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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천년의 약속 (1)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1️⃣ 화두

 

 

━━━━⊱⋆⊰━━━━

 

1)

💬 “따라서 현재의 한류 현상이 크게는 지구화(globalization), 문화의 혼성화(cultural hybridity) 또는 세역화(glocalization), 문화생산과 수용의 권역화(regionalization),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 그리고 문화수용의 능동성(active reception)이라는 다섯 가지의 서로 관련 혹은 대립하는 힘들의 중층적 영향/결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한 연구자의 지적에 일단 동의하고자 합니다. 한국 대중문화가, K-Pop이 현재의 한류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나는 일단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한류 문화의 저변에 대한 확충을 다각도로 점검해보자는 것이죠. 한류의 미래! 한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그리고 나의 과제가 되겠지요. 자.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여섯 명의 학생들이 연구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물고 창가로 갔다.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혼란스러웠다. 두 번째 강의였다. 아직도 강단이 낯설었다. 과연 이 직업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일까. 담배 연기를 온몸 깊숙이 삼켰다가 창문을 향해 훅 뿜어냈다. 담배 연기는 안개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나는 꿈을 꾼다. 내 기억이 처음 열린 그때부터 지금까지 꿈을 꾸며 살았다. 살고 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꾸며 산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도.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과연 꿈꾸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살아온 그때까지, 참, 혹독한 꿈을 꾸며, 꿈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당위로 알았다. 꿈꾸지 않는 자는 죽음이다. 주검이다. 과연, 그를,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 “선생님은 빨갱이 소설 쓰잖아요.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소설은, 안 됩니다.”

 

평소 잘 알고 있었던 출판사 사장의 그 말 한마디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그 바뀐 세상! 내가 꿈꾸었던 완전한 그런 세상은 아니었지만, 당장에는, 차선책은 된다고 생각하였고, 나는 그 세상을 위해 참 무던하게도 모진 꿈을 꾸며 살아왔는데. 아니, 꿈만이 아니었다. 작가로서, 기자로서 나는 현실을 피하지 않았고, 덕택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였던가.

 

벌건 대낮의 대로상에서, 그것도 다섯 살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너댓 명의 괴한들에게 불법납치당해 남산 지하실에 끌려가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서초동 검찰청 어느 검사 앞에서 조사받기도 했으며, 재판정에 불려가 판사 앞에서 괜스레 가슴 조여 보기도 했고, 그리고, 또, 감옥에 끌려가 몇 년을 썩고, 삭여야 했던가.

 

뜻밖에도 돈이 좀 모였을 때는 좀, 생뚱맞게도, 신문사를 차려 온통 그 꿈꾸는 곳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뭐, 대가를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꿈꾸고, 투쟁했던 그런 세상에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며칠 뒤, 나는 꿈 하나를 접었다. 절필이다. 참, 부질없이, 많은 글을 남발해왔다. 변명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투쟁을 위한 무기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니! 동기부터가 불순했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것을, 나는 성스러운 것이라고 포장해 왔다. 나는 물론 내 가족을 먹고 살게 하는 글이니, 얼마나 성스러운가. 

 

또 있다. 내 소설은 민주주의를 위한 무기다. 오. 나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다. 틀렸다. 틀려도 참, 많이 틀렸다. 내, 오만을, 나는 그렇게 포장했던 거다. 죄송하게도 그분, 붓다의 말씀을 빌린다면, 나는 한 마디의 글도 쓰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 내가 쓴 글을, 하나도, 쓰여서는 안 되는 글이었다. ‘빨갱이 소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서가 아니다. 물론 그 소리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계기는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달 동안 아파트 방구석에 틀어박혀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병이 찾아왔다. 참, 무지막지한 병이었다. 며칠 동안을 끙끙거리며 신열을 앓았다. 죽을 고비라는 생각이 몇 번씩이나 들었다. 그러나, 무식하게도 버텼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속셈이었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큰 병원이 있었다. 원자력병원이다. 암 전문 병원이지만, 뒷날 아내에게 들었던 소리는,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긴 기껏해야 1km 남짓 떨어진 병원을 119구급차에 실려 갔을 정도였다니까.

 

병원에 실려 온 그날부터 나는 또 하나의 경계와 싸워야 했다. 아니, 경계 앞에 혼자 괴로워하며 몸부림쳐야 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게 된 나는 2인실에 강제 입원을 당했다. 문제는 입원 첫날부터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7월의 여름 날씨는 지상의 모든 것이 불타는 듯한 무더위였다. 

 

그런데, 병실에는 에어컨조차 틀 수 없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찬 기운을 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암 환자였다. 강원도 강릉에서 왔는데, 30년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두고 암으로 판정받은 환자였다.

 

그는 1주일 만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퇴실했다. 다음에 들어온 환자도 암 환자였다. 그렇게 한 달여를 입원하는 동안,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암 환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랬는데, 회진 나온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 “정밀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것을 알겠지만, 암일 수도 있습니다.”

 

뒤에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의사는 아주 틀린 얘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암일 수도 있다고 했지, 암이라고 하지는 않았지 않은가. 다만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좀 과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와 아내의 귀에는 왜 암이라는 진단으로 알아들었을까. 지레 겁을 먹은 탓인지 몰랐다.

 

원자력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여 동안 우리는 적지 않은 암 환자의 최후를 목격하였다. 오늘 밤에 살아서 우리와 얘기를 나누었던 환자가 다음 날 아침에는 주검이 되어 사라졌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따라서 회진 의사의 그 말 한마디는 우리에게 일종의 사형선고와 같은 울림일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간호하던 아내는 벌써 훌쩍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진공상태에서 한동안 멍하니 어두컴컴한 병실 천정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1주일 뒤에 나온 결과는, 엉뚱하게도, 늑막결핵이라는 판정이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원자력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동안,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서울을 떠나는 꿈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온 이후 20년이라는 세월을 서울에서 살았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참, 오래 살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절필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앞으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 내 결심을, 각오를 들은 아내의 얼굴에는 벌써 걱정의 빛이 완연하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가장 무책임한 말을 툭 내뱉었다.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 되겠지.”

 

아내는 반응이 없었다. 늘 그랬으니까. 아내의 바로 그런 점이 나를 옭아매는 무기가 되었다. 차라리, 아니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앙칼지게 부정이라도 한다면, 나는 더욱 강하게 튀어 나갔을 터다. 그러나 아내는 어떤 일이 닥치면 천 근 바윗덩어리같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침묵 앞에 무릎을 꿇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털고 나니까 홀가분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데, 승리의 여신이 아내의 머리 위에서 흰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은, 대전 근교 계룡산 천왕봉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한류문화대학원대학교(이하 ‘한류대’로 줄임)라는 긴 이름을 가진 대학원대학교 교수 자리였다. 앓고 있는 병이 완치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나는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차를 직접 몰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

 

2)

 

늦여름의 해는 정오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더위는 마지막 작열하는 기세로 한여름 무더위보다 더욱 날카롭게 내리쬐었다. 금산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주위에는 퍽 낯익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를 나온 나는 정면에 보이는 대적광전과 오른쪽 미륵전 건물을 향해 합장을 올린 뒤에 곧장 설법전 건물 앞을 지나갔다. 다른 사람이 나를 눈여겨보았다면 퍽 익숙한 몸놀림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 터다.

 

💬 “혹시, 원명스님, 아직도, 계십니까?”

 

적묵당 앞으로 다가선 나는 굳게 문이 닫혀 있는 건물 쪽을 흘끔거리면서 맞은 편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홍안의 한 노승에게 짐짓 떨리는 음색으로 말을 걸었다. 적묵당은 주지를 비롯한 삼직 스님의 거주처이자 후원 요사의 중심 건물이다. 일반 요사와는 달리 공양하고 예법을 갖추는 대중방(큰방)이 있는 수행 전용 건물이다. 그리고 맞은편에 ‘참석 수행중’이라는 검소한 팻말 하나가 결려있는 안쪽 건물은 화림선원이다.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스님들의 선방이다.

 

- “누구?”

 

노승이 물었다.

 

💬 “원명스님이라고.”

 

“그놈을 왜 찾누.”

 

💬 “그게, 저.”

 

“죽었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승은 뒷짐을 진 채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망연한 눈빛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지는 노승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원명스님은 내 도반이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내가 한 때는 출가인이었다는 얘기부터 하는 것이 순서겠지. 그것도 바로 이곳 금산사에서 행자 시절을 보냈고 사미계를 받았다. 원명은 나보다 1년 늦게 머리를 깎았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나이인 우리는 도반이자 친형제와 같았다. 속가의 표현대로라면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꿈 탓이다. 정확하게는, 소설가 탓이었다. 내가 원명과 헤어지게 된 것은.

 

- “이눔아. 소설가라니. 중이 소설가가 되겠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은사 스님은 단호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소설가와 스님은 좀 거리가 있었다. 차라리 시인이면 또 모를까.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문학 동아리에 가입했다. 촛불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신석정 시인이 지도교사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시인이 꿈이었다. 그 꿈이 지금까지 유지되었다면, 나는 은사 스님의 바람을 굳이 저버리지는 않아도 좋았을 텐데.

 

그런데 나는 언제인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가의 꿈을 꾸었다. 은사 스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명을 통해 편지 한 통을 남겨 놓고, 어느 날 새벽예불을 마친 뒤에 나는 줄행랑을 치듯 금산사를 떠났다.

 

반면, 원명은 은사 스님의 착한 제자였다. 그는 은사 스님의 바람대로 선승이 되었고, 몇 년 전에 들리는 소식으로는 아직도 금산사에서 가부좌가 터지도록 정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지금도 화림선원 한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지 몰랐다.

 

나는 미륵전으로 향했다. 삼 층의 육중한 건물이다. 위풍당당한 미륵불상을 보며 나는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삼배를 올린 뒤에, 잠시 미륵불상을 우러러보았다. 예나 다름없이 자비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오, 부처님. 미륵부처님.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문득 내가 부처님을 찾아온 거지 아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화경』 「신해품」에서는 ‘장자궁자의 비유’가 나온다. 부자 아버지 장자와 거지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타향객지를 떠돌다가 거지가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다른 곳에 머물면서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있는 성으로 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나섰다가 찾지 못하여 한 성에 머물면서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장자로 불렸다.

 

장자는 아들 생각에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다. 어느 날 거지가 된 아들이 장자 저택에 품팔이를 왔다. 아들은 으리으리한 집에 보배로 치장한 주인이 바라문과 왕족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두려움을 느껴 품팔이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달아났다.

 

장자는 그 거지를 보고는 그렇게도 찾아 헤맸던 아들임을 알았다. 그는 옆에 시위하고 있던, 옷을 잘 차려입은 시종을 보내 데려오도록 했다. 잡혀 온 거지 아들은 자신은 이제 죽게 될 것이라 지레 겁을 내어 기절하였다.

 

장자는 아들이 심지가 얕고 졸렬하여 자신을 어려워함을 알고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을 알아보게 했다. 이번에는 방편을 써서 허름하게 생긴 시종을 보내 거지 아들을 꾀어오게 했다. 주인댁에 품팔이할 일이 있으니 같이 가서 똥치는 일을 하면 품삯을 배로 준다는 것이었다. 거지 아들은 똥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화려한 옷을 벗어놓고 초췌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오른손에는 똥치는 그릇을 들고 아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 게으름피우지 말고 일하라고 하였다.

 

그 후 장자는 아들을 불러 아들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고 하면서 칭찬해 주며 집안일을 도우라고 하였다. 아들은 마지못해 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일이 지난 후에 주인댁에 대한 신뢰감이 싹터 출입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 후 장자는 집안의 재물과 창고를 모두 거지 아들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대문 밖에 살면서 자기 재물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윽고 장자는 아들의 마음이 점점 커 감을 알고 재물을 물려주기 위해 국왕과 친족들을 불러 놓고 선언했다. 이 아이는 나의 아들이고 그동안 50여 년을 떠돌다가 돌아와 살게 되었으니 이제 모든 집과 사람들을 모두 아들에게 맡긴다고. 그제야 거지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기뻐하며 한량없는 보배를 얻게 되었다.

 

절집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장자궁자의 비유’는 우리가 누구이고 부처가 중생들을 어떻게 교화하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 이 비유에서 장자는 부처를, 거지 아들은 중생을 뜻한다. 아들이 원래 장자의 아들이었듯이 우리 중생들도 원래 부처인 불성을 갖고 있는 불자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50여 년을 떠돌며 거지가 되었듯이, 중생들도 자신이 불자임을, 부처임을 잊어버리고 오도(五道,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를 윤회하며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은 중생이 되어버렸다. 거지 아들이 큰 저택에 살고 있는 장자를 차마 자신의 아버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부처는 원래 다른 존재요 우리 자신이 곧 불도를 이룰 불자라는 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금산사 미륵부처의 입장에서는 내가 거지 아들로 비추어질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장자를 피해 다니는 거지 아들이 차라리 부러웠다. 머리로는 ‘장자궁자의 비유’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으나, 내가 금산사 미륵전을 찾은 것은 거지아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나는 돌아온 궁자가 아니었다. 또한, 원명을 만나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원명도 관련이 있었다.

 

금산사 행자 시절 원명은 대적광전, 나는 미륵전 소제 담당이었다. 금산사에는 많은 전각이 있었으나 특히 미륵전은 내게는 안방이요, 놀이터와 다름없었다. 나는 행자는 물론 사미 시절 대부분을 미륵전에서 보냈다. 행자 시절 나는 스님들 몰래 미륵불상 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때로는 미륵불상 발뒤꿈치에 기대어 잠을 자기도 하였다.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곳은 나의 비밀 ‘아지트’였다.

 

현재 미륵보살이 천상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는 도솔천과 같은 정토였다.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금산사 미륵불상에 몸을 기대고 잠을 자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것은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었다. 아니, 금산사 대중 가운데 딱 한 명,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원명이었다. 

 

반대로 대적광전 상단 밑 공간이 원명의 비밀 아지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때로는 원명과 나, 둘이 같이 미륵불상 뒤편이나 대적광전 상단 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예불 시간을 놓쳐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이면 스님에게 불려가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혼이 나나 일쑤였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의 반성이란 그때뿐이어서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 “원광이 너는,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해라.”

 

나는 행자 시절 3년을 꼬박 미륵전 소제 담당으로 보냈다. 그리고 사미계를 받은 뒤에 주지 스님이 내가 준 소임은 여전히 미륵전 소제 담당이었다. 대개 소제는 행자들이 담당하고, 사미는 강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되지만, 내가 주지 스님에게 미운털이 박혔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미륵전 소제 담당은 그대로였다.

 

- “공부도 게을리하지 말고.”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주지 스님은 마지막 어조에 은근히 힘을 주었다.

 

💬 “예. 스님.”

 

나는 내심 여유를 갖고 대답했다. 주지 스님이 나에게 미륵전 소제 임무를 계속 맡기는 것은, 그가 나의 은사 스님이었으므로 다른 대중에게 보여 주려는 특별한 배려(?)임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사미가 되었다고 해도 나는 나의 정토 미륵전을 떠나기 싫었다.

 

미륵전 미륵불상 뒤편이야말로 나만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정토였다는 것을 은사인 주지 스님은 몰랐을 터다. 그런 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은 역시 원명이었다. 그는 주지 스님이 내가 계속 미륵전 소제를 담당하라는 명이 떨어지는 순간, 나를 향해 부럽다는 표정을 한껏 담아서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원명을 향해 나는 말없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원명아. 원명아. 걱정일랑 꼭 붙들어 매 두거라 잉. 언제라도 우리 아지트로 오면 되는 거싱게. 나는 그런 얘기를 침묵으로 속삭였다. 실제로 그 후에 원명은 자주 나를 찾아 미륵전으로 왔다.

 

우리는 행자 시절과 전혀 달라 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행자 때는 우리들의 정토가 두 곳이었는데, 사미가 된 뒤에는 한 곳으로 줄어들었다는 점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륵불상 뒤편에서 자주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랬는데, 달포 전에, 한류대 정원사 황세운씨가 내게 건네준 책이 잠자는 나의 추억의 사자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

 

3)

 

정원사 황세운씨가 내게 먼저 책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내가 그의 작업실에 찾아가서 책을 빌려왔다. 나는 연구실에서 수업을 마치면 담배를 물고 창밖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그 버릇 한 부분을 황세운씨가 가로채 갔다.

 

그는 내가 창밖으로 시선을 주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시간에 맞추어 자신도 휴식 시간을 가졌고, 그때마다 나무 밑이나 정원석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었으므로 나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그의 휴게실로 찾아갔다.

 

💬 “무슨 책을 그렇게 보세요?”

 

내가 물었다.

 

- “뭐, 이것저것.”

 

내가 찾아온 것이 뜻밖이라는 듯 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 “교수님같이 젊은 분이야 실감이 안 나겠지만, 늙으면, 급해지는 법이지요. 밀린 독서를 하는 중이랍니다.”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

 

나는 말없이 휴게실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말이 휴게실이지 정원사 일에 필요한 도구들이 한 쪽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것이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 “정원사 일은 오래 하셨는가요?”

 

- “운이 좋아서, 은퇴 후에 재취업을 한 게지요.”

 

💬 “그렇군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휴게실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 “책을 찾는군요?”

 

백발에 온몸이 삭정이처럼 마른 그는 앙상한 손으로 캐비닛 속에 있는 책을 꺼내 주었다. 그의 손등에서 거머리 같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잠시 동안 그를 보던 나는 책으로 눈길을 가져갔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가죽 표지가 닳아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제법 두툼한 책이다.

 

💬 “뭡니까. 『증산도 도전』이군요.”

 

나는 3분의 1정도는 날아간 금박의 제목을 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학 때 일부 동학들이 민족종교 단체인 증산도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일이 떠올랐다. 마침 내가 활동하고 있는 불교 동아리방과 이웃하고 있어서 이따금씩 그들의 활동을 엿볼 수가 있었다.

 

나도 몇 번 그들의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있었다. 일반 동아리 활동과는 달리 그들은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진리 공부를 하였다. 지금도 인상에 남은 것은 ‘우주 1년’이라는 도표였다. 지구의 1년 사계절과 같이 우주에도 1년 사계절이 있다는, 그런 내용을 그린 도표였다.

 

💬“증산도 신도입니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아니지요.”

 

그의 대답은 이외로 단호했다.

 

💬 “그럼?”

 

- “나는, 모든 성인의 가르침을 존중합니다. 다 믿지요.”

 

💬 “그렇군요.”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뭐라고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게실 안은 잠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자초한 면이 있었다.

 

💬 “그런데, 저기 오래된 책은.”

 

내가 캐비닛 속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을 보고 물었다. 내 질문에는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의도가 섞여 있었다.

 

- “아. 저거요. 어디 보자.” 황씨는 꾸역 일어나 책을 꺼내왔다. “이건, 『대순전경』이라는 책인데.”

 

💬 “『대순전경』이라구요.” 나는 황씨가 들고 있는 두 책을 번갈아 보았다.

 

- “증산도 신도들이 신앙하는 증산 상제의 행적을 기록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순전경』은 그 초기 기록이구.”

 

“….”

 

- “초기 기록들은 『대순전경』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요. 『도전』은 초기 기록들을, 다시 일일이 답사하고 관련자 후손들의 증언을 취재하여 다시 정리한 경전입니다. 일종의 종합경전이라고 할까요.”

 

💬 “그렇군요. 그런데 증산 상제가 누구입니까? 증산도 신도들이 신앙한다면 증산도 도조인가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아직 지식이 짧지만서도, 얘기하자면, 그분은 19세기 말, 그 나라 안팎으로 혼란한 시기에, 또한 우주사적으로는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에 사람 농사를 결실하기 위해 인간으로 온 우주 주재자이자, 통치자입니다.”

 

💬 “우주 주재자…통치자…라구요.” 나는 황씨가 했던 말을 뇌었다.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에 인간으로 온, 우주의 주재자라.”

 

- “그 분을, 상제라고 하지요.”

 

💬 “상제! 와. 세군요!” 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그리고 미륵불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의 부처인.”

 

황씨는 내가 전직 승려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미륵불에 힘을 주어 말했다. 황씨의 얘기대로 미륵불은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석가모니 부처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아일다阿逸多)이다. 성인 미륵은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불전에 의하면 그는 인도의 바라나시국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7천만 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하는데, 그가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 “미륵불이라구요!”

 

나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움푹 들어간 황씨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미륵불! 그것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사자를 깨우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나의 뇌리에는 금산사 미륵불이 번갯불처럼 스쳤다. 나의 도반 원명의 얼굴과 함께.

 

- “내 말이 아니랍니다. 증산 상제, 당신이 직접 자신의 신원을 그렇게 밝혀 주었어요. 여기, 보세요.”

 

황씨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혀끝에 침을 묻힌 뒤에 『도전』을 재빠르게 넘겼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내가 미륵이니라.”(증산도 도전 2:66:5)라는 글자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 “여기도…여기도요.”

 

황세운씨는 『도전』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지 곧장 그가 원하는 부분을 찾아내어 손가락 끝으로 꾹꾹 짚어 나갔다. 과연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도전』 곳곳에서 증산 상제(당신을 신앙하는 분들의 입장을 존중하여 ‘증산 상제’로 표기한다)는 자기가 미륵이라고 자기의 신원을 밝혀 놓고 있었다. 나에게, 문제는 그 미륵불 증산 상제가, 어느 먼 곳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

 

4)

 

황세운 씨에게 『도전』이란 책을 빌려온 나는 며칠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읽어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좀 길지만 있는 대로 인용한다.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 도기道紀 32, 1902)년 4월 13일에 전주 우림면 하운동(全州 雨林面 夏雲洞) 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이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심회를 푸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조화로써 천지운로를 개조(改造)하여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을 열고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본래 서양 대법국(大法國) 천개탑(天蓋塔)에 내려와 천하를 두루 살피고 동양 조선국 금산사 미륵전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다가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내려왔나니, 이제 주인을 심방함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1:1-85)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알 수가 없나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로다. 동학 주문에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나니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나에게 탄원하므로 내가 천조(天朝)의 대신(大臣)들에게 ‘하늘의 정사(政事)를 섭리하라.’고 맡기고 서양 천개탑에 내려와 천하를 둘러보며 만방의 억조창생의 편안함과 근심 걱정을 살피다가 너의 동토(東土)에 인연이 있는 고로 이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무르면서 최제우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주었더니 조선 조정이 제우를 죽였으므로 내가 팔괘 갑자(八卦甲子)에 응하여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
(증산도 도전道典 2:94:1-7)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도기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30:8-17)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스스로 밝힌 증산 상제가 인간으로 온 과정을 밝힌 기록들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전체 내용도 그렇지만, 특히 나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미륵불인 증산 상제가 인간으로 온 과정에서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상에 임하여 30년 동안 머물렀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행자와 사미 시절을 포함하여 6년 동안 매일 쓸고 닦았던 금산사 미륵전, 바로 그곳에 증산 상제가 30년 동안 임하였다가 인간으로 왔다! 이 밖에도 『도전』에는 증산 상제가 금산사 미륵불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은 많았다. 그렇게 인간으로 와서 당신의 일을 마친 증산 상제는 다시 금산사 미륵전을 통해 천상으로 환궁하였다. 다시 인간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니 어디가 좋겠느냐?” … 잠시 후에 “나는 금산사에 가서 불양답(佛糧畓)이나 차지하리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고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六丈)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10:33:1-7)

 

『도전』 기록에서 나는 더욱 놀라고 당혹스럽게 만든 다른 구절은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 찬탄설게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이라는 부분이었다. 금산사 중창조로서 진표율사라면 나로서는 행자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라 모를 리 만무하였다.

 

그러나 위의 구절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바로 그 금산사에, 금산사 미륵전과 미륵불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떠났다는 자책감에 젖어 들었다. 나는 기자 시절 익힌 감각이 발동하였다. 금산사 미륵불상을 세운 진표율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도전』에는 「미륵불의 동방 조선 강세의 길을 연 진표 대성사」라는 제목으로 진표율사에 대한 행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놓았다. 

 

동방 조선 땅의 도솔천 천주님 신앙은 진표율사(眞表律師)로부터 영글어 민중 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진표는 12세 때 부모의 출가 허락을 받고 김제(金堤) 금산사(金山寺)의 숭제법사(崇濟法師)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으니라.

 

법사가 진표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님 앞으로 가서 간절히 법을 구하고 참회하여 친히 미륵님의 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 하매 이로부터 진표가 미륵님에게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리라는 큰 뜻을 품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도를 닦더니

 

27세 되는 경자(庚子, 760)년 신라 경덕왕 19년에 전북 부안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가 미륵불상 앞에서 일심으로 계법을 구하니라.

 

그러나 3년의 세월이 흘러도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니 그 순간 번갯빛처럼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살며시 손으로 받들어 바위 위에 놓고 사라지더라.

이에 큰 용기를 얻어 서원을 세우고 21일을 기약하여 생사를 걸고 더욱 분발하니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온몸을 돌로 두들기며 간절히 참회하매 3일 만에 손과 팔이 부러져 떨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거늘 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손에 금장(金杖)을 흔들며 와서 진표를 가호하니 곧 회복되니라.

 

21일 공부를 마치던 날 천안(天眼)이 열리어 미륵불께서 수많은 도솔천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광명 속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니라.

 

미륵불께서 진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기를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戒)를 구하다니.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하는구나.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고 찬탄하시니라.

 

이 때 미륵불께서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하시고 하늘로 사라지시니라.

 

원각(圓覺) 대도통을 한 뒤,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본 진표 대성사(大聖師)는 온 우주의 구원의 부처이신 미륵천주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해 주실 것을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니 이로부터 ‘밑 없는 시루를 걸어 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4년에 걸쳐 금산사에 미륵전을 완공하니라.

 

이 뒤에 진표는 미륵불의 삼회설법의 구원 정신을 받들어 모악산 금산사를 제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2도장, 속리산 길상사를 제3도장으로 정하고 용화도장을 열어 미륵존불의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십선업(十善業)을 행하라는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지고 천상 도솔천으로 올라가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1:7:1-19)

 

미륵전에는 마침 찾아오는 불자도 없어서, 한참 동안 말없이 미륵불을 올려다보던 나는 와르르 무너지듯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도전』을 읽었던 그때부터 나는 과거의 포로가 되었다.

 

내 십 대 시절을 오롯이 하였던 금산사와,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을, 그리고 진표율사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춰 주었다. 당신들을 몰랐다는 것은 곧 나를 몰랐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금산사에서 보낸 내 십 대 시절은, 행자 시절은, 사미 시절은 무엇인가.

 

『금강경』에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는 문구가 있다. 꿈이나 환영,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다는 의미다. 그런가! 그런가! 그때부터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금강경』에서의 그 온전한 문장의 가르침은 내 입장과 달랐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현상계의 모든 법은 꿈이나 환영,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같이 볼지니라.

 

부처님은 그렇게 설하셨다. 죄송하지만, 나는 금산사 미륵전에서 보낸 내 행자 시절을, 사미 시절을 꿈이나 환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 실체라는 것을 확인하게 위해서 이곳 금산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반개한 눈가에 힘을 주었다. 눈언저리가 파르르 떨렸다.

 

 

[장편소설] 천년의 약속 (1)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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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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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천부경의 원리. 원방각

---Squid  Game and Corea Bible---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그림(圓方角)은

 코리아 바이블(천부경)의 체계적인 도표와 같다.
The picture that appears in the Squid Game is 

like a systematic diagram of the Corea Bible.

 

오징어게임은 70~80년대에 아이들 놀이로서 생겨났지만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놀이방법은 공격자가 수비의 방해를 뚫고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가거나 수비가 공격자를 쓰러트리게 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오징어게임에서의 특징은 원방각(圓方角)의 구조 속에서 方을 통과해 角에 진입한 후에 圓 속에 있는 삼각형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칙은 천부경의 도상인 천부체계도에서도 그대로 실현된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그 의미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천부경을 하나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천부체계도를 보게 되면 그 시작이 무형과 유형이 혼재된 角(뿔각)의 맨 위의 꼭짓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밑으로 아홉수가 하나의 공간 속에서 모이게 되기에 方을 만들어 놓게 된다. 그러면 圓의 중심으로부터 시작된 꼭지점인 角(뿔각)에 의해 밑으로 方이 펼쳐진다. 이때의 圓(둥글원)은 무형인 하늘이요, 方은 유형인 땅이고, 角은 유형과 무형이 혼재된 근본물질인 일기(一氣)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角의 꼭짓점에 도달해 일기를 회복함은 참나(眞我)를 이루게 됨을 나타낸다.

우리 인간의 태어남은 유형과 무형이 혼재된 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물질계인 지상의 方에 떨어지면서 아홉수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러다가 아홉수를 채우고 귀일의 열쇠인 10을 얻어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는 아홉수가 주는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야만 된다.

아홉수가 되는 方을 지나서 가게 되는 과정은 圓(둥글원)의 안에 있는 삼각형의 꼭짓점에 이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때에는 오징어게임의 그림에서 보듯이 가운데의 좁아진 길을 통해 목적지에 이르게 되어 있다. 이는 내 자신이 순박(醇樸)함의 단계에 이르게 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길이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고,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완성을 위한 중일(中一)의 길이기도 하다. 이른바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좌우를 장악한 단계에 이르게 될 때에 얻어지는 길이 중일의 길이다.

천부체계도(天符體系圖)

수행자가 중일(中一)을 이루면 드디어 삼각형의 꼭짓점에 이르게 되어 있다. 이와 같기에 오징어게임이나 천부경에서는 아홉단계를 뛰어넘어 중일의 단계에서 원형의 안에 있는 삼각형의 꼭짓점에 이르는 일이 승리하는 일이요, 참나를 성취하는 일이다.

수행자가 참나를 성취하면 드디어 圓과 方의 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이것이 삼각형인 角으로 나타나게 되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을 이룬 사람으로서의 상징이다. 사람(角)을 가운데 두고 하늘(圓)과 땅(方)이 위치하게 되는 이것이 옳바른 원방각의 완성된 모습이다.

 

 

원방각의 도형에 있어

圓은 영원성을 나타내고

方은 시공간을 나타내며

角은 의지력을 나타낸다.

그런 까닭에 하늘은 우리로 하여금 불멸(不滅)의 삶을 살라하고,

땅은 우리로 하여금 힘써 자아완성(自我完成)을 이루라 하며,

인간 삶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를 놓치말라 한다.

 

참고문헌 : 수행문화의 원전 천부경 (도서출판 거발환) 

「수행문화의 원전 천부경」은 하나의 그림(圖) 속에 천부경과 삼일신고, 그리고 참전계의 원리를 담고 있다. 그 하나의 그림에 대해 매월당 김시습은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서 "금척(金尺)의 형상(形象)은 삼태성(三台星)이 늘어 선 것 같으니 머리에는 불구슬(火珠)을 물고 네 마디로 된 다섯 치(五寸)이다. 그 허실(虛實)의 수(數)가 9가 되어 10을 이루니, 이는 천부(天符)의 수(數)다"라고 말하였다.

 

하나의 그림인 천부체계도(天符體系圖)를 보면 알게 되듯이 삼태성이 늘어선 모습은 천지인이 3과 6, 그리고 9로 나란히 펼쳐진 모습이다. 머리 위의 불구슬은 생명의 근원인 일기가 시작되는 용궁(龍宮)이나, 우리의 머릿골인 뇌해에 있는 천궁(天宮)의 모습과도 같다. 네 마디로 된 다섯 치는 천궁의 모습과 수직으로 단계마다 펼쳐지는 3, 6, 9의 네 마디를 말한다. 허실(虛實)의 수가 9가 되어 10을 이룬다는 말은 허조동체인 일기가 9수를 끝으로 10을 이루어 회삼귀일을 하게 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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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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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내가 본 미래〉 | 漫画 〈私が見た未来〉(2)

 

🍀타츠키 료 씨는 왜 예지몽을 꾼 것일까? 

여기서 ‘타츠키 료 씨는 왜 이러한 예지몽을 꾸게 되었을까?’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싶다. 그녀는 1995년 1월 2일에 이런 꿈을 꿨다. 거칠고 붉은 대지에 두 개의 큰 금이 가 있고, 천상의 사람(여성)이 있어 “데려가.”라고 했더니 “아직 지금은 안 돼. 5년 뒤, 5년 뒤에 데리러 올게.”라는 대답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꿈이 궁금했고 도대체 어느 시점부터의 5년 후인지, 혹시 자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인지 등 여러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어쩐지 답을 알고 있다고 한다. 바로 ‘역할이 끝나는 날’이다. 그녀는 2021년 ‘2025년 닥칠 전 지구적 규모의 대재앙’을 예지몽으로 꿨던 것에서 그날을 대비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고, 즉 5년 후라는 것은 2025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그녀는 영감이 강한 지인에게서 ‘천사의 환생이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분명 실제로 그녀는 남을 돕다가 자신이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조카딸로부터 『내가 본 미래』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얌전하고 조용하게 생활해 왔지만, 한편으로 만약 지진 전에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띄었다면 더 살아난 생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텄다고 말한다. 그녀는 완전판에 가필된 꿈의 해설의 종반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화 속 쓰나미의 꿈이 2011년의 예지라면 그때는 아쉽게도 늦었습니다.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의식에 그것이 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 만화나 언어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재난은 제대로 날짜도 보이고 있어, 그날을 향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 가면, 도망친다 -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 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해가 안 되는 상태로 있으면 아무래도 준비를 게을리하거나 도망을 늦게 가거나 하는 사람이 생겨 버립니다. 하지만 날짜까지 확실히 알림으로써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준비하는 것, 재난 이후 삶의 방식을 고려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행동을 해 두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했으면 합니다. (중략) 이번 이 책은 그런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는 예언자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 다양한 예지를 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지에 다양한 예언이 존재한다. 그중 많은 공통되는 것이 인류는 앞으로 큰 재난에 맞서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이는 천지에서, 또 신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다. 타츠키 씨는 자신이 유명해지거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돕는 정신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또 그것을 발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만화라는 수단을 갖고 있었기에 예지몽이라는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받고 모두에게 경고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예지몽 ‘2025년 7월’

위에도 나온 타츠키 씨가 『내가 본 미래 완전판』의 탄생 이유라고 느끼고 있는 ‘2025년 7월의 대재난’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만화가로서 갔던 마지막 인도 여행을 1998년에 했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큰 전환기가 되어 본인은 “과장하게 말하면 각성했다고 할까 ……”라고 말하고 있다. 대재앙은 2011년 3월이라는 날짜가 보인 것도 이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뒤였다. 인도 여행에서는 전생에 타츠키의 아버지였다는 성자 사이바와의 재회, 유체 이탈 직전의 체험, 영혼이나 마음의 기적, 깨달음의 의미를 아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여행 중에 앞으로 일어날 대재앙의 꿈을 꾸게 된다.

 

이 꿈에 대해 그녀는 “비유하자면 걸쭉한 수프가 끓을 때 펑 하고 쏟아 오르듯이, 일본 열도의 남쪽에 위치한 태평양의 물이 솟아오른다. 그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해저 화산인지 폭탄인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는데요.”라고 말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어 출판사의 의뢰로 『내가 본 미래』 를 재판하게 됐고, 처음 협의를 위해 담당자와 만나게 된 2021년 7월 5일 새벽 그녀는 다시 이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1999년 ‘대재앙은 2011년 3월’을 보았을 때와 같은 극장 스크린과 ‘대재앙은 2025년 7월’이라는 글자였다. 그리고 구글 어스처럼 하늘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꿈이었다고 한다. 그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형 쓰나미 꿈을 꾸던 날 : 2021년 7월 5일 4:18 AM (첫 번째)

해 트로프 남쪽에 있는 필리핀 바다가 펑펑 아래에서 솟아올라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주변 국가들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일본 열도의 태평양 측, 3분의 1에서 4분의 1이 대형 쓰나미에 삼켜지고 있습니다. 진원지를 향해 웬일인지 두 마리의 용이 향해 가는 영상도 보였습니다.

 

 

 

꿈을 꾼 날 : 2021년 7월 5일 4:18 AM (두 번째)

꿈을 꾼 직후의 속기입니다. 남해 트로프 지진의 상정을 훨씬 뛰어넘는 괴멸적인 쓰나미가 일본 태평양 쪽을 덮치는 영상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 두면서 많은 생명이 살아났고, 신속하게 부활을 향해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고 있는 밝은 미래상도 함께 보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필리핀 중간쯤의 해저가 펑 하고 터진 겁니다. 그 결과 해수면에서는 큰 파도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태평양 주변 국가에 큰 해일이 밀려왔습니다. 그 쓰나미의 크기는 동일본 대지진의 3배는 될까 할 정도의 거대한 파도입니다. 그 파도의 충격으로 육지가 밀려 올라와 홍콩에서 대만, 그리고 필리핀까지 땅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남해 트로프 남쪽에 있는 필리핀 바다가 펑펑 아래에서 솟아오르면서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주변 국가로 퍼져 나갑니다. 일본 열도의 태평양 쪽, 3분의 1에서 4분의 1이 대형 쓰나미에 삼켜지고 있습니다. 진원지를 향해 웬일인지 두 마리의 용이 향해 가는 영상도 보였습니다.”

 


‘2025년 7월에 일어나는 일’의 꿈

진원지로 보이는 것은 북쪽은 일본, 서쪽은 대만, 남쪽은 인도네시아의 모로타이, 동쪽은 북마리아나 제도를 연결하는 마름모꼴의 중심입니다. 그 진원지인 머나먼 동쪽, 날짜 변경선 부근부터 하와이 제도에 걸친 해저에 꿈에서 본 두 마리의 용과 같은 실루엣이 보이는 것입니다. (원래 지도는 © ROOTS / Heibonsha.C.P.C)

 

이 꿈이 정말 예지몽이라면 일본 열도에 막대한 피해가 초래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향이 일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타츠키 씨도 말했듯이, 정말로 예지몽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나 2025년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과 일본에서 대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은 많은 예언자들이 말하고 있다.

또 (2022년 1월) 통가 해저 화산의 폭발로 인해 많은 희생이 일어나고 지형도 변화된 것은 기억에 새롭지만, 타츠키 씨가 꿈속에서 홍콩에서 대만, 그리고 필리핀까지 땅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니 앞으로 통가 폭발보다 더 큰 규모의 분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에 찬 어두운 미래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츠키 씨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쓰나미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세계

타츠키 씨는 2025년 쓰나미 이후의 세계에 대 ‘엄청나게 빛나는 미래’가 보였다고 한다. 이 대재앙이 터지면 세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녀에게도 그다지 구체적인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지만 미래가 빛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지구 전체에서 모든 사람들의 상태가 밝게 빛나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는 이미지를 느낀다.”고 한다. 그녀는 TV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리미리 준비해 놓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부흥을 향해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런 상황이 보였기 때문에 정말 큰 재앙이 일어났다 해도 괜찮구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준비가 돼 있으면 피해가 줄어든다지만 어느 정도 피해는 불가피합니다. 그때 설사 지구의 인구가 급감했다고 해도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시대의 도래, 즉 마음과 영혼의 진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꿈을 꾼 날: 2001년 1월 1일

참고로 ‘2011년 3월’로 보였을 때는 ‘대재해’라는 말이 같이 보였지만 ‘2025년 7월’은 ‘대재난’으로 보였습니다

 

위 그림 

죽이기(싸움이나 욕심)에만 달려온 사람의 앞에 남는 것은 ‘허무함과 공허함’뿐 - 갈 곳은 없다. – 후회뿐 =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살아가는 법조차 모른다 ···. 황무지에 총(명품)을 들고 서 있는 사람. 주위에 남는 것은 욕심의 잔해.

 

아래 그림 

삶과 행복을 바라고 긍정적으로 노력해 온 사람에게는 빛나는 미래와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해설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2025년 대재앙이 지나간 뒤에는 마음의 시대가 온다고 믿고 싶습니다. 모두가 서로 돕고 협력하며 모든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계. 진정한 기적은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중략)

 

마음의 시대가 오면 내가 꿈에서 미래를 보고 경종을 울릴 필요도 없게 됩니다. 저는 이제 이것으로 ‘드디어 끝난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덮으며

우리가 지금 어떤 때에 살고 있는가. 증산도를 만나면서부터 생각하고 배울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 ‘삶’에 있어서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증산도의 진리를 전하기는 어렵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어떤 때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할 기회조차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책이 화제가 되어 출간됨으로써 앞으로 대재앙을 겪는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들이 갖춰야 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지나 예언이라는 것은 신도 세계가 선자선손善子善孫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러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하나의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 도전이나 진리의 내용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쓰나미 후 배로 향할 때 육교 계단이 5개라고 적혀 있다. 명확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고 가설이지만,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노아의 방주와 같은 존재로 각국에서 후천으로 건너가는 씨앗이 되는 사람들이 타고 있으며, 그곳에 가려면 한쪽 5개 반대쪽 5개를 합하여 양쪽에서 10개의 토土의 수(5⋅10토土)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고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중앙의 토를 지나 후천으로 건너간다는 것은 ‘우주 일 년의 진리’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또 홍콩에서 대만, 그리고 필리핀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는 부분도 상제님이 말씀하신 “부명符命 하나로 산을 옮길 것이니, 이 뒤에는 산을 옮겨서 서해西海를 개척할 것이니라. 앞으로 중국과 우리나라가 하나로 붙어 버린다. 장차 동양삼국이 육지가 되리라.(일본어 도전 7편 15장 8~10절)”라는 부분을 방불케 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대재난 이후에 대해 말한 ‘모든 사람들의 상태가 밝게 빛나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는 부분은 우리의 수행 문화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개벽 시간은 도통군자도 모르게 하느니라.”(일본어 도전 7편 12장 1절)는 말씀에도 있듯이 만화에 적혀 있는 날짜나 꿈의 내용이 모두 그대로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맞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후천 생명줄을 잡기 위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이번에 『내가 본 미래 완전판』이 작자 감수하에 출판되기에 이른 것도 여러 우연이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시각을 갖고 행동하며 세상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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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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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내가 본 미래〉 | 漫画 〈私が見た未来〉(1)

 

일본 고베도장 / 타츠미 나나요辰巳 七代

 

🍀들어가며

지금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내가 본 미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작가 타츠키 료竜樹諒 씨에게는 사적인 일로부터 세계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꿈에서 본 것이 몇 년 후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꾼 꿈들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 만화 『내가 본 미래』이다. 표지에 ‘대재앙은 2011년 3월’이라고 적혀 있어서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을 예언한 책으로 유명해졌다. 

 

초판은 1999년 출간됐으나 현재는 절판됐고, 헌책이 십만 엔에서 수십만 엔에 이르는 고액에 매매되었다고 한다. 2021년 10월에는 『내가 본 미래 완전판』이 출간돼 2022년 9월 현재 50만 부가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화제가 됐는지, 타츠키 료 씨가 꾼 예지몽豫知夢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왜 유명해졌나? 표지에 그려진 예지豫知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이 만화가 유명해진 것은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을 예지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예지는 표지에 ‘대재해는 2011년 3월’이라고 그려져 있다. 이건 사실은 ‘1999년의 재해는 소규모로, 그리고 대재앙은 2011년 3월에’라고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 구체적인 날짜는 『내가 본 미래』 단행본 마감일에 꿈을 꾸며 보았고, 매우 중요한 날짜인 것 같아 급히 연월만 덧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표지에는 지금까지 꾼 꿈 중에서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것을 몇 개 그렸는데 그리는 내용과 칸의 수를 맞추지 않아 한 컷 남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기 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새하얀 스크린 같은 광경 속에 검은 글씨가 떠오르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대재앙은 2011년 3월’이었던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99년 당시 세상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 화두로 들떠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날짜를 쓰고 경고함으로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아봐 준다면 대재앙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믿는 사람도 없었고 출시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일부에서 화제가 되었고, 2020년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또 실제 작자로 위장한 인물이 나오면서 더욱 화제가 된다.

 

 

 

🍀작자 타츠키 료 씨는

그렇다면 진짜 작자는 어떤 인물일까? 타츠키 씨는 1954년 12월 2일 카나가와神奈川 현 출신의 여성으로 17세 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만화가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스토리 제작이 서투르고 신체적으로도 부담이 컸기 때문에 1999년 만화가를 은퇴했었다. 타츠키 씨는 자신에게 영감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귀신 등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신기한 체험도 했다.

홉 살 때 감기에 걸려 누워 있을 때 ‘왜 나는 나일까?’, ‘왜 이 지구에 태어나서 이 몸이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 그녀는 의식을 우주로 날려 하늘에서 자신을 보는 것을 이미지화했다고 한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이나 고민이 아주 작아졌고 다음 순간 ‘우주로부터의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선의 주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교 4년(9세) 때 보였던 ‘창조주’제 눈에 비친 우주는 산타 같은 풍모였고, 희고 긴 수염에 백발이며 흰 천을 두른 웃는 노인이었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런 느낌의 사람일지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중에 인간이 붙인 호칭으로 창조주로 해석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한 노인이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흰머리에 하얗고 긴 수염, 그리고 몸에 걸치고 있는 천도 새하얀 그 사람은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런 느낌의 사람일지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립다’라는 감정이 넘쳐 나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 타츠키 씨는 가끔 인상적인 꿈을 꿀 때가 있었고, 꿈에서 깨어나도 잊기는커녕 오히려 또렷이 기억에 남아 혹시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만화가로 데뷔할 무렵부터 조금씩 메모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알맹이가 하얀 책을 주신 것을 계기로 1985년부터 ‘꿈일기’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타츠키 료 씨는 예언자인가 하고 물었을 때에 “아니오, 전혀!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꿈과 현실은) 그대로가 아니니까요. 실감이 안 나네요.”라고 대답했다. 또 현실과 링크가 되지 않는 꿈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자주 인상적인 꿈을 꾸지 않고, 현실과 연결되는 것은 한 달에 몇 번 꾸는 꿈 중 10% 정도로 확률적으로는 상당히 낮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도 결과적으로 ‘현실이 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만으로 예지몽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이애나 비의 꿈을 꾼 날: 1992년 8월 31일
꿈속에서는 성안에서 아기를 안은 여성과 ‘DIANNA’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이 꿈의 전년에 저는 영국으로 여행을 갔고 왕실의 궁궐도 견학한 적은 있지만, 이 꿈이 다이애나비와 관련이 있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예지몽

꿈을 꾼 날
사건이 일어난 날
가수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
1976년 11월,
1986년 11월 28일

1991년 11월 28일
다이애나 비의 사고사
1992년 8월 31일
1997년 8월 31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지진
2001년 12월 25일
2004년 12월 26일

🍀후지산 대분화와 코로나 팬데믹

화제가 된 다츠키 씨의 예언 중 하나로 후지산 분화가 있다. 책 표지에도 그려져 있듯이 타츠키 씨도 1991년 8월 20일 후지산 대분화의 꿈을 꾼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대규모 분화에 의한 재해는 없으며 분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소규모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꿈 진단에서 분화噴火=세계 공황이나 팬데믹에 의해 패닉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세계 경제에의 영향 등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다만 타츠키 씨의 꿈이 코로나 팬데믹을 예지한 것이라 해도 후지산 폭발 위험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지산은 활화산으로 과거 3,200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평균 30년에 한 번 분화한다. 그러나 현재 1707년 호에이 분화 이후 300년간이나 분화를 하지 않고 있으며 평균 휴지休止기간의 10배의 기간이 경과하고 있으며, 다음에 언제 후지산이 분화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또 휴지 기간이 길 경우 이후 분화가 대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본 미래』는 어떤 책인가?

그런데 『내가 본 미래』는 실제로는 어떤 책일까. 이 책은 여러 작품이 담긴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가 본 미래』에서는 작가 타츠키 료 씨가 꾼 예지몽이 몇 가지 적혀 있다. 그 대부분이 이미 일어난 예지몽에 대해 적혀 있는데, 마지막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꿈이 하나 소개되어 있다. 그것이 ‘대해일의 꿈’이다.

 

꿈을 꾼 날 : 1995년 1월 2일


“5년 있으면 데리러 온다.”라는 말
이 너무 인상적인 꿈이었습니다. ‘내가 죽는 날’이 아닐까 겁이 났는데 이제야 이게 2025년에 ‘내 몫이 끝나는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꿈은 만화로 만들고자 1981년에 네임(만화 원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리던 중 소름 끼치고 오한과 구역질이 생겨 중단되었다고 한다. 꿈에서는 썰물에 의해 바닷물이 사라지고 “비행기의 폭음이라고도 할 수 없는, 땅바닥에서 온몸을 울리는 듯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쓰나미가 덮쳐 도망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하데스’라는 소리도 들려왔다(‘하데스’는 그리스 신화 속 명계冥界의 신이지만 당시에는 ‘하데스’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타츠키 씨가 꿈속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5시에 멈춰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다섯 개의 계단이 있는 낯선 육교, 그리고 지친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육교를 건너가니 바로 바다가 이어졌고, 그곳에는 몇 개의 배가 떠 있었다고 한다. 그 부분의 설명으로 되어 있던 대사를 소개한다.

 

“다리 끝!··· 배밖에 도착하지 않았어!! (큰 배가 3개) 작은 배가 오른쪽 끝에 1개, 게다가 주위는 바다로 되어 있어!!”“한국인이네. 그 옆은 미국인 배?” “그 옆이 인도인이고? 그 옆은 프랑스인이다. 그 옆에 있는 배는··· 아, 안개가 짙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안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큰 해일이 와서 모든 것을 휩쓸고 가 버린 것 같다.” 

 

 

대형 쓰나미 꿈 만화 원안
쓰나미가 몰려와 도망치는 사람들. 그 안에서 ‘하데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희미한 파도 소리와 서양에서 눈을 식히니 시계는 5시였다.

저자는 이 쓰나미의 원인에 대해 “쓰나미의 원인은 저는 모릅니다. 쓰나미가 덮친 마을이 어디일까? 단순한 꿈으로 끝날까 예지일까? 하! 곧 알게 되니까…” 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 꿈도 표지의 말과 마찬가지로 동일본 대지진의 예지몽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타츠키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동일본 대지진은 아직 추운 시기에 일어났지만, 그 꿈속에서는 자신이 반소매 하복 차림이었다는 것, 또 꿈에서 본 쓰나미의 높이는 동일본 대지진의 것보다 더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꿈은 후술한 ‘2025년 7월’과 관련된 예지몽이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한다

 

 

만화 〈내가 본 미래〉 | 漫画 〈私が見た未来〉(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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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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