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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김영사, 2003)

 

 상생문화연구소 김현일 연구위원

 

🟦 한국신화의 비밀

 

지금은 고인이 된 조철수 박사는 수메르와 히브리 신화에 정통한 학자였다. 저번에 소개한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히브리 신화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책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한국 신화의 관계를 다룬 것이다. 저자는 환웅과 단군 및 주몽과 김수로의 건국 신화 및 고려의 창건자 왕건의 조상들에 관한 신화 등에서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신화의 요소들 — 학자들은 ‘신화소神話素’라 부른다 — 이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들이 중앙아시아나 인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의 신화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신화를 연구한 학자의 주장이니 한번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은 저자가 여러 잡지에 기고한 13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울산 천전리 암각화를 다룬다. 울산의 이 암각화는 1970년에 동국대학교 불교유적 탐사단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이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변의 암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언제 새겨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겹물결무늬, 겹마름모 무늬, 동심원 무늬 등 추상적인 문양 뿐 아니라 사슴과 개, 용, 사람의 형상도 그려져 있다. 바위 하단부에 신라시대의 사람들이 새긴 한자로 된 명문이 있는데 당시에는 이곳이 사람들이 유흥을 위해 즐겨 찾던 명승지였던 모양이다.

 

 

 

조철수 박사는 이 암각화에서 먼저 용의 그림을 주목한다. 그는 상상의 동물 용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하였다고 본다.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용이 나오기 때문일까? 이 신화는 바빌론의 주신인 마르둑이 바다의 여주인 티야마트를 물리치고 승리한 마르둑 찬가이다. 티야마트 여신은 사자, 사나운 개, 전갈, 큰 물고기, 황소 및 털 많은 용사들 그리고 바다의 뱀들을 낳아서 마르둑과 싸우게 하였다.

 

바다의 괴물인 바다의 뱀들에게 피 대신 독을 채우고 눈이 부신 광채를 입혔다. 이 바다의 뱀들이 용이었다. 동양에서는 용이 군주를 상징하는 짐승으로 신성시되었지만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티야마트 여신이 낳은 괴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용의 모습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원통형 인장들에서 더러 발견되며 또 바빌론의 이슈타르 성문의 벽화에도 나타나 있다.

 

 

 

저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용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중국의 해안 지역을 거쳐 전파되어 종국에는 한반도 남쪽의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도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그 외에도 천전리 암각화에 등장하는 동심원, 연꽃무늬 등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물론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 무늬는 여러 문화의 유적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인데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좌우간 조철수 박사는 고대 근동의 신화소들이 한국의 고대 신화와 암각화 등에 등장하게 된 것은 고대 중동 문화가 초원길과 해양을 통해 동쪽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페르시아 만과 인도 및 중국 남해안을 연결하는 해상무역로가 중요한 전달경로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옥과 혼인한 김수로 왕의 신화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무속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무가巫歌 바리공주 신화에서도 입증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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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신화는 별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찍이 천문학이 발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서양에서 점성술에 사용되는 황도십이궁 —영어로는 ‘조디악zodiac’이라고 하는데 이는 작은 짐승을 뜻하는 그리스어 ‘조디온’에서 온 말이다 은 바빌론으로부터 그리스인들이 배워온 것이다.

 

태양이 운행하는 경로에 위치한 12개 별자리인 황도십이궁 가운데 황소자리(타우루스)와 처녀자리(비르고)가 있다. 수메르 신화의 인안나와 두무지 신화에서 반년씩 떨어져 지내야 하는 두 남녀를 이 두 별자리가 상징한다. 이는 동양의 견우와 직녀의 전설과 마찬가지이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춘분에 떠오르는 황소자리가 추분까지 밤하늘에 떠 있다가 사라지는 천문현상을 이러한 신화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천문 신화가 동양에 전해져 견우직녀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저자는 황도대가 오늘날과 같은 열두 별자리로 확립된 것은 BCE 15세기경 고대 바빌론 시대 말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황도12궁이 한국에도 유입되어 십이지신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십이지신이 황도12궁과는 달리 달을 나타내기보다는 하루의 시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아 저자의 주장은 좀 더 검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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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저자는 《삼국유사》에 실린 소위 단군신화를 논한다. 저자는 단군신화를 배달국과 고조선의 건국이라는 사건이 반영된 건국사화라는 관점보다는 단군을 조선의 수호신으로 믿는 종교적 의도에서 서술된 태초 역사로 본다.(99쪽) 단군신화를 세상에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환웅 이야기와 환웅의 아들 단군이 산신이 되는 저승 신화가 결합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환웅은 인간 세상에 질서를 가져다준 문화영웅이었으며 단군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후 산신이 되어 민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된 인물이라 하였다.

 

물론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단군을 신격화시켜 숭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건국의 영웅을 신격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터인데 저자는 단군이 산신이 되어 조선 민족을 지키는 저승신의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수메르 신화의 전문가인 저자가 보기에 단군은 대홍수로부터 인류의 멸종을 막은 수메르의 지혜의 신 엔키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저자는 한국의 용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으로 전파되어 들어온 신화소라 본다.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하여 서양에서는 용이 괴물로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양에서는 군주의 상징이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 필자는 어떠한 설명도 본서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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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처용은 역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 태조 왕건의 할머니도 용왕의 딸이었다고 한다. 이는 《고려사》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왕건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려세계高麗世系〉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당나라로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는데 용왕을 만나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그 딸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편 작제건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용녀는 다시 용이 되어 바다로 돌아갔다. 그러나 작제건과의 사이에 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장남이 용건龍建이다.

 

용건은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대사와 알게 되었는데 도선대사가 지시하는 대로 집을 지어 성자聖子 왕건을 낳게 되었다. 용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상상의 동물이므로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고려 왕가의 탄생 신화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저자는 병에 걸린 아버지 오구대왕을 치유할 약을 구하러 서역을 넘어 저승까지 내려간 바리 공주 이야기도 수메르의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쉬는 영생을 가능하게 하는 불로초를 얻기 위해 저승까지 내려갔다 돌아온 인물로 죽어서는 저승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299쪽)

 

그러나 〈길가메수와 엔키두의 저승여행〉이라는 서사시에서는 길가메쉬가 저승에 갇힌 친구 엔키두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엔키가 엔키두의 혼을 저승에서 불러오게 만들어 길가메쉬와 만나게 하는 것으로 저승여행을 대신하게 만든 것으로 나온다. 좌우간 바리 공주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데에는 저승여행이라는 모티브가 작용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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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화를 다소 무리하게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연관시키려 하는 본서에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한글이 히브리 문자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맨 마지막 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세종이 창제한 한글 즉 훈민정음은 옛 전자篆字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이는 한글을 해설한 책인 《훈민정음》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옛 전자’〔古篆〕라는 문자가 어떤 글자를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한자의 전서篆書, 산스크리트 문자 혹은 몽골문자 등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 한자의 한 서체인 전서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글의 모양이 한자의 전서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히브리어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도처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에도 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적어도 당나라 때부터 중국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랍인 여행자의 기록에 의하면 황소난(879)으로 광저우에서 12만 명의 아랍인과 유대인, 기독교인, 페르시아인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중국에 이르는 바닷길이 예전부터 무역활동에 널리 이용되어 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상업활동에 주로 종사한 유대인들이 중국까지 들어오게 된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당나라 때 유대교를 청진교淸眞敎라 했고 그들의 회당을 청진사淸眞寺라 했다. 전성기에는 수만 명에 달했던 유대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히브리 문자를 가르치는 서적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조철수 박사는 그 책의 이름이 《창조서創造書》라고 한다. 이 책은 서기 200-4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쓰여졌는데 유대교 신비주의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359쪽) 이 책을 중국 유대인들이 한자로 번역하여 갖고 있었던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철수 박사는 놀랍게도 《환단고기》에 나오는 가림토 문자가 히브리어 문자를 모방해 만든 것이라 한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고조선의 3세 가륵 단군 때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 연대에 의하면 BCE 2181년 때의 일이다. 그 때 만든 글자가 가림토加臨土라는 문자이다. 조철수 박사는 《단군세기》가 몽골 지배기에 고려의 민족주의가 고양되던 분위기 속에서 행촌 이암이 쓴 책이라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가림토 문자를 가륵 단군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중국 유대인들의 히브리 문자를 참고하여 고려 때 만들어진 문자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가림토 문자를 세종과 그 밑의 집현전 학자들이 참고하여 만든 것이 한글이라는 주장이다. 한글이 가림토 문자와 아주 비슷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어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단군세기》가 고려 말의 인물인 행촌 이암이 썼다는 사실부터 의심한다.

 

그러나 아주 오랜 고대 문자가 아니라 중세나 근세에 만들어진 문자의 발명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다른 문자들을 참고하여 만든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글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형태상으로는 한글은 산스크리트 문자나 몽골 문자보다는 히브리 문자에 더 가깝다.

 

조철수 박사는 히브리어 알파벳이 페니키아 문자처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약화체로부터 기원하였다고 본다. 약화체(hieratic)는 상형문자가 너무 그림과 같아 쓰거나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쓰기 편하게 고안된 문자이다. 일종의 필기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어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나오고 히브리어를 모방하여 가림토 문자가 나왔으니 한글은 고대 이집트 문자의 증손자쯤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미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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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수 박사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은 한국의 고대 신화들 그리고 한글의 창제에도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본다. 그의 이러한 과감한 주장들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거나 무시해왔다.

 

그러나 기존의 주장들과 다른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특히 문헌으로 확실하게 입증이 어려운 고대사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다양한 가설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들 없는 고대사는 가능하지 않으며, 가설들의 경쟁 속에서 역사학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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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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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구미원평도장 김OO도생님 입도수기.

 

저는 경북 구미에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형제들이 많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의 과를 선택을 할 때 원래는 역사학과를 다니고 싶었지만 역사학과가 아닌  다른 과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울한 마음이 생겨나 힘든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식민사관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읽고 우리나라 역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잘못 선택한 과로 인하여 역사공부나 전공과목 공부 어디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20대를 후회만 하면서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결국 하기 싫은 공부와 일을 억지로 하게 돼서 20대 끝자락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질병이 찾아오고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 등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어느듯 4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조울증,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일도 하지 않고 몇 년을 치료에 전념하여 조금씩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2021년 가을 코로나 때문인지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병이 악화되어 치료에 대한 희망을 놔버리고 아무 의욕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제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환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뉴스를 보기 위해 채널을 돌리다가 역사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는 방송을 무심코 보게 됐는데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이 역사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해 주던 상생방송의 열혈 시청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고대사, 식민사관, 동북공정에 관심이 많아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역사대담, 역사특강을 물 만난 고기처럼 시청했습니다.

놀랍게도 상생방송은 제가 10대 20대 때 역사에 대한 탐구심으로 빛났던 그 때의 눈빛으로 돌아가게 해주었고 다 죽어가던 삶의 열정을 되살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했던 제가 서점에 가서 환단고기를 구입해서 읽을 정도로 경이롭고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환단고기 원전은 그동안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졌던 의문점들을 깔끔하게 해소시켜주었고 고대 우리 선조들의 역사, 문화, 사상, 종교관 등을 두루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를 더욱 더 신뢰하게 되었고, 입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심으로 수행할 자신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도 없었던 저는 도장에 갈까 말까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갈팡 질팡하는 제가 저에게 “제발, 움직여” 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날 벌떡 일어나 증산도구미원평도장에 바로 찾아 갔습니다.

수호사님과 상담을 통해서 체계적인 8관법 교육을 받기로 하고 다음날부터 8관법 교육을 주말 빼고 계속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무척 재미있었고 진리 전반적인 내용이 너무나 알차고 모든 인생의 궁금증이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8관법 교육을 받고 보니 저를 도장으로 이끄신 분들은 조상 선령님들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못난 자손으로 인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안겨드렸지만 이제는 조상선령님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심으로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를 바르게 닦아 나가겠습니다.

아직은 증산도 수행에 대한 두려움을 품은 어설픈 신입도생이지만 일심으로 수행해서
후천 가을 개벽하는 때에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이시여 감사드립니다. 항상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조상선령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이끌어주신 수호사님 집정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상제님 태모님 품안에서 활짝 웃는 제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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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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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한'은 어디서 왔는가?한韓의 뿌리와 미래

 

한韓의 뿌리와 미래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대한민국의 '대한'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의 국호에 대한이란 말을 처음 쓴 분은 고종황제였다.
 


'조선왕조실록' 1897년 10월 11일자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우리나라를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개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으니 지금 천하의 호칭을 대한으로 정한다고 해서 안될 것이 없다"라고 하고, 앞으로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라고 명하셨다.

 

우리나라를 본래 삼한이었으므로 그 '한'을 되살려 국호를 대한으로 정할 것을 명한 것이다. 그 이틀 후, 고종황제는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대한제국의 출범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아시아에서 북미까지 퍼져 있는 '한韓'


'한'은 단지 이땅의 7천만 겨레를 가리키는 언어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은 20여가지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一], 많다[多], 크다[大], 같다[同], 가운데[中], 대략[凡] 등이 있다. '한'이 이렇게 여러 뜻이 담겨 있음은 오랜 역사성을 가진 말이기 때문이다.

 

환국 이래 고대 동북아 문명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 때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이란 말도 널리 전파되었다. 몽골족의 언어 '한' 또는 '칸'은 신, 영웅을 부르는 이름이다. 북미 호피 인디언의 '하난'은 '하늘 세계' 속은 '높다'는 뜻이다. 타이 사람의 언어 중 '콰한khwan'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개념으로, 너와 내가 조화되는 개념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가 있다.



'대한'의 연원은 환단고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는 삼성기 상上의 첫 문장이 그것이다. "우리 환족이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다"라는 이 선언은 한민족이 원래 '환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환桓'은 '하늘의 광명[天光明]'을 뜻한다. 이 '환'에서 탄생한 것이 '한韓'이다. 즉 '한'은 '하늘의 광명이 인간에게 내려와 깃든 것[人光明]'이다. '한'은 바로 인간을 하늘의 광명을 내려 받은 신성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말이다. 이때 한으로서의 인간은 천지광명을 체험한 환단의 인간이다. 천지광명을 체험한 인간은 천지의 뜻과 이상을 실현하는 역사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오늘의 인류 역사에서 한은 곧 닥칠 인류사적 대변혁을 극복하고 지난 역사에서 모든 인간이 꿈꿔 온 이상 세계를 건설하는 주체가 된다. 한은 곧 인간을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말인 것이다.

 

'한'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미래의 인간상이다. 지금까지 '한'은 인간에게 내재한 광명, 또는 광명이 깃든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등을 의미하였으나, '한'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바는 천지의 뜻과 이상을 역사 속에서 직접 실현할 천지의 아들 딸로서 '태일太一의 인간'을 가리킨다.


 

 

북삼한과 남삼한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동북아는 현 인류문명의 시원 발상지이다. 우리 한민족은 동북아에서 구심점 노릇을 하며 '큰 하나', 대한의 문명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사가 대륙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반도의 역사로 축소되면서 그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한민족 본연의 사관은 남삼한에서 연유한 소한사관이 아니라 북삼한을 근거로 한 대한사관이다. 지금까지는 한민족의 웅대한 역사 혼을 축소시켜 버린 소한사관에 갇혀 살아왔지만, 이제는 대한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북삼한의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동북아의 태고 역사를 밝혀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인류 문명의 시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 시원 역사를 바로잡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가능하다. 대한사관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사라진 동북아 본연의 모습을 밝히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실로 인류 역사 전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된다.


 

70억 인류가 대한이다.


개개인은 하나의 '한'이지만 70억 전 인류는 모두 대한으로 하나이다. '한'은 이처럼 보편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환단고기는 상고시대에 누린 이러한 광명문화, 원형문화가 장차 이 땅에 다시 열린다는 비전을 보여준다. 봄에 뿌린 종자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와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그 종자와 똑같은 열매가 열리듯이, 환국의 광명문화가 다시 지구촌에 열린다는 소식을 전한다. 온 인류가 삼신상제님을 섬기고 광명한 존재로 무병장수하며 살아갈 황금시대(Golden Age)가 다시금 활짝 열린다는 것이다.

 


 

인류 미래 이야기의 주제는 밝은 영성 문화
환국 이래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경영했던 제왕에서 세간의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행생활을 하여 천지광명을 체험하고 무병장수의 삶을 누렸다.

 

수행의 원형문화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의 인류가 영성문화를 회복하는데 지침서이자 정법서正法書이다.환단고기에서는 이처럼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삼신께서 내려주신 본래의 신성과 광명을 되찾은 사람을 태일太一이라 일컫는다.

 

놀랍게도 환단고기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태일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천지부모에게 감사하는 지순한 마음으로 수행을 생활화하면 자신 안에 깃든 삼신의 신성과 광명을 회복하고 '참된 나[眞我]'를 성취할 수 있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환단고기에서는 9천년 전 환국 시대 이래로 동북아 문화권에서 행한 수행생활의 몇가지 사례를 이렇게 전한다.

 

- 처음에 환인께서 천잔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삼성기 하)

- (환인께서) 바깥일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 (삼성기 하)

- (환웅께서 웅족과 호족을)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 환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 이 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주신 정해법靜解法(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여 해탈하는 법)으로서 그렇게 하셨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줄기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경계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 지어다.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참된 인간이 되리라." (삼성기 하) 

 

생명의 소리, 주문

주문을 읽을 때는 언제나 맑고 밝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주문 그 자체가 되어서 성성이 깨어서 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주문을 읽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동적인 반복'이다. 인도의 정치 지도자이자 위대한 영적 운동가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주문은 한 사람의 삶의 지팡이가 되어 매번 호된 시련을 통과하여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각각의 반복은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당신을 신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라고 하엿다.

 

반복해서 주문을 읽음으로써 그 주문의 영적 힘이 내 몸에 축적되고, 그 주력으로 내 몸과 영혼 속의 어두운 기운, 나쁜 기운, 아픈 기운을 몰아낸다. 주문은 수백 수천만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그 때의 정서에 따라 소리의 고저장단과 리듬이 달라진다. 때문에 오랜 기간 수행을 하다 보면, '천지의 노래인 주문 송주誦呪가 진정한 우주의 재즈 음악이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수행을 하면, 건강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몸의 질병이 치유되고 마음과 영혼의 상처까지 치유된다. 현대 의학은 사람의 육신만 치료할 뿐, 병의 근본적 원인은 미결로 남겨둔다. 하지만 육신만 치료한다고 완전한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 명상가 오쇼Osho는 '인간의 몸과 정신은 동일한 막대기의 양쪽 끝과 같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육체와 정신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무형의 정신과 유형의 육체가 합일된 존재이다. 그래서 병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병의 근본적 원인은 대개 심리적이거나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로 영적인 것에 있다. 심리적인 원인, 영적인 원인까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 바로 우주 생명력의 결정체로서 우주 음악이자 신의 생명의 말씀인 주문을 읽는 '주문 수행'이다.

 

* 원문 출처: 『환단고기』 해제 (상생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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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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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수탈收奪과 민족정신 말살抹殺

 

지난 임진란에 일본 사람이 조선에 와서 성공치 못하여 세 가지 한이 맺혀 삼한당(三恨堂)이 있다 하나니 먼저 도성(都城)에 들지 못하였음이 일한(一恨)이요 인명을 많이 죽였음이 이한(二恨)이요 수종(水種)을 가르쳤음이 삼한(三恨)이라. 그러므로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먼저 도성에 들게 됨에 일한이 풀리고 인명을 많이 죽이지 않게 됨에 이한이 풀리고 3년 가뭄으로 백지(白地) 강산에 백성들이 추수하지 못하게 됨에 삼한이 풀리리라. (증산도 道典 5:286)




토지와 쌀 수탈


일본은 1910년대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농민들이 도시에 몰려 식량조달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서 생산된 쌀을 공출供出해 갔다. 한국에서 1932~36년의 평균 쌀 생산량은 1,700만 석이었는데 그 기간 일본으로 가져간 것은 그 절반이 넘는 876만 석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1920년의 약 7두에서 4두 정도로 줄어들었다. 전쟁기에 우리나라 농민들은 스스로 생산한 쌀을 일제 당국에 부락 단위로 강제로 팔고, 필요한 식량을 배급받아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나마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쌀 배급 받기가 극히 어려웠고,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으로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은 또 토지조사사업(1910~1918)을 벌여 한국에 대한 토지 침탈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여 소유권과 가격 그리고 지적을 확정한다는 명분으로 실시한 것인데, 까다로운 신고 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이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아 토지를 빼앗기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역둔토驛屯土, 궁장토宮庄土 등을 비롯한 국유지, 동중洞中이나 문중門中의 공유지는 신고주가 없어 총독부나 유력한 친일 인사들에게 넘어갔다. 1930년까지 조선총독부가 소유한 토지는 전 국토의 40%를 차지했다. 이 사업의 결과 소수의 지주들만이 토지소유권을 획득했으나 자작농自作農이나 자작 겸 소작농自作兼小作農 등 소농들은 대부분 몰락하여 소작농과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거나 화전민이 되었고 중국 동북부 등지로 떠나가는 등의 사례도 많았다.

일본 독점기업의 진출로 경제 종속


일본은 민족자본의 발전도 억압했다. 1910년 12월 조선총독부에서는 제령制令 제13호로 ‘회사령’을 발포했다. 회사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령인데, 이때 발포한 회사령은 자본주의 꽃인 회사, 즉 기업 설립과 활동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는 법령이었다. 회사령 1조는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령 제12조는 “제1조의 허가를 받지 않고 회사를 설립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0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실하게 신고해서 그 허가를 받은 자도 역시 동일하다.”고 규정했다. 이는 민족자본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일본 기업, 일본 자본이 식민지를 지배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1920년부터는 회사령을 철폐하고 회사 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화했다. 이로써 일본인 자본가의 투자가 크게 늘어났는데 1930년 현재 회사 자본의 62.4%를 일본인이 차지하고, 한일 합자가 30.8% 그리고 한국인은 6.4%에 불과했다. 투자 대상은 주로 상업, 공업, 운수업에 치중했는데, 풍부한 공업 원료와 수력 자원 그리고 값싼 노동력이 일제의 공업화 정책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1930년대 일본의 주요 독점기업인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稜), 노구치(野口) 등이 들어와 공업과 광업의 여러 분야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수력발전은 노구치, 섬유·방직·술·제분 화약은 미쓰이, 맥주는 미쓰비시가 담당했다.

그 밖에 일본은 목화재배를 장려해 헐값으로 가져가고, 누에고치 생산을 강매해 통제가격인 헐값으로 가져갔으며, 광업 생산의 80% 이상을 독점했다. 그리고 연초 전매 제도(1921)와 교통·체신의 관영사업을 통해 총독부 수입을 늘리고, 총독부 재정의 80%에 해당하는 액수를 각종 세금을 통해 충당했다. 총독부는 크게 늘어난 수입을 일본인 지주와 자본가를 지원하고 각종 탄압기관을 운영하는데 지출했다.

일본의 사서 수거와 역사 왜곡


일본은 무엇보다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부추기는 역사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대대적인 사서 수거 사업과 역사 왜곡 사업이다. 백당 문정창文定昌(1899~1980) 선생은 『군국 일본 조선강점 36년사』(박문당, 1967)에서,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 한국인의 영혼에 식민사학으로 족쇄를 채웠는지 고발하고 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탄한 1910년부터 1911년 말까지 약 1년간,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의 주도로 불온서적을 수색한다며 군경을 동원, 마치 군사작전을 벌이듯 전국 각지에서 51종 20만 권의 사서를 강탈하거나 소각했다.”

조선총독부의 기록에 따르면 1916년부터 3년 동안 『조선사』를 편찬한다는 명목으로 사적을 거두어들였으며, 1922년에는 8명이 122일간, 1923년에는 17명이 204일간, 1924년에는 12명이 176일간, 1925년에는 15명이 200일간 전국을 누비며 총 259명의 전문 요원들이 2,800일 동안 사료를 색출, 탈취해 갔다. 뿐만 아니라 1937년 말까지 장기간에 걸쳐 고문헌古文獻을 빠짐없이 수거하여 중요 사책史冊 4,950권과 문서 기록 등 453점을 빼앗아 갔다. 극동 문제를 연구한 미국인 나다니엘 페퍼(1890~1964) 기자도 일제가 얼마나 철저하게 한국사를 파괴하려 했는지 생생하게 전했다.

“일본인은 곧바로 한국의 국사란 국사는 전부 압수하여 불태워 버렸다. 한국의 문화를 한 글자, 한 획이라도 기록한 문서는 철저히 수색하여 폐기시켜 버렸다. 한국사 문서는 가지고만 있어도 범죄자가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역사 기록을 모조리 파괴하고 강탈하였으며 새로운 조선사를 쓰기 위해 1925년 그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주도적으로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1937년 마침내 조선총독부 역사관으로 왜곡한 『조선사』 35권을 완간했다. 당시 돈으로 1백만 엔이란 거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편찬한 『조선사』 35권을 보면, 지금의 초·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와 너무나 닮아서 분노하게 된다. 한반도의 북쪽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이 지배한 중국의 식민지였고, 한반도의 남쪽은 임나일본부가 지배한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일제는 실증사학, 근대 사학이라는 현란한 말로 마치 자신들의 식민사관이 객관적이고, 고칠 수 없는 불변의 사실인 것처럼 한국인의 영혼에 주입했다.

일반 주민들의 생활도 철저히 통제


일제는 전시체제를 빙자해 일반 주민 생활도 철저히 통제했다. 중일전쟁 이후 1938년 8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총독부 보익 기관으로 설치했는데, 이 단체는 도道에서 말단 리里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지방 조직을 망라하고 그 밑에 10호 단위의 애국반愛國班을 두어 정기적으로 반상회班常會를 열어 총독부 시책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여기에 더해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여 완전한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이른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우선 1938년부터 모든 주민들로 하여금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라는 것을 일본어로 외우게 했는데,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이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忠義를 다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써 천황이 거하는 궁성을 향해 절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또한 학교교육과 관공서에서 우리말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를 국어라 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했다. 1939년에는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단행했다. 일본이름으로 바꾸지 않으면 학교 입학이나 공문서 발급이 금지되고, 식량과 물자배급에서 제외되었으며 우편물도 전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득이 창씨개명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전국민의 약 14%는 끝까지 이를 거부하는 기개를 보여 주었다.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근원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일본인과 한국인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이른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미 188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만, 침략전쟁 이후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 및 동조동근同祖同根론으로 바꾸어, 두 나라 주민을 민족도 하나이고, 국민도 하나라는 일체감을 심어 주려고 했다. 이어 일제는 그들의 종교인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를 위해 서울의 남산신궁을 비롯하여 각 학교와 면마다 신사(전국 1,141개)를 세우고, 각 가정에서도 일본 시조신의 신주를 걸어 놓고, 예배하도록 강요했다.

징병·징용 그리고 정신대 등으로 큰 고통과 상처 안겨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는 데 광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을 전쟁터로 몰아넣어 일본을 위해 싸우게 했다. 처음에는 군대 보충을 위해 ‘지원병 제도’(1938)를 실시하다가 뒤에는 ‘징병제도’(1943)#로 바꾸어 패전할 때까지 약 20만 명의 청년을 강제로 징집했으며, ‘학도 지원병 제도’(1943)를 실시하여 약 4,5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이 밖에도 일본은 1939년부터 모집 형식으로, 1940년부터 알선 형식으로, 1944년부터는 ‘징용’형식으로 일제 말기까지 1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을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끌고 갔다. 이들은 탄광·비행장·군수공장·철도 등의 공사장에 군대식으로 편제되어 강제수용된 가운데 노예처럼 혹사당했는데, 공사가 끝난 뒤에는 군대기밀을 지킨다는 이유로 무더기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한편 ‘근로동원’이라 하여 어린 국민학생과 중학생들을 군사시설 공사에 끌어들이고 여성들도 ‘근로 보국대’란 이름을 붙여 토목공사에 끌어들였으며, ‘애국부인회’라는 어용 단체를 만들어 충성을 강요했다. 그리고 전쟁 막바지에는 악명 높은 ‘여자정신대근로령’이라는 것을 공포하여 12세에서 40세까지의 배우자 없는 여성 20만 명을 강제 동원했다. 이들은 일본과 조선 내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 상당수 인원을 중국과 동남아 지역의 전쟁터로 보내 군인 상대의 위안부가 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의 침략 전쟁과 그로 인한 한국인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커서 그 후유증은 광복 후 민족국가 건설에 큰 장애 요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제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파괴·왜곡한 식민사학이 아직 청산되지 못하고 학교 교육현장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어 우리의 올바른 역사의식 정립이나 공동체 의식 함양, 새 역사와 문화 창달에 가장 큰 병적 장애가 되고 있다.

참고자료이덕일 지음, 『근대를 말하다』, 역사의 아침, 2012
한영우 지음,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14
안경전 지음, 『환단고기 역주본』, 상생출판, 2012
(사)대한사랑, 〈대한사랑 2호〉(계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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