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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陰陽으로 돌아가는 우주,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1)

진리를 찾아 나선 우리 인생


‘나는 누구인가?’
‘우리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 인간까지 수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한 소식을 듣기 위해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고뇌해 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다르지 않은 물음과 의문을 가슴속에 지닌 채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세속적인 삶에 끌려다니게 되면서부터 이런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사는지, 삶의 목적과 명분을 뚜렷이 찾을 수 있다면, 공자가 말한 ‘조문도朝聞道 석사가의夕死可矣(아침에 도를 깨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의 경지에 다다른 게 아닐까? 만일 진실로 아침에 도를 깨쳤다면, 그 이후의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과 대면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내가 들은 도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하고, 모든 이들이 깨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이 밝달국 환웅천황께서 열어 주신

홍익인간弘益人間 의 심오한 경지에 근접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이 인간을 낳아 기르는 깊은 뜻을 안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과 형극의 길도 감내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다 간 여러 성자도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 구원의 도덕을 가르쳤다. 그들의 가르침도 그 시대에 맞게 불변의 위대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 속에 복잡하게 얽힌 온갖 모순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광활한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는 첨단 과학도 인간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의 종교, 과학, 철학 등 그 무엇도 지구촌 70억 인류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 주고 있지 못한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공허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사제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가 언급한 다음과 같은 지적에 귀 기울일 만하다.


 

이것은 모두 ‘이야기(story)’의 문제다. 우리는 두 이야기 사이에 있다. ‘옛 이야기(old story)’는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멋진 ‘
새 이야기(new story)’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The Cultural Creatives』(Paul H. Ray and Sherry Ruth Anderson)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가르침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절실하다. 대자연과 인생의 목적, 우주의 신비와 우리 인류의 참된 구원과 미래에 대한 의문 등 지금까지 감춰진 모든 궁금증을 사이다처럼 속 시원하게 풀어 줄 새 이야기! 그 새로운 진리 이야기는 상제님의 강세로 시작되었고, 이제 구체적 스토리의 토대를 들여다볼 기회가 왔다. 그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 시대


우리는 왜 자연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가?인간과 만물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다가 돌아간다. 따라서 우리 삶과 문명에 대해 명쾌하게 한 소식을 전해 주는 새 이야기는 대자연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래 천지자연을 뜻하는 ‘우주宇宙’란 집 우宇 자, 집 주宙 자로 인간과 만물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 전체를 말한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 조물주의 본래 마음[성性]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 하였다. 이를 일찍부터 깨달은 동방 한민족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받들어 왔다

천지부모天地父母


우리 인간은
천지가 변화하는 시간대의 큰 틀을 알고 그에 맞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때의 정신에 순응하며 살아야, 진정 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크게 열고, 광대무변한 대자연 속에서 태어난 ‘삶의 목적’을 확연하게 깨칠 수 있다.

자연 속의 두 기운, 진리의 기본 틀 음양陰陽일찍이 동양에서는 대자연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그 결론으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 번은 음 운동을 하고 한 번은 양 운동을 하면서 생성⋅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근본 질서인 도道(『주역』 「계사전」)’라고 하였다. 음陰과 양陽, 이것이 인간과 만물을 지어 내는 자연 속의 두 생명(기운)이다. 우주는 서로 다른 이 음양이라는 두 기운이 대립하고 조화하면서 만물을 생성해 나가는 것이다.

음양陰陽 운동의 가장 큰 주체는 하늘과 땅이다. 하늘은 생명을 내려 주고 땅은 생명을 낳고 길러 낸다. 대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하늘과 땅의 거대한 품속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다.
하늘과 땅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자 진리의 원형이다. 이 하늘과 땅을 대행하여 음양의 조화 기운을 내보내는 주체가
해와 달[일월부모日月父母]이다. 해는 빛을 통해 양기陽氣 변화를 주도하며 달은 인력引力을 통해 음형陰形의 변화를 주도한다.

이런 일월의 음양 변화 로 낮과 밤이 순환하면서 하루의 질서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만물이 탄생, 소멸한다. 음양 기운에 의해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며 남녀가 결합, 조화됨으로써 생명 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 음양을 상징하는 일월과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봉우리 그리고 물과 소나무가 그려져 있으며, 임금이 임하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나 어좌御座 배경에 설치되었다. 오직 조선에서만 제작된 그림이다.(국립고궁박물관)



인간의 몸 역시 유형인 육체와 무형인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신도 유형인 정精과 무형인 신神이 결합한 것이다. 이 정과 신이 일체가 되어 ‘인간 생명 운동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인간 생명은 호흡 운동과 기혈 운동의 음양 변화로 지속된다. 음양의 변화로 사물에는 겉과 속, 안과 밖이 있으며, 공간은 위아래, 앞뒤, 좌우가 있다. 음양은 상대성相對性을 큰 특징으로 하면서, 대립성對立性과 제약성制約性, 호근성互根性과 상보성相補性, 순환성循環性 및 동시성同時性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변화의 기본 틀, 음양오행 운동 

음양 운동은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변화의 기본 틀이다. 미세한 원자 세계로부터 광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가 ‘일음일양 운동’ 아님이 없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체와 사물, 인간 역사 등 우주 안의 현상 세계가 전부 음양 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천지 안의 만사 만물은 물론 신의 세계에 대해서까지 음양적으로 사고를 해야 한다.

이제 우주는 어떻게 음양 기운을 천지 공간에 퍼뜨리며 창조 활동을 지속하는지 살펴보자.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어렵다. 반드시 마음의 눈(심안心眼)을 떠서 천지의 거대한 생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천지일월의 음양 조화는 ‘물과 불[수화水火]’의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나타난다(태수太水, 태화太火). 이 수화의 생명이 우주 변화를 이루는 중심축이다. 수화가 다시 음양의 변화 운동을 통해 목화금수木火金水의 사상四象으로 펼쳐지면서 만물이 탄생⋅성장⋅성숙⋅폐장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질서 를 빚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목木은 인간과 만물을 싹트게 하는 생명으로 봄을 낳고, 화火는 분열 성장시키는 기운으로 여름을 만들며, 금金은 만물을 성숙시키는 생명으로 가을을 창조하고, 수水는 폐장⋅휴식하게 하는 기운으로 겨울을 이룬다. 그런데 이 사상의 힘만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약하다. 목화금수, 이 네 가지 기운이 순환하면서 만물의 생명 창조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음양의 상극相克(相剋)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지닌 ‘변화의 본체’ 기운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토土기운이다. 사상과 토를 합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오행五行 이라고 한다. 이 오행의 상호 작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부연하자면 오행은 만물을 낳고 기르는 다섯 가지 기운이 모이고 흩어지며 순환하는 것을 일컫는다. 목화토금수는 나무나 불 등 현상계의 사물이라기보다는 무형적인 생명 기운을 일컫는다. 그렇다고 현상적인 면을 무조건 배제하는 게 아니니 무형과 유형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음양오행으로 돌아가는 우주 변화의 원리는 인생과 만물이 변화하는 순서이자 질서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법칙이자 절대적인 이법理法 이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한동석 선생이 지은 『우주 변화의 원리』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음양 변화의 다른 말, 순역順逆 운동 - 원시반본음양 변화는 ‘순역順逆 운동’이기도 하다. 즉 봄여름철에 초목의 수액이 뿌리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와 나뭇잎이 벌어져 무성하게 자라는 것과 같이,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분열 성장해 가는 양陽의 과정은 거스를 역逆 자의 ‘역 운동’이다.

반면 분열의 극에서 극즉반極則反 하여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 수렴하는 음陰 운동은 순할 순順 자의 ‘ 순 운동’이다. 이때 근원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 한다. 원시반본은 ‘시원을 헤아려 근본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이 연재뿐 아니라 증산도에서 다루는 가을 대개벽의 모든 문제를 바르게 보는 핵심 주제이다. 이 역시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다.

인간과 자연이 길러 내는 네 박자 리듬, 생장염장生長斂藏



이제 우리는 천지가 음양 운동을 바탕으로 해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 ‘생명 창조의 춤’을 추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법칙은 무엇일까? 알고 보면 인간의 모든 역사는 바로 이 우주 변화의 이법을 탐구하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이 이법은 오직 천지를 주재하시는 상제님만이 밝혀 주실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4년 전 동방 조선 땅에 인존 천주님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고 길러 내는 자연의 근본 이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천지를 주재主宰
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
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도전道典 4:58:4)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께서 이렇게 대자연의 변화 섭리를 밝혀 주시기 전까지 어떤 과학자, 철학자, 성자도 명쾌하게 이를 드러낸 자가 없었다. 인류의 구도 여정에 큰 빛을 열어 준, 우주 변화의 이법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도 결론적인 해답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생장염장! 천지 안의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생장염장의 이법으로 태어나 변화해 간다.

생生

은 목木 기운에 의해 천지가 인간과 만물 생명을 낳는 봄의 원리이며,

장長

은 봄에 태어난 생명이 불기운[화火]에 의해 분열 성장하는 여름의 정신이다.

염斂

은 금金 기운에 의해 만물이 열매 맺는 가을의 변화 원리요.

장藏

은 수水 기운에 의해 폐장하는 겨울의 변화 섭리이다.

지구의 1년 사계절뿐만 아니라 하루(아침 점심 저녁 밤), 인간의 일생(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등 자연의 변화는 생장염장이라는 네 박자의 이치에 따라 무궁하게 순환循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가 생장염장의 이법에 따라서 인간 생명과 문명을 내고 기르는 더 큰 시간의 주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증산 상제님께서 처음 드러내 주신,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 1년 의 창조 법칙이다.

 

 

음양陰陽으로 돌아가는 우주, 닫힌 우주에서 열린 우주로(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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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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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이야기 - 세계로 뻗아가는 한류 1

 

본부도장 김덕기

 

드라마와 노래로 시작된 한류는 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의식주를 대표하는 한복과 한식, 한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류를 시샘한 중국이 우리 문화의 원조가 자신들이라고 우기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아보겠습니다.

 

태극의 선율이 담긴 한복

 

🌌한복에 담긴 역易 철학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중국은 “모든 것이 중국 것”이라는 논리를 전 세계에 선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한복, 삼고무, 상모돌리기, 장구, 떡 메치기, 윷놀이, 김장, 강강술래, 한과, 꿀떡, 막걸리’ 등 우리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포장했습니다. 문화 침탈을 넘어 문화 강탈을 한 것입니다. 특히 중국은 한복韓服의 원조가 한족漢族의 전통 복식인 한푸漢服라고 우기면서 한복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옷은 인간의 의식 구조 발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복을 지키고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의복은 단지 신체를 가리는 목적으로 입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소우주인 인체의 철학적 정신세계를 내포한 형태로 만들어 착용함으로써 자연 속에 포섭되고 자연과 합일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 한복연구가 정옥임 조선대학교 교수

 

원래 한푸라는 말은 한漢나라 시대의 복식을 의미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만주족의 전통 복식인 치파오旗袍(qí páo)가 유명하여 치파오를 한족의 전통 복식이라고 여긴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이 가세하면서 중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푸를 중국의 모든 전통 복식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워서 서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 이전까지 당唐나라의 영향을 받아 단령團領을 관복으로 사용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明나라 홍치제 이전까지 고려양高麗樣이 유행했습니다. 고대에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삼국 및 가야의 기본 의복도 서로 닮아서 좁은 소매의 저고리와 좁은 바지, 즉 착수궁고窄袖窮袴였습니다.

 

이에 비해 한푸는 몸을 많이 감거나 넓게 제작한 복식이 특징이었습니다. 본래는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가 없었지만,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이후 북방계 호복胡服이 들어오면서 바지를 도입했습니다.*1)

 

*1) 「나무위키」‘한푸’, 「민속소식」 ‘한복의 변천사’ 참고

 

김상일 교수는 한복의 독창성을 원방각圓方角(○□△)에서 찾고 있습니다. 원방각 원리는 남성 바지뿐만 아니라 여성의 저고리, 나아가 한복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복 바지는 원형인 ‘허리(1개)’, 방형인 ‘마루폭(좌우 2개)’, 각형인 사폭(큰사폭 2개, 작은사폭 2개)으로 나뉜다. 이를 두고 천지인 혹은 원방각이라고 한다. 원방각의 시각에서 한복과 비교해 보면, 중국 바지는 ‘원’과 ‘방’만 있지만 ‘각’이 없고, 양복 바지는 ‘방’만 있고 ‘원’도 ‘각’도 없다.

 

철저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의 결과로서 결국 2차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복을 입었을 때에 몸에 불편한 이유가 3차원 인체에 한 차원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 김상일, ‘한복과 중국 옷은 이렇게 다르다’

「통일뉴스」 2022.02.13

 

이뿐이 아닙니다. 사각형의 옷감을 비틀어서 재단하는 방식은 한복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인류는 처음에 간단한 띠를 허리에 두르는 1차원적인 ‘띠옷(유의紐衣)’을 입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나뭇잎이나 동물의 가죽을 펴 말리거나 가로와 세로를 서로 엮은 사각형으로 옷을 해서 입었습니다.

 

사각형에서 2차원 ‘포의布衣’를 거쳐 몸에 두르는 ‘권의捲衣’로 발전했습니다. 사각형을 비틀지 않고 전후, 좌우, 상하 대칭이 분명하도록 재단한 것이 서양 옷과 중국 옷입니다. 그에 비해 한복은 사각형을 비트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인체에 꼭 맞는 3차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옷은 반드시 사각형의 가로와 세로를 비튼 뫼비우스 띠, 클라인 병, 그리고 사영평면射影平面을 통해 재단된다. 이는 차원 상승을 의미하며 차원 높은 의식 구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산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복 바지는 뫼비우스 띠의 3차원적 원리에 의하여 재단되기 때문에 한 치의 허실도 없이 정확하게 한복 바지의 입체형을 가늠해 낼 수 있다. 전후, 좌우, 내외가 구별되는 옷감의 구별이 뚜렷한 서양 옷감, 특히 벨벳 같은 옷감은 비틀림의 원리를 응용할 수 없어서 옷감의 양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 김상일, ‘한복과 중국 옷은 이렇게 다르다’

「통일뉴스」 2022.02.13

 

뫼비우스 띠(Möbius strip)는 1858년 독일 수학자 뫼비우스August Ferdinand Möbius와 요한 베네딕트 리스팅Johann Benedict Listing이 각각 발견했습니다. 종이를 길게 잘라 띠를 만든 후 양 끝을 한 번 꼬아서 붙여 만듭니다.

 

띠의 한쪽 면 중앙을 따라 선을 쭉 그어 보면 뒷면인 것 같지만, 어느새 처음 출발한 곳에 선이 맞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한 면만 있어 ‘무한한 반복’을 의미합니다.

 

뫼비우스 띠는 역易 철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종이는 태극입니다. 종이의 한 면이 음이라면, 다른 면은 양입니다. 종이를 길게 잘라서 양 끝을 그냥 붙이면 동그란 모양이 됩니다. 그러면 음과 양은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뫼비우스 띠처럼 종이의 양 끝을 꼬아서 붙여야 음과 양이 만날 수 있습니다.

 

즉 음의 극에서 양이 시작되고 양의 극에서 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뫼비우스 띠는 음생양陰生陽, 양생음陽生陰하며 운동하는 태극의 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뫼비우스 띠를 응용하여 만든 한복은 태극의 원리로 만든 태극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명을 숭상한 백의민족

한국 빨래의 흰색은 항상 나로 하여금 현성축일顯聖祝日(the Transfiguration)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聖 마가가 언급한 ‘세상의 어떤 빨래집도 그것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했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393쪽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최초 여성 회원으로 우리나라를 네 차례나 다녀간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가 한복의 흰색을 묘사한 글입니다. 그녀 외에도 독일 상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등 많은 외국인이 우리 민족의 흰옷 풍습을 기록했습니다.

 

조선 사람의 옷 빛 색깔은 남자나 여자나 대개가 다 희다. …… 먼 곳에서 보면 그들의 흰 의복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 오페르트, 『조선기행』 90~92쪽

 

늙은이나 젊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흰색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찌 된 연유일까?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다. 그렇지만 이처럼 기이한 현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의 미술』 1922년 1월호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잿물에 담가 두었다가 펄펄 끓여 순전한 흰색을 내서 입을 정도로 백의白衣를 숭상했습니다. 중국 사서에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은 걸 보면, 예전에도 백의를 선호하는 우리 민족을 흥미롭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衣尙白 白布大袂 袍袴 履革鞜).

-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 조>

 

풍속⋅정치형벌⋅의복은 대략 고려⋅백제와 같다. 옷 색은 흰빛을 숭상한다(風俗刑政衣服 略與高麗百濟同 服色尙素). - 『수서』 「동이열전」 <신라 조>

 

흰옷은 금방 더러워져서 빨래를 자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금방 해지게 되어 여러모로 번거롭습니다. 그럼에도 남녀노소 모두 똑같이 흰옷을 입은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습입니다. 일제 식민 사학자들은 그 이유를 염료 부족과 염직 기술의 부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양반들이 화려하게 염색된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아이들이 색동옷을 입고 기녀들도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점에서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왜 백의를 선호한 것일까요?

 

예로부터 중국인은 흰옷을 죽은 옷이라고 생각해서 검은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래서 『주례周禮』에서는 ‘역질이나 기근이 크게 들거나 홍수, 가뭄이 들면 임금이 흰옷을 입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반대로 서양에서는 검은 옷이 죽은 옷입니다. 일본인은 남색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복은 물론이고 일상복도 흰옷을 널리 입은 ‘백의민족’입니다. 흰색은 모든 색깔 가운데 가장 밝은색입니다. 그래서 흰색은 밝고 환한 하늘의 빛, 신성한 광명을 의미합니다. 광명의 땅 동방에 살면서 밝고 환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품성이 더해져 흰옷을 선호한 것입니다.

 

대개 우리 민족은 옛날에 태양을 하느님으로 알고 자기네들은 이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믿었는데 태양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빛을 신성하게 알아서 흰옷을 자랑삼아 입다가 나중에는 온 민족의 풍속을 이루고 만 것입니다.

- 최남선, 『조선상식문답』

 

또 다른 이유는 색깔이 계급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흰옷은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제사장 계급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고대 한국인은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 항상 하늘의 상제님께 천제를 드리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 때 흰떡⋅흰밥⋅흰 술을 사용하는 관습이 하늘에 제사드리는 천제天祭 의식에서 유래했듯이 흰옷 역시 천제에서 유래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스키타이족은 …… 상층부의 지배 계급은 종교 계급과 무사 계급으로 나뉘었는데, 스키타이계 왕국인 신라의 골품제도와 같이 흰 뼈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신분에 따라 옷 색깔을 구분해서 입었다. 무사 계급은 적색 옷을 입었으며 종교 계급은 흰색, 유목민은 청색, 농민은 황색 옷을 입었다.

- 김정민, 『샤먼 바이블』 32쪽

 

옷의 색깔이 계급을 상징했기 때문에 지배층은 자신들과 민중을 구분하고 다스리기 위해 색을 통제했습니다. 『구당서』 「고구려 조」에서는 ‘의상과 복식은 왕만이 오채五彩로 된 옷을 입을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신당서』에서도 ‘백제에서는 지배층이 붉은색 계통을 즐겨 입은 데 반해 백성에게는 금지했다.’고 합니다. 지배층은 흰옷과 채색옷을 모두 입었지만, 일반 백성에게는 흰옷만 입게 하여 신분 질서 유지에 활용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흰색은 백성의 색이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백의 사랑은 여러 차례 반포된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말 충렬왕은 ‘오행 사상으로 고려는 동東이므로 목木이 되고, 목은 청靑이니 흰옷을 금지시키고 푸른 옷을 입혀야 한다.’고 영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발이 거세 고려 말기에는 흰색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국가적으로 권하는 푸른 옷도 널리 입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차례(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12년,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17년, 영조) 거듭 푸른 옷을 권장하고 백의금지령이 내렸으나 흰옷 선호는 불식되지 않았습니다. 흰옷을 못 입게 한 양반들은 흰색의 사촌쯤 되는 옥색으로 면피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자주 흰옷 금지령을 내렸으나 흰옷을 사랑함에 있어서는 양반과 상놈이 따로 없었다. 중국 자신을 중화中華다운 색깔, 즉 황색으로 설정하고 동방인 조선은 청색으로 설정한 데서 방향성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 주강현, 『왼손과 오른손』 136쪽

 

고종 시기에도 세탁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색깔 옷을 장려하고 흰옷을 금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유독 흰옷을 선호하는 경향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총독부가 색깔 옷을 착용하는 걸 계속해서 권장하였으나, 오히려 일제의 정책은 백의를 한민족의 얼이자 정체성으로 강조하게 되는 반작용을 일으켰습니다.

 

1920년대에도 흰옷을 입는 풍습은 여전해서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 밭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장구하게 이어진 흰옷 선호 풍습은 해방 이후 미군 진주와 더불어 양복과 양장의 원색原色 문화가 대대적으로 몰려오면서 최근 수십 년간 퇴색되었을 뿐입니다.

 

백색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광명의 색이자 불멸의 색입니다. 우리 민족은 갓난아이에게 흰옷을 입히고 죽을 때 또한 흰옷을 입힙니다. 요람에서부터 입관에 이르기까지 백의로 시작하여 백의로 일생을 마치는 광명의 백의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2)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무위키」 ‘백의민족’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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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조화를 이룬 한식

 

🌌김치와 파오차이

최근 들어 중국과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뉴스는 김치 관련 소식입니다. 중국은 문화공정의 일환으로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조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 역사를 뺏고 있는 와중에 터진 일이라 국민의 분노가 더욱 큽니다.

 

파오차이는 담그다는 의미의 파오(泡)와 야채 반찬을 의미하는 차이(菜)가 결합된 단어로 ‘절인 채소’라는 뜻입니다. 채소 절임은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계절의 변화가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만들 수 있습니다. 파오차이 외에도 쓰케모노, 사우어크라우트, 피클 등 다양한 절임 식품이 있습니다.

 

파오차이는 만드는 방식도 김치와 완전히 다릅니다. 파오차이는 소금에 절인 채소를 바로 발효하거나, 끓인 뒤 발효하는 쓰촨성四川省의 염장 채소입니다. 이에 비해 김치는 1차로 배추, 무 등 원료 채소를 소금에 절인 후에, 절인 채소에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등으로 양념해 2차 발효를 시킨 음식입니다. 이처럼 채소를 1, 2차로 나눠 발효시키는 식품은 전 세계에서 김치가 유일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김치와 파오차이의 가장 큰 차이는 음양陰陽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김치가 식물성과 동물성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데 비해, 파오차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식물과 동물을 음양에 배속하면 한 자리를 지키는 식물植物은 음에 속하고, 활발히 움직이는 동물動物은 양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식물은 다른 말로 정물靜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과 동물은 서로 공생共生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보냅니다. 반대로 동물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냅니다. 식물은 땅속의 기운을 밖으로 뽑아내고, 동물은 식물을 먹어서 그 기운을 섭취하고 배설물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냅니다.

 

파오차이는 소금과 산초 잎, 고수 등을 물에 넣고 끓인 다음 식힌 즙에 각종 채소를 넣고 절인 식품입니다. 재료 종류에 따라 양배추, 오이, 셀러리 등의 채소를 사용한 것과 돼지 귀, 닭발, 삶은 오리고기 등의 육류를 곁들인 것으로 나뉩니다. 식물성 재료나 동물성 재료를 위주로 만들기 때문에 음의 기운이나, 양의 기운에 편중돼 있습니다.

 

이에 비해 김치에는 채소뿐만 아니라 새우젓, 까나리 액젓 같은 동물성 재료가 필수로 들어갑니다. 젓갈을 통해 풍부한 유산균이 생성되면서 김치의 맛과 영양이 더해집니다. 지역에 따라 굴을 함께 넣기도 하고, 생태나 생돼지고기를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겨울을 나는 동안 부족해질 수 있는 단백질까지 공급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김치는 식물이 가진 음의 기운과 동물이 가진 양의 기운이 함께 조화를 이룬 식품입니다. 음양이 조화된 김치를 먹음으로써 우리는 몸의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배추김치와 무김치

동물의 상체는 양에 해당하고, 하체는 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방위에 배속할 때는 생식기를 북쪽, 머리를 남쪽으로 놓습니다. 동물은 음식을 입으로 먹고 내부 장기에서 영양분을 뽑아낸 후 항문으로 배설물을 내보냅니다. 양의 기관에서 음식을 먹고, 음의 기관에서 찌꺼기를 배출하는 것입니다. 성기를 전음前陰이라고 하고, 항문을 후음後陰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는 상수象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입은 하나이고, 대소변을 보는 기관은 둘입니다. 1은 양의 숫자이고, 2는 음의 숫자입니다. 이렇듯 우리 몸의 기관과 장기는 우주 변화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

 

식물은 동물과 정반대입니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영양분과 물을 흡수하고, 가지 끝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뿌리는 동물의 머리이자 입과 같고, 줄기는 몸통, 가지는 팔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맺히는 꽃은 생식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식물의 뿌리는 양에 해당하고, 줄기⋅가지⋅잎⋅꽃⋅열매는 음에 해당합니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갓김치, 물김치, 나박김치, 깍두기…. 외국의 절임 식품과 달리 김치는 종류가 다양합니다. 모든 채소를 재료로 사용해서 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김치를 대표하는 것은 배추김치와 총각김치입니다. 배추김치는 잎을 사용한 김치이고, 총각김치는 뿌리를 사용한 김치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뿌리는 양에 속하고, 잎은 음에 속합니다. 동물성과 식물성이 어우러진 김치는 그 자체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배추김치와 함께 총각김치를 담아서 먹음으로써 음양의 조화가 극대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치에는 우리 선조들이 음양의 조화를 추구했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배추는 ‘채소의 왕’이라는 뜻으로 채중지왕菜中之王, ‘백 가지 채소 중 배추보다 더 좋은 채소는 없다.’고 하여 백채불여백채百菜不如白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김치의 재료보다 질병 치료에 더 널리 쓰였습니다.

 

배추는 맛이 달고 기운은 약간 차갑습니다(성미미감량性味味甘凉). 배추의 성질이 음의 차가운 기운을 띠는 것은 그 모양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배추는 잎에 주름이 많습니다. 수축하는 건 음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는 “배추는 능히 막힌 위장의 기운을 통하게 하고, 가슴의 답답함을 다스리며, 술로 인한 독을 푼다(백채능통리위장白菜能通利胃腸 제흉중번除胸中煩 해주독解酒毒).”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백채흘반년白菜吃半年 대부향청한大夫享清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배추를 반년 동안 즐겨 먹으면 의사들은 할 일이 없어져서 하릴없어 놀게 된다.”는 뜻입니다. 무도 약재로 사용합니다. 무의 성질은 따뜻하며 맛은 달고 맵습니다. 무의 성질이 양의 따뜻한 기운을 띠는 것은 그 모양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물의 형태를 오행으로 분류할 때 길쭉한 것은 목형木形에 배속합니다. 그러므로 무의 길쭉한 모양에서 무가 양의 성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무에는 녹말 분해효소인 디아스타제Diastase가 들어 있어 소화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예로부터 체했을 때, 식중독일 때 무를 먹기도 했습니다(소식제창消食諸脹). 또한 기氣를 내리고 담痰을 삭히기 때문에 기침이 심하고 가래가 많을 때에도 좋은 음식입니다(강기화담降氣化痰). 무씨(나복자萊葍子)에도 이러한 효과가 있어서 한약 재료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음의 성질인 배추와 양의 성질인 무를 김치로 만들어 먹음으로써 음식 궁합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음양오행으로 보는 문화이야기 - 세계로 뻗아가는 한류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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