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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1)

 

통탄스러운 친일의 굴레

일제는 한국을 강점한 후 동화를 식민정책의 주요한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약화시키고 일본민족에 동화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교육(특히 역사교육)과 종교였다.

일제는 강점 내내 이러한 노력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아직 채 교단도 안정화되지 않은 형성기의 종교, 특히 소위 유사종교들이 식민권력의 이러한 정책에 저항하기는 쉽지않았다. 더구나 자신들이 강점한 다른 민족들에게 조차 단순한 복종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신권적神權的 천황제를 정신적으로 승인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경배하라는 강요는 민족종교에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 27p

식민권력으로서는 타 종교에 비해 새로운 국가 건설을 기도하며 다수의 신도를 확보하고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던 보천교는 초기에 박멸하거나 어용화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유화정책을 사용하면서 분열과 그 조직의 약체화를 꾀했다. 종교통제 기구도 이원화시켰다. 소위 종교단체는 학무국 종교과에서 담당했지만 유사종교로 분류된 보천교는 총독부 경무국에서 감독토록 하여 강력한 폭력성과 억압성을 띤 통제를 가하였다. - 28p

'600만 교도'의 의미

보천교는 전국적으로 민중들의 '입교 권유에 노력한 결과' 놀랄만한 다수의 교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1920년대 전반기에는 '자칭·타칭 만 교인'으로 기록될 정도로 보천교는 한때 급성장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 내의 전체 인구가 1925년 기준 1,900만 명 정도였으니 600만 명 정도면 조선 민중의 1/3이 믿었다고 볼 수 있는 숫자였다. - 41p

당시 언론들도 '보천교 교도 600만 명'으로 대수롭지 않게 기록하고 있었다.(예. 신한민보 1927.6.23).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미국 총영사관의 밀러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정보보고서에도 동일한 숫자가 기록되었다. 물론 이는 "It is said to number moer 6,000,000 members."라 하여 간접 인용으로 되어 있다. 당연히 일제 식민권력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교단 기록은 그렇다 하더라도, 식민권력의 보고서들이 줄줄이 '600만 명'으로 기록한 것이다. 보통이라면 숫자를 축소해 기록하는 것이 상식적인 관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보천교의 60방주 조직은 간부가 557,700명으로 구성되었다. 교주 차월곡을 정점으로 그 밑에 육임-십이임-팔임-십오임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간부들을 모두 합하면 이 정도의 수가 되는 것이다. 이 간부들이 각 10명 정도를 포교했다고 한다면 보천교의 전체 교인 수가 600만 명에 근접한다.

실제로 보천교에서 팔임이 되기 위해서는 40명을 모집해야만 했었고, 간부는 100명을 포교해야만 직책이 주어졌다고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600만 명은 그저 수가 많다는 상징적인 숫자로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당시 민중들은 동학(천도교)이나 불교 등을 보천교와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보천교의 주문에는 동학 주문인 시천주주侍天主呪 등이 들어있고, 당시 천도교인들도 '천도교도가 되면 장래 조선독립에 즈음하여 물질적 이익을 얻는다'고 믿어 입교한 자들이 있었다.

민중들은 천도교인지 동학인지 보천교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는 불교나 타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김형렬이 위봉사에서 활동했던 경우처럼 보천교도와 불교도가 구분되지 않았고, 심지어 기독교인이면서 보천교 활동을 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 43p

 

이는 다음 사실과도 연결된다. 곧 일제강점기에 '소속'만을 기준으로 종교 인구를 추계할 수 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어느 '한 종교만을 신앙'해야 하고, 더욱이 '하나의 종교 교단에만 소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서구적인 시선일 뿐이다.

민중들은 어떤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방향을 찾아 헤매는 자신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고 민족독립에의 열망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44p

 

보천교의 전신인 증산도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계절, 우주변화원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생존의 비밀, 한민족과 증산도, 천지성공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생존의 비밀 책자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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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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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1)

 

"우리 족속은 죄가 많습니다.

형제끼리 서로 다투고 죽이나이다.

재앙의 불꽃이 눈썹에 닿여도 아무 감각없이 코 골고 자나이다.

원컨대 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모든 죄를 참회케 하소서.

(1923, 보천교 기관지 「보광普光」, 춘정생春汀生, <나의 심고>)

1910년 일제에 강점 당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지 상태라는 초유의 참담함을 경험했다. 그렇지 않아도 19세기부터 힘겹게 버티어 온 조선왕조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제국주의 일본의 한 지방으로 전락해버렸던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민족의 숨줄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 4p 프롤로그

1920년대 들어, 보천교 교단은 인적·물적 수단의 확대로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확보되면서 실력양성운동에 참여하거나 해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를 보며 무한한 고마움에 마음으로나마 지하에 계신 조부 조모님께 보천교에 대한 서광이 비추이게 되었다고, 일본사람들이 우리 민족 특히 보천교에 대한 탄압 그리고 사이비종교로 몰아 해산시키고
해방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이비종교로 알고 있고 교수님의 저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이 얼마나 많은데 불과 100년 전의 우리역사를 밝힐 사람이 없는가를 배우지 못한 제 자신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천교 북北방주 한규숙의 손자인 한순창(74세) 옹의 손편지 중에서)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보천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우리민족에게 숨쉴 여력을 제공해주고 민족독립의 희망을 심어줬던 민족종교이다. 민족종교라 하면 그 시초를 보통 동학에서부터 찾는다. 곧 19세기 중반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을 창교한 이래 많은 민족종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0세기 초에는 증산 강일순(1871~1909)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여 한국 민족종교사에 한 획을 그었다. 천지공사는 큰병大病이 든 천하를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건설하려는 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보천교는 이러한 '9년 동안의 천지공사'를 마친 강증산이 1909년 세상을 떠난 후 그 제자였던 월곡 차경석이 조직한 교단이다. - 19p

 

증산 사후, 증산의 유지를 계승하는 교단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졌다. 보천교와 관련된 교단으로 본다면 1911년 고판례(1880~1935)가 창립한 선도교를 최초의 교단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판례는 강증산의 부인이며 차월곡은 고판례의 이종동생이다.

1907년 차월곡의 집에 들렀다가 증산을 만났고 1909년 종통대권을 전수받아 1909년 이후 증산의 유지를 받들면서 차월곡과 함께 교단형성에 노력하였다. 그것이 선도교였다. 그러나 점차 의견차가 생기면서 차월곡과 거리를 두게 된다. 차월곡은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조직을 구성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1916년의 24방주 조직구성이다. 따라서 보천교의 출발을 조직 구성으로 본다면 1916년 24방주를 조직하고 업무분장한 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1p

강점 직후부터 조선민중의 사상과 행동이 '민족'이나 '독립'과 연결됨을 두려워했던 식민권력은 식민지 한국인의 동향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였다. 더욱이 강점과 더불어 각종 사회단체들을 전부 해산시킨 식민권력의 입장에서 종교단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식민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실체를 확인해서 민중과 분리했고 지식인을 동원하여 내분을 일으키고 왜곡시켜 소멸하도록 공작했다. 그런 면에서 결론적으로 본다면 식민권력의 종교 통제정책은 성공했던 것이다.

식민지 상황에서 엄청난 교세를 확보했던 보천교는 1936년 차월곡의 사망과 함께 해체되어 버렸고, 처음에 지적했듯이 해방 이후, 아니 현재 우리들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식민권력이 생성해 놓은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보천교가 잘못한 죄라고는 일제강점기에 교단을 형성한 죄, 자칭·타칭 600만이라는 수많은 조선 민중과 함께 했던 죄, 그런 만큼 자금이 많았던 죄, 그리고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죄밖에는 없는데도 말이다. - 22p

종교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883년 정도에 우리사회에 나타난 개념이다. 그것도 religion이라는 다분히 기독교적 개념을 접했던 일본 학계가 만들어낸 용어로, 이후 조선사회로 유입된 개념일 뿐이다. 그 용어로 민족종교를 재단하는 것, 그래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미신(사이비)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곧 '근대=문명=기독교↔보천교=미신=전근대'라는 틀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합되면서,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 24p

당시 기독교, 천도교 등 기득권 종교계는 민족종교와의 분리를 통해 제도화된 근대종교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보천교만 아니면 우리 기독교를 모든 조선민족에게 선포하는 것이 하룻거리 일로써, 획기적으로 조선에서의 교세를 독점할뻔 하였는데, 보천교는 우리 기독교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며 커다란 악마'라 보고 보천교 박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고 했다.

또 식민지 언론과 지식인들도 '근대'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열의와 카르텔을 보호받으려 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학계에서 보여지는 '식민사학의 카르텔' 보호처럼 말이다. - 25p

[책리뷰] 『숨겨진 역사 보천교』 요약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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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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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선의 심층심리학 자기최면- 놀라운 잠재의식의 작용

 

 

사람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이 있습니다. 그 중 잠재의식을 훈련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데 관련된 책으로 왓칭, 시크릿 등의 유명한 저서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책 중 하나인 자기개선의 심층심리학 자기최면에이라는 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중간에 증산도 도전의 성구들도 있으니 함께 음미하며 읽어보세요^^

 

 

놀라운 잠재의식의 작용

 

 


① 잠재의식은 암시를 잘 받는다.


② 잠재의식은 비판 없이 무엇이든지 받아들인다. 좋은 일이든 나 쁜 일이든 무비판적으로 받아서 행동을 일으킨다. 잠재의식 자체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3.잠재의식에 각인된 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④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이 다투었을 경우, 이기는 쪽은 언제나 잠재의식이다.

 

 

⑤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한다면 상승적인 힘이 발휘된다.'정신일도하사불성'이란 말처럼 정신을 집중시키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다. 화재가 난 장소에서는 무서운 힘이 생겨난다. "좋아지면 일을 멋지게 할 수 있다." 등의 말대로 의식과 감정이 일치했을 때 큰 힘이 발휘된다. 잠재능력개발훈련에서는 이 성질을 크게 이용하고 있다.


⑥ 잠재의식은 훈련이 가능하다. 자율훈련법, 암시에 의해서 잠재의식의 작용을 강하게 할 수 있다.

 

 


⑦ 잠재의식은 단세포이다. 외공이고 단순하고 구체적일수록 암시를 잘 받는다. 상대가 제일 기뻐할 것 같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말 자기최면을 되풀이해서 사용하면 잘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


⑧ 잠재의식은 다치기 쉽다. 외부의 자극에는 대단히 약하다.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 때문에 대뇌의 새로운 피질을 지키는 작용을 한다. 잠재의식은 잠들지 않는다. 의식은 잠들어도 잠재의식은 항상 활동하고 있다. 우리들의 생명이 있는 한 계속 일한다. 자고 있는 람에게 속삭인 사랑의 말도 잠재의식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속삭인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게 한다.


10.잠재의식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를 신뢰하고 호의를 나타내면 반드시 반응이 있다. 그것은 거리에 관계없다. 이러한 성질을 가진 잠재의식에 작용하는 데는 우선 의식의 벽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의 벽이 두꺼우면 벽을 제거하기 위해서 암시나 최면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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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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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 쓴 '부자의 운' 이란 책을 보았다. 요새 부자의 철학에 관한 책들이 한번씩 나온다. 이 사람은 특이하게 '부자의 운'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운을 불러오는 그의 사상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개인납세 1위인 사이토 히토리라는 사람인데,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책을 빌려와서 한 구절씩 읽고있다. 이 사람이 정말 부자의 운에 관해서 도통했는지는 책을 다 읽지 않아서 파악할 수 없지만, 가끔 괜찮은 구절이 있어서 한 번씩 블로그에 적어보려고 한다.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적을만큼 어마어마한 부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려 하면 그것이 고통으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책의 구절을 보자.

 

 큰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많은 돈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 가정집이 야채가게를 차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야채를 갖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온 집안에 야채가 널려 있어 지나다니는 것조차 불편한 생활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많은 야채를 다 먹기도 힘들것이다. 일반 가정집에는 그저 냉장고에 들어갈 정도의 야채만 있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상황이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중국의 양쯔강에는 수달이 사는데, 중국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수달은 양쯔강의 모든 물을 마시려고 덤비지 않는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간 배가터져 죽어버릴 테니까. 수달은 자기가 마실 수 있는 만큼의 물만 마시니까 살아갈 수 있는것이다. 돈을 포함한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한테 필요없는 것을 자꾸 많이 얻으려 하면 오히려 고통을 받는 법이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삶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 '부자의 운' 중에서

 

 

증산도 도전에는 복에 대해서 이 '부자의 운'의 저자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복을 얼마나 지니면 쓰겠느냐?" 하시면서 "너무 많으면 귀치 않다"라고 하신다. 생각해 볼만한 구절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갖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행복을 맞바꾸어가는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자족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또 이 말씀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복이 너무 없는 것도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괴로운 일이다라는 뜻도 된다. 물론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적정하게 복을 지니고 있어야, 사람은 돈에 정신이 매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라 생각해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돈이 아니니까 말이다.

다가오는 개벽세계와 삶의 지혜를 얻고 싶으신 분은 북두협객 010-9659-9576 으로 연락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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