 하면 선을 쌓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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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인이 본 영화  영화 <파묘>의 메시지

- 여우였던 무라야마 지준 ,보천교

 

영화 <파묘>에서 무라야마 지준(준지)의 비중이 높지않아서 감독이 말하는 메시지는 아니지 않나싶었는데, 무라야마 지준(村山 智順)에 관한 논문을 읽다보니, 정작 영화에서 말하는 모든 사건의 원흉은 무라야마 지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곡성>에서도 무라야마 지준이 배경으로 나오는데요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일본에서 풍수나 주술, 천문 등 음사와 관련된 것들은 음양사들이 맡아서 했습니다. 영화에서 친일파에게 묘를 쓰라고 한 '기순애=키츠네=여우=음양사=무라야마 준지'였죠

 

 

 

"신으로 모셔져 있던 이 몸은 원래 남산의 신궁으로 갈 예정이었다. 망할 여우 놈이 이곳에 데려왔지"


3·1운동 직후인 1919년 7월 18일, 아마테라스 신과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하는 조선신사, 곧 “신사를 조선 경기도 경성부 남산에 창립하고 사격을 관폐대사에 열列할 것”이라는 내각고시가 내각 총리대신 하라 다카시原敬로부터 나왔습니다. 

 

서울의 남산에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으로 불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천조대신)와 메이지 천황을 모신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인의 조상과 통치자를 일본인의 조상과 통치자로 바꾸겠다는 뜻이죠 

 

 

일제는 일본의 신도(神道)를 식민지 조선의 국교로 하려했고, 불교, 기독교 이외의 민족종교(대종교, 천도교, 보천교 등)를 모두 신종교이자 유사종교로  분류하여 감시하고 탄압했습니다. 

 

"정령은 동물이나 인간의 영이 사물에 붙어 만들어진 거에요. 이 땅엔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될 것. 그것과 마주했을 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를 가능케하는 학문적 근거를 댄 인물이 무라야마 지준이었습니다. 무라야마는 <조선의 풍수>, <조선의 귀신>, <조선의 무격>, <조선의 점복과 예언> 등 네 권의 책을 쓰면서 조선의 민중신앙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며, 미신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무격에 의지하는 소극적 행태를 보인다'고 비하했습니다.

 

 

결국, 무라야마는 1935년 <조선의 유사종교>를 썼고, 조선총독부는 종교 담당부서를 학무국에서 경무국으로 옮겼습니다. 쉽게 말하면 종교 담당 부서를 지금의 문화관광부에서 행정안전부의 경찰청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때부터 한국의 민족종교(천도교, 대종교, 보천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 했습니다.

 

 

"이건 일본 귀신이다. 일본 귀신은 이유 없이 아무나 다 죽인다."


영화 중반부터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쓰는 풍수가 상덕, 무당 화림, 법사 봉길, 장의사 영근 등은 일본의 정령, 요괴와 대결을 펼칩니다. 소위 풍수와 정령, 귀신, 음양오행의 대결인데, 이것은 조선의 정신과 일본 정신의 대립으로 이해됩니다.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의 풍수와 귀신, 정령을 일본의 신도(神道)와 비교하여 전 근대적이고 미개한것으로 치부하였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우리의 무속과 전통 신앙, 종교를 '사이비'나 '이단' 정도로 치부합니다. 

 

일제강점기 무라야마 지준이 주도하여 조선총독부에서 한국인들의 머리(山) 속에 박아놓은 쇠말뚝은 '조선의 무속, 민간 신앙은 미개하며 야만적이다'라는 인식이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한국의 정신을 근대 시기 일제가 만든 종교(Religion)의 틀에 가둬놓고 '신종교,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로 왜곡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일제강점기 대일항쟁에 뛰어들고 민중의 희망이었던 동학(천도교), 대종교, 보화(보천교)는 그들이 규정해놓은대로 '종교'가 아니라 한국의 정신, 인간이 가야하는 길(道)이었습니다.

 

▼ 무라야마 지준과 조선총독부 관련 참고 논문

한 문화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면적이고 근본적이며 장식 없는 문화를 고찰해야만  한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그것은 묘지풍수라고 무라야마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묘지 풍수란 자손의 현실적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중략) 즉 묘지 풍수는 선인에게 안주할 땅을 바치고 이로써 그 영(靈)을 영원히 수습하려는 일차적 추효관념(追孝觀念)보다도 오히려 자손의 번영, 행복을 위해 선인의 분묘를 길지(吉地)로 구한다는 이차적이고 이기적, 현실적인 관념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무라야마는 조선인에게는 ‘불에 의한 정화’라는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잠재해 있어서, 악귀가 입을 통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불로  조리하는 것이 조선의 일반적인 식생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맵고 냄새나는 것을 악귀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고추, 파, 마늘이  많이 사용되며,  제사나 굿을 할 때 팥떡 등 적색음식물이 주로 사용되는 것도 축귀법의 일종이라고 하였다. (중략)  무라야마는 축귀법적 측면을  부각시켜서 조선의 문화가 귀신신앙의 지대한 영향만으로 이루어진 것인 양 일반화 했다고 할 수 있다. 

 

무라야마는 특히 조선의 민간신앙에서 주도적인 존재로서의 무(巫)의 폐해에 주목하였다.

 

그는 조선의 무격신앙을 ‘조선 민간의 기초신앙의 중추’라고 정의하면서도 악귀를 모신다는 이유 등을 들어 그것을 미신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총독부의 어용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성신문에서의 기사자료들을 인용하여 조선의 무격신앙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원시 민간신앙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대의 생활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며, “사상의 계발, 문화의 진보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반사회적인 범죄의 원인이 되고 경제생활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인들이 넓은 의미로서의 조상신인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초자연적인 힘 또는 존재를 설명하는 하나의 신앙체계로  인정하지 않고, 원시적이며 미신이라는 관점을 가진 무라야마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명 진화론적 입장에서 일본은 문명, 조선은 야만, 미개라는 양분적 사고 하에 조선의 민간신앙을 원시적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중은 자력갱생적 기력의 왕성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의 힘에 속박되어 운명관, 숙명관의 인생관에서 해방되지  못하였으며, 과학적인 지식의 보급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현상에 대해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는 상식적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의 민중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려 하지 않고 다만 축귀로 귀신의 재앙을 없애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극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러한 소극적 생활유지욕구가 귀신의 활동을 더욱 성하게 하고  무격을 찾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무라야마는 보았다.

 

김희영. (2009).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인식 -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를 중심으로. 日本文化學報, 0(43), 323–342.

 

3·1운동 이전인 무단정치시기에는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식민지 종교정책의 기반이 조성된 때로서, 1911년 불교 통제를 위한 ‘사찰령’과 유림 회유를 위한 ‘경학원 규정’을 만들고, 1915년에는 신도와 기독교를 규제하기 위해 ‘포교규칙’을 제정한 것에서 그 특징을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 한국 ‘신종교’를 이른바 ‘유사종교단체’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본 천황의 신격화와 신사참배 및 내선일체 사상이 강요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1939년 종교단체법이 만들어지며 ‘신종교’의 입지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강제해산당하거나 오히려 종교보국운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즉 종교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종교정책이 조선총독부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도, 불도 그리고 기독교만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모두 ‘좌도(左道)’ 또는 ‘사교(邪敎)’나 ‘유사종교’ 혹은 ‘사이비종교’ 등으로 규정되는 상황이었다.

 

1919년 문부성 종교통첩에 나오는 ‘종교유사의 행위’라는 표현 이후 1926년, 1929년의 ‘제2차종교법안’과 ‘제1타종교단체법안’에 나오는 ‘유사종교’라는 용어가 1920년대 후반 조선에서도 정착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지고 있다

 

이후 ‘유사종교’라는 용어는 1935년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朝鮮の類似宗敎』에 이르러 한국의 ‘신종교’를 학문적으로 분류하는 범주로 악용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일제가 이 ‘유사종교’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의 ‘신종교’를 통제, 탄압, 해산하는 근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신종교’를 종교단체를 담당하는 학무국이 아니라 경무국을 중심으로 감시, 탄압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 한국에서 자생한 민족종교는 정식 종교가 아닌 ‘유사종교’로서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제시하여 엄중한 관리와 와해 또는 해체를 유도했던 것이다

 

무라야마 지쥰(1891~1968)은 일본 니이카타 출신으로 일찍 어머니를 잃은 뒤 묘광사에 들어가 그 사찰 주지 무라야마 지젠의 양자가 되었다 한다. 그는 1916년부터 1919년 7월까지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종교사회학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조사활동을 하는 한편 세브란스 전문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한다. 1941년 무라야마는 조선 총독부 촉탁직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조선장학회의 주사로 근무하였고 1945년 양부 무라야마 지젠이 세상을 뜨자 그 사찰의 주지가 되었다. 

 

그가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활동하던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일제의 조선통치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시기로서, 이른바 ‘내지연장주의에 의한 동화(同化)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시기이다. 즉 이 시기 일제의 구관(舊慣)제도에 대한 조사사업도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는데, 무라야마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조선 사람들을 정신적, 사상적으로 어떻게 하면 동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조 중세부터 유사종교 발생 당시 조선민중의 정신생활은 지적 비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맹목적 신앙에 의지하며 대단히 현세적인 생활전개를 신비적으로 동경’하는 등 이른바 ‘조선민중의 무지’에서 한국 ‘신종교’ 출현의 배경으로 이해하고 있다.

 

‘유사종교’의 장래를 위해서는 ‘해산하든가 아니면 외적 운동이 아니라 내부성찰에 전념하여 참다운 종교로 다시 태어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요컨대 당시 한국 ‘신종교’가 더 이상 ‘유사종교’로서 ‘민중들을 현혹시키지 말고 해산하든가 내부 성찰을 통해 다시 태어나 종교로서 공인을 받지 않으면 쇠퇴의 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한국 신종교가 ‘경제적으로는 곤궁을 초래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소요사건을 일으키고 민중을 신동하며 인심을 현혹하고 구습을 고집하고 진흥운동에 배치되는 등 식민지 통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로부터도 혐오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사상적으로는 혁명사상을 고취하고 민족의식을 농후하게 조장하였고 근로정신을 저해하고 사회운동 발생의 기초를 만드는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입장이자 분석결과를 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영, (2017). 식민지시대 한국 `신종교` 단체의 동향과 특징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1935)의 재검토를 중심으로. 韓日民族問題硏究, 0(32), 32, 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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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실 좋은 영화이지만, 슬픈 역사, 결론이 비극적인 내용을 본다는 것이 마음 한켠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조금 늦게 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또 얼마나 분노할 것인가?'

망설였지만,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서울의 봄

어릴 때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를 보면서, 슬피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영호남이 갈라지고 정치색이 나누어지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것이 아닌가?'

 

중국 댓글부대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과 북한에서 댓글부대를 동원하여서 남한의 여론 분열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남녀간의 성갈등, 영호남의 지역갈등, 세대간의 갈등....

이 모든 것이 북한과 중국의 댓글부대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그들이 분열을 일으켜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미동맹의 균열, 한반도의 공산화, 그리고 이후의 어떤 획책하는 일들에 대한 전략적 조치일 것입니다.

 

저는 지역갈등, 성갈등 어느쪽이 옳다고, 낫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올 뿐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나의 고향이 어디든, 나의 성별이 무엇이든 옳은 것은 옳다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는 보아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성별이 아니더라도, 그 말이 정말로 맞다면 그것을 인정해야하고,

내가 고향이 다르더라도, 그 말이 정말로 맞다면 그것을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내가 고향이 경상도니까, 내가 고향이 전라도니까

내가 성별이 여자니까, 남자니까, 내 이권이 걸려있는 일이니까

그 쪽의 편을 들기만할뿐, 정말 필요한 균형적인 시각으로서 바라보고,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현재, 중국과 북한의 댓글부대가 활개를 치고, 국론은 더욱더 분열화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자기의 권력욕, 명예욕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추악한 인간들은 정치를 자기의 출세의 수단으로 여겨, 자기의 부귀영화를 일구는데 전념합니다.

국민을 생각한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추악한 욕심에 왜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이 되어야 하나요?

국민들 또한 문제가 많습니다.

나에게 밥한번 사주었다고, 나의 친척이라서, 나와 고향이 같고, 같은 학교의 선후배라고

그 사람을 뽑아주고 밀어주고 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가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단점으로 '우민정치'를 이야기합니다.  멍청한 민중이 하는 정치를 이릅니다.

선거를 한다고 나눠주는 명함에 보면, 핵심공약을 적는 위인은 드물고, 자기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고 그 내용만 적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인간은 절대 뽑지말자. 이걸 선거 명함이라고 만들어서 뿌리고 있다니...."

 

서울의 봄 노태우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전두환)이 노태건(노태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기 남아있는 놈들이 모두 자기한테 콩고물 떨어질 거 때문에  저 남아있어~.

그리고 내가 그 놈들 아가리에 터지도록 넣어주겠어!!"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그런 내용의 대사를 이야기합니다)

 

정말 그 대사대로,

하나회가 신군부가 되어 정치를 잡고,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승승장구를 달리게 됩니다. 

참,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한 사람의 권력욕이 역사를 어떻게 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 하나회

 

증산도 도전에는 정치에 대해서 이런 재미있는 도수가 있습니다.

 

 

정치가 앞으로 더 썩을 것이다, 라는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입니다. 

증산도 도전에 적힌 이 말씀 그대로 정치는 더욱더 부패하고, 통합하여 사회화합을 이루려는 쪽이 아닌,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하려는 쪽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영화도 그러한 역사의 한 편으로 보여 슬픈 영화였습니다.

 

 

 

 

 

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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