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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1)-2
사마천, 삼국사기, 소호금천씨, 황제헌원

씨氏와 성姓의 차이점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혼용해서 사용하는 씨氏와 성姓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복희씨, 신농씨, 강姜씨, 희姬씨 이렇게 되어 있는데, 성이 씨보다 큰 개념으로 여러 씨들을 포괄한다.

성은 주로 토템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하는데, 성姓 자의 부수가 ‘여자 여女’인 것은 성이 모계 사회에서 나왔음을 말해 준다.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전환되면서 성이 나뉘어 씨가 다시 나타나는데, 하상주夏商周 3대 때 씨는 귀족 종족 제도의 대표적 칭호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분화되면서 성이 한 가족이 후대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칭호라면, 씨는 성 중에서 갈라져 나가 일부가 사용하는 것으로, 나라 이름이나 읍의 이름, 또는 관직이나 직업의 이름을 씨로 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에는 주로 자라서 성공한 곳을 성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신농씨는 강수姜水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姜씨의 시조가 되고, 황제는 희수에서 자라 희성姬姓이 되었다. 즉 성姓은 지금의 본관과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사마천이 삭제한 김金씨의 시조,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사마천이 쓴 오제 중에서 황제헌원黃帝軒轅의 맏아들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이를 현효玄囂 또는 청양씨青陽氏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현효 청양이 중원 상고사 최대의 수수께끼 인물인 소호少昊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화하족의 정통 역사를 쓰려는 사마천은 그 시조를 황제로 잡았는데, 그 아들은 동이족으로 잘 알려진 소호금천씨이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들이 동이족인데, 아버지는 화하족인 셈이 된다. 이를 통해 소호금천씨는 황제의 계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소호금천씨는 배달국 초기 주곡관主穀官인 고시씨高矢氏의 방계 후손으로 되어 있다. 황제黃帝 역시 웅씨족 후손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부친인 소전씨少典氏의 별파이다.

소호씨는 황제헌원의 계통을 이은 전욱고양顓頊高陽과 대립 관계에 있었고, 배달국 태호복희씨의 법을 닦아, 태호太昊 다음 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소호少昊라 하였고, 금덕金德에 의해 임금이 되어 금천金天이라 하였다고 한다. 소호는 궁상에서 태어나 동이의 수령이었다고 전해지며, 관직명을 새의 이름으로 했다고 한다. 또한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고 전해진다.

소호금천씨는 한국의 김金씨들, 특히 경주 김씨慶州金氏와 김해 김씨金海金氏 그리고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언급하고 있다. 당唐나라에 살았던 신라인 김씨 부인의 행적을 기록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는 신라 김씨의 조상이 소호씨금천이라고 새겨져 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가야 왕족 출신인 김유신의 묘비명에 시조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새겨져 있다는 기록이 있다.


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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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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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1)

 

들어가며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관史觀이다. 일정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서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역사의 내용은 완전히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기 이전에 그 역사를 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민족사를 우리 시각이 아니라, 중화 사대주의사관과 일제 식민사관 등으로 오염된 역사관으로 보아 왔다. 해방 이후에도 제대로 된 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잘못된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사正史인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라는 망발로 치부하며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중국 통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대한 주석 작업을 해 온 이덕일 소장의 신작 『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발간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기』가 지니고 있는 역사학계의 위상은 굉장히 크고, 그 가치에 비례하여 우리 한민족사는 완전히 비틀려 있기 때문이다. 『사기』에는 우리의 상고사를 엿보게 해 주는 자료가 들어 있는데, 이 부분이 아주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사기』만 제대로 연구되더라도 지금의 중국 역사를 시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동이족의 관점으로 바라본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의 원뿌리를 찾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사마천이 속이고 조작한 ‘사기詐欺’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책 내용 살펴보기


이 책의 핵심은 그동안 중국 최고 역사서로 인정받아 온 『사기』에서 한족의 정통 계보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살피고 그 과정에서 사마천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기전체 역사서의 탄생〉에서는 사마천은 왜 기전체紀傳體라는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하였는지, 그리고 ‘민족’이라는 용어에 담긴 상반된 의미를 통해 책 내용에서 계속 언급하는 동이東夷와 화하족華夏族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실체가 없었던 한족漢族을 만들고 그 한족들이 중국사를 창조하였다는, 그렇게 만든 한족들의 천하사가 바로 『사기』임을 천명하고 있다.(본문 35쪽 참조)

이어 2장 〈중국 고대사는 동이족의 역사〉에서는 오제五帝 이전 삼황三皇의 실제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바로 삼황의 첫 번째인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 등을 다루면서, 이 삼황은 동이족이었음을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로 논증하고 있다. 3장 〈오제를 찾아서〉에서는 중국민족이 자신들의 시조로 여겼던 황제黃帝의 민족 귀속성과 성 및 출생지 등과 함께 사마천이 지우려 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어 오제의 또 다른 인물들인 전욱顓頊과 곡嚳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에 대해서 다룬다. 여기서는 요순선양堯舜禪讓의 진실과 더불어, 중원 고대사의 실체에 대해서 큰 충격을 준 낙빈기駱賓基의 『금문신고金文新考』를 통해서 순임금이 요임금의 두 딸과 혼인한 것은 동이족의 혼인 풍습임을 설명하고 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읍지는 동이족의 유적지이고, 이들 역시 동이족임을 말한다.

이어서 황제를 중국사의 시조로 삼으면서, 동북아 5대 역사 왜곡의 시초인 탁록대전琢鹿大戰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4장 〈하•은•주 삼대의 시조들〉에서는 역시 동이족 국가인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그리고 주周나라 시조들의 혈통을 말하고 있다. 이어 주나라가 중원을 점령하면서 중국中國이라는 개념과 화이관華夷觀이 탄생했음도 알려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 〈『사기』 「세가」의 세계世系〉를 통해서 중원을 지배했던 이들이 동이족 출신의 제후국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서 동이족의 실체는 중원中原에 널려 있으며, 이들에 의해 중원 대륙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가 진행되었음을 밝히면서, 사마천이 『사기』에서 감추려 했던 역사의 실체를 밝히는 첫 작업이 이 책의 발간임을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사기』가 감추어 왔던 비밀들이 후속 작업을 통해서 더 명백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본 한중 고대사의 비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중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이다. 이는 중국 민족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중국 민족은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를 따서 한족漢族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禹임금의 하나라에서 ‘하夏’ 자를 따고 산시성陝西省 화산에서 ‘화華’ 자를 따서 하화족夏華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한족, 즉 하화족 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인데, 사마천은 황제黃帝부터 시작하는 「오제본기五帝本紀」로 중국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마천의 이런 설정에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제 전에 삼황三皇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색은索隱』의 편찬자 사마정司馬貞은 사마천이 삼황을 삭제한 데 불만을 품고 복희, 신농, 여와씨를 수록한 「삼황본기三皇本紀」를 따로 편찬했을 정도로 사마천의 계보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사마천은 오제의 시작을 황제로 설정했지만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215~282)은 『제왕세기』에서 삼황도 수록하고 황제가 아니라 소호少昊를 오제의 첫 번째로 꼽았다. 사마천이 황제부터 중국사를 시작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마정과 황보밀 등은 사마천이 삼황과 오제를 삭제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국은 최근 산둥성山東省 남부 임기臨沂(린이)시에 거대한 동이문화박물관을 열었다. 여기에 네 명의 동이족 군주를 전시해 놨는데,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치우蚩尤, 순舜임금이 그들이다. 삼황의 시작이 태호복희씨이기 때문에 삼황부터 『사기』를 기술하면 한족의 중국사가 아니라 동이족의 중국사가 되기 때문에 삼황을 삭제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과 역사 만들기는 여기서부터 비롯하였다.

화하족은 실체가 없다

저자는 우선 ‘민족民族’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다. 혹자는 민족이 근대에 생겼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기초를 모르는 무리한 주장들’이라고 하였다.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는 서구에서 들어온 용어들을 일본에서 한자로 만든 것이 맞다. 그렇지만 1872년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이때부터 민족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민족을 족류族類 또는 겨레라고 하였다. 그리고 근대 유럽 사회의 민족은 중세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 사회가 무너지고 민족국가가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된 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민족주의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의미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족을 뜻하는 한자는 크게 이夷와 화華로 나뉜다. 화華는 꽃이 핀다는 뜻인데, 중국의 전국시대와 전한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는 한족漢族의 의미가 없다. 반면 이夷는 상商(은殷)에서 만든 갑골문에 나오고, 주나라의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에 여러 번 나온다. 이夷는 ‘큰 화살을 쏘는 사람’이라는 뜻과 평(평정平定)한다는 뜻이 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꺾고 중원을 차지한 후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주요 영역인 허난성河南省 낙양 일대를 하락河洛(즉 황하와 낙양 일대 지역)이라고 구분했는데, 이를 중국中國이라고 부르면서 화이華夷 개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즉 주나라를 중심으로 사방의 겨레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분류하면서 하화夏華와 이夷의 개념이 생겼는데, 이는 사마천의 『사기』 이후 뚜렷해졌다.

현재 중국인들은 자칭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이 한족의 전신은 하화족夏華族이라고 말하는데, 하나라가 자신들을 중국으로 여겼다는 사료적 근거는 찾기 힘들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즉 하화족의 실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이 숨기려고 했던 특급비밀 - 삼황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인댄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오
마땅히 선천 문명의 조종祖宗은 태호 복희씨인데 웬일로 도 닦는 자들이 허다히 부처 타령들이냐! (증산도 도전道典 5편 282장 3절)



강씨는 인류의 시원 성姓이니 상고시대 동방 배달의 신농씨神農氏로부터 시작하니라. 신농의 아버지 소전씨少典氏가 군병 감독의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 살았으니 신농이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성을 강姜씨로 하니라. 신농의 후손 강태공姜太公은 동방 신교의 일맥一脈을 한족漢族에 전수하고, 병법兵法과 정치政治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베푸니라. (도전道典 1편 12장 2절 ~4절)



삼황은 흔히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꼽는데, 복희씨와 신농씨는 부동이지만, 황제는 수인燧人, 축융祝融, 공공共工 등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또한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도 말하며 이는 천지인 삼재三才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이 천지인 사상은 한민족 고유의 핵심 사상으로 이는 동이족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즉 태호복희씨와 신농씨가 동이족 출신이기에 사마천은 이 삼황을 삭제하려 했음을 저자는 문헌 자료를 근거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사기, 2천 년의 비밀 - 사마천이 만든 중국사 (1)-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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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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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FOCUS | 종도사님께 듣는 대한역사관 

 

일곱 번째 국통맥 - 고려 시대

Q1. 고려 시대에도 인류 최초의 경전 『천부경』에 대한 전수 기록이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 때에는 목은 이색李穡과 『북부여기』를 통해 북부여의 역사의 원본을 드러낸 범세동范世東이 고려 말에 『천부경 주해』를 남겼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전하지는 않습니다.

『태백진훈太白眞訓』에 보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이 한 스무 살 정도 어린 최영崔瑩(1316~1388) 장군으로부터 『천부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때 이암이 무인 시대를 종결시킨 류경柳璥(1211~1289)이라는 분의 집에 숨겨져서 전해 오는 『가장구전家臟舊傳』을 인용하면서 『천부경』이 무엇인지 천·지·인으로 한 구절씩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Q2 고려 시대에는 세 인물의 등장으로 한민족 정신문화의 체계를 세우고 그 가르침을 정리해서 우리 역사 문화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 인물은 어떤 분들이며, 어떤 업적을 남기셨나요?


고려 말에 소전거사素佺居士라는 분이 비책秘冊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전거사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천보산에 태소암太素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그 암자에서 소전거사로부터 고기록을 전수받은 3인방이 ‘우리 역사를 회복하자!’ 하고 천지에 맹세를 했습니다. 이 3인방이 지금으로 말하면 수상까지 지내고 『단군세기』를 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 같은 조정에 근무하며 『북부여기』를 저술하여 북부여사를 전체적으로 복원시켰으며 복애거사 범장이라 불리는 범세동范世東(1342~1395) 그리고 『진역유기震域留記』를 저술한 이명李茗입니다.

Q3 행촌 이암 선생은 10세 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환단의 역사 회복을 다짐하는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평생의 삶을 관통한 이 시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행촌 이암은 공민왕 때 국무총리 격인 수문하시중을 역임하면서 고려 말에 여섯 명의 왕을 모신 학문이 아주 넓고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구촌의 3분의 1을 통일한 원元나라 대제국이 쳐들어와서 고려가 원나라의 시녀로 전락할 때였고, 류청신柳淸臣 같은 역적이 고려라는 나라의 간판도 떼어 버리고 보따리 싸 들고 가서 원나라 조정에 귀속해 버리자며 날뛰던 때입니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이 『단군세기』를 집필한 것입니다.

행촌 이암은 열 살 때, 아버지의 명으로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위에서 사서삼경과 우리 시원 역사의 경전을 암송하며 읊은 시가 있습니다. 소년 이암은 이 시를 읊으면서 하늘의 삼신상제님과 약속했던 것입니다.

仙風猶烈塹城壇(선풍유열참성단)
孰將燭喝昏衢志(숙장촉갈혼구지)
求我自今天下安(구아자금천하안)
참성단 위에 선풍이 강렬히 몰아치고 있구나
그 누가 어두운 동방의 거리를 밝게 비출 것인가
내가 이제 동방 천하의 평안을 구하리라.



Q4 행촌 이암 선생의 역사 회복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정신은 할아버지인 이존비 선생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존비 선생은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행촌 이암의 할아버지 후암 이존비李尊庇(1233~1287) 선생은 고려 경효왕 때 인물입니다. 일찍이 자주와 부강의 정책을 자주 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25세 충렬왕에게 올린 진언을 보면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환단桓檀(환국-배달), 조선, 북부여, 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自主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왕건)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시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군신 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또한 왜와 더불어 원한을 쌓고 있으니 원나라 왕실에 변고가 생긴다면 장차 무엇을 믿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황제라 칭하는 일을 이 시대에 꺼리고 기피하여 갑자기 회복하기는 진실로 곤란하나 자강自强의 계책은 강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 『태백일사』 「고려국본기」 中



Q5 『단군세기』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도통 문화의 마음의 구성 원리 원형’을 보여 준다고 말씀하신 『단군세기』 서문은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단군은 한 분이 아니고 마흔일곱 분이 정확하게 2,090년 동안 옛 조선, 단군조선의 왕조 시대를 운영했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것이 『단군세기』입니다. 이 『단군세기』는 “우주 창세 역사 황금시절의 원형 문화를 구성하는 인간론, 신관, 역사관, 우주관이 융합돼 있고, 우주 통치자 하나님의 심법과 하나님의 통치 원리, 그리고 인간이 자기를 회복해서 ‘진아眞我, 참나’를 완성하는 궁극의 수행법 및 도통 심법을 전수하는 핵심을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 경전”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해에 한민족에게 전한 역사의 유언과 같은 『단군세기』 서문을 썼습니다. 이 서문에는 우리 한민족의 천지광명 문화 역사관의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경문보다, 사서오경 경문보다, 주역의 경문보다도 더 놀라운 우주 정상의 진리의 근본 틀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서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환단고기』에 눈을 뜹니다. 이 서문을 읽고 책 제목인 사자성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뜻을 말할 수 있다면 『환단고기』의 역사관, 우주관에 대해 자신 있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군세기』 서문은 한 5백 번, 1천 번 이상을 읽어야, 이것은 정말로 도통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군세기』 서문에는 모든 종교 경전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역사관의 근본을 통할 수 있는 큰 주제인 인간이란 뭐냐 하는 인성론, 인간의 마음의 세계에 대한 모든 주제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그럼 무엇으로부터 우리 자아를 알 수가 있느냐?” 하고 묻고서 갑자기 우주의 삼신 문제를 폭탄처럼 선언하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모든 것은 나를 먼저 아는 데 있다 - “선재지아先在知我.” 그럼 무엇으로부터 나를 알 거냐? “부삼신일체지도夫三神一軆之道는”, 대저 삼신이 한 몸으로 계신 도는, 하늘과 땅과 인간은 셋으로 무한히 크고, 삼신의 조화로써 원융무애하며, 삼신의 조화성으로 영원히 일체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삼신이 한 몸이 되는, 삼신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도통의 길은 “재대원일지의在大圓一之義하니”, 대원일의 정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원일大圓一은 무엇인가? 한없이 크고, 융합이 되는, 원융무애하게 하나가 되는, 그 무엇과도 함께 하나가 되는, 일체의 경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화신이 내려와서 나의 본성, 내 마음의 근원이 되고, 교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나의 영원한 생명이 되었고, 치화신은 내 몸에 들어와서 내 몸을 다스리는 생명의 근거, 정기가 되었다.” 하고서 “부성자夫性者는 신지근야神之根也라.” 대저 성이라는 것, 인간 마음의 근원, 조화 세계는 바로 신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30년을 읽고서 자다가 눈을 뜬 게 이 한 구절 때문입니다. 이것이 『환단고기』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입니다.

Q6 행촌 이암 선생과 함께 소전거사로부터 비서秘書를 전수받고 『북부여기』를 집필하신 복애거사 범장(범세동)은 어떤 분이신지요?


행촌 이암과 거의 같은 시기에 『북부여기』를 낸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역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나서 이성계가 고려의 충신을 쓰려고 하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이 거부를 했습니다. 두문동에 은거하고 나가지 않은 사람들을 두문동 72인이라 하는데, 범장은 그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璋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의 중간 허리인 북부여사를 복원했습니다. 이분이 나주羅州 분이고, 광주에 사당도 있습니다. 복애거사 범장의 조상(범승조)은 송나라에서 넘어왔습니다. 그 조상은 본래 동이인東夷人으로, 이것은 천지의 어떤 보이지 않는 섭리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동방 땅 조선의 창세 역사 복원이라는 절대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손을 내기 위해서, 복애거사 범장의 조상을 이쪽으로 망명시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Q7 복애거사 범장이 지은 『북부여기』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북부여기』는 부여사를 완전하게 복원해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가 뽑히고, 환국·배달·조선에서 여러 나라 시대 즉 열국 시대로 가는 출발점인 부여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이 북부여와 동부여의 차이를 모르고, 동부여와 서부여의 차이도 모릅니다. 『북부여기』를 보면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부입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고주몽의 아버지는 고모수高慕漱(옥저후 불리지)예요. 고구려는 북부여라는 나라의 이름을 바꾼 것이지 고주몽이 창건한 게 아닙니다. 북부여 역사는 182년인데 1세 해모수, 2세 모수리慕漱離 이후 6세까지 이어지다가, 고주몽이 계승했습니다.

 

『북부여기』는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사와, 북부여에서 갈려 나간 여러 부여사를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부여사의 전모를 밝혀 주는 사서로, 특히 북부여의 건국 시조인 해모수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 줍니다. 그동안 고조선이 멸망한 뒤 어떻게 고구려로 이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 『북부여기』를 통해서 9천 년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계절, 우주변화원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한민족의 진실된 역사에 대해서 알고싶으신분,  생존의 비밀, 한민족과 증산도, 천지성공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께 생존의 비밀 책자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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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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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한'은 어디서 왔는가?한韓의 뿌리와 미래

 

한韓의 뿌리와 미래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대한민국의 '대한'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의 국호에 대한이란 말을 처음 쓴 분은 고종황제였다.
 


'조선왕조실록' 1897년 10월 11일자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우리나라를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개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으니 지금 천하의 호칭을 대한으로 정한다고 해서 안될 것이 없다"라고 하고, 앞으로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라고 명하셨다.

 

우리나라를 본래 삼한이었으므로 그 '한'을 되살려 국호를 대한으로 정할 것을 명한 것이다. 그 이틀 후, 고종황제는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대한제국의 출범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아시아에서 북미까지 퍼져 있는 '한韓'


'한'은 단지 이땅의 7천만 겨레를 가리키는 언어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은 20여가지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一], 많다[多], 크다[大], 같다[同], 가운데[中], 대략[凡] 등이 있다. '한'이 이렇게 여러 뜻이 담겨 있음은 오랜 역사성을 가진 말이기 때문이다.

 

환국 이래 고대 동북아 문명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 때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이란 말도 널리 전파되었다. 몽골족의 언어 '한' 또는 '칸'은 신, 영웅을 부르는 이름이다. 북미 호피 인디언의 '하난'은 '하늘 세계' 속은 '높다'는 뜻이다. 타이 사람의 언어 중 '콰한khwan'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개념으로, 너와 내가 조화되는 개념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가 있다.



'대한'의 연원은 환단고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는 삼성기 상上의 첫 문장이 그것이다. "우리 환족이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다"라는 이 선언은 한민족이 원래 '환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환桓'은 '하늘의 광명[天光明]'을 뜻한다. 이 '환'에서 탄생한 것이 '한韓'이다. 즉 '한'은 '하늘의 광명이 인간에게 내려와 깃든 것[人光明]'이다. '한'은 바로 인간을 하늘의 광명을 내려 받은 신성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말이다. 이때 한으로서의 인간은 천지광명을 체험한 환단의 인간이다. 천지광명을 체험한 인간은 천지의 뜻과 이상을 실현하는 역사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오늘의 인류 역사에서 한은 곧 닥칠 인류사적 대변혁을 극복하고 지난 역사에서 모든 인간이 꿈꿔 온 이상 세계를 건설하는 주체가 된다. 한은 곧 인간을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말인 것이다.

 

'한'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미래의 인간상이다. 지금까지 '한'은 인간에게 내재한 광명, 또는 광명이 깃든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등을 의미하였으나, '한'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바는 천지의 뜻과 이상을 역사 속에서 직접 실현할 천지의 아들 딸로서 '태일太一의 인간'을 가리킨다.


 

 

북삼한과 남삼한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동북아는 현 인류문명의 시원 발상지이다. 우리 한민족은 동북아에서 구심점 노릇을 하며 '큰 하나', 대한의 문명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사가 대륙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반도의 역사로 축소되면서 그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한민족 본연의 사관은 남삼한에서 연유한 소한사관이 아니라 북삼한을 근거로 한 대한사관이다. 지금까지는 한민족의 웅대한 역사 혼을 축소시켜 버린 소한사관에 갇혀 살아왔지만, 이제는 대한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북삼한의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동북아의 태고 역사를 밝혀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인류 문명의 시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 시원 역사를 바로잡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가능하다.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70억 인류가 대한이다.


개개인은 하나의 '한'이지만 70억 전 인류는 모두 대한으로 하나이다. '한'은 이처럼 보편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상고시대에 누린 이러한 광명문화, 원형문화가 장차 이 땅에 다시 열린다는 비전을 보여준다. 봄에 뿌린 종자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와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그 종자와 똑같은 열매가 열리듯이, 환국의 광명문화가 다시 지구촌에 열린다는 소식을 전한다. 온 인류가 삼신상제님을 섬기고 광명한 존재로 무병장수하며 살아갈 황금시대(Golden Age)가 다시금 활짝 열린다는 것이다.

 


 

인류 미래 이야기의 주제는 밝은 영성 문화
환국 이래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경영했던 제왕에서 세간의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행생활을 하여 천지광명을 체험하고 무병장수의 삶을 누렸다.

 

수행의 원형문화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의 인류가 영성문화를 회복하는데 지침서이자 정법서正法書이다.환단고기에서는 이처럼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삼신께서 내려주신 본래의 신성과 광명을 되찾은 사람을 태일太一이라 일컫는다.

 

놀랍게도 환단고기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태일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천지부모에게 감사하는 지순한 마음으로 수행을 생활화하면 자신 안에 깃든 삼신의 신성과 광명을 회복하고 '참된 나[眞我]'를 성취할 수 있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환단고기에서는 9천년 전 환국 시대 이래로 동북아 문화권에서 행한 수행생활의 몇가지 사례를 이렇게 전한다.

 

- 처음에 환인께서 천잔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삼성기 하)

- (환인께서)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 (삼성기 하)

- (환웅께서 웅족과 호족을)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 환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 이 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주신 정해법靜解法(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해탈하는 법)으로서 그렇게 하셨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줄기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경계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 지어다.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참된 인간이 되리라." (삼성기 하) 

 

생명의 소리, 주문

주문을 읽을 때는 언제나 맑고 밝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주문 그 자체가 되어서 성성이 깨어서 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주문을 읽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동적인 반복'이다. 인도의 정치 지도자이자 위대한 영적 운동가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주문은 한 사람의 삶의 지팡이가 되어 매번 호된 시련을 통과하여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각각의 반복은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당신을 신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라고 하엿다.

 

반복해서 주문을 읽음으로써 그 주문의 영적 힘이 내 몸에 축적되고, 그 주력으로 내 몸과 영혼 속의 어두운 기운, 나쁜 기운, 아픈 기운을 몰아낸다. 주문은 수백 수천만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그 때의 정서에 따라 소리의 고저장단과 리듬이 달라진다. 때문에 오랜 기간 수행을 하다 보면, '천지의 노래인 주문 송주誦呪가 진정한 우주의 재즈 음악이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수행을 하면, 건강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몸의 질병이 치유되고 마음과 영혼의 상처까지 치유된다. 현대 의학은 사람의 육신만 치료할 뿐, 병의 근본적 원인은 미결로 남겨둔다. 하지만 육신만 치료한다고 완전한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 명상가 오쇼Osho는 '인간의 몸과 정신은 동일한 막대기의 양쪽 끝과 같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육체와 정신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무형의 정신과 유형의 육체가 합일된 존재이다. 그래서 병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병의 근본적 원인은 대개 심리적이거나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로 영적인 것에 있다. 심리적인 원인, 영적인 원인까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 바로 우주 생명력의 결정체로서 우주 음악이자 신의 생명의 말씀인 주문을 읽는 '주문 수행'이다.

 

* 원문 출처: 『환단고기』 해제 (상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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