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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美·日정상 회담과 미국의 동아시아 해양패권의 실체

 

 상생문화연구소 정원식 연구위원

 

 

<1월 13일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서로 악수하고 있다> 

 

   

2023년 계묘년 새해 벽두부터 동아시아의 패권경쟁 구도에서 동아시아 역내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일본과 미국 간의 밀착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13일 미 백악관은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국제질서에 어긋나는 중국의 행동과 북한의 도발을 점증하는 도전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응한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와 국내총생산(GDP) 2% 방위비 증액을 포함한 3대 안보문서 개정에 대해 “이번 일본이 보여준 과감한 리더쉽은 21세기를 위한 미일관계의 현대화“라고 극찬했다.

 

여기서 일본의 3대 안보문서란, 지난해 12월 16일 각의에서 개정한 외교·안보 기본 지침인 ‘국가안보전략’과 자위대 재편과 역할, 그리고 방위력 건설 방향이 담긴 ‘국가방위전략(구 방위계획대강)’, 구체적인 방위 장비의 조달 방침 등을 정리한 ‘방위력정비계획(구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을 일컫는다. 개정된 문서는 일본의 중장기 안보, 외교 전략을 비롯해 방위력을 획기적으로 개선·강화하는 군사대국화의 실질적인 마중물이다.

 

이번 미일정상회담의 큰 특징은 세계적 차원의 안보 위협세력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집중 겨냥하여 동아시아 역내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위협에 대응한 방어망구축에 대해 미일 간 전략적 이해가 정확히 맞물린 것이다.

 

한편,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의 핵심은 냉전시기부터 구축된 역내 국가들과의 동맹체제다. 예를 들어, 미·일안보조약, 태평양안전보장조약(앤저스조약), 미·필리핀상호방위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미·대만상호방위조약(1979년 폐기) 등이다. 

       

《자유롭고, 열린‘인도-태평양전략’ 현황》

구분
분야 내용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FOIP)
군사 
/
안보
·쿼드(Quad): 미국-호주-일본-인도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파이브아이즈(Five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경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기술 ·칩4(반도체 동맹):미국-한국-일본-대만

 

미국이 이 전략적 자원을 통해 과거 냉전시기부터 오늘날까지 중국에 대해 상당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적 이익은 바로 해양패권이다. 최근 해양패권은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 하에서 군사안보 부분에서는 쿼드와 오커스, 파이브 아이즈 등을 통해 추구되고 있으며, 경제 분야에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기술적인 분야에서는 반도체 동맹인 칩4 등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서 해양패권의 실체라 하면 중국의 동아시아 연해 및 도서국가들 전반에 대한 ‘해양권력투사능력’을 봉쇄할 수 있는 군사·정치적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중국 인접 국가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에 편입시켜 그들의 영토를 군사 기지화할 수 있는 능력과 두 번째는 중국의 전략적 무기 체계의 효력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최첨단 군사력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 해양패권의 구체적 상징은 바로 중국의 해양권력투사능력을 유사시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오키나와제도와 대만, 그리고 남중국해역, 한반도 서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Choke Point)들에 대한 확고한 장악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정학적 요충지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장악은 동아시아 해양패권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해양방어선인 도련선과 미사일 사거리 현황>  

 

이에 미국의 지정학자인 스파이크먼 교수도 일찍이 70여 년 전에 <평화의 지정학>에서 “중국의 해상팽창을 막기 위해 동아시아-서태평양 연해지역에 군사거점을 두어 중국이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천 차단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림랜드(Rimland)이론을 통해 림랜드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수륙양면의 완충지대로서 그곳의 대규모 인구, 풍부한 자원, 해안선 등을 활용하여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라고 설파했다. 동아시아 연해지역이 램랜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중국의 해양방어선이라고 일컫는 제1도련선과 겹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은 지난 부시행정부 시절 2001년 9월 《4개년 방위정책검토보고서》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진 핵심지역으로 림랜드에 해당하는 일본 오키나와로부터 대만, 동남아 도서국가, 호주, 벵골만 등에 연하는 ‘동아시아 연해국지역(East Asian Littoral)’을 지정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역내 중국의 해양팽창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최적화된 림랜드가 바로 미국의 해양패권의 주축인 대만과 오키나와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바이든-기시다 미일정상회담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만 유사시를 겨냥한 미일 양국의 구체적인 대응 조치들이다. 미국에게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턱밑에서 칼끝을 겨누는 비수와 같은 지역으로 중국의 해양팽창을 견제할 수 있는 불침항모(不沈航母: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와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이번 일본의 방위력 강화 구상도 실질적으로 대만 유사시에 초점이 맞춰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미국은 8,580억 달러(한화 1,114조원) 국방예산을 확보하여 글로벌 차원의 군사적 절대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방침이다. 일본의 반격능력에 필수적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사거리 1,600km) 1,000기 도입 지원과 사거리 1천km 넘는 대함미사일 개발 협력, 각종 최첨단 정보정찰 자산 통합 운용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센카쿠제도가 미일안보조약 제5조에 따른 방어대상이라는 점도 재차 환기시켰다.

 

둘째, 대만 유사시 대비와 중국 대륙을 겨냥한 오키나와제도를 포함한 난세이제도(南西諸島)에 대한 요새화다. 미국은 2025년까지 오키나와현에 주둔한 미해병대를 개편하여 병력 2천명 내외의  최첨단 정보-정찰과 대함미사일 능력으로 무장한 해병연안연대를 창설하여 배치키로 했다.

 

일본도 오키나와 현 병력 2천2백 명을 3천명으로 증강하는 여단급으로 확대 개편하고 1천km 장거리 대함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일본정부가 민간기업으로부터 매입한 가고시마현 남쪽으로 12km 떨어진 마게시마(馬毛島)에 미국은 F-35와 F-22전투기는 물론, 탐지거리 2천km 사드(THAAD),와 본토 방어용 레이더 HDR 등을 배치하여 중국을 본격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2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발표한
필리핀 군사 기지 4곳 사용권을 새로 확보한 지역>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난 2월 2일 필리핀 정부와 협의를 통해 해군과 공군 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 4곳을 새로 확보했다. 이들 기지들은 대만과 비교적 가까워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 해군과 공군 전력이 투사가 용이한 루손섬 북부 카가얀주와 그리고 중국과 필리핀 간 해양영토분쟁 중인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샤군도)를 마주한 팔라완 섬 등이다.

 

미국은 지난해도《2014 방위협력확대협정》따라 필리핀 군사기지 5곳을 이미 확보하였는데, 이번 합의로 모두 9곳을 미군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이 남중국해로 세력권 확장 견제와 대만해협 유사시에 군사적으로 확고히 백업(Back-up)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셋째, 일본은 반격능력을 포함한 일련의 방위력 증강을 위해 방위예산을 올해부터 2027년 회계연도까지 국내총생산(GDP) 2%을 증액하여 43조엔(410조원)예산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올해 방위예산을 작년 대비 26%나 증가한 6조 8천억 엔(65조 7천억 원)을 편성하여 토마호크마사일을 2,113억엔 구매와 극초음속 유도탄 연구비로 585억엔을 반영했다. 또한  잠수함 발사가 가능한 사거리 2천km 이상의 고속 활공탄과 3천km 사거리인 극초음속 미사일도 장기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일련의 미일 합의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존스홉킨스대 강연에서 “이번에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뼈대로 한 미일동맹 강화가 1951년 안보조약 체결, 1960년 신안보조약 개정, 2015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한 안보법제 제·개정에 이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해상방어선 제1~2 도련선>

 

 

이번 미일정상회담의 궁극적인 결론은 미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지역 군사강국으로 탈바꿈시켜 미국판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 역외균형자 핵심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행보는 바로 군사·정치적으로 비대해진 중국을 적극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동아시아 해양패권전략’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 바이든 대통령의 방패와 창을 모두 갖춘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인하고 지원하는 선택이 과거 군국주의 향수를 동경하여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하는 일본 보수세력에게 권토중래할 수 있는 소위 “고삐 풀린 망아지”로 귀결될 수 있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 외교-안보관련 정부 부처에서는 경계심을 가지고 여러 상황관련 경우의 수를 놓고 냉정하고 심도 있는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우리 정부는 미일외교·국방장관 회담과 미일정상회담 중 한반도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과거 1905년 7월 카쓰라-테프트밀약, 혹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처럼 우리가 모르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그들의 어떤 이면 합의 존재나 움직임에 대해 지난날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아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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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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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야 연맹의 탄생과 가야(김해)김씨의 유래.‘놋쇠청예’ 김수로 왕과 보주태후普州太后 황옥부인皇玉夫人과의 혼인, 그리고 황후의 출신 문제

 

 

상생문화연구소 전원철 연구위원

 

 

💬‘놋쇠청예’ 김수로 왕과 보주태후普州太后 황옥부인皇玉夫人과의 혼인, 그리고 황후의 출신 문제

《기언》의 가락국에 관한 같은 기사는 김수로의 아내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수로가 즉위한 지 7년 만에 아유타국阿隃陀國 군왕의 딸을 얻어 비로 삼으니, 이 사람이 황옥부인皇玉夫人이다. 또는 보주태후普州太后라고도 한다. 성은 허씨許氏이다. 혹은 남천축국南天竺國 군왕의 딸이라고도 하고, 혹은 서역西域의 허국許國 군왕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허국은 또한 허황국許黃國이라고도 한다. 

 

지誌의 기록에, “보주태후의 선군先君이 명하기를 ‘동방에 가락이라는 나라의 원군元君이 있으니, 너를 얻어 배필로 삼을 것이다.’ 하여, 바다를 건너 이르렀다.” 하였다.”

 

이와 관련 일부학자들은 그녀가 인도의 아유티아Ayuthia 지방 출신이라거나, 지나 서북의 한 지방 보주普州에서 살던 허씨 여인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주장들의 신빙성 관련, 아직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주장은 ‘아유티아’가 허황후의 고향인 ‘아유타’라는 나라 이름 소리가 같다는 것 외에는 다른 증거가 아무 것도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주장은 ‘보주’라는 지방명이 같고, 거기에는 허씨 여인 석비가 있다는 것이 근거인데, ‘보주’라는 지명이 있는 것을 사실이지만, 거기에 살던 그 ‘허씨’ 여인이 ‘공주’ 허황후였다는 기록은 없고, 비석에도 단지 ‘허씨’라고만 되어 있다. 허씨는 지나와 만주, 한반도에서 많은 인구를 가진 성씨인데, 그 중 한 여인의 비석 하나에 의존한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또 그 허씨 여인 석비에는 그녀가 동국으로 갔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현지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망한 한 여인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허국許國’이라는 나라와 관련하여 볼 때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우리 역사 속에서 보더라도 같은 나라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된 시기는 나중의 일이나,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 왕가의 지파인 걸乞씨 가문의 두 인물인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는 각각 진국왕震國王과 허국왕許國王의 칭호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국許國은 고구려 영토의 어느 한 일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허황옥 공주는 이 지방에서 온 여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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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세력 확장

《기언》의 같은 기사는 김수로 왕의 치적도 다음과 같이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수로가 다스릴 적에 백성들이 태평하고 편안하여 사방에서 와서 그를 본받았다. 음즙벌音汁伐(*경주시 안강읍)과 실직곡悉直谷(*삼척시 주변)이 땅을 다투어 서로 공격하다가, 두 나라가 다투어 신라에 와서 질정해 주기를 청하였다.

 

신라는 수로가 신명神明으로 다스린다고 여기고 불러서 물었는데, 수로가 이르러 다투던 땅을 음즙벌에 소속시키니, 두 나라의 어려움이 해결되었다. 신라의 임금 파사婆娑가 6부의 대인大人에게 명하여 수로를 대접하게 하였다. 여러 부에서는 수로를 두려워하여 모두 이찬으로 하여금 접대하게 하였는데, 유독 한지부漢祗部만이 접대를 귀인貴人에게 시키지 않았다. 수로가 예를 소홀히 하고 공경하지 않는다고 여겨 한지부의 대인 보제保齊를 격살하였다.

 

가락에 죄를 얻고 도망한 자가 음즙벌에 의탁하였다. 수로가 사신을 보내 그를 요구하였으나 음즙벌이 내주지 않았다. 이에 수로가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니, 음즙벌이 항복하였다. 후에 신라의 지마祗摩가 즉위하여 가락을 정벌하였으나 황산하黃山河에서 패하였다. 이에 나라가 더욱 강성해져서 국토가 동쪽으로 황산하에 이르고 북쪽으로 대량주大良州에 이르렀으며, 서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하고 서북쪽으로는 거타주居陁州(*지금의 진주晉州)에 이르렀으니, 이곳은 백제와의 경계이다.”

 

이상의 기록에 이어 《기언》은 가락국 시조 부부의 말년에 관해서도 기록하는데, 다만 이들이 실존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수명이 너무도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즉 “효령제孝靈帝 중평中平 6년(189)에 태후 허씨許氏가 졸하였다. 수壽는 157세이다. 태후는 아들 열을 두었는데, 어머니의 성을 얻은 자가 두 사람이라고 한다. 효헌제孝獻帝 건안建安 4년(199)에 수로가 졸하였다. 수는 158세이다. 납릉納陵에 장례하였다.” 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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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 왕자가 또는 공주가 일본으로 가서 일본왕가를 이루었다는 날조된 믿음

과거 재야사학자 문정창과 서동인 등은 가락국 허황후의 딸이 일본으로 가서 일왕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허황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어떠한 역사적 기록에도 근거하지 못한 허황되고도 잘못된 주장이고 또 역사적 사실과도 배치되는 주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왕실의 일부를 이룬 사실은 가야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우들이다. 우선 신라왕자 천일창이 일본으로 간 일이 있고, 또 그의 6대 후손녀가 일왕 응신천황應神天皇(201/321? ~ 310/430)의 어머니 진구황후神功皇后(170년? ~269년?)가 된 사실이 있다. 《고사기》의 응신천황조는 이를 자세히 계보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손녀인 화和씨 신립新笠이 환무천왕桓武天皇의 어머니가 되어 오늘날 일왕의 모계 선조가 된 사실도 《속일본기続日本紀》 권 제40의 기연력 8년 정월조에서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그 밖에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도 의려국왕依慮國王의 아들 의라依羅가 일본으로 가서 왜왕倭王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진서晉書》 사이전 부여조에는 ‘부여국왕夫餘國王 의려依慮’가 나오는데, 방금 인용한 《태백일사》는 그 부여국왕 의려依慮의 나라인 ‘부여국’을 “의려의 나라依慮國”이라고 조금 말을 바꾸어 기록한 것 뿐이다.

 

《진서》는 《태백일사》의 ‘의려의 아들 의라’를 ‘부여후왕夫餘後王 의라依羅’라고 했다. 이 기록의 사실성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일본에는 그들을 기념하여 모시는 신사도 있다. 카와치쿠니河内国의 의라향依羅郷(현재 마츠하라시松原市 북서부)인데 의라는 지역신으로 섬겨지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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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시조 김수로 이후 9세대, 총 10세대의 가락국왕의 계보

《기언》의 같은 기사는 이어서 가락국 총10세대에 걸친 세계를 이야기한다:

“가락국 시조 수로 왕이 세상을 버렸다. 그러자, “아들 거등居登이 즉위하여 칠점산七點山의 선인仙人 참시旵始를 부르고, 초현대招賢臺를 지었다. 그 뒤 마품麻品, 거질미居叱彌, 이시품伊尸品에게 자리가 넘어 간 뒤, 좌지坐知에 이르렀다.

 

좌지는 용녀傭女를 얻어 그녀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자 용녀의 무리가 권세를 부려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에 신하 원도元道가 간을 하여 시초점을 쳐서 풀 괘解卦를 얻었다. 해괘의 점사占辭가 이르기를, “너의 엄지발가락을 풀어 버리면 벗이 이르러 믿을 것이다.” 하였다. 좌지가 사죄하고 용녀를 하산荷山으로 내쫓으니, 나라가 다스려지고 강성해졌다.

 

그 뒤 취희吹希, 질지銍智에게 전위되었는데, 질지가 국모國母 황옥부인을 제사하였다. 질지가 졸하고 겸지鉗知가 즉위하였으며, 겸지가 졸하고 구형仇衡이 즉위하였다.

 

구형이 신라 법흥왕 1년(514)에 신라에 항복하니, 왕이 객을 대하는 예로 우대하고, 그 나라를 금관군金官郡으로 삼아 식읍으로 봉해 주었다. 문무왕이 즉위함에 이르러 금관소경金官小京을 두었다.”

 

가락국은 이리하여 모두 10세에 491년을 이어가다가 나라가 망하였다.” 가락국은 이리하여 신라에 통합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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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육가야국을 세웠지만 신라에 흡수된 가야 김씨들의 대표는 김해 김씨이다. 이 씨족에는 방금 본 인물들이 배출되어 고대 및 현대 한국사에 귀중한 역할을 하였다. 다만 통계청이 실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오늘날 우리 국민 절반이 김·이·박·최씨인 것으로 조사되었고, 성씨 본관 중엔 김해 김씨가 446만 명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스스로 김해김씨와 그 밖의 다른 6가야 출신 김씨들이라고 주장하는 그 인구는 남한 만에도 500만에 가까울 것으로 보이는데, 남한 인구 절반 정도인 북한의 김해김씨계 인구를 약 250만으로 잡는다면 그 수는 엄청나다.

 

한편 김해김씨임을 주장하는 이들 모두가 김수로 왕과 그 6형제의 직접적 후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다른 왕족 가문들의 경우, 남한만 친다면, 대개 겨우 3만~수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구려 왕가 후손인 황성 고씨, 백제 왕가인 부여 서씨, 그리고 발해 왕가 후손인 영순 태씨와 밀양 대씨, 고려 왕가의 후손인 개성 왕씨와 같은 경우가 모두 각각 3만을 넘지 못한다.

 

물론 고구려–백제–발해–고려 계 왕가의 후손의 수가 매우 적은 이유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우선 고구려–백제 왕가의 경우는 그들 중 상당수가 당나라로 끌려간 탓도 있고, 일부는 나라가 망하자 일본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개성 왕씨의 경우 조선 개국 이성계의 전주 이씨가 그들을 철저히 살해하였기 때문이다. 살해를 피한 개성 왕씨들도 장차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부계 성 왕씨가 아니라, 자신들의 어머니의 성씨에 따라, 전全씨, 옥씨, 전田씨 등으로 성씨를 바꾸었다.

 

이와는 달리, 나라가 망했으나 신라왕가의 우대를 받은 김해김씨나 고려왕건에게 투항한 경주김씨는 왕건의 호족 유화정책 아래 오히려 우대를 받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야김씨와 신라김씨 계 인구가 특별히 다수인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발해의 성씨에 관해 기록한 송나라의 홍호(洪皓)가 1156년에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적은 《송막기문》에 따르면 “발해국 왕은 옛날부터 대씨大氏를 성으로 삼았다. 우성(귀족성씨)은 고高ㆍ장張ㆍ양楊ㆍ두竇ㆍ오烏ㆍ이李 등 몇 종류에 불과하다. 부곡部曲이나 노비 등 성씨가 없는 자는 모두 그 주인(의 성씨)을 따른다.”고 한다.

 

발해의 경우처럼 김해김씨와 경주김씨와 같은 왕족 가문 성씨를 가진 인구 중에도 왕가를 섬기던 노비들 중 상당수가 그 성씨를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조선시대에 그 가문들의 족보를 얻음에 따라 이 가문 인구수가 엄청나게 불어난 것은 아닐까 한다. 여하튼 그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이제 이 씨족의 당당한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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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소아小雅·사모四牡』(2)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시‧패풍‧식미』는 수자리 나간 사람이 아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을 담은 시다. 훗날 당나라의 시인 왕유王維는 이 시를 활용하여 「위천 땅의 농가(위천전가渭川田家)」라는 시를 지어 집으로 되돌아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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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어둡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군주의 일이 아니라면,

어째서 이슬 속에 있으랴?

式微式微, 胡不歸?

微君之故, 胡爲乎中露?

 

어둡고 어둡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군주의 몸이 아니라면,

어째서 진흙 속에 있으랴?

式微式微, 胡不歸?

微君之躬, 胡爲乎泥中?

   

이 시는 수자리 나간 병졸이 노역을 강요하는 가혹한 통치자에 대한 원망을 담은 시다. 이 시의 핵심은 “호불귀胡不歸”에 있다. 날이 어두운데 어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에 있다. 

 

훗날, 동진시대 도연명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돌아가리라.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을쏘냐?”(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라고 하여, “호불귀胡不歸”란 반문 어법을 통해 전원살이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시적 화자는 이 시에서 군주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고생을 하며 지낼 것인가 반문하면서 위정자에 대한 강한 불만과 원망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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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이여,

한 묶음 섶도 흘려보내지 못하네.

그 사람,

나와 신에서 수자리 살지 않네.

그리워라 그리워라,

어느 달에나 나 돌아갈꼬?

揚之水, 不流束薪.

彼其之子, 不與我戍申.

懷哉懷哉, 曷月予還歸哉?

 

잔잔한 물이여,

한 묶음 싸리나무도 흘려보내지 못하네.

그 사람,

나와 보에서 수자리 살지 않네.

그리워라 그리워라,

어느 달에나 나 돌아갈꼬?

揚之水, 不流束楚.

彼其之子, 不與我戍甫.

懷哉懷哉, 曷月予還歸哉?

 

잔잔한 물이여,

한 묶음 갯버들도 흘려보내지 못하네.

그 사람,

나와 허에서 수자리 살지 않네.

그리워라 그리워라,

어느 달에나 나 돌아갈꼬?

揚之水, 不流束蒲.

彼其之子, 不與我戍許.

懷哉懷哉, 曷月予還歸哉?

 

이 시는 『시詩‧왕풍王風‧양지수揚之水』이다. 이 시의 핵심은  ‘환귀還歸’에 있다. 정든 고향집으로 하루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양지수揚之水”는 남편에 비유한 것이고, ‘속신束薪’과  ‘속초束楚’와  ‘속포束蒲’ 등은 모두 남녀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아내에 비유한 것이다.

 

시적 화자는 오랫동안 타지의 변방에서 수자리를 살면서 식구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데서 생겨나는 향수와 위정자에 대한 원망을 표출하면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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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 남쪽에서 울리네.

어이해 그이는 이곳을 떠나,

틈을 내지 못하시나?

씨억씨억 임이시여,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殷其雷,

在南山之陽.

何斯違斯,

莫敢或遑?

振振君子,

歸哉歸哉!

 

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 곁에서 울리네.

어이해 그이는 이곳을 떠나,

쉴 틈도 없으시나?

씨억씨억 임이시여,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殷其雷,

在南山之側.

何斯違斯,

莫敢遑息?

振振君子,

歸哉歸哉!

 

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 밑에서 울리네.

어이해 그이는 이곳을 떠나,

머물 틈도 없으시나?

씨억씨억 임이시여,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

殷其雷,

在南山之下.

何斯違斯,

莫或遑處?

振振君子,

歸哉歸哉!

 

이 시의 제목은  『시詩‧소남召南‧은기뢰殷其雷』이다. 아내가 멀리 행역을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아내는 남편이 하루속히 고향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하였다.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귀재귀재歸哉歸哉!)”라는 아내의 애절한 외침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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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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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 시詩·소아小雅·사모四牡(1)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제목풀이】 

『시詩』는 311편의 시가 수록된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다. 제목만 남아 있고 가사가 없는 6편을 제외하면 305편이다. 처음에는 『시詩』 또는 『시삼백詩三百』으로 불리었다. 한대 이후 유가 사상이 통치 이념으로 확립되면서,  『시』는 유가의 주요 경전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되어  『시경詩經』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의 창작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이르는 약 500년의 시대이다. 서주西周 초기에서 동주東周 말기에 이르는 시기다.  『시』의 내용은 「풍風」, 「아雅」, 「송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풍風」은 주대의 각 지역의 민간 가요이고, 「아雅」는 주나라의 정통 음악을 말하는 데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나누어지며, 「송頌」은 주나라 왕실과 귀족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음악인데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이 있다.

 

『시詩·소아小雅·사모四牡』는 객지로 출장을 나간 관리가 나랏일에 시달려 잠시도 쉴 겨를이 없는 고달픈 상황에서 하루속히 고향집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봉양하며 가족들과 한집에서 오순도순 살고픈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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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필 수말 터벅터벅,

 큰 길 꾸불꾸불.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랴?

 나랏일 끝이 없어,

 내 마음 아프고 슬프네.

 四牡騑騑,

 周道倭遲.

 豈不懷歸?

 王事靡盬,

 我心傷悲.

 

 네 필 수말 터벅터벅,

 헐떡헐떡 가리온.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랴?

 나랏일 끝이 없어,

 편히 쉴 겨를 없네.

 四牡騑騑,

 嘽嘽駱馬. 

 豈不懷歸? 

 王事靡盬, 

 不遑啓處.

 

 푸득푸득 비둘기,

 오르락내리락,

 상수리 떨기에 모였네.

 나랏일 끝이 없어,

 아버님 봉양할 겨를 없어라.

翩翩者鵻,

載飛載止,

集于苞栩.

王事靡盬,

不遑將父.

 

푸득푸득 비둘기,

오르락내리락,

구기자 떨기에 모였네.

나랏일 끝이 없어,

어머님 봉양할 겨를 없네.

翩翩者鵻,

載飛載止,

集于苞杞.

王事靡盬,

不遑將母.

 

네 필 가리온을 몰고,

허겁지겁 내달리네.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랴?

이로써 노래 지어,

어머님 봉양을 생각하리라.

駕彼四駱,

載驟駸駸,

豈不懷歸?

是用作歌,

將母來諗.

 

『시詩』에는 고향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많다. 『시詩』에서 귀향을 꿈꾸는 이의 회귀의식回歸意識을 대변하는 말은 ‘회귀懷歸’이다. ‘회귀懷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회귀懷歸’라는 말은 『시詩·소아小雅·출거出車』와 『시詩·소아小雅·소명小明』에도 나온다. 어찌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기불회귀豈不懷歸?”에 이 시의 핵심이 있다.

 

원나라의 위대한 화가 예찬倪瓚(1301-1374)은 『시詩·소아小雅·사모四牡』에 나오는 ‘회귀’라는 말에 착안하여 「회귀懷歸」라는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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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객지 생활 돌아가고픈 생각만 아득하고,

솔숲 속 띠 지붕에 여라 넝쿨 뻗었네.

복사꽃 오얏꽃 봄바람 속의 석잔 술,

부들 침상에 밤비 내리는 배.

기러기 자취 우연히 눈 내리는 물가에 남겼는데,

학의 마음은 원래 지초 밭뿐이네.

타향은 귀향의 즐거움만 못하나니,

푸른 숲에선 해마다 두견새가 울부짖누나.

久客懷歸思惘然,

松間茅屋女蘿牽.

三杯桃李春風酒,

一榻菰蒲夜雨船.

鴻迹偶曾留雪渚,

鶴情原只在芝田.

他鄕未若還家樂,

綠樹年年叫杜鵑.

 

『시詩‧왕풍王風‧군자우역君子于役』은 아내가 수자리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여기서 ‘군자君子’는 남편에 대한 존칭이고, ‘우于’는 간다는 뜻이며, ‘역役’은 부역 또는 행역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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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께서 부역 가시어,

돌아올 기약을 알 수 없으니,

언제나 돌아오실꼬?

닭은 홰에 깃들고,

날 저무니,

소떼와 양떼 내려오네.

임께서 부역 가시니,

어이 그립지 않으랴?

君子于役, 不知其期, 曷至哉?

雞棲于塒, 日之夕矣, 羊牛下來.

君子于役, 如之何勿思?

 

임께서 부역 가시어,

날로 달로 셀 수 없네.

언제나 다시 만날꼬?

닭은 홰에 깃들고,

날 저무니,

소떼와 양떼 내려오네.

임께서 부역 가시니,

부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으시길?

君子于役, 不日不月, 曷其有佸?

鷄栖于桀. 日之夕矣, 羊牛下括.

君子于役, 苟無飢渴?

 

 

수자리 살러 떠난 임은 도대체 언제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을까? 임께서 수자리 가신 날은 며칠도 아니도 몇 달도 아니니, 날로도 달로도 헤아릴 수 없다. 돌아올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온 생명이 제 집을 찾아 돌아가는 황혼녘이다. 닭은 아침에 뜰에 내려와 온종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해가 질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닭장에 돌아와 홰에 오른다. 양떼와 소떼는 아침에 목동과 함께 산에 올라가 풀을 뜯어 먹다가도 날이 저물면 제 우리를 찾아 돌아온다. 해가 저 서산 너머로 지면, 짐승조차도 집으로 돌아올 줄을 안다.

 

시인과 촌장은 「풍경」이란 노래에서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저녁 풍경이라고 강조하였다. 저녁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돌아오건만, 부역 나가신 내 임은 해가 져서 날이 어둑어둑한데도 집으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임께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지나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시적 화자는 이 시에서 모든 것이 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풍경과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낙네의 심정을 하나로 융합함으로써 정경교융情境交融의 경지에서 오래도록 객지에서 수자리 살고 있는 남편이 하루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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