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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주 소리로 이어진 인연 외 (오OO, 김OO, 유OO도생 입도수기)

 

 

시천주주 소리로 이어진 인연

 

 

“이웃집 창문을 넘어 들려온 시천주주로 진리와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인도자가 보내 준 주문과 진리 등이 낯설지 않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내용도 제가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과 같았습니다.”



오OO(여, 60) / 태전대덕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옆집에서 들려오는 시천주 주문 소리


저는 대전 중리동에 살고 있어, 상생방송 건물을 보면서 증산도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증산도 건물이 생기고 나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로 전국에서 흰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증산도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옆집으로 젊은 부부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이웃이라 서로 오가면서 얘기를 조금씩 나누며 알고 지냈는데, 가끔씩 창밖으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하면서 그 집 아이들이 주문을 읽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친정아버지가 청수를 모시고 동네 어르신들과 같이 “시천주” 읽는 것을 자주 들으며 자라왔고, 또 아버지 대신 청수를 모시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문 소리가 낯설지 않았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옆집 유진이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증산도에 대해 얘기해 주며 도장에 한번 가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한번 방문을 한 뒤 알려 준 대로 처음으로 사배심고를 했는데, 왠지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이영옥 포감님은 종종 저에게 증산도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고, 카톡으로 주문이며 여러 가지 내용들을 보내 주곤 했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저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내용도 이미 제가 생각하고 느껴 왔던 것과 같았습니다.

이후 선려화에 대해 듣게 되었고, 유성호텔에서 선려화 전수식이 있다며 저를 초대하였습니다. 매번 거절해 왔던 것이 미안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가 보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종도사님 도훈도 듣고 선려화도 전수받았습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증산도가 우리 전통과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병원에 안 가도 호전되는 건강


이후에 제가 몸이 안 좋은 부분이 있어서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이영옥 포감님은 그러겠다고 했고, 다음 날부터 새벽마다 저에게 선려화를 심어 주며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카톡으로 저에게 ‘선려화 수행을 시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오면, 저도 그 시간에 집에서 유튜브로 주문을 틀어서 따라 읽었습니다. 기도를 해 준 덕분인지 몸이 조금씩 좋아지고 통증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장에서 하면 더 좋다는 얘기를 하길래 오랜만에 다시 도장에 방문했습니다.

저는 종종 선몽 같은 꿈을 꾸곤 하는데, 바로 전날 밤 꿈에서 깨끗한 새집을 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도장을 방문했고 그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같이 도장에 가서 수행을 하였는데, 이영옥 포감님은 저에게 선려화를 심어 주며 신유를 해 주었습니다. 수행을 하는 동안 눈부시게 환한 빛을 매일 보았고, 어떤 때는 조상님인지 누군지 모를 어떤 분이 저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고, 또 황금색 꽃을 보기도 하는 등 조금씩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의 꿈에서는 흐드러지게 활짝 핀 목련화를 보기도 하고, 약초를 받기도 하는 등 좋은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 병증이 좀 오래되었지만 한 번도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지 않았기에, 병원에 가서 일단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영옥 포감님이 병원 가기 전에 입도식을 올리고 제물을 차려 놓고 치유 치성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마침내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입도식과 치유 치성을 한 뒤로 통증도 많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수행으로 병이 치유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증산도를 만나게 해 주신 조상님과 이영옥 포감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보은!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는 진리




“인간다운 진리를 갈구해 왔건만 늘 허전함과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친구의 진실한 구도심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고 제가 가야 할 길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김OO(남, 59) / 광주오치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고


저는 러시아에서 중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수입니다. 러시아에서 15년 남짓, 중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안일함 속에 하루하루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 집안일과 문중 일이 있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하고 있는 관계로 친구와 자주 만날 기회도 없고 친구의 전후 사정을 알 기회도 없었는데, 김건호 친구를 집안일과 문중일 관련해서 만났습니다.

저는 광주시 북구에 있는 충장공 김 덕 자 령 자 후손으로 친구 김건호는 집안 아저씨로 아주 가까운 친척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보다가 김건호라는 친구를 먼저 찾아 만났는데, 친구의 변화된 모습에서 마음으로 많은 충격과 감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3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증산도 상생방송을 보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며 친구가 증산도에 입도한 지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기에, 친구의 마음자리를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한 내용들을 들어 보니 조상님에 대한 보은과 덕과 마음가짐, 친구의 행동과 의식들이 증산도 공부와 연결되어, 친구의 변화된 모습이 제 눈에 보였기에 더욱 감명스러웠습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김건호 도생은 증산도 진리에 대한 확신과 의통에 대한 확고한 신념 속에 자기의 경험을 통한 증산도 진리를 저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저는 친구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대화를 했으며 15일이 지난 후부터는 저의 ‘입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친구의 믿음이 확고하고 저를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에 이끌려 광주오치도장을 방문해 유영희 포정님을 뵙고 다음 날부터 입도를 위한 정성 공부와 진리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진리의 눈이 차츰 밝아지며


증산도 공부를 하기 전에는 주위에서 흔히들 갖는 증산도에 대한 선입관과 그로 인해 덧붙여진 말들, 그리고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말들을 너무도 많이 들었기에, 저 또한 증산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제 나름대로는 이단으로 속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보니 제가 무지함 속에 보고 느꼈던 아만과 아상으로 인해 증산도의 진실과 실상을 보지 못했음을 스스로 자인하였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천하 대도’인 증산도의 도법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조상님에 대한 지식과 상극, 상생, 자연의 조화, 음양합덕, 해와 달, 자연의 순리 속에 원시반본 사상이 조화된 진리의 총결합으로 일목요연하게 일치되어 있음을 보고 다시 한번 감복했습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마음속의 갈구와 수행이라는 구도의 자세를 함께 갖추어 추구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21일 교육과 수행을 마쳤습니다.

21일 동안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증산도 진리와 상제님, 태모님, 태상종도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증산도 진리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글로만 읽어 보던 『도전道典』과 『증산도의 진리』 책의 총체적 내용들을 포정님과 포감님들의 설명 속에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진리의 눈이 다소 밝아져 옴을 느꼈습니다.

내가 걸어갈 구도의 길


인간으로 살아감에 인간다운 진리를 갈구해 왔건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들이 항상 뇌리를 스치면서 공허함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친구 김건호 도생의 진실한 구도심이 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줬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공부는 어떠한 자세로 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한 진리의 문을 두드려 세상에 빛을 밝힐 수 있는 도생으로 거듭나 해원, 상생하고 원시반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자 합니다.

저는 곧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는데 이러한 마음들이 한결같이 지속될 수 있을 지, ‘이곳에서의 부족했던 시간과 역량으로 미국에서도 수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됩니다. 그러나 여러 도생님들의 도움으로 저는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을 알고, 믿으며 열심히 정진하고자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인도해 준 김건호 도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저의 아상을 깨우쳐 준 포정님과 여러 포감님들께 머리 숙여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앞으로 우리 광주오치도장이 더욱 발전하여 상제님의 조화 세계와 원시반본의 세상이 하루 빨리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서로 상극의 마음이 아닌 상생, 해원 속에서 인류가 증산도의 기치 아래 하나가 됨으로써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우뚝 서는 그날까지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구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여 조상님의 뜻을 이루고 상제님 말씀을 따라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보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태모님

“입도가 연기된 날 아침 성전의 태모님 어진을 보았는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방황하는 제 마음을 다잡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바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유OO(여, 64) / 구리수택도장 / 도기 153년 음력 9월 입도

보배로운 종도사님 말씀


저는 증산도를 알기 전까지 여러 종교를 경험했습니다. 천태종 구인사 절에서 공양주 노릇을 하면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지 스님이 저를 잘 보셨는지 저에게 중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언니를 통하여 신천지 교회도 경험하고 같은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통일교 목사님을 알게 되어 통일교에도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제 생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분이 바로 저의 인도자인 구리수택도장 권재남 포감님입니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친숙한 얼굴에 저도 마음을 열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권 포감님은 저는 물론이고 저와 친분이 있던 언니까지 증산도 행사에 초대하고자 무던히도 노력을 했으나 행사 때마다 일이 생겨서 참석을 하지 못하였는데,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빛의 바람, 빛의 꽃〉 행사에는 저와 친한 언니가 함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종도사님의 강연 내용에 감동을 받아 당일 행사가 끝나고 늦은 시간에 도장을 함께 방문하여 포정님과 넷이서 만나 도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태전 유성호텔 선려화 전수식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그 행사에서도 종도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아 공감을 느끼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태모님의 눈물을 목격하고


그날 이후 저는 도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수행을 하고 도장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고 도장의 모든 빨랫감을 세탁하면서 봉사에 일심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도장에서 동방신선학교와 의원 도수 수행을 하면서 눈처럼 새하얀 선려화가 제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선명하게 보았고 어느 날은 눈망울이 빛나고 예쁜 아기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우주의 성령 세계에서 온 저의 내부 관리자인 광선 아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포정님으로부터 증산도 팔관법 교육을 받으면서 증산도 진리를 알아 가는 기쁨도 느끼고 제 나이에 진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도 느끼면서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스마트폰에 입력하고 사진도 찍어 가면서 열심히 배워 나갔습니다. 포정님과 상의하여 입도식 날짜를 10월 15일로 정하였는데 막상 입도일이 다가오자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지인들의 만류가 있어, 그 전날 포정님께 입도를 잠시만 미루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0월 15일 일요치성이 있는 날 아침에 성전에 걸려 있는 태모님 어진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태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태모님께서 방황하는 저의 마음을 잡아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계시를 내려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해와 같은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당장 입도식을 하겠다고 포정님과 권재남 포감님께 말씀을 드려 입도식을 봉행하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아는 지인들을 도장으로 초대하여 포정님께 소개하고 증산도를 알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증산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개벽기에 사람을 많이 살리는 참일꾼으로 새로 태어나겠습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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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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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방송이 들려준 진실 외 (임영자, 김소정, 정정애)-월간개벽 11월호 수록



“제가 상생방송을 꾸준히 시청해 보니, 개벽 콘서트나 도전 말씀 등 모든 것들이 증산도가 참 하느님의 도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늦게 멀리 돌아왔지만, 상제님 도문에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임영자(여, 82) / 증산도 서울광화문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대순진리회도 상생방송을 시청해


저는 1942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중국을 다니며 무역을 하였고 이후 서울에 있는 화신백화점 내, 포목점을 하셔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6,25가 터지고 피난하여 자리를 잡은 곳이 마포 공덕동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한강을 도강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결혼해서는 광화문도장 북쪽의 효자동에 살면서 아들, 딸 둘을 낳고 현재는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절에 다녔고 가끔씩 무당 집에도 다니곤 했습니다. 하루는 점을 보러 갔는데 무당이 출타해서 없었고 무당의 남편분이 저를 보더니 이제부터 이런 데 오지 말라면서, 당신에겐 두 개의 길이 있는데 잘 선택해서 가라고 하기에 그 후로 점집은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에 시댁의 당고모님이 오시더니 우리 며느리가 대순진리를 믿는다고 하시며 나중에 그 며느리하고 다시 와서 조상을 모시는 미륵님 절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조상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고 대순진리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순을 다닌 지가 세월이 흘러 벌써 50년이 되었습니다.

50년을 다니며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2022년 12월에 갑상선 수술을 하면서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걸걸하게 변해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대순회관을 갔는데 저하고 친한 사람이 STB상생방송을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이유인즉 그 사람이 어떤 날 회관에 갔는데 선감이 방에서 상생방송을 보고 있다가 자신이 들어가니 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 상생방송을 한번 시청해 보라고 말을 했고, 나중에 덧붙여 하는 말이 증산도가 대순 것을 베꼈다고 하더랍니다.

멀리 늦게 돌아서 온 진리의 길


제가 상생방송을 꾸준히 시청해 보니, 개벽 콘서트나 도전 말씀 등 모든 것들이 증산도가 참 하느님이 계시는 도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도장에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대순에서 이미 50년을 신앙했는데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증산도에서는 나를 받아 줄까? 가족들과 함께 오랫동안 다녀 놓고 이제 와서 뭘 바꾸나.’ 하면서 고민은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회관에서 정기적으로 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진력이 나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길로 “나는 이제 더 이상 안 다니겠다.”라고 대순에 선포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한참을 고민하다 상생방송에 전화를 했더니, 집 가까운 서울광화문도장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곳에 전화를 해서 류정빈 수호사님과 연락이 되었고 몇 개월 뒤 도장에 방문하여 상세한 말씀을 듣고 감동하여 필요한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입도하는 시간을 맞았습니다. 모든 것이 기적 같습니다. 너무나 늦게 멀리 돌아왔습니다. 정성을 다른 곳에 바쳐 남은 것이 없지만, 성경신을 다해 상제님 도문에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도장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가족들도 화목해지고 잘되기만을 희망하며 입도를 허락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보은!

가족을 위한 진리 신앙으로

 

“저의 아픈 아들을 통해서 상제님 진리를 접하게 하고 미륵 부처님 신앙으로 인도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려화를 내려 받아 아들에게 심어 주어 치유하는 기적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김소정(여, 68) / 증산도  포항대신도장 / 도기 153년 음력 8월 입도

아들을 위한 간절함에


저는 경주 농촌지도소 공무원으로 재직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슬하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는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는데, 공무원을 하시던 아버지와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신 어머니 덕분에 잘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밥은 굶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경주에서 살다가 28세에 결혼하여 지금은 2남 1녀를 두고 있는 주부입니다.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하는 동안은 평탄하고 무탈한 생활이었으나 결혼하고부터는 ‘이것은 삶이 아니다.’ 싶을 정도의 고난과 역경들로 범벅이 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눈물로 얼룩진 인생 역정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떡하든 가정만은 지키고 화평하게 잘 꾸려 나가야겠다는 가치관으로 인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도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걱정이 있다면 미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 문제가 큰 고민입니다. 큰아들이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더니 급기야 암까지 걸려 전이가 된 상태라 생사를 헤매는 지경에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도저히 치료를 이어 갈 수 없어서 이제는 한국으로 귀국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들의 건강 악화는 물론이거니와 엄청난 의료비와 단독 비행기 대절 문제 등으로 귀국조차도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언니로부터 증산도 신앙과 선려화 치유 수행을 권유받았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천주교 재단 고등학교에 다녔던 영향으로 자연스레 천주교를 신앙하다가,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시댁이 포항 내연산 보경사 바로 밑에 있고 불교 집안이어서 시댁 신앙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시가를 따라 불교를 신앙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생사를 헤매는 중병에 걸리다 보니 거의 미쳤다 할 정도로 간절하게 불교 신앙을 했습니다.

제대로 한번 신앙해 보렵니다


제가 증산도를 알아보기 위해 입도 공부를 하면서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 1년이 있고, 지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개벽철이라는 것과 말법 시대인 이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도솔천의 미륵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미륵 부처님이 증산 상제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도를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로서 제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들어선 길이지만, 상제님 신앙은 단순한 기복 신앙이 아니라 가을개벽기에 세상 사람을 구제하는 천하사 신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한번 신앙을 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선려화를 내려 받아 병마에 신음하고 있는 아들에게 심어 주어 아들부터 낫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기적이라는 것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저의 남편과 자녀들도 저를 따라 입도를 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아들을 고쳐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증산도를 공부하고 입도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아픈 아들을 통해서 상제님 진리를 접하게 하고 미륵 부처님 신앙으로 인도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저를 상제님 도문으로 이끌어 주신 조상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상님 천도식을 올려 드려 보은할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보은!


변함없는 정성에 발을 내딛다



“처음 만난 이후로 약 12년의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저를 상제님 진리로 이끌어 준 인도자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증산도의 진리 내용대로 세상의 개벽 흐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에 입도를 결심했습니다.”



정정애(여, 70) / 증산도  안양만안도장 / 도기 153년 음력 7월 입도

진정 구원의 길은 어디에


저를 증산도로 인도해 준 홍순덕 도생과는 약 12년 전 한 행사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가 나이 들어 직장을 그만둔 뒤론 여유 시간이 많아, 그동안 가 보지 않았던 곳도 가 보고 여기저기 건강 관련 행사에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이미지가 좋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는 곳도 멀지 않았으며 내 이야기도 편안히 들어 주어 가끔 만나 식사도 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더 친해지고 난 뒤 책을 건네받았는데 『다이제스트 개벽』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기독교 계열의 구원주 신앙을 하는 동방교에 다니며 한국으로 구원자가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동방교를 그만둔 이후에는 대순진리회에도 5년을 다녔는데 1988년에 때가 다 되었다며 모두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성금을 크게 헌성했지만 올림픽이 지나고 나니 별일이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대순에서는 물질만 계속 요구하였고 지도자가 죽고 패도 갈리며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고 나니 싫증이 나고 실망스럽기도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홍순덕 도생에게 증산도 책을 받았지만 대순 시절에도 아무 일 없이 지났는데 또 그런 거 아닌가 하며 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대로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


그런데 홍순덕 도생이 자주 연락을 하고 행사가 있으면 초대도 하여 대전 태을궁과 도장에 참석해 보면서 뭔가 대순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순은 책이라고 하면 얇은 전경이 전부인데 증산도는 체계적인 책자도 많이 나오고 상생방송이라고 당당하게 알리는 것을 보니 믿음성이 갔습니다.

마음으론 이 길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꼭 이 길이다라며 빠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그동안 여기저기 신앙을 가져 보았지만 큰 신뢰를 하지 못해 50퍼센트 정도만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여긴 아니라며 딱 자르지는 않고 가끔 초대를 하면 행사 참여는 계속하였고, 진리 공부도 해야 되는데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살면 되지 굳이 이걸 또 믿어야 되나.’ 하는 마음으로 세월만 보냈습니다.

지난 8월 27일 태을궁 행사도 모처럼 시간이 나서 참여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입도를 하는 모습에 ‘아! 나도 이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입도를 결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보아도 증산도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개벽의 흐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이젠 나도 이름을 올려서 얼른 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입도를 결심했습니다. 처음 만난 이후로 약 1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포기하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저를 상제님 진리로 인도해 준 홍순덕 도생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상제님 신앙으로 이끌어 주신 조상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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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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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의 인연은 언제나 가까이에, 증산도 아산온천도장 박OO 도생 입도수기

 

 

“우주 이치로 오는 개벽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이 생겼으며, 상생방송을 주의 깊게 시청하면서 상제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지금 현 세상이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였습니다.”

 

 

절실함이 또다시 이어 준 인연

 

저는 3남 2녀 중 4녀로 태어나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너무나도 평범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며 특별한 신앙생활도 하지 않았던 주부였습니다. 남에게 죄 안 짓고 피해 안 주고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말지, 싸우고 누르고 빼앗으면 뭘 할까 하는 욕심 없는 마음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서 성장시키고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던 50대 중반의 어느 날, 군 입대를 앞둔 스무 살 막내아들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아들이 뇌를 다쳐 양쪽 시력을 모두 잃고 기억력도 일부 상실하는 장애가 발생하였습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의 회복은 불가하다는 판정을 하였고, 계속적인 병원 치료로는 검사와 함께 머리에 차 있는 물을 가끔 빼내며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정도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의 기대는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 올해로 3년간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고 수습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력을 잃은 아들의 병간호로 인해 저는 아들의 곁을 떠날 수 없고 항상 집에서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들도 지치고 저도 지쳐서 어디에도 마음 둘 데가 없었기에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을 의지해 볼까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달 초 과거 5년 전 직장 생활을 함께 했던 동료인 태전대덕도장 박 도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의 마음을 마치 읽고 있기라도 한 듯 아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한 가지 있다는 내용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을주와 시천주주 주문을 통한 자가 치유였습니다. 5년 전 저에게 금색 청수 그릇을 하나 전해 주며 집에서라도 상생방송을 보면서 한번 직접 해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당시에는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호기심에 잠시 방송을 보다가 끊었으나, 이번에는 전화 연락을 받고 바로 인근 증산도 아산온천도장으로 함께 가서 증산도의 진리에 대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태을주와 시천주주의 효능, 그리고 개벽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치유 상황을 들으면서 거짓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아들이 자는 방에 박 도생님이 전해 준 태을주 전지를 벽에 붙이고 그 아래 청수를 모셨습니다. 조그마한 신단을 꾸려 전해 받은 주문지를 펴 놓고 상생방송의 아침 저녁 수행 주문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이치와 선려화에 대한 확신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저와 아들이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저와 아들은 박 도생님 차량을 타고 소속 도장인 태전대덕도장까지 수차례 따라다니며 선려화 치유도 받고 대덕도장 수호사님으로부터 『도전道典』도 선물 받았으며 계속적인 진리 교육과 권유로 대전 유성호텔에서의 선려화 포럼 행사에 아들을 데리고 참여했습니다.

 

평소에 상생방송 동방신선학교를 보며 집에서 따라 했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느낌이 유성호텔 행사장에서는 확실히 느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꽃 모양의 무언가가 제 머릿속에 들어가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집에서 따라 할 때는 느껴지지가 않았는데 왜 여기서는 느껴졌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박 도생님께서 나중에 알려 주셨습니다. 선려화 전수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라 종도사님께서 기운을 열어 주시는 그 시간, 그 장소, 그 주문을 하는 곳에서만 선려화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서 평소 집에서 했을 때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저는 선려화 기운에 대해 확신이 섰고 신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주 이치로 오는 개벽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이 생겼으며 이후로 태전대덕도장 수호사님께서 선물해 주신 『도전道典』을 읽고 상생방송을 계속 주의 깊게 시청하면서 증산 상제님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현 세상이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였고 태을주와 시천주주, 그리고 선려화를 통해 남을 치유할 수도 있고 나도 살 수 있다는 신뢰와 확신이 섰습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진정한 믿음

 

특히 박 도생님께서 알려 주신 증산도는 또 다른 하나의 종교가 아닌 유불선 기독교의 도착점인 개벽을 알리는 곳이요, 선천 각 종교에서 말하는 조물주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 미륵불, 옥황상제님께서 이미 세상에 다녀가셨음을 알리는 모든 종교의 도착점이며, 또한 증산도 도인들은 천명을 수행하여 인류를 건져 낼 지상에 존재하는 천상의 공무원이라는 말씀에 혹시나 했던 사이비 종교의 의심을 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가정에서 꾸준히 주문을 따라 하면서 추후 “입도를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태을주와 시천주주, 선려화를 통해 남을 치유해 주는 봉사를 하고 나도 치유를 하면서 특히 아들의 사고 후유증도 치유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개벽 때 가족들과 남들을 많이 살리는 바람을 동시에 이루어 보려는 결심을 한 끝에 마침내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먹은 과정은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믿음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이끌어 주신 박 도생님, 대덕도장 수호사님, 그리고 도와주신 대덕도장 도생님들과 입도를 환영해 주신 아산온천도장 수호사님과 도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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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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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적 인간, 인간 꽃 어트겅자르갈 증산도 태전보문도장 입도



“사람을 살리려고 그런다.”라며 웃는 회사 동료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실제로 실천하며 남을 위해 사는지, 눈앞에 보이는 그들이 점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예쁜 인간 꽃이 진정 그들이었습니다.



어트겅자르갈(여, 46세) / 태전보문도장 / 도기 153년 음력 5월 입도

종교에 대한 불확실성


1990년 봄 몽골에서 민주화 바람이 일어나 사회가 크게 흔들렸던 시절 저는 열두 살의 소녀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몽골 사회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생겨났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계획경제 제도를 채택했던 몽골은 이때부터 엄청난 혼란을 겪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린 열두 살의 저한테는 마트 진열대에 소금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현상이 제일 강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승복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저의 외할아버지도 승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중이었는지 그때 왜 승복을 입었는지, 원래부터 입었는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중이 된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종일 불경을 외우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약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전에 친할머니가 아침에 끓인 차를 떠서 집에 있는 신단 같은 곳에 올려놓는 것을 본 것이 전부였던 저에게는 종교의 얼굴을 처음 본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도 제가 처음 보던 그 종교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이 아니면 불경을 볼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생기거나 필요하면 절에 가서 돈 내고 중에게 불경을 외우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절에서 가져온 향을 피우거나 청수로 세수를 하는 것이 몽골인들의 대표적인 종교 예식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환경을 보고 자라서 종교에 대한 큰 인식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돌아가시기 직전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종교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종교들은 그저 서로를 부인하고, 필요하면 전쟁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는 괴물들 같았습니다. 그들의 말은 인류 평화를 외치지만 행동은 인류를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종교는 저에게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신비함으로 가득 찬 곳


하지만 그런 저한테도 신관은 있었습니다. 즉 신神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자연과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해도 너무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저절로 생겨나고 물리학적인 변화에만 의지해 생긴 것으로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나만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숨을 불어넣어 준 그 진짜 주인공은 나의 신이었습니다. 세상 종교는 다 헷갈려서 그 주인공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그 신을 향해 기도도 했습니다.

2013년 셋째 언니가 또 정신을 잃고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이번에는 심장 멈춤도 있었고 증상이 심각하다는 의사의 말은 가족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큰언니가 이상한 말을 꺼냈습니다. 셋째 언니가 신을 내려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숨을 이어 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식구들이 신을 받을까 말까 이야기하는 중에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앞에서 그러고 있는 식구들을 친구들하고 비웃다가 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갑자기 미끄러져 오는 차 밑으로 다리가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행히 차가 멈춰 무사히 지나갔지만 말을 잘못해 벌을 받는가 싶었습니다. 이를 식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후 언니의 신 받음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저 또한 적극 지원했습니다. 신을 받은 언니가 진짜인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혼에 대해, 귀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을 받은 언니를 체험하면서 신명의 세계가 한없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서히 사후 세계를 믿게 되었고 귀신의 존재도 믿게 되었습니다.

나의 신관이 깨지면서


2014년 8월 8일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오전 일과를 보는 중 셋째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부터 원망을 했습니다. 전날 밤 왠지 모르게 아버지한테 너무 가고 싶어 남편에게 빨리 와 달라고 했는데 동료를 바래다주고 오는 바람에 다음 날로 미룬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지도 못하고 보내 하늘이 멀고 땅이 단단했습니다.

그때 저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습니다. 충격으로 양수가 터지고 병원으로 옮겨져 미숙아를 안은 탓에 병원에서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식구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 마지막 모습도 못 보고 보내 드렸습니다. 이렇게 남편이 아빠가 된 날 저는 아버지를 영원히 잃었습니다. 뵙지 못해서 그런지 아버지는 어딘가 있을 것만 같아 찾아다녔습니다. 아버지 집에도 갔고 언니 집에도 갔습니다. 아버지가 오르던 산을 오르고 거리를 걸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잘 보이는데 아버지만 안 보였습니다.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행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2016년에 둘째를 낳고 석사 과정을 공부할 좋은 기회가 생겨 한국에 왔습니다. 석사 공부를 하면서 저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신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세계주의이며 온 인류가 한 덩어리로 평화롭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그러한 세계주의로부터 나온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비슷한 신념관을 가진 종교들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증산도는 알지도 못했습니다. 일상도 바쁘고 깊은 관심은 두지 않았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향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과정은 아마도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종교에 매력을 잃은 것, 저만의 진짜 신을 믿었던 것, 명색이 종교라면 지구 인류를 갈라놓으면 안 된다는 굳은 생각,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싸움 없이 한 공동체로 잘 지내기를 바라는 세계주의, 신명 세계에 대한 큰 관심, 수행에 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상제님께서 남기신 길을 제가 함께 걸어갈 준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생각이 2020년 상생문화연구소에 입사하고 나서 더 굳어져 갔던 것 같습니다. 입사하기 전에 상생문화연구소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수행하는 장면이 나와 더욱 좋았습니다. 입사하고 나면 이 사람들하고 수행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입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도 수행은 하고 싶은데 입도와 연결될 우려가 있어 갈피를 못 잡고 많이 헤맸습니다.

그런 와중에 연구소에 수행방이 열려 수행할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고 얼마 후 제사상 같은 것이 보이는 한편 저도 모르게 입에서 제사라는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잠깐 졸았나 싶어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생각나 찜찜해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이후 신도 체험 등은 크게 없었지만 수행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를 심신의 상태를 통해 많이 느꼈습니다.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면 확실히 덜 피곤하고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수행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수행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갈수록 제 마음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도전道典』 속 내용도 제가 기존에 가졌던 신관과 똑같고 신명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저에게 연구소는 마치 동화 속 신비의 나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데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연구소에 있는 봉직자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신기했다가 나중에는 존경스러웠습니다. 최의철 실장님, 김동영 부장님 등 여러 봉직자분들과 이사장님께 평생 은혜로 생각해도 넘침이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나가다가 회사 문 앞에서 양섭용 차장님이 “사람을 살리려고 그런다.”라며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어떻게 버리고 살 수 있는지, 눈앞에서 보이는 그들이 점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예쁜 인간꽃이 진정 그들이었습니다.

점점 제 마음의 물은 자꾸 생각과는 달리 거꾸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이어 가기 위해서라도 입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인간 꽃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수행을 인도해 주신 최의철 실장님께 입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남편한테 말했습니다. 남편이 하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뺏긴 거야.”

마음의 물이 흐르는 대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신비한 나라의 매력적이고 착한 백성들과 그 멋진 활동은 따라 하지 못해도 흉내라도 내며 늘 응원하고 정성 신앙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 세계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그것을 이어받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사모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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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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